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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책 이야기

마음/나쓰메 소세키

금동원(琴東媛) 2016. 11. 10. 23:31

 

『마음』

나쓰메 소세키 저/송태욱 역 | 현암사

 

 

 

  마주하기 위해 함께 끌어안아야만 하는 고독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발견된 자아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 쓸쓸하고 외로운 것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닌 고독의 괴로움, 변화를 감내하는 불안감. 이는 근대의 막이 열리던 시기에 급속하게 사람들에게 찾아온 인식 변화이며, 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기조이기도 하다. 소세키는[마음]에서 스스로를 포함하여 인간 존재 일반을 증오하는 선생님이라는 인물을 통해 현대의 우리 모습을 투영했고, 나아가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인생의 의미, 그리고 ‘개인’이라는 큰 문제의 해답을 위한 안내자가 되어준다.

  [마음]은 모두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에서는 ‘나’와 선생님이 처음 만나 관계가 발전되는 과정을, 두 번째 장에서는 아버지가 위독하여 고향에 내려가게 된 ‘나’와 가족 간의 관계를 그렸다. 그리고 세 번째 장은 선생님이 자신에게 찍힌 과거의 낙인과 그것이 스스로에게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에 대해 고백하는 ‘유서’로 구성되어 있다.

  [마음]은 1914년, 도쿄와 오사카의《아사히 신문》에 동시에 연재되었다. 일본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소설 중에 하나이며, 판매 부수가 1,700만 부를 돌파할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근대소설의 규범이 되었다는 점에서 일본 근대문학 최고의 정전(正典)으로 꼽힌다.



저자소개

  Natsume Soseki,なつめ そうせき,夏目漱石,본명: 긴노스케 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릴 정도로 확고한 문학적 위치에 있는 일본의 국민작가다. 1867년 일본 도쿄 출생이며 본명은 긴노스케[金之助]로, 도쿄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제1고등학교 시절에 가인(歌人)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를 알게 되어 문학적, 인간적으로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도쿄고등사범학교·제5고등학교 등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1896년 제5고등학교 교수 시절 나카네 교코와 결혼 했으나 원만하지 못한 결혼 생활을 보냈고, 1900년 일본 문부성 제1회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영국에서 유학했다.

  타지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예민하고 우울한 자아를 남겼으며, 이는 귀국 후에도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그는 치유의 한 방편으로 『고양이전』을 썼고, 이 작품은 1905년 『호토토기스(두견)』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1906)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1907년에 교직을 사임하였으며 아사히[朝日]신문사에 입사하여 『우미인초(虞美人草)』를 연재하고 『도련님』(1906), 『풀베개[草枕]』(1906) 등을 발표하였다.

  20세기 초 근대적 주체와 삶의 불안한 내면 풍경을 깊은 통찰력으로 꿰뚫어 보여주는 그의 작품들은 일본적 감수성과 윤리관으로 서구 근대의 기계문명과 자본주의를 비평적으로 바라보며 인간세계를 조명하고자 했다. 경쾌한 리듬과 유머를 바탕으로 권선징악과 같은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가치에 기반을 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며 템포가 빠르고 리듬감이 있는 문체로 자연스레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소설 외에도 수필, 하이쿠, 한시 등 여러 장르에 걸쳐 다양한 작품을 남겼으며, 그림에도 재능이 있었다.

  그의 작풍은 당시 전성기에 있던 자연주의에 대하여 고답적인 입장이었으며, 그후 『산시로[三四郞]』(1908), 『그후』(1906), 『문(門)』(1910)의 3부작에서는 심리적 작풍을 강화하였고, 다시 『피안 지나기까지』(1912), 『마음』(1914) 등에서는 근대인이 지닌 자아·이기주의를 예리하게 파헤쳤다. 반복적인 위궤양, 당뇨 등을 앓았던 그는 1916년 12월 병이 악화되어 『명암』 집필 중 49세의 나이로 타계하였으며, 1984년, 영국에서 그가 살았던 집 맞은편에는 런던 소세키 기념관이 설립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나는 지금보다 더 외로울 미래의 나를 견디기보다 외로운 현재의 나를 견뎌 내고 싶은 겁니다. 자유와 자립과 자아로 가득한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모두 그 대가로서 이 고독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될 겁니다.

 

 

  출판사 리뷰

 

  “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이야기”

  일본의 셰익스피어이자 천년의 문학가
  나쓰메 소세키가 꿰뚫어 본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

  2016년 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주년 기념
  국내 최초 장편소설 전집(전 14권) 완간

 《 아사히 신문 》, ‘지난 천 년간의 일본 문학자’ 투표 1위
  무라카미 하루키와 강상중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
  ‘한국출판문화상 편집상 최종 후보’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그 우울한 청춘의 시대, 옆에서 늘 속삭이듯 말을 걸어준 것은 나쓰메 소세키였습니다”
  자유를 구가하고 독립을 주장하며 자아를 내세우는 풍요로운 사회에서 왜 이렇게 다들 고독한가. 부모자식, 부부, 친척, 친구, 연인, 사제……인간관계 안에 숨어 있는 에고이즘과 고독,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을 그려낸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 봐도 선구적인 작가임이 틀림없다.  _ 강상중(도쿄대 명예교수)

  나쓰메 소세키 장편소설 전집, 국내 최초 완역 출간

  “2016년 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주년을 앞두고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나쓰메 소세키 장편소설 전집을 차례로 펴냅니다. 단단한 번역, 꼼꼼한 편집과 디자인으로 새롭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 소설은 깊숙한 재미와 진진한 삶의 관찰로 가득합니다. 소설을 읽고 쓰는 까닭을 기껍게 체험하게 할 ‘고민하는 힘’ 속으로,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의 독자들을 초대합니다.” - 2013년 9월 전집 출간사

  2013년 9월부터 출간하기 시작한 현암사의 나쓰메 소세키 장편소설 전집이 4차분[마음],[한눈팔기],[명암] 출간으로 마침내 완간되었다. 일본 근대 문학의 출발, ‘소설이 없던 시절의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는 근현대 일본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20세기의 대문호, 일본의 셰익스피어 등으로 불린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1,000엔권 지폐에 가장 오랫동안 그의 초상이 실려 있었고,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 뒤에는 나쓰메 소세키가 있다”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작가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친 일본의 대표 작가이기도 하다.

  ‘일본 근대 문학의 아버지’, ‘국민 작가’ 나쓰메 소세키(1867~1916) 사후 100주년을 맞아 현암사에서 국내 최초로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을 완역 출간했다. 우리나라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여러 출판사를 통해 대표작에 치우쳐 중복 출간되어 왔으나 현암사에서 출간하는 소세키 소설 전집은 나쓰메 소세키가 12년 동안 집중적으로 써내려간 장편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며 ‘지금의 번역’으로 만날 수 있는 국내 첫 전집이다.[나는 고양이로소이다],[산시로],[문],[마음],[명암] 등 우리 교과서에 실려 널리 알려진 작품뿐 아니라 소세키의 연보에서도 가끔 빠져 있는 숨어 있던 소설까지 온전히 담았다. 소세키는 길지 않은 창작 기간 동안 한시, 하이쿠, 수필,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작품을 썼다. 그 작품 각각이 개성 있게 분출하는 분위기, 내용에 따른 문체 변주의 독특함 등 소세키의 작품을 고전이라 일컬음에 이론은 없을 것이다.

  “필요 없는 문장은 단 한 줄도 없다”며 소세키의 문체를 생생한 우리말로 잘 살린 송태욱의 꼼꼼한 번역에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완역한 노재명의 소세키에 대한 깊은 이해가 더해져, ‘우리 시대 소세키 번역’으로 거듭났다. 또한 소세키의 작품을 온전히 지금 여기에 되살리는 것은 송태욱([고양이] 외 11권)?노재명(작고,[태풍] 및 [그 후])의 필생 작업이기도 하다.

  100년 전의 나쓰메 소세키에게 묻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
  나쓰메 소세키는 메이지 시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지만 그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국경과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의 우리들’에게 닿아 있다. 그는 인간의 문제에 깊이 천착했고, 인간 마음속 심연까지 접근해 들어갔다. 고독과 불안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자신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질문과 탐구로 생생한 보편성을 확보했다.

  소세키는 자전적 성격이 강한 작품들을 썼고, 그의 생애가 작품처럼 드라마틱하고 비극적이었다. 그는 후처의 아들로 태어나 두 번이나 양자로 보내졌다가 양부모의 이혼으로 파양되었다. 중학생 때 어머니를 잃고, 큰형과 둘째형을 폐결핵으로 잃었으며 결혼한 뒤에는 아내가 유산의 충격으로 투신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 자신은 평생 위통을 앓았고 신경쇠약, 두통에 시달렸다.

  그는 이러한 무수한 상실과 고통에 대한 기억을 작품 속에서 소름끼치도록 차분하고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우리의 삶이 고통과 불행, 궁핍의 연속이고 반복임을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론 삶을 믿을 수 있기를, 불안하지 않기를 갈구했다. 성장 제일주의 사회, 군국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시대를 꿰뚫어 보고 타인의 욕망에 휩쓸리지 않는, 자유롭고도 윤리적인 ‘개인’이 되고자 한 나쓰메 소세키. 그는 “개인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 시대에 고독한 영혼끼리 공명하는”(강상중) 길을 모색했고, 불안하고 나약한 우리 자신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끈질긴 희망을 놓지 않으며 죽을 때까지 인간을 연구했다.

 

  [독자리뷰]

 

 

  마음/ 나쓰메 소세끼

 

 키드만 | 2016-08-09 /

 http;//blog.yes24.com/document/8873048


  "마음" 이라는 단어, 살아가면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사용하면서도 정확한 의미를 알고 있는지..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본다.


  " 마음 가는 대로 하자" "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마음이 아파.."등등등.. 정확한 의미가 이것이다라고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가 힘들지만 그 의미는 모두가 공감을 하는 듯 하다.


  마음이라고 하는 것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에 이렇듯 광범위하게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반면, 정확한 형태가 없기에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지않으면 미루어 짐작하게 되고 각자의 입장에서 해석을 하게 되기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많은.. 그런 단어인 듯 하다.


  나쓰메 소세키의 전집 중 어느 덧 12번번째의 책을 읽게 되었다. 앞으로 2권만 더 읽으며 전집 읽기가 완성된다. 한꺼번에 읽은 것이 아니라 한달에 한 권씩 그리고 출간을 기다렸다가 또 한 권씩.. 그래서인지 나쓰메 소세끼와는 꽤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이번 책 <마음>은 다른 책들보다 더 잘 읽혔다. 물론 그 전의 책을 쭈욱 읽었기때문에 익숙해져서 그런 걸 수도 있었지만 이번 책은 인물들의 갈등이 숨어 있고 그것을 알고 싶은 호기심이 계속 발동했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책은 총 3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화자인 나와 선생님의 이야기. 부모님과 나의 이야기 그리고 선생님의 유서와도 같은 긴편지..


  3부분 모두 당사간의 진솔한 대화가 아닌 ' 아마 상대방을 이랬을 것이다..' 라는  화자의 주관적인 생각과 선생님의 고백과도 같은 유서로 구성이 되어있다.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1부의 나의 생각을 뒷받침하게 되고 모든 궁금증이 풀리게 된다.


  우연히 해수욕장에서 선생님을 만나 친분을 맺게 되는 나. 선생님과의 친분이 쌓이면서 나름 선생님은 이런 분이야.. 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한 달에 한번 친구의 묘를 찾고, 특별히 일을 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학식이 있는 듯 하면서 뜬금 없이 아버지의 재산 정도를 물으며 돌아가시기 전에 잘 정리를 하라고 충고도 한다.'


선생님이 이따금 내게 보여준 쌀쌀맞은 인사나 냉담해 보이는 행동은 나를 멀리하려는 불쾌감의 표현이 아니었다. 가엾은 선생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사람에게, 가까이할 만한 사람이 아니니 그만두라는 경고를 보냈던 것이다. 남이 반가워하는 것에 응하지 않는 선생님은 남을 경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경멸한 것 같다. (p24)

  선생님의 사상이나 의견이 교수의 강의보다 유익하고 더 대단해 보였기에 그를 따르게 되었지만 선생님은 적당히 선을 그으며 이야기한다.

예전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 머리 위에 발을 올리게 하는 거라네. 나는 미래의 모욕을 받지 않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물리치고 싶은 거지. 난 지금보다 한층 외로울 미래의 나를 견디는 대신에 외로운 지금의 나를 견디고 싶은 거야. 자유와 독립과 자시 자신으로 충만한 현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대가로 모두 이 외로움을 맛봐야 하는 거겠지. (p50)

  언젠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 해주겠다고는 하지만 좀처럼 그런 기회를 갖지를 못하던 중 고향에서 아버지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아버지의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 다시 선생님에게로 오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어느 날 한 통의 두툼한 편지가 도착했고 그 편지는 선생님의 유서와도 같은 것이었다. 결국 함께 나누고자 했던 이야기들을 실제 대화가 아닌 편지로 받게 된 나.. 오히려 이야기로 나누는 것보다 이렇게 글로 남기게 되어 더욱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선생님의 편지를 읽게 된다.


  모든 이야기와 어떤 결정은 때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이 미루어지고 그 때를 맞추지 못하면 진실은 거기에 각자 마음대로의 색이 입혀지게 되고 때로는 그 부피가 커지거나 작아지게 되어 그 본질을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선생님과 그 친구K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어떤 사상이나 학문적인 교류 이전에 작자의 마음에 대한 교류가 있었다면 둘 다 그러한 극단적인 결말을 맞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생각을 하고 자신의 생각에 갇히게 되면 또 다른 생각들이 자라나고 어느 새 진실을 외면하고 자신만 세상을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다보면 여기서의 선생님처럼 평생을 최책감속에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저 인간의 죄라는 걸 깊이 느꼈네. 그 느낌이 나를 매달 K의 묘에 가게 하는 거야. 그 느낌이 나에게 장모님을 간호하게 한 거지. 그리고 그 느낌이 아내에게 다정하게 하라고 명령하지. 나는 그 느낌때문에 길 가는 모르는 사람에게 채찍질당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네. 그런 단계를 하나하나 지나면서 남에게 채찍질당하기보다는 자신이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 자신이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보다는 자신이 스스로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 하는 수 없이 나는 죽었다 생각하고 살아가기로 결심한 거지. (p269)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이 마음.. 이 마음을 공유하는 것이 무척 중요한 것임을 새삼 또 느껴본다.


  하지만 누군가와 이 불분명한 마음을 공유한다는 것.. 그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냥 내 맘속에 간직하고 있으면 끝날 것을 그것이 공유됨과 동시에 또 다른 뭔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야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와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과 K는 이러한 공유가 필요했고 그것으로 인해 서로의 세계를 나눔으로서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안타까운 여운이 남는 이야기였다.


  사회를 이루고 타인들과 어우러져 살고 있지만 궁긍적으로 우리는 외로운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백년이 지난 우리에게 작가가 해주는 말이지만 인간의 내면과 본성을 크게 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을 또 한번 느끼게 해 주는 시간이었다.


 

  마음

  테일 | 2016-08-22 |

  http;//blog.yes24.com/document/8906614

 

  먹먹하고 암담한 줄글을 도쿄로 돌아가는 기차에 가만히 앉아서 읽어나갔을 '나'를 떠올린다. 눈을 들어보니 나 역시도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들어간 전철이었다. '나'와 내가 동일시 되는 순간- 마치 소세키가 바란대로 책을 읽어나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마음'은 총 세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소설 속의 나와 선생님이라는 인물이 만나게 된 계기와 관계에 대하여, 집안 문제로 고향에 내려가게 된 나와 가족간의 모습, 그리고 선생님의 과거에 대해 밝히는 편지글이다. 이 세 부분의 내용을 통해 개인과 타자 사이의 관계, 개인의 내면을 돌아보도록 하였다. 나는 선생님의 어딘가 모르게 이목을 끄는 점을 발견하여 그에게 점차 다가가고자 하는데, 선생님은 세상과 소통하기도 그에 자신을 드러내기조차도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다. 우리가 밝은 것보다 어딘가 석연치 않게 어두운 면모를 가진 사람을 못내 안타까워 하며 마음을 열어주려 하는 버릇을 가진 것처럼, 나 역시 선생님의 과거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된다.

 

   모든 것에 초탈해보이던 선생님도 사실은 서투르고 약지 못해 차라리 애처로운 젊은이었다. 소세키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그 안의 인물들이 왜 저리도 꼬장꼬장한 성격인지 답답할 때가 있다. 생활 태도는 제 앞길 하나 제대로 가려내질 못하는 한량같으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완급을 모르는 깐깐함이 드러날 때마다 시대적인 부분에서 오는 차이인지, 그가 그려내는 인간상에 그런 면면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일본이란 나라의 문화가 그런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남에게서 느낀 환멸의 조각이 자신의 내면에서도 욕망과 시기, 질투라는 추악한 면모로 존재함을 발견한 선생이 평생을 두고 자기 자신을 경멸하고, 경계해온 모습이 애처로웠다. 누구의 마음에도 그러한 사심이 없을 수 없을 텐데도 결벽적인 구석이 있어 그 한점의 어둠을 끝내 못본체 하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불안감에 흔들릴 때마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가면 내가 기대하는 것이 언젠가 눈앞에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렸다. 하지만 모든 인간에 대해 젊은 피가 이렇게 고분고분하게 돌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 선생님에게만 이런 마음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금에야 비로소 그걸 깨달았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나를 싫어한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이따금 내게 보여준 쌀쌀맞은 인사나 냉담해 보이는 행동은 나를 멀리하려는 불쾌감의 표현이 아니었다. 가엾은 선생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사람에게, 가까이할 만한 사람이 아니니 그만두라고 경고를 보냈던 것이다. 남이 반가워하는 것에 응하지 않는 선생님은 남을 경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경멸한 것 같다. ...]


 이제는 익숙해진 전집의 장정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 한 권의 책을 죽 읽고 나니, 한동안 밀려드는 감상을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왜 많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세키의 작품으로 '마음'을 손에 꼽는지 이해도 가고, 십년 전 쯤 읽었던 이 책이 이런 내용이었던가, 하고 새삼스러웠다. 그때는 그저 줄줄이 쉽게도 넘어가던 책장이 이제는 구석구석 때때로 맺혀 멈추게 되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소세키의 전집 시리즈도 이제 끝을 향해 다다른다. 손 안에 든 책이 어디론가 떠나갈 것만 같아서 한참을 꼭 붙들었다. 오래두고 천천히 가까워진 누군가와 또다시 이별을 앞둔 기분이다. 기다리던 시간이 길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좋았었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