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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예닌의 아침/ 수전 아불하와

금동원(琴東媛) 2017. 3. 1. 13:23


『예닌의 아침』

  수전 아불하와 저/왕은철 역 | 푸른숲 | 원서 : Mornings in Jenin



  미국은 외면하고 유럽은 극찬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팔레스타인인이 쓴 팔레스타인 소설.

  2002년 4월, 예닌 난민촌에 참혹한 대학살이 벌어졌다. 이스라엘이 테러리스트들의 본거지를 청산한다는 이유로 자행한 일이었다. 여성과 노인, 어린아이 등 수백 명의 난민들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동안 세계는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거나, 알고도 침묵했다.
자기 땅, 자기 나라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야 했던 팔레스타인인들. 《예닌의 아침》은 세계가 외면한 그들의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다룬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이다.

  이 소설은 1941년부터 2002년까지를 다룬다. 소설이 1941년부터 시작되는 것은, 이스라엘이 세워지기 전 팔레스타인인들이 살았던 평화로운 삶을 이후의 비극적인 삶과 대비하기 위해서다. 또한 2002년으로 마무리한 것은 세상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예닌 난민촌 대학살의 실상을 알리기 위함이다. 소설에 따르면, 예닌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동안 “유엔은 결코 오지 않았”으며, “예닌에 가보지도 않고 희생자나 가해자와 얘기를 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유엔의 공식보고서에 ‘대학살극은 없었다’고 기록”했다. 예닌 난민촌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총으로도 죽고, 폭탄으로도 죽고, 실상을 외면한 유엔 보고서로도 죽고, 현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언론의 헤드라인으로도 죽은 것이다.

《예닌의 아침》은 이러한 팔레스타인의 슬픈 역사를 배경으로, 가족과 연인, 친구간의 사랑을 펼쳐놓는다. 소설에는 대지를 향한 농부의 사랑, 오빠와 여동생의 사랑, 아버지와 딸의 사랑, 어머니와 아들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 연인 간의 사랑 등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등장한다. 이러한 사랑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것이지만,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촌에서 수십 년을 살아가야 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존재를 정의하는 절박하고 가슴 아픈 것이다.

  이를 통해 팔레스타인인들은 더 이상 뉴스에 등장하는 잔인한 테러리스트가 아닌, 삶의 터전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박탈당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소박하고 평범한 사람들’로 되살아난다.



 ◇ 작가 :수전 아불하와


  전쟁으로 요르단, 시리아, 쿠웨이트, 팔레스타인 등을 떠돌아야 했던 부모 밑에서 1970년에 태어났다. 다섯 살까지 미국에서 살다가 중동으로 돌아와 친척 집을 전전했다. 열 살 무렵 예루살렘의 고아원에 맡겨져 3년을 살았고, 열세 살 때인 1983년 미국으로 갔다.
  생물학과 신경과학을 전공하고 관련 분야에 몸담고 있던 수전은, 2000년 우연히 팔레스타인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가족을 잃고 참혹하게 살아가는 실향민의 삶을 보고 들으며, 이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사방이 전쟁터라 뛰어놀 공간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위한 운동장 만들어주기(Playgrounds for Palestine)’ 활동을 전개했으며, 다양한 NGO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2002년 방문한 예닌 난민촌에서 이스라엘군이 대학살을 저지른 실상을 목도한 그녀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몰려 ‘지도상에 없는 나라’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팔레스타인의 참상을 알리기로 결심한다.
  지금은 딸과 함께 펜실베이니아에 살면서 팔레스타인 아동보호기구인 ‘팔레스타인을 위한 놀이터’의 창립자이자 의장을 맡고 있다. 여러 국제 뉴스 매체에 정치적 견해에 관한 다양한 에세이와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역자:왕은철


  전북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클래리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와 메릴랜드 주립대에서 각각 영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케이프타운 대학, 이어하트 재단, 풀브라이트 재단 등의 펠로 및 학술진흥 재단 해외파견 교수를 역임했으며, 케이프타운 대학에서 2년간, 그리고 워싱턴 대학에서 1년간 객원교수로 있었다. 현재 문학평론가이자 전북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북대학교 학술상 및 수업상을 다수 수상하고, 2011년 제5회 유영번역상과 2012년 제2회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했다.

  쿳시의 『어둠의 땅』『야만인을 기다리며』『마이클 K』『철의 시대』『페테르부르크의 대가』『추락』『소년 시절』『엘리자베스 코스텔로』『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슬로우 맨』을 비롯하여 고디머의『거짓의 날들』, 브링크의 『메마른 계절』,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웰티의 『낙천주의자의 딸』, 응구기의 『한 톨의 밀알』, 하 진의 『니하오 미스터 빈』『카우보이 치킨』『피아오 아저씨의 생일파티』『남편 고르기』『호랑이 싸움꾼은 찾기 힘들어』『전쟁 쓰레기』『광인』 등 30여 권의 역서와 『배반과 도덕적 상상력』『J. M. 쿳시의 대화적 소설―상호텍스트성과 탈식민주의』(문화관광부 우수도서), 『문학의 거장들』 등의 저서가 있다

  목차


  1부 엘 나크바; 재앙
  2부 엘 나크사; 재앙
  3부 다윗의 상처
  4부 엘 구르바; 이방인 신세
  5부 알비 피 베이루트; 베이루트에서의 내 마음
  6부 엘리 바이나; 우리 사이에 있는 것
  7부 발라디; 나의 조국
  8부 니하야 오 비다야; 끝과 시작



  책 속으로


  아침 안개 속으로 기도 소리가 퍼져 나갔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유일신 알라를 칭송하고 예언자인 무함마드를 받들겠다고 속삭였다. 오늘은 특별히 경건한 마음으로 밖에서 기도를 했다. 올리브를 수확하기 때문이었다. 그처럼 중요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무엇보다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돌투성이 언덕을 올라야 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귀뚜라미와 새 같은 작은 생명들의 합창 소리에 맞춰 기도용 양탄자에 달빛 그림자를 드리우며 죄를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어떤 사람들은 특별 기도를 하기도 했다. 여하튼 모두 이렇게 말했다.
  “주 알라시여, 당신의 뜻이 오늘 이뤄지게 하소서. 저의 복종과 감사는 당신 것이옵니다.”
 그들은 이렇게 기도하고 나서, 선인장 가지에 걸리지 않게 발을 높이 들고 올리브 숲이 있는 서쪽으로 향했다. --- P.11-12

  열두 딸 중 막내인 달리아는 고집이 세고 관습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버지한테 허리띠로 모질게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히잡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바람이 머리를 어루만지게 내버려두었다. 다른 조신한 여자들과 다르게, 치마를 걷어올리고 도마뱀을 쫓으며 화려한 베두인 문양을 아로새긴 소베(소매옷)에 흙과 선인장 가시를 묻히기 일쑤였다. 이따금 그날 잡은 이상한 벌레들과 딱정벌레가 담긴 주머니를 비우는 것을 잊어버려 어머니한테 얻어맞기도 했다. 하지만 내면 가득한 자연의 힘에 이끌려 별난 방식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그녀는 다리가 네 개인 가누시라는 말을 만날 때까지는 다리가 여섯 개나 여덟 개인 작은 벌레들과 시간을 보냈다. --- P.26-27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 군인들이 다시 마을에 들어왔다. 음식을 대접받았던 남자들이 음식을 대접했던 사람들에게 총구를 들이댔다. 하산과 다위시를 비롯한 남자들에게 서른 구의 시체를 집단 매장할 묘지를 파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마을 남자들은 두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시체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산은 슬퍼할 수도 없는 충격 속에서 흙을 파며, 디슈대셔 소매에 죽은 친구들과 동포들의 이름을 엄숙히 적었다. 알 파티하. 흙에서 흙으로……. --- p.48

  전쟁 이전의 내 삶은 이제, 바바의 품과 올리브나무 파이프로 피우던 담배 냄새에 대한 기억으로 되돌아온다. 우리는 가진 것이 별로 없었다. 나는 운동장도 몰랐고 바다에서 수영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 유년 시절은 시와 새벽의 마술에 걸려 있었기에 매혹적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목과 탄탄한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안겨 있을 때보다 안전한 상태를 결코 알지 못했다. 나는 꿀사과 담배 향과 아부 하얀, 칼릴 지브란, 알마리, 루미의 현란한 말들과 함께 오는 새벽보다 더 부드러운 시간을 알지 못했다.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들의 시는 최면을 거는 듯했고 서정적이었다. 그들을 통해서 나는 아버지의 열정과 상실, 비탄과 사랑을 느꼈다. 바바는 모든 걸 나한테 넘겨줬다. 바바에게 받은, 그렇게 큰 선물은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는 것이었다. --- p.89


  빨라지는 움직임, 긴 한숨, 강렬한 표정, 굳은 의지가 깃든 움직임에 후다와 나는 더욱더 굳게 손을 맞잡았다. 우리 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황하여 벽에 붙어 있었다. 누군가 ‘아랍군이 올 때까지’ 여자들과 아이들은 집에 있고 남자들은 잠복해 방어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다와 나는 팔짱을 꼈다. 두려움이 몸을 훑고 지나가자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아말, 사랑해.”
  “나도. 후다, 너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야.”
  “너도 나의 가장 좋은 친구야.”
  “우리는 안전할 거야. 우리 바바한테 무기가 있으니 우리를 지켜주실 거야.”
  “우리, 같이 있자.”
  “무슨 일이 있든.”
  “맹세하니?”
  “알라를 두고 맹세해.” --- p.97

  부은 눈꺼풀이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다윗의 흉터를 보자 육체적인 고통으로 몽롱해져 있던 시야가 열렸다. 그들은 서로를 20초쯤 바라보았다. 다윗은 영겁의 세월이 스무 번은 지난 듯한 그 20초 동안, 너무 많은 잘못된 질문들을 하면서 서성거렸다. ‘그들이 실수로 유대인을 사로잡은 건 아닐까? 나와 친척인 유대인일까? 자기 친척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팔레스타인으로 간 유대인일까?’ 그는 이 포로가 자신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기억의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답을 찾으려고 애썼다. --- p.140-141

  에이미. 난민들의 마을에서 온 비극의 주인공 아말은 이제 특권과 풍요의 땅에 사는 에이미였다. 동요 없는 하늘 밑에 누워 있는, 삶의 표면 위에서 흘러가는 나라. 그러나 외관이야 어떻든, 나는 땅도, 사람도, 명예도 없는 곳으로 추방당한 사람들의 나라인 팔레스타인에 영원히 속해 있었다. 아랍의 특성과 팔레스타인의 아우성이 세상에 내린 나의 닻이었다. 나는 하즈 살렘의 이야기에 부합되는 설명을 역사서에서 찾고 있었다. --- p.247

  “아말, 내 생각에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우리처럼 사랑을 하지 않을 것 같아. 그렇다고 그들이 모자라거나 우월한 것은 아닐 거야. 그들은 안전하고 얕은 곳에 살잖아. 우리처럼 감정이 깊은 곳으로 내몰리지도 않고 말이야. 나는 네가 왜 당황스러워하는지 알 것 같아. 두려움에 대해 생각해봐.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서운 일이 일어날 때 두려움을 느끼지. 우리를 겨누고 있는 총에 마비되어서 말이야. 우리가 알고 있는 무서운 일을 서구인들은 결코 알지 못할 거야. 이스라엘의 점령 때문에 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감정의 극단으로 내몰렸지. 그래서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 슬픔의 뿌리는 우리의 상실과 너무 얽혀 있어서, 죽음이 가족이라도 되듯 우리와 같이 살게 된 거야. 피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가족이라 어쩔 수 없는 사람처럼 말이지. 우리의 분노를 서구인들은 이해할 수 없어. 우리의 슬픔은 돌도 울릴 수 있어.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에는 예외가 없어, 아말. --- p.264

  엄마, 하즈 살렘이 자기 집에 산 채로 묻혔다는 걸 아세요? 하즈 살렘이 천국에서 얘기해주던가요? 저도 그분을 한 번 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요. 이 없는 입으로 웃는 모습을 보고 그의 꺼끌꺼끌한 살갗을 한번 만져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요. 엄마가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면서요. 엄마, 그분은 딸들의 사랑을 위해 100살이 넘게 사신 분이세요. 그렇게 사신 분이 불도저에 깔려 돌아가시다니! 이것이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의미인가요?
--- p. 428-429



  출판사 리뷰


  2002년 4월, 예닌 난민촌에 참혹한 대학살이 벌어졌다. 이스라엘이 테러리스트들의 본거지를 청산한다는 이유로 자행한 일이었다. 여성과 노인, 어린아이 등 수백 명의 난민들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동안 세계는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거나, 알고도 침묵했다.
  자기 땅, 자기 나라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야 했던 팔레스타인인들. 세계가 외면한 그들의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다룬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 《예닌의 아침》이 푸른숲에서 출간되었다. 1941년부터 2002년까지 4대에 걸친 팔레스타인 가족의 고통스러운 삶을 여주인공 아말의 시선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문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아주 성공적인 반향을 일으킬 작품(〈퍼블리셔스 위클리〉)’, ‘팔레스타인 가족이 겪는 전쟁과 이별의 고통을 대담하고 치밀하게 그린, 매우 강렬한 데뷔작(〈커커스 리뷰〉)’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팔레스타인을 주제로 한 문학 작품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예닌의 아침》의 출간은, 독자들이 팔레스타인을 ‘보고, 인식하고, 느끼게’ 만든다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아프가니스탄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연을 쫓는 아이》,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번역한 왕은철 전북대 교수는 《예닌의 아침》에 대해 “두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가슴 먹먹해지는 감동적인 스토리가 매우 인상적이다. 팔레스타인인이 쓴, 팔레스타인인에 관한 소설이 국내에 처음으로 출간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라고 평가했다.

  2010년에 출간된 《예닌의 아침》은 지난 2002년 《다윗의 상처》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작품을 복간한 것이다. 소설은 2002년 출간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2010년 새로운 제목으로 재출간된 이후 전 세계 30여 개국에 소개되며 화제를 모았다. 프랑스 베스트북 선정, 노르웨이 아마존 종합 1위 등 특히 유럽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는데, 아마존 서평의 상당수가 ‘팔레스타인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을 쓴 수전 아불하와는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이다. 생물학과 신경과학을 전공하고 관련 분야에 몸담으며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작가가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은 운명과 같았다. 수전은 전쟁으로 요르단, 시리아, 쿠웨이트, 팔레스타인 등을 떠돌던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까지 미국에서 살다가 중동으로 돌아와 친척 집을 전전하고, 열 살 무렵에는 예루살렘의 고아원에 맡겨졌다가 열세 살 때 다시 미국으로 이주하는 등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소설 속 아말처럼, 작가는 어린 나이에 삶의 바다를 혼자서 헤쳐 나가야 한 것이다. 2000년에 우연히 팔레스타인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예닌의 아침》을 쓰게 된 것은, 작가에겐 숙명이었다.


  ◇땅과 고향을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슬프고 아름다운 삶

  팔레스타인 북쪽에 위치한 에인 호드 마을에서 조상 대대로 올리브와 무화과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 살아가던 아불헤자 가족. 1948년 예루살렘이 건국되고 예닌 난민촌으로 쫓겨나면서 이들의 수난이 시작된다.
  가장인 하즈 예야는 정든 올리브나무 숲을 잊지 못해 철책선을 넘었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예야의 아들 하산은 달리아와 결혼해 이스마엘과 유세프를 낳지만, 전쟁으로 쫓기는 과정에서 이스마엘이 이스라엘 군에게 납치된다. 하산과 달리아는 절망 속에서도 딸 아말을 낳고, 하산은 아말에게 새벽마다 시를 읽어주는 등 딸을 사랑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1967년에 발발한 ‘6일 전쟁’으로 하산이 행방불명되고, 아말의 오빠 유세프도 포로로 잡혀 고문을 당한다. 유세프는 자신을 고문하는 이스라엘 군인의 흉터 자국을 보고, 그가 잃어버린 동생 이스마엘임을 알아챈다.

  한편, 아들에 이어 남편마자 실종되자 달리아는 충격을 이기지 못해 세상을 떠나고, 아말은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지긋지긋한 예닌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아말은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그곳에서 만난 의사 마지드와 가정을 꾸리게 된다.
하지만 남편의 사랑으로 전쟁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가던 것도 잠시, 레바논 전쟁으로 마지드마저 세상을 떠나자 아말은 말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인다. 딸 사라에게 자신의 잔인한 운명이 옮을까 봐 안아주지도, 다정한 말을 건네지도 않는 아말에게 사라는 깊은 상처를 받게 되고, 모녀 사이의 골은 깊어만 간다. 그러던 중 아말은 오빠 유세프가 팔레스타인해방단체에 가입해 미국 대사관을 테러했다는 소식을 듣고 예닌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는데…….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가족이, 사랑이, 삶이 존재한다


 《예닌의 아침》은 1941년부터 2002년까지를 다룬다. 소설이 1941년부터 시작되는 것은, 이스라엘이 세워지기 전 팔레스타인인들이 살았던 평화로운 삶을 이후의 비극적인 삶과 대비하기 위해서다. 또한 2002년으로 마무리한 것은 세상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예닌 난민촌 대학살의 실상을 알리기 위함이다. 소설에 따르면, 예닌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동안 “유엔은 결코 오지 않았”으며, “예닌에 가보지도 않고 희생자나 가해자와 얘기를 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유엔의 공식보고서에 ‘대학살극은 없었다’고 기록”했다(P.432). 예닌 난민촌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총으로도 죽고, 폭탄으로도 죽고, 실상을 외면한 유엔 보고서로도 죽고, 현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언론의 헤드라인으로도 죽은 것이다.

 《예닌의 아침》은 이러한 팔레스타인의 슬픈 역사를 배경으로, 가족과 연인, 친구간의 사랑을 펼쳐놓는다. 소설에는 대지를 향한 농부의 사랑, 오빠와 여동생의 사랑, 아버지와 딸의 사랑, 어머니와 아들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 연인 간의 사랑 등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등장한다. 이러한 사랑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것이지만,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촌에서 수십 년을 살아가야 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존재를 정의하는 절박하고 가슴 아픈 것이다. 이를 통해 팔레스타인인들은 더 이상 뉴스에 등장하는 잔인한 테러리스트가 아닌, 삶의 터전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박탈당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소박하고 평범한 사람들’로 되살아난다.

  폭력적인 민족은 없다. 폭력적인 상황이 있을 뿐
  복수가 아닌 사랑과 화해, 인간애의 회복을 추구하는 작품

  소설은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딸’을 통해, ‘자식을 잃은 트라우마로 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통해, ‘고향 땅을 바라만 보며 그리워하는 농부’를 통해 평범한 존재로서의 팔레스타인인을 묘사한다. 또한 자신들의 국가적 안위와 편의,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빼앗고 그들의 땅에 끊임없이 정착촌을 건설하는 폭력적 행위, 팔레스타인인들에 가하는 가학적이고 야만적인 이스라엘의 폭력성을 그 어떤 고발보다 설득력 있게 증언한다.

  그러나 《예닌의 아침》은 단순히 이스라엘이나 유대인들을 무조건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존재로 묘사하지 않는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오히려 사랑과 평화, 화해와 인간애를 추구한다. 하산이 납치된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을 접고 어린 딸에게 새벽마다 시를 읽어주며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는 장면(p.89), 할아버지, 부모, 남편을 모두 잃은 아말이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며 바들바들 떠는 어린 이스라엘 군인의 운명을 슬프게 여기는 장면(p.410), 전쟁 고문으로 정신질환자가 된 만수르가 온종일 그림만 그리는 것을 보고 엄마인 후다가 ‘재능을 주신 알라에게 감사’하는 장면(p.406) 등이 대표적이다. 《예닌의 아침》은 그저 폭력적이기만 한 민족이나 집단, 개인은 없다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시킴으로써, 미움과 증오를 끊는 가장 강력한 힘은 사랑과 화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왜 팔레스타인 소설을 읽어야 하는가?
  현실을 ‘보고, 인식하고, 느끼게’ 하는 예술의 힘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 출신의 탈식민 이론가인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말을 인용하며, “그가 ‘팔레스타인에 관한 이야기에 문학성이 너무 부족하다’고 개탄한 적이 있는데 그의 ‘실망’이 이 소설을 쓰고 싶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실제로 팔레스타인인들을 주제로 한 문학 작품은 출간 자체가 화제가 될 정도로 드물다. 그러다 보니 뉴스 소재로는 자주 등장하지만, 문학을 비롯한 예술 분야에서는 존재감이 없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그들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남의 집 이야기’로 다가온다.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의 땅과 나라를 빼앗은 유대인들에 관한 이야기는 영화, 미술, 음악, 문학, 드라마 등 장르를 불문하고 넘쳐난다. 유대인 예술가들은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을 수많은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전 세계에 알렸으며, 그 결과 우리는 유대인들을 ‘어떠한 고통에도 꺾이지 않고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으로 기억한다.

  자신들만의 스토리가 없다는 것은 담론에서 밀린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을 억압하고 식민화하는 유대인들에게 물리적, 외교적, 경제적 싸움에서뿐 아니라 담론에서마저 밀리고 있다. 그런데 담론에서 밀린다는 것은 소설 속 표현을 빌리면 ‘세계로부터, 세계의 역사와 미래로부터’ 지워질 수 있다(p.73)는 말이다. 한국의 식민 역사를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 얘기하지 않으면,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거나 희석시키는 일본의 이야기에 밀려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것이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 이유이고, 4대에 걸친 팔레스타인 가족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다룬 《예닌의 아침》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가 말했듯, 예술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보고 인식하고 느끼게’ 만든다. 우리는 이 각별하고 슬프고 아름다운 소설을 통해 고난의 삶을 살아온 팔레스타인인들을 ‘보고, 인식하고, 느낀다.’

  ◇이 책에 쏟아진 전 세계 독자들의 찬사

《예닌의 아침》은 파괴된 삶을 다루는, 이타적인 희생을 그린, 모든 아픔을 극복하는 사랑의 힘을 담은 이야기다. 한번 훑어보고 말 책이 아니다!

  등장인물들의 역경과 고난에 깊이 공감했다. 아말의 어머니가 공포로 어떻게 미쳐갔는지, 아말의 오빠가 이스라엘군과 싸우며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아름다운 시를 읽어주며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일깨워주던 아말의 아버지가 어떻게 전쟁 중에 실종되었는지가 매우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중동 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 중동의 분쟁을 당장이라도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미국 원주민들의 삶이 떠올랐다. 이렇게 큰 의미가 담긴 책을 읽게 되어 매우 기쁘다.

  작가는 점령지에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밝히면서도 변화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이스라엘인들을 비인간적인 존재로 몰아가지 않고도 팔레스타인의 이야기를 균형감 있게 다루는 작가의 솜씨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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