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생각하다
천양희
새벽에 홀로 깨어 있으면 노트르담의 성당 종탑에 새겨진 ‘운명’이라는 희랍어를 보고 「노트르담의 꼽추」를 썼다는 빅토르 위고가 생각나고 연인에게 달려가며 빨리 가고 싶어 30분마다 마부에게 팁을 주었다는 발자크도 생각난다 새벽에 홀로 깨어 있으면 인간의 소리를 가장 닮았다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가 생각나고 너무 외로워서 자신의 얼굴 그리는 일밖에 할 일이 없었다는 고흐의 자화상이 생각난다 새벽에 홀로 깨어 있으면 어둠을 말하는 자만이 진실을 말한다던 파울 첼란이 생각나고 좌우명이 진리는 구체적이라던 브레히트도 생각난다 새벽에 홀로 깨어 있으면 소리 한 점 없는 침묵도 잡다한 소음도 훌륭한 음악이라고 한 존 케이지가 생각나고 소유를 자유로 바꾼 디오게네스도 생각난다 새벽에 홀로 깨어 있으면 괴테의 시에 슈베르트가 작곡한 「마왕」이 생각나고 실러의 시에 베토벤이 작곡한 「환희의 송가」도 생각난다 새벽에 홀로 깨어 있으면 마지막으로 미셸 투르니에의 묘비명이 생각난다 “내 그대를 찬양했더니 그대는 그보다 백배나 많은 것을 내게 갚아주었도다 고맙다 나의 인생이여”
-시집『새벽에 생각하다』(문학과 지성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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