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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詩를 읽다

봄비 / 정진규

금동원(琴東媛) 2017. 5. 27. 22:50

○ 지난 봄 제주도 한라산 1100고지 자연습지 공원을 갔을 때의 일이다. 분명히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메마른나뭇가지와 가지끝 이른 꽃봉오리에 이슬이 맺혀있는 것이다. 그 모습이 무척 경이롭기도 했지만, 본연의 생명(삶)을 지탱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약간은 처연하고 안쓰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경건하기도 하고, 최선의 다해 자신의 에너지를 끌어내어 우주와 교감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 같다고나 할까. 어쨌든 이른 봄 날 만났던 나뭇가지 끝에 맺힌 투명한 이슬을  보면서 잔잔한 감동과 사색에 잠겼었다.

 

  정진규 시인의 「봄비」를 읽고, 시인이 쓴 시작(詩作)에 대한 감상(혹은 깨달음)을 읽으며 나 역시 무릎을 치는 감동을 맛보았다. 온 몸에 찌르르르 전율을 느꼈다는 정진규 시인의 표현대로 설명되지 않던 그 무엇에 대한 묘한 감정이 수수께끼처럼 풀리는 기분이다. 시인의 시 한 편이 이렇듯 누군가에게는  다른 의미의 깨달음과 감동의 쾌감을 맛보게 해준다는 것도 새삼 느낀다.

 

  마지막으로 노자(老子)의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실체가 거기 있었다고 말하는 시인의 마음과 호들갑 떨지 말자(내 안에 흐르는 그간의 번뇌와 갈등, 마음공부의 기류가 막히지 않도록 몸을 잘 간수하자. 내 '슬픔의 중량'이 좀 더 나가야 하리라) 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그 뜻을 알 것 같다. (금동원)

 

 

 

봄비

 

  정진규

 

     미리 젖어 있는 몸들을 아니? 네가 이윽고 적시기 시작하면 한 번 더 젖

  는 몸들을 아니? 마지막 물기까지 뽑아 올려 마중하는 것들, 용 쓰는 것 아

  니? 비 내리기 직전 가문 날 나뭇가지들 끝엔 물방울들이 맺혀 있다. 지

  리산 고로쇠나무들이 그걸 제일 잘한다 미리 젖어 있어야 더 잘 젖을 수

  있다 새들도 그걸 몸으로 알고 둥지에 스며들어 날개를 접는다 가지를 스

  치지 않는다 그 참에 알을 품는다

 

  봄비 내린다

  저도 젖은 제 몸을 한번 더 적신다

 

  -시집 『본색(本色)』, (천년의 시작, 2004)

 

  ○... (상략) ...저간의 우리의 시의 형편은 어떠했는가. 이 같은 본체는 뒷전에 밀어 두고 소위 지적인 방법을 내세우거나 윤리적 주장을 위한  도구로서 시를 전락시켜 왔음은 우리 모두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또한 화자의 우월적 포즈에 의한 관념의 화법으로 무엇보다 오염되지 않은 시의 생체(生體)를 매장 시키고 있는 시편들이 창궐하고 있음은 어째야하는가. 물론 저러함들도 일면 시가 담아야 할 삶의 또다른 모습들이며 시 또한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지만 그저 한낱 도구로서 시를 수용할 때 시는 정말 자유로울 수가 없다. 나무들이 제 몸의 물기를 용쓰듯 뽑아 올려 봄비를 마중하듯, 봄비가 젖은 제 몸을 다시 한번 적시듯 화응하는 시의 우주적인 울림, 그게 시의 본체요 자유 아닌가. 저러함은 '만들기'가 아니라 생체를 통한 만남으로 획득되는 '발견'이다. (하략)

-『월간문학』 통권 580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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