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궤적』
-시오노 나나미 저/김난주 역 | 한길사
1968년 첫 작품을 발표한 이래 방대한 저술활동을 펼쳐온 탁월한 역사작가 시오노 나나미. 15년에 걸쳐 완간한 『로마인 이야기』시리즈를 비롯하여 『바다의 도시 이야기』『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등 흥미진진한 역사 논픽션을 쉼 없이 써온 그는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품격 있는 삶의 태도와 스타일을 말하는 매력적인 에세이로도 사랑받아 왔다.
이번에 펴내는 에세이집 『생각의 궤적』은 1975년부터 2012년에 이르기까지 지난 37년간 다양한 매체에 실린 그의 글들을 엄선하여 엮은 책이다. 처녀작부터 대작들을 펴낸 70대 노작가로 무르익기까지, 긴 세월 동안 틈틈이 써온 이 에세이들은 한 편 한 편 나누면 그때마다의 생각에 지나지 않지만, 이처럼 한데 엮어놓으면 사고의 흐름인 동시에 삶의 흔적이다.
이탈리아에서의 생활, 젊은 날의 지중해 편력, 역사와 문명에 대한 생각, 잊을 수 없는 사람들과의 추억, 『로마인 이야기』 집필에 임하고 전력하는 과정, 역사작가로서 자세와 창작의 풍경, 음식, 여행, 축구, 패션, 영화 등 다양한 관심사에 대한 품평……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다가오는 그의 글들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로서 엄격하고 정제된 모습이 아닌, 작품의 이면에 있는 ‘인간’ 시오노의 일상과 삶이 드러난다.
여든이 가까워오는 지금도 차기작을 집필 중인 현역 작가 시오노 나나미. 지중해의 태양에 이끌려 떠나온 긴 세월 동안, 그는 쓰고자 마음먹었던 것들을 차근차근 써왔다. 『생각의 궤적』은 이미 펴낸 그의 책들을 다시 들추어보고 싶게 만드는, 지중해의 태양과 바람을 담아 독자에게 보내는 시오노의 선물이다.
작가 소개
1937년 7월 7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1963년 가쿠슈인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시절 『일리아드』를 읽고 이탈리아에 심취하기 시작했으며, 도쿄대학 시험에 떨어진 후 가쿠슈인대학을 선택한 것도 ‘그곳에 그리스 로마 시대를 가르치는 교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에서는 서양철학을 전공했고, 당시 일본 대학가를 열풍처럼 휩쓸었던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를 알게 된 후 학생운동에 회의를 느끼고, 졸업 후 1964년 『일리아드』의 고향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4년 뒤인 1968년,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中央公論」지에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15년에 걸쳐서 로마인 이야기를 1년에 한 권씩 발표하겠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표했던 시오노 나나미는 무엇보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이다. 서양문명의 모태인 고대로마와 르네상스의 역사현장을 발로 취재하며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로마사에 천착하고 있는 그는 기존의 관념을 파괴하는 도전적 역사해석과 소설적 상상력을 뛰어넘는 놀라운 필력으로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30년이 넘게 독학으로 로마사를 연구한 시오노 나나미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모델로 알려진 체사레 보르자의 일대기를 그린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으로 1970년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받았다. 30여 권에 이르는 저작은 크게 세 분야로 나뉜다. 초기작인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비롯해, 『바다의 도시 이야기』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등 20여 권의 중세 르네상스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과 로마 제국 흥망성쇄의 원인과 로마인들의 이야기를 정리한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그리고 『남자들에게』 『사일런트 마이너리티』 등 그 특유의 냄새가 묻어 나오는 감성적 에세이류가 그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의 영웅들을 중심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힘을 숭배하는 보수적인 작가라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마음을 열고 어떤 일에든지 개방적으로 유연하게 대응하면 인생은 굉장히 유익하고 즐거워진다는 그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영향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부분으로 자리매김할 줄 안다. 그것은 시오노 나나미를 오늘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서도록 한 원동력이 되고 있는 듯하다.
시오노 나나미의 대표작인 『로마인 이야기』는 현대인의 삶의 철학과 좌표를 제시하는 동양인이 쓴 서양사이다. 이 작품은 방대한 자료를 취재 · 정리해가면서 엮어간 거대한 로마 통사이면서 현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가르쳐주는 훌륭한 지침서라 할 수 있는데, 서양인에 의해 씌어진 서양서보다 서양의 역사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당연시하여 의문조차 갖지 않는 사실들에 대해 집요한 의문을 가지면서 크나큰 역사적 의문을 풀어가는 작가 특유의 방법이 서양문화에 속하지 않은 독자로 하여금 그녀의 저작들을 읽는 데 훨씬 도움을 준다. 그녀의 작품들은 각자의 문화를 상대화할 수 있는 시야를 갖게 해준다.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는 15세기 피렌체의 정치가 마키아벨리의 생애와 사상, 업적을 탐구하여 『마키아벨리 어록』과 함께 내놓은 책으로, 마키아벨리의 주요 저작인 「군주론」「전략론」「정략론」「피렌체사」에서 그의 언어들을 그대로 발췌하여 수록함으로써 마키아벨리 사상의 진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외의 작품으로 세 도시 이야기 시리즈 『은빛 피렌체』, 『주홍빛 베네치아』, 『황금빛 로마』, 르네상스 저작집 시리즈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르네상스의 여인들』,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신의 대리인』,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바다의 도시 이야기(상)(하)』, 그리고 전쟁 이야기를 다룬 『로도스섬 공방』, 『전레판토해전』 등의 작품이 있다. 그밖에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지중해 패권을 둘러싼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의 충돌을 서술한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상)(하)』, 『문학의 탄생』, 그리고 『침묵하는 소수』,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 『사랑의 풍경』, 『살로메 유모 이야기』, 『이탈리아에서 온 편지』(1·2) 등의 에세이가 있다.
○출판사 리뷰
탁월한 역사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37년 세월을 엿보다
1968년 첫 작품을 발표한 이래 방대한 저술활동을 펼쳐온 탁월한 역사작가 시오노 나나미. 15년에 걸쳐 완간한 『로마인 이야기』시리즈를 비롯하여 『바다의 도시 이야기』『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등 흥미진진한 역사 논픽션을 쉼 없이 써온 그는 『남자들에게』『침묵하는 소수』 등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품격 있는 삶의 태도와 스타일을 말하는 매력적인 에세이로 사랑받아 왔다.
이번에 펴내는 에세이집 『생각의 궤적』은 1975년부터 2012년에 이르기까지 지난 37년간 다양한 매체에 실린 그의 글들을 엄선하여 엮은 책이다. 처녀작 『르네상스의 여인들』에 이어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과 『신의 대리인』으로 신인 딱지를 뗀 젊은 작가였던 30대부터, 『로마인 이야기』『르네상스 저작집』『십자군 이야기』 등 대작들을 펴낸 70대 노작가로 무르익기까지, 긴 세월 동안 틈틈이 써온 이 에세이들은 한 편 한 편 나누면 그때마다의 생각에 지나지 않지만, 이처럼 한데 엮어놓으면 사고의 흐름인 동시에 삶의 흔적이다.
이탈리아에서의 생활, 젊은 날의 지중해 편력, 역사와 문명에 대한 생각, 잊을 수 없는 사람들과의 추억, 『로마인 이야기』 집필에 임하고 전력하는 과정, 역사작가로서 자세와 창작의 풍경, 음식?여행?축구?패션?영화 등 다양한 관심사에 대한 품평……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다가오는 그의 글들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로서 엄격하고 정제된 모습이 아닌, 작품의 이면에 있는 ‘인간’ 시오노의 일상과 삶이 드러난다.
○젊은 날의 지중해 편력과 인생을 바꾼 ‘로마의 가을’
2009년에 쓴 글에서 시오노는 젊은 여자의 몸으로 ‘선원’이 되어 지중해 곳곳을 누볐던 모험담을 회상한다. ‘그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맞고,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쉬면서’ 경험한 이 지중해 순례는 훗날 그가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여러 작품을 쓰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내가 죽으면 이 지중해 어딘가에 재를 뿌려달라는 유언’을 미리 남겼다고 할 만큼, 그의 지중해 사랑은 남다르다.
“우선 지중해의 웬만한 항구도시에는 다 있는 요트하버의 클럽에 간다. 클럽에는 정박 중인 요트의 구인 광고가 닥지닥지 붙어 있다. 일하면 공짜로 태워준다는 내용이다. 그런 데다 응모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이십대 시절의 나는 각지의 요트하버를 전전하면서 지중해 순례를 마쳤다. 그 부산물로 요트 조종 기술을 약간 익히게 되었는데, 지중해 주변을 내 두 눈으로 본 것과 요트에 대해 조금 알게 된 것 두 가지가 훗날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쓸 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19쪽)
20대의 시오노는 자신의 꿈을 좇아 이탈리아로 홀로 건너갔었다. 그의 발길이 처음 닿은 곳은 다름 아닌 10월의 로마. “로마의 가을은 나를 역사 작가로 만들었다”고 할 만큼 매혹적인 도시였다. 그리하여 1년 예정으로 떠난 유럽 여행은 로마를 본거지로 삼은 긴 여행이 되었고, 40여 년이 넘는 이탈리아 거주로 이어졌다. 그 세월 동안, 그가 처음 품은 꿈과 계획이 차근차근 영글어갔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을 것이다. 우리를 바다 건너 저 먼 나라의 과거 이야기 속으로 인도해준 수많은 작품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시오노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도시 로마에 찬가를 보낸다.
“로마는 역시 아름다운 도시다. 아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생각마저 든다. ……2천 년 동안 변화한 일곱 가지 얼굴이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상태에서 미묘하게 중첩되어 살아 있다. 이만큼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도시를 나는 달리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에서 나는 인간의 삶을 느낀다.”(202쪽)
○‘스타일’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생각의 궤적』에는 우리가 기존의 작품에서 접할 수 없었던 시오노의 여러 얼굴이 담겨 있다. ‘글이 곧 사람이라지만 먹는 것 또한 그 사람을 나타낸다’고 말하는 그에게 식사의 자리는 무척 의미를 부여하는 공간이다. 음식을 즐기면서도 유쾌한 대화를 만들 줄 아는 친분 있는 두 선배 학자들을 시오노는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음식체험 또한 문화?문명의 단면을 드러내는 까닭에 여행지에서 현지 음식을 기꺼이 즐기라고 말한다. 또한 ‘바라봐서도 행복할 뿐만 아니라 몸에 지녀도 행복해지는’ 보석과 ‘유행은 좇지 않으면서도 우아함을 잃어서는 안 되는’ 세련된 패션 감각, 특히 영화와 축구에 대해 말할 때 그는 이탈리아 사람들보다 더 열정적인 얼굴이 된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카메라맨으로 위장해서, 바티스투타의 슛을 보고 싶어요. 골문 바로 뒤에서 말이죠. 그 타고난 스트라이커의 발이 차는 슛의 대단함을, 골키퍼와 거의 비슷한 위치에서 만끽하고 싶은 것이죠. 강력하게 밀고 들어오는 그 느낌을.”(106쪽)
그는 “일본인은 ‘격’이 있는 얼굴을 잃어가고 있다”고 개탄하기도 하지만, 날카로우면서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자국민을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언제나 다소의 긴장감이 요구되는’ 오랜 타향살이에서 터득한 마음가짐을 전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쉽게 동화되거나 융합했다면 그건 가짜다. 그렇다고 사사건건 모국과 비교하며 한탄해서도 곤란하다. 외국에 산다는 것은 이렇게 타협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야 한다고 늘 자신을 타이르는 나날의 연속이다.”(114쪽)
○잊을 수 없는 사람들과의 우정,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
“역사적으로 위대한 남자들이 몇 명이나 살고 죽었지만, 내가 반할만 한 남자가 쉬이 있는 것은 아니다. 훌륭하다, 고매하다고 느끼는 인물은 있지만, 현실 속의 남자보다 더 현실감이 있고 몸과 마음까지 사로잡는 남자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332쪽)
이전의 다른 에세이들과 마찬가지로, 『생각의 궤적』에는 시오노가 매료된 다양한 역사적?동시대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악마적 매력’을 지닌 노부나가와 마키아벨리에 대한 깊은 애정, ‘유능한 테크노크라트’로서 로마 제국의 기반을 견실히 다진 티베리우스 황제의 생애에 대한 품평, ‘자신을 경탄함과 동시에 절망케 하는 상상력’을 가진 펠리니와 ‘관능이 무엇인지를 아는’ 비스콘티라는 두 이탈리아 거장 감독과의 추억, 온몸으로 감상한 영화 「카게무샤」를 만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에게 보내는 팬레터, ‘50세가 되면 각자의 로마사를 쓰자’고 약속했지만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 국제정치학자 고사카 마사타카에 대한 추모 등……
시오노와 교류하였고, 삶과 작품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인간에 대한 그의 깊은 통찰력과 예리한 관찰력은 여지없이 빛을 발한다.
“그런데 야망을 품는 것이 그렇게 비난받아야 할 일일까. 사심이 없다고 공언하는 이상주의자가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해를 끼쳤는지는 역사 속의 수많은 실례가 증언해 주고 있다. 나는 이런 위선자보다는 야심가 쪽이 훨씬 해가 적다고 생각한다. 아니, 인간의 본성을 생각하면, 야망을 품는 쪽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217쪽)
○『로마인 이야기』를 비롯한 창작의 풍경
이 책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대목은, ‘작가’ 시오노의 집필실 풍경일 것이다. 때로는 가볍고, 때로는 진지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우리는 그가 어떤 자세로 작품에 임했는지 알 수 있다.
예컨대 시오노가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한 남자’ 체사레 보르자에 대해 쓸 당시를 회고하는 대목은, 관능 그 자체다.
“몸과 마음은 5백 년 전 옛날의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 있었다. 그리고 나의 주인공 체사레 보르자는,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일본의 내 남자친구들보다 훨씬 현실감 있는 남자였다. …… 나는 그의 가무잡잡하고 탄력 있는 팔의 감촉도 알고 있었고, 비굴한 상대를 대할 때면 빈정거리듯 미소를 띠는 그 얼굴도 알고 있었다. 말을 타고 달릴 때면 말과 하나가 된 움직임의 아름다움도, 여자를 볼 때의 차가운 시선도, 내게는 모두 낯익은 것이었다. ……말하지만, 나는 내가 반한 한 남자에게 숨을 불어넣어 살려내었다가 다시 죽이고 싶었다.”(330쪽)
한편 그의 준비된 역사관과 주도면밀한 작품 취재 과정이 드러나는 대목도 있다.
“우선 사료 등을 조사하고 공부하는 데 6개월, 이어서 집필에 2개월. 원고를 묵히고 생각하는 데 1개월. 퇴고에 1개월. 이렇게 해서 10개월이 사라진다. 나머지 2개월은 일본으로 돌아가 원고를 손질하고 다듬어 책을 내는 일로 사라진다. 내게는 1년이 10개월뿐이다.”(400쪽)
2008년의 글에서는 “『로마인 이야기』를 집필하는 15년 동안 ‘그야말로 장사 밑천’인 만년필 네 자루가 모두 엉망이 되어버렸다”고 후일담을 전하지만, 이 필생의 역작을 쓰기에 앞선 1988년의 글에서는 짧게는 15년, 좀 여유를 두면 20년이 걸릴지 모를 대작을 구상하면서, 이를 쓸 동안의 생활비를 셈해보는 ‘가난한 글쟁이’ 시오노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는 다른 데 한눈팔지 않고 작가로서 집필에만 더욱 정진하는 ‘청빈’의 길을 택하기로 한다. “도중에 좌절한다고 해봐야 타인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나 자신은 일을 다 끝내고 죽고 싶다”는 치열한 각오를 다지면서.
“나는 의외로 견실하다. 향하는 곳은 더 이상 높은 곳이 없을 만큼 ‘위’이지만, ……발치만 내려다보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 식이니, 20년 전에 쓰기로 마음먹은 이것과 저것을, 이리저리 한눈을 팔면서도 결국은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398쪽)
여든이 가까워오는 지금도 차기작을 집필 중인 현역 작가 시오노 나나미. 지중해의 태양에 이끌려 떠나온 긴 세월 동안, 그는 쓰고자 마음먹었던 것들을 차근차근 써왔다. 『생각의 궤적』은 이미 펴낸 그의 책들을 다시 들추어보고 싶게 만드는, 지중해의 태양과 바람을 담아 독자에게 보내는 시오노의 선물이다.
■역시 나는 시오노 나나미가 좋다
키치 | 2014-03-12
일본을 대표하는 역사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에세이집 <생각의 궤적>은 1975년부터 2012년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일종의 '잡문집'이다. 별로라는 평을 많이 들었는데 직접 읽어보니 생각보다 좋았다. <로마인 이야기>, <바다의 도시 이야기> 등 대표작에 얽힌 후일담도 있어서 다시 읽어보고 싶어진 책도 여러 권 된다. 역사, 정치, 문화, 예술, 영화 등 그녀의 관심사를 총망라하는 점도, 다른 에세이집에서는 말하지 않은 사적인 이야기도 종종 보여 좋았다. 그녀가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를 존경한다는 사실도, 일본의 역사속 인물 중에서는 오다 노부나가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이 책을 읽고 알았다(오다 노부나가를 좋아할 것 같았다). 역시 나는 시오노 나나미가 좋다.
1937년생인 그녀는 스물여섯 살이 되던 해에 돌아오는 대로 부모님이 소개해주는 남자와 맞선을 봐서 시집가겠다고 약속한 뒤 1년 일정의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막상 로마에 도착해보니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만큼 좋았고, 아예 그곳에서 평생을 살기로 마음을 정했다. 부모는 물론 그 누구도 응원하지 않는 삶을 사는 대가는 냉혹했다. 가쿠슈인을 졸업했을 정도이니 원래는 부잣집 딸이었을 터.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고,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적을 두지 않고 독학으로 이탈리아의 언어와 역사를 공부했다. 저자의 말대로 '제대로 된 일본 남자를 만나 제대로 결혼해서 제대로 유한마담이 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삶은 혁명이고 파격이었다. 그런데 작가로까지 성공했으니 사람은 정말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되는 것 같다.
혹자는 그녀의 글에 왜곡이 많고 편견이 심하다고 비난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일단 그녀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작가다. 심지어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작품을 <해를 품은 달>, <성균관 스캔들> 같은 팩션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애초부터 학계에서 객관적으로 인정받은 자료가 아닌, 그녀가 독립적으로 수집하고 연구한 자료에 기반을 두고 쓰다보니 역사적 진실과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는 그녀 자신도 인정한다. 심지어는 가짜 사료를 만든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런 그녀의 작품을 두고 왜곡이 많다, 편견이 심하다고 욕하는 것은 픽션을 픽션으로 보지 못하는 오류다.
또한 그녀는 지극히 마음에 충실한 사람이다. 정확히는 성적인 욕망. 수많은 나라들 중에 이탈리아에 끌린 것은 호방하면서도 낭만적인 라틴계의 남자들을 좋아했기 때문이고(라틴계의 핏줄을 잇고 싶어서 일본인이 아닌 라틴계 남자와 결혼했다는 고백을 한 적도 있다), 여자로서는 드물게 역사와 정치, 전쟁, 군사 같은 주제에 끌린 것, 패션과 영화에 해박한 것, 축구를 좋아하는 것 모두 남자를 이해하고 남자들과의 대화를 원활하게 잇기 위해서였다. 세상에는 부와 명예 또는 사회적인 시선 같은 외부의 영향에 좌우되는 사람이 많으며, 이는 글을 쓰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시오노 나나미에게 글은 내면의 소리, 즉 끌어오르는 사랑과 애정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러브레터같은 것이었다. 이런 글을 어찌 미워할 수 있으랴. 역시 나는 시오노 나나미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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