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로렌 슬레이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 실험 10장면
이 책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와 같이 인간 심리와 본성에 관한 가설과 이론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20세기 천재적인 심리학자와 정신 의학자들의 위대한 심리실험 10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10가지 실험을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떤 현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질문하면서 동시대적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있다. ‘인간의 행동은 보상과 처벌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스키너의 행동주의가 습관에 의해 움직이는 쥐들의 신경적 상관물을 연구하는 오늘날의 신경생리학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의 식이다.
저자는 실험자와의 인터뷰와 개인적인 체험이 살아있는 생생한 서술 방식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실험의 탄생 배경과 맥락, 함축적 의미까지를 소개하고 있다.
작가소개
미국의 심리학자 겸 작가, 칼럼니스트. 하버드 대학과 보스턴 대학에서 심리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정신과 진료소 에프터케어 서비스의 소장으로 활동했다. 그외에도 심리학에 관한 책, 칼럼 등 다양한 글을 저술해왔으며, 1993년에는 '뉴레터 문학상' 논픽션 부문 창작상을, 1994년과 1997년에 '미국 최고 수필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바 있다.
2005년 7월에 발간된 그의 대표저서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이 인간 심리와 본성에 관한 20세기의 천재적 심리학자, 정신의학자들의 심리 실험들을 소개한 책이다. 인간의 행동은 보상과 처벌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쥐 실험을 통해 최초로 증명한 스키너의 상자 실험을 비롯하여, 인간 본성에 대한 기존의 개념을 완전히 뒤엎었던 20세기의 놀라운 10가지 실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실험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보다 생생하고 살아있는 이야기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실험의 탄생과 배경, 함축적 의미까지 설명한다. 이 책은 출간 직후 4만 부나 팔리며 2005년 인문분야의 화제작으로 떠올랐고, 이후에도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그 밖의 저서로는 『Love Works Like This』, 『Prozac Diary』 등이 있으며,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으로는 2006년 1월에 출간된 『루비 레드』가 있다. 이 책은 동화의 형식을 빌려 선과 악, 성 역할, 사랑의 양면성 등의 우리 삶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딜레마들을 다룬 심리 동화집으로, 왕비 입장에서 백설공부를 재해석한 『루비레드』를 비롯하여 14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지금 현재는 남편과 매사추세츠에서 살고 있다.
목차
1. 인간은 주무르는 대로 만들어진다
2. 사람은 왜 불합리한 권위 앞에 복종하는가?
3. 엽기 살인 사건과 침묵한 38명의 증인들
4. 사랑의 본질에 관한 실험
5. 마음 잠재우는 법
6. 제정신으로 정신 병원 들어가기
7. 약물 중독은 약의 문제인가, 사회의 문제인가?
8. 우리가 기억하는 기억은 진짜 기억인가?
9. 기억력 주식회사
10. 드릴로 뇌를 뚫다
책 속으로
남을 돕는 이타적 행위와 시간과의 관계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집단 규모와의 관계이다. 일반적으로는 집단 규모가 클수록 두려움이 적어지고 대담해져서 위험을 무릅쓸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쨌든 가장 무서울 때가 가로등 없는 어두운 빈민가를 혼자 걸어갈 때가 아닌가. 인간들은 온갖 포식자가 득실대는 평원에서 자신을 보호해줄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가 되어 돌아다닐 때 가장 두려워하고 망설이는 동물이 아니던가. 하지만 달리와 라타네의 실험은 무리의 수가 많을수록 안전감이 커진다는 진화설에 이의를 제기한다. 방관하는 집단으로 인해 도움을 주는 행위가 억제된다는 것이다.--- p.106 '엽기 살인 사건과 침묵한 38명의 증인들'
○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로렌 슬레이트
쿠루쿠루 | 2016-10-15 |
이동진의 빨간책방이나 비밀 독서단 등에서 많이 다뤄졌던 책이라서 책속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실험에 대해 이미 알고있는 상태로 읽었는데도 상당히 재밌게 읽었다. 이런 심리학책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인간의 내면은 궁금하면서도 막상 사실을 직시하면 씁쓸하고 외면하고 싶어진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현대 의학에서 약물중독은 약물의 화학적 반응 때문에 약물을 끊기가 어렵다고 알려져 있는데, 약물중독은 약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열악한 사회환경 때문이라는 관점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학자 자신이 실험대상이 되어 직접 마약을 해보고 금단현상이 일어나는지, 끊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실험해 보는 장면에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신병 진단에 대한 신뢰도 문제에 대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이것은 비단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도 가족이나 친지들이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 환자로 둔갑시켜 병원에 집어 넣는 사례가 왕왕 존재하기 때문에 어떻게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여전히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은 분야다. 또한 현재는 정신병을 치료할 때 뇌엽절제술과 같은 외과적 시술은 거의 행해지지 않으며, 약물치료만이 최선의 방법으로 여겨지는데, 이것에는 과연 문제가 없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수술의 위험성은 생각하면서 약물이 미치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우리들의 모습은 얼마나 모순적인가.
심리실험이 인간을 이해하고 교육이나 의학적인면에서 많은 도움이 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실험을 실행하는 도중 발생하게 되는 윤리적 문제 때문에 많은 질타를 받고 있다. 내가 저런 실험의 대상자였다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로 충격적인 실험도 많고, 원숭이의 애착 실험처럼 동물들이 말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잔인한 실험을 계속하는 것을 보면 인간만큼 무서운 존재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타인의 시선 - 로렌 슬레이터의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이선희 PD 책갈피 (yes24)
수많은 심리 실험들이 증명하듯, 인간의 이성이란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그냥 인정하자.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마음, 어리석고 한없이 약한 우리의 마음을 그냥 껴안고 보듬어 주자.
여기 절친한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피비와 레이첼. 둘은 함께 공원에서 조깅을 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런. 피비의 달리는 모습이 영 이상하다.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코믹한 포즈로 뛰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괴성까지! 친구랑 같이 뛰기가 창피해진 레이첼은 발목을 다쳤다고 거짓말을 하고 몰래 따로 나가서 조깅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현장에서 피비에게 딱 걸린다.
“너랑 같이 뛰기 싫었던 건 네가 달리는 모습이 좀……. (흉내 내고)”
“그래서?”
“남들이 미쳤다고 생각하면 창피하잖아.”
“무슨 상관이야?”
“사람들이 본다니까.”
“모르는 사람들이잖아. 다시 볼 것도 아니고.”
“그래도 사람이야. 눈도 달려 있다고!”
이것은 미국 NBC에서 인기리에 방송됐던 시트콤 <프렌즈(Friends>(시즌6) 의 한 장면. 이 작품은 매 에피소드마다 주인공들의 심리를 적나라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그려내 큰 호응을 얻었다. 위에 묘사된 조깅 에피소드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사소한 상황들 가운데 하나다. 사람들은 누구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어디에 가든 타인의 시선이 존재한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은 어떨까.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과 스스로 생각하는 나의 모습에는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 한 사람의 내면을 구성하는 요소는 고정 불변의 것일까, 아니면 환경에 따라 계속 변하는 것일까. 어떤 상황에서 내가 취하는 행동은 늘 한결같을까, 아니면 그때그때 달라질까. 지금 이 순간, 타인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이 진짜 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런 생각들을 진전시키기 전에, 우선 심리 실험 하나를 살펴보자.
때는 1961년의 어느 여름날. 장소는 미국 코네티컷 주에 위치한 예일 대학교의 린슬라-치텐덴 홀이다. 신문 광고를 본 사람들이 심리 연구에 참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다. 그들의 방문은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다. 사례금은 시간당 4달러. 돈은 실험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지불됐다. 한 명씩 작은 방으로 안내된 지원자들은 커다란 발전기를 보게 된다. 발전기에 달린 버튼 밑에는 전압이 적혀 있다. 15볼트, 30볼트, 45볼트……, 그렇게 450볼트까지. 가장 높은 레버에는 “위험, 극도의 충격”이라고 씌어 있다. 충격을 가하게 될 상대방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실험자의 명령에 따라 지원자들은 서서히 전압을 높여간다. 전압이 올라갈수록 보이지 않는 상대가 점점 고통스러워한다. 지원자들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레버를 쥔 손은 덜덜 떨린다. 그들은 멈추고 싶다. 하지만 실험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전압을 높이라고 요구한다. 자, 과연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 가운데 몇 퍼센트가 명령에 복종했을까?
이것은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이다. 여기서 미리 밝혀둘 것은 모든 실험이 사전에 조작된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처럼 보이는 무시무시한 발전기는 사실은 작동하지 않는 가짜 충격기계였다. 전기 충격을 받는 사람 또한 실제로는 돈을 받고 고용된 배우로서, 가짜 고통을 연기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들은 모든 것이 실제 상황이라고 믿고 전기 충격을 가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전체 실험 참가자 가운데 무려 65%가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줄 때까지 명령에 복종했던 것이다.
밀그램이 찾아낸 사실은 사람들이 서로 상해를 입히거나 살해를 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제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공격을 받지 않았는데도 그럴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피실험자들이 화가 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분노와 살인이 무관할 수 있음을 효과적으로 증명했다. 게다가 그들은 정원에서 꽃을 키우고, 자기 자식을 키우는 조용하고 착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한 개인의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행동이 고정된 성격적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있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거대하고 복잡한 사회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간들을 탐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 내면 깊숙한 곳에 현미경을 찔러 넣어 샅샅이 관찰하고 묘사한다. 이 책에는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 실험 10장면’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러나 단순한 내용 소개에 머물지는 않는다. 심리학자인 저자 로렌 슬레이터는 직접 수십 통의 전화를 걸고 인터넷을 뒤지고 편지를 쓰고 현장을 발로 뛰면서 취재를 했다. 심지어 그녀는 자기 스스로를 실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저자가 스토리텔링 기법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노력들 덕분에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실험들은 시간의 더께를 뛰어넘어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 마냥 파닥파닥 신선하게 느껴진다. 가령 이런 식의 묘사 말이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1964년 3월 13일 금요일, 그러니까 실제로 13일의 금요일이었다. 뉴욕 주 퀸스 지역의 이른 새벽 공기는 춥고 축축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 눈 냄새가 함께 실려 왔다. 그날 새벽에는 흔히 키티라고 불리던 캐서린 제노비스라는 한 여성이 지배인으로 일하던 술집에서 야간 당번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중략) 그녀가 주차장 안에 차를 주차시키고 밖으로 걸어 나왔을 때가 새벽 3시. 그녀는 아파트 건물을 향해 발걸음을 처음 떼자마자 수상쩍어 보이는 덩치 큰 한 남자를 보았다. 그녀는 재빠르게 방향을 틀어 도로 구석에 있는 경찰 호출 상자를 향해 갔다. 하지만 그녀는 호출 상자에 이르지 못했다. 나중에 윈스턴 모즐리라고 신원이 밝혀진 남자가 그녀의 등에 칼을 깊숙이 찔렀던 것이다.
이것은 실제 벌어졌던 엽기적인 살인 사건을 묘사한 것으로, 일명 ‘키티 제노비스 사건’이라고 불린다. 살인 사건은 새벽 3시15분에서 50분까지 약 35분에 걸쳐 일어났다. 범행은 중간 중간 끊겼는데, 도움을 청하는 제노비스의 비명 소리에 아파트의 불이 켜졌던 것이다. 그러나 창가의 불은 곧 꺼졌다. 노란 불빛이 여러 차례 켜졌다 꺼졌지만, 한 여성이 잔인하게 난자되어 숨을 거둘 때까지 그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집안 전등을 켜고 창가에서 구경만 한 사람들은 모두 38명. <뉴욕 타임스>지에 이 사건이 실렸을 때, 미국 전역이 도덕성 문제로 들썩였다. 사람들은 ‘38명의 방관자들’에 대해 분노를 퍼부었다. 당시 ‘존 달리’와 ‘빕 라타네’라는 두 젊은 심리학자는 이 사건에 흥미를 가지고 이와 관련된 실험에 착수하기로 한다. 이들은 ‘어느 누군가가 도움을 청하며 소리를 지를 때, 사람들이 어떤 조건하에서는 그 요청을 무시하고, 어떤 조건 하에서는 동정을 베푸는가를 테스트하는 일련의 실험들’을 고안했다.
첫 번째 실험은 ‘대학생의 도시 생활 적응도 연구’로 가장되었다. 모집된 학생들은 격리된 방에 혼자 앉아 마이크로폰에 대고 2분 동안 대학 생활의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들은 오디오 장치를 통해 다른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발언 시간이 끝나면 마이크로폰이 저절로 꺼진다는 설명을 미리 들었다. 처음 발표를 한 사람은 간질을 앓는 학생이었다. 그는 발작 때문에 학교생활이 힘들다고 이야기하던 중 간질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도와 달라는 비명소리와 함께 간질 발작이 계속 됐다. 물론 이 목소리는 사전에 녹음된 것으로, 고용된 배우가 간질 발작을 연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르는 참가 학생들은 당황했다. 가짜 발작이 지속된 것은 총 6분. 그동안 학생들은 충분히 생각하고 행동할 기회가 있었다. 과연 이들 가운데 몇 퍼센트가 도움을 요청했을까? 놀랍게도 대다수의 학생들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오직 31%의 학생들만이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밀그램의 실험 결과와 유사한 수치다.
하지만 달리와 라타네의 실험은 밀그램보다 조금 더 복잡했다. 그들이 ‘집단’의 크기를 다양화했기 때문이다. 피실험자들이 자신 말고 도와줄 학생이 네 명 더 있다고 믿었을 때는 희생자를 위해 도움을 청하려고 하지 않았다. 반면에 자신과 간질 발작을 일으키는 학생 단둘이 있다고 믿었을 때는 피실험자의 85%가 수수방관하지 않고 도움을 청했고, 그것도 발작이 일어난 지 3분 안에 조치를 취했다.
이것은 일반적인 상식을 뒤집는 결과다. 개인의 정의는 집단의 무심함 속에 파묻혀 버렸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 하겠지.’라는 마음이 선뜻 자비를 베풀지 못하게 억제하는 효과를 냈던 것이다. 집단 규모가 커질수록 구원을 받을 확률이 적어진다는 아이러니. 이제 달리와 라타네의 또 다른 실험을 살펴보자.
두 번째 실험은 구멍 뚫린 방에서 진행됐다. 두 심리학자는 배우 역할을 맡은 두 명의 대학생과 아무것도 모르는 피실험자 한 명을 모집했다. 그리고 세 명이 한 방에서 대학생활에 관한 설문지를 작성하도록 했다. 몇 분 후, 실험자들은 방안에 인체에 무해한 연기를 흘려 넣었다. 짙은 연기가 빠르게 방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피실험자의 얼굴에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지만, 두 명의 공모자는 미리 지시받은 대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계속 설문지를 작성했다. 그 동안에도 연기는 계속 들어왔다. 그러나 실험이 끝날 때까지 연기가 난다고 보고한 사람은 단 세 명뿐. 나머지 학생들은 ‘머리와 입술 위에 미세한 흰 막이 생길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 실험이 종료될 때까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제부터 이야기가 흥미로워진다. 이 실험은 그 어떤 실험보다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어리석음 그 자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열을 무너뜨리느니 차라리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존재라는 것, 생존보다 사회적 예절을 더 중시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너무나 상반된다. 매너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욕정보다 강하고, 두려움보다 원초적이다. 달리와 라타네가 피실험자 단 한 명을 연기 나는 방 안에 두고 실험을 했을 때는 모두 다 그것을 비상사태로 파악하고 그 사실을 ‘당장’ 보고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10가지 실험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조명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섬뜩함 같은 것을 간직하고 있다. 인간이 얼마나 미스터리하며 얼마나 심약한 존재인지, 때로는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고 얼마나 무모할 수 있는지를 이 실험들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새삼스러웠던 것은, ‘인간이 상황에 따라 얼마나 쉽게 변할 수 있는 존재인가.’라는 점이었다. 위에 언급된 몇 가지 실험들이 그 증거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회의까지 들게 만들었다. 거대한 집단의 권위와 압력에 굴복하는 인간의 모습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스쳐가는 타인의 시선 하나, 사소한 암시 하나에 의해서조차 나의 정체성이 얼마든지 왜곡되고 붕괴될 수 있다면 그것은 좀 무서운 일이 아닐까.
다행히 로렌 슬레이터는 희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아마 자신이 밀그램의 실험에 참가했더라면, 그녀 역시 전기 충격을 가했을 거라고. 그것은 어떤 이상한 환경이 재촉했기 때문이 아니라, 동요하기 쉬운 자신의 성격 때문이었을 거라고. 그녀는 그것을 ‘내면에 들끓어 오르는 작은 점’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분명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닌 내적인 것이었다. 작고 뜨거운 점. 나는 인종 차별적 비방을 들으면서도 분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얼마나 자주 침묵했던가? 직장에서 잘못된 일을 보고도, 동료가 형편없는 대접을 받는 것을 보면서도 내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자주 가만히 있었는가? 작고 뜨거운 점들은 우리 안에서 돌아다닌다. 어떤 상황에서는 그것이 밝게 빛나고, 어떤 상황에서는 빛을 잃는다.
다시, 밀그램의 실험을 떠올려 본다. 결국 희망은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35%의 사람들에게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권위에 복종한 65%의 사람들을 비난하지는 말자.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다. 강철같이 굳은 결심도 스치는 바람 한 자락에 붕괴될 수 있다. 내면에 존재하는 작고 뜨거운 점. 누구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도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어떤 행동들을 할 수 있다. 수많은 심리 실험들이 증명하듯, 인간의 이성이란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그냥 인정하자.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마음, 어리석고 한없이 약한 우리의 마음을 그냥 껴안고 보듬어 주자. 그러나 완전히 외면하지는 말자. 우리가 이성과 감성을 모두 가진 인간임을 잊지 말자.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이 한여름 날 내 손을 쳐다본다. 그리고 손금들이 어떻게 뻗어 있는지 살펴본다. 위로, 아래로, 좋게, 나쁘게 뻗어 있는 손금들. 사람들의 65퍼센트는 복종을 했다. 35퍼센트는 복종을 하지 않았다. 좋은 것은 나쁜 것이고, 나쁜 것은 좋은 것이다. 모든 것은 뒤섞여 있다. 내 손은 아프지만 가능성은 대단히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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