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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이모저모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신철규

금동원(琴東媛) 2017. 8. 10. 23:45

  다리 위에서

 

  신철규

 

 

  자동차 앞유리창에 빗방울이 점점이 박힌다

  꽉 막힌 다리 위에서 우리는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흐린 하늘에 철새떼가 지나간다

  한 무리의 새 떼가 날아가고 간간이 뒤처진 새들이 그뒤를 따른다

  언제나 앞서가는 것들은 몸 속에 나침반이라도 들어 있는 듯이 단호하고 질서정연하다

  뒤처진 새들의 비관과 자기 위로가 뒤섞인 중얼거림을 듣는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지도 못하고

  눈꺼풀 위를 덮어오는 땀을 닦지도 못하고

  두 날개를 조급하게 위아래로 퍼덕이며 날아가고 있다

 

  한 마리, 한 마리, 또 한 마리

 

  저게 마지막이겠지, 하는 예상은 번번이 어긋난다

  그들이 먹이를 구하고 한 계절을 보낼 안식처가 그동안 사막이 되었는지도 모르고

  오로지 믿음 하나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들

  그들이 떠나온 세계에는 텅 빈 새장만 남아 있다

 

  나는  가장 뒤처진 새의 꽁무니를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검지로 천천히 밀어 주었다

 

  역전과 추월이 불가능한 세계에서 우리는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앞차의 꽁무니만 바라보고 있다

 

  나는 핸들을 놓고 두 팔을 허우적거리다가

  뒤쪽에서 울리는 경적 소리에 다시 핸들을 꽉, 부여잡는다.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신철규 저  | 문학동네

 

 

  이 시집은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의 첫 작품집이기도 하다. 크게 4부로 나뉘어 총 64편의 시를 고루 담아낸 이번 시집은 해설을 맡은 신형철 평론가의 말마따나 “세상의 슬픔을 증언하기 위해 인간의 말을 배운 천사의 문장”으로 가득차 있다.

 

 

  ○작가 소개:1980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책 속으로

 

 

  지구 속은 눈물로 가득차 있다

  타워팰리스 근처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의 인터뷰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타워팰리스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무허가 건물들
  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식탁

  그녀는 사과를 매만지며 오래된 추방을 떠올린다
  그녀는 조심조심 사과를 깎는다
  자전의 기울기만큼 사과를 기울인다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속살을 파고드는 칼날

  아이는 텅 빈 접시에 먹고 싶은 음식의 이름을 손가락에 물을 묻혀 하나씩 적는다

  사과를 한 바퀴 돌릴 때마다
  끊어질 듯 말 듯 떨리는 사과 껍질
  그녀의 눈동자는 우물처럼 검고 맑고 깊다

  혀끝에 눈물이 매달려 있다
  그녀 속에서 얼마나 오래 굴렀기에 저렇게
  둥글게 툭툭,
  사과 속살은 누렇게 변해가고

  식탁의 모서리에 앉아 우리는 서로의 입속에
  사과 조각을 넣어준다
  한입 베어 물자 입안에 짠맛이 돈다

  처음 자전을 시작한 행성처럼 우리는 먹먹했다
---「슬픔의 자전」중에서

 

 

  ○출판사 리뷰

 

   1980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의 첫 시집이기도 하다. 푸른빛 시집 컬러 후면으로 크게 원을 그리고 있는 ‘눈물’의 형상이 ‘지구’와 ‘슬픔’의 뉘앙스를 풍기는 듯도 하는바, 데뷔 6년 만에 펴내는 시인의 시를 일컬어 ‘6년 동안의 울음’이라 칭한 신형철 평론가의 말에 기댄 채 일단 페이지를 넘겨본다. 총 64편의 시가 4부로 나뉜 가운데 16편씩 사이좋게 담겨 있다. 이때의 사이좋음이라 함은 시의 주제와 시의 리듬의 걸맞음이라 할 것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한 부씩 크게 잘라 읽다보면 각 부가 각 권의 시집만 같아서 총 4권의 시집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만큼 각 부 안에서 시의 짜임새가 탄탄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가능하면 보다 천천히 읽고, 보다 느리게 음미하며, 보다 여유를 가지고 시를 해석했으면 하는 바람을 앞서 얹게 된다. ‘눈’을 가로질러 ‘물’의 방 속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이야기들이 죄다 우리들의 아픈 속내인 까닭이다. 참 묘하지, 왜 우리들은 우리들의 ‘오늘’을 말하려 할 때 이렇듯 마음의 채비를 서둘러야 하는 걸까. 왜 우리들은 우리들의 ‘오늘’을 마주보는 데 이렇듯 저 나름의 준비를 보태야만 하는 걸까.

 


   어쩌면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지뢰처럼 깔고 있는 게 신철규 시인의 시집 같다. 신철규 시인은 특히나 신중하게 말을 내뱉는 이다. 그는 과장을 멀리하고 모자람에 여지를 주지 않으며 있는 사실 그대로에 기인하고픈 ‘자(ruler)’의 잣대를 믿는 이다. 그래서 매 시마다 매 시의 구절마다 호들갑스러운 제 감정을 표출하기를 삼가고 제 감정의 기복을 그대로 노출하기를 금하며 제 가늠에서 가장 제로에 가깝다 할, 다시 말해 어떤 ‘정도’에 가장 접근한 수치의 말 부림에 집중할 뿐이다. 이토록 ‘결벽’에 가깝게 제 자신을 통제하고 제어하는 데는 매일같이 “구급차가 구급차를 부르”는 죽음이 도처에 깔린 이 세상에 아직 살아있고 살아남은 자라는, 특유의 선함과 선량함에서 보는 원죄 같은 ‘죄책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구의 둘레만큼 긴 칼로 사람을 찌른다고 해서 죄책감이 사라질까. 죄책감은 칼의 길이에 비례하는 것일까.”(「소행성」)라고 말하는 시인이 아닌가.

 

 

  그런고로 신철규 시인에게 ‘눈물’은 반드시 있어줘야 하는 제 살아감의 자취다. 흔적이다. 증거다. “입김으로 뜨거운 음식을 식힐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언 손을 녹일 수도 있”(「유빙」)는 눈물. 그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앞의 시)는 눈물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시인은 이런 시도 남길 수 있었으리라.

 


  한 사람이 엎드려서 울고 있다

  눈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
  바닥 모를 슬픔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눈물의 중력」 부분

 

  눈물 한 방울의 무거움으로 등이 휘는 사람, 그렇게 등뼈의 통증을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 그가 바로 시인이라는 사람일 테다. 신철규 시인은 그런 ‘사람’이지만 때론 세상 곳곳에 날개를 감추고 있는 ‘천사’들을 알아보는 눈으로 일견 천사의 동족임을 들키고 만다. “날개 잃은 천사들이 축축한 몸을 끌고 거리로 몰려나온다”(「다족의 천사」)와 같은 구절을 좇다 “우비를 뒤집어쓰고 등을 돌린 채 직사의 물대포를 맞고 있는 사람”(「연기로 가득한 방」)의 날개 없는 등에서 “높은 곳에 있다고 해서 다 천사는 아니”(「다족의 천사」)라는 읊조림도 보태게 되니 어찌 동족이 아니라 하겠는가.

 

   그리고 세월호…… 그 이름만으로 우리를 휘청거리게 하고 기울게 한 그 이름이 할퀴고 간 자리마다 시인은 시를 남겼다. 재난의 시기에 시인이 바로 그들 곁에 섰다, 라는 신형철 평론가의 해설을 보태자면 신철규 시인이 손사래를 칠 수도 있겠으나 분명한 건 시인의 눈이 한 치도 그 배로부터 떠나지를 않았다는 사실이다. 잊지 않아야 하기에, 잊히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불러줘야 하는 이름이기에 시인은 “컴컴한 방에 검은 비닐봉지를 쓰고 앉아 있는 것처럼 숨이 막”히는 가운데 “바다 가운데 강철로 된 검은 허파가 떠”(「검은 방」) 있는 현실을 우리에게 지칠 때까지 집요하게 그러나 억압적이지 않은 어조로 발화해주기에 이른다.

 

  슬픔은 살아 있는 자라면 누구나 내쉬는 숨 같은 걸 테다. “타워팰리스 근처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의 인터뷰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슬픔의 자전」)라는 구절에서 제목을 빌려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때의 가늠이 우리 사는 ‘지구’여서 더 슬픈 걸 그 앞에 다른 이름들을 넣어보면 실감이 난다. 화성만큼 슬프다는 거, 목성만큼 슬프다는 거, 천왕성만큼 슬프다는 거, 태양만큼 슬프다는 거, 이 먼 거리가 주는 현실감 없음과 달리 지구라는 현실, 지구라는 오늘, 지구라는 한국, 지구라는 서울, 지구라는 진도 앞바다는 얼마나 근거리이기에 이렇듯 내 턱을 간질일 수 있나.

 

   신철규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사뭇 차분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쓰는 자의 단단함이 읽는 자의 옷깃 또한 여며주게 만드는 모양이다. “관을 불 속에 넣고 유족들은 식당에 간다 두 시간 남짓, 밥 먹고 차 마시기 적당한 시간”(「꽃과 뼈」)이란 대목만 봐도 말이다. “우리는 모두 타는 것과 타지 않는 것으로 분리된다”(앞의 시)라고 나지막하게 말하는 시인에게 묘하게 몸이 기운다. 그의 깊은 사유가 빚은 힘일 것이다. 여러모로 이 첫 시집에 대한 할 말은 차고도 넘친다. 보다 심도 있는 읽을거리를 바란다면 시집 뒷면에 실린 신형철 평론가의 해설을 꼼꼼하게 읽어주시면 좋을 듯싶다. 더불어 “언제나 아이처럼 울겠다”던 신철규 시인의 등단 소감을 제목과 함께 오래 기억해주십사 거듭 간청 드린다. ‘아이’와 ‘울음’은 언제나 진실이며 정의 그 자체이니 말이다.

 

  시인의 말

  떠들썩한 술자리에서 혼자 빠져나와
  이 세상에 없는 이름들을 가만히 되뇌곤 했다.
  그 이름마저 사라질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을 잠깐 뒤돌아보게 하는 것,
  다만 반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
  그것이 시일 것이라고 오래 생각했다.

  숨을 곳도 없이
  길바닥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이
  더는 생겨나지 않는 세상이
  언젠가는 와야 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겠다.

  하늘에 있는 마리와 동식이에게
  그리고 고향에 계신 할머니께
  이 시집이 따스한 안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7년 7월
  신철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