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건다』
정홍수 저/ 창비
좋은 텍스트는 “언제든 무언가를 물어볼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하거니와 “세월로부터 세상을 버텨나갈 말과 걸음”이 되어주기도 한다. 좋은 텍스트를 만나 멈춰 선 순간만큼은 가장 고양된 상태이면서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그는 그 순간을 ‘순수한’ 상태라고 말한다. 마음을 건다는 것은 바로 그런 ‘순수한’ 상태를 찾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을 고스란히 느끼며 살지 못하지만 어떤 울림을 만난 순간만큼은 그 순수함을 찾을 수 있게 된다. 평론가 정홍수가 마음을 걸어온 궤적을 따라 읽는 일은 그 행복을 마주하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
1부 ‘사람들은 살아가고 버텨낸다’에는 저자가 매일매일을 살아온 기록이 담아냈고, 2부 ‘이야기가 사라져가는 시절에’에서는 2015년 한국문학을 향해 쏟아졌던 고언들을 되새기며 ‘문학이란 정말 무엇인가?’를 다시 떠올리는 묵직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3부 ‘세상의 시간, 세상의 풍경’에는 저자가 사랑한 영화와 감독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저자소개
1963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6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평론이 당선되며 비평활동을 시작했다. 평론집 『소설의 고독』 『흔들리는 사이 언뜻 보이는 푸른빛』, 공편저로 『소진의 기억』이 있다. 2016년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출판사 리뷰
1996년 등단 이후 한결같은 애정으로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진심 어린 경탄과 존중 안에서 읽어온 평론가 정홍수. 2016년 평론집 『흔들리는 사이 언뜻 보이는 푸른빛』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가 첫번째 산문집 『마음을 건다』를 선보인다.
총 3부로 구성된 이번 산문집은 2013년부터 최근까지 써온 글들을 묶어낸 것으로, 그가 보고 듣고 읽고 만난 세상의 좋은 작품들로부터 기인한 글들이 묶여 있다. 일상의 단상을 모아 마치 일기처럼 읽히는 1부 ‘사람들은 살아가고 버텨낸다’에는 그가 만난 세상의 시간과 인간의 얼굴이 녹아들어 있다. 좀더 긴 호흡으로 읽어낼 수 있는 2부 ‘이야기가 사라져가는 시절에’에는 주로 문학과 관련된 글들을 모았고 3부 ‘세상의 시간, 세상의 풍경’에는 그가 사랑하는 영화와 그만의 눈으로 들여다본 세상의 풍경을 담았다.
정홍수는 “내게는 아직 좋은 영화를 찾아서 보고 싶고, 좋은 문학작품을 찾아서 읽고 싶은 욕심이 있다.”(196면)라고 말한다. 좋은 텍스트는 “언제든 무언가를 물어볼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하거니와 “세월로부터 세상을 버텨나갈 말과 걸음”이 되어주기도 한다. 좋은 텍스트를 만나 멈춰 선 순간만큼은 가장 고양된 상태이면서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그는 그 순간을 ‘순수한’ 상태라고 말한다. 마음을 건다는 것은 바로 그런 ‘순수한’ 상태를 찾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을 고스란히 느끼며 살지 못하지만 어떤 울림을 만난 순간만큼은 그 순수함을 찾을 수 있게 된다. 평론가 정홍수가 마음을 걸어온 궤적을 따라 읽는 일은 그 행복을 마주하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
‘마음을 건다’는 말을 참 오랜만에 떠올렸던 것 같다. 간곡하다는 것. 감히 그 말을 제목으로 삼아 책을 묶는다. 짧은 글들이다. 세상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담겨 있긴 할 테다. 입장이나 주장으로 내세울 것은 별로 없지 싶다. 그런 게 잘 잡히지도 않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도 얼마간 사실일 것이다. 태도나 자세는 있는 것 같다. 뭉뚱그려 ‘문학적인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것 말이다. 그렇게 세상을 보려 하고 느끼려 했던 것 같기는 하다. 이 책에서 희미하게라도 감지되는 마음의 흐름이란 게 있다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이 세상으로부터 흘러온 것이라는 점을 변명 삼아 어설픈 글을 묶는 부끄러움을 잠시라도 눅여보고 싶다.(‘책머리에’에서)
문학을 넘어 영화에까지 가닿는 치밀한 문장과 따스한 성찰
1부 ‘사람들은 살아가고 버텨낸다’에는 저자가 매일매일을 살아온 기록이 담겨 있다. ‘일상을 견딘다는 것’의 무게를 이청준과 황석영의 단편소설에서 읽어내기도 하고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의 발언을 인용하며 ‘어른 되기의 힘겨움’에 대해 털어놓기도 한다.
이 한권의 산문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문학’일지도 모른다. 2015년 한국문학을 향해 쏟아졌던 고언들을 되새기며 ‘문학이란 정말 무엇인가?’를 다시 떠올리는 묵직한 질문은 2부 ‘이야기가 사라져가는 시절에’에서 대답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나 성석제의 장편소설 『투명인간』, 황정은의 중편소설 「웃는 남자」를 읽어내는 정홍수의 치밀한 문장을 따라가다보면 ‘문학은 죽었다’와 같은 이름 붙이기는 더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의 읽기는 필립 로스, 존 밴빌, 페르난두 뻬소아와 같은 외국 작가의 작품에도 닿아 있는데, 이 글들에 또한 그 자신의 삶과 실존적 고민이 녹아들어 있다. 이야기가 사라져가는 시절이라지만, 이야기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온 셈이다.
세상의 변화만큼 이야기의 운명도 이전 같을 수는 없겠다. 그러나 ‘콘텐츠’나 ‘정보의 당의정’으로 이야기의 거주지가 바뀌고, 이야기가 ‘개발’되게 된 현실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외경과 존중의 감각을 찾기 어려운 이즈음의 세태가 거꾸로 투영되어 있는 것도 같다. 이야기는 아마도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세상의 시간에 공백과 연기(延期)의 틈을 만들어내는 그 무엇이었는지 모른다. 그때 그 틈은 다른 무엇으로 환산되지 않는 시간의 결 같은 것을 통해 우리의 삶을 조금은 두텁게 만들지 않았을까.(182~83면)
3부 ‘세상의 시간, 세상의 풍경’에는 저자가 사랑한 영화와 감독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평론집 제목(‘흔들리는 사이 언뜻 보이는 푸른빛’)을 허우 샤오셴의 영화에서 가져왔을 만큼 그의 글 갈피마다 감독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영화는 언제든 삶과 생활이 먼저다. 고달프고 막막하지만 누구든 담담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의 시간이 그의 영화에는 흐르고 또 흐른다.(306면)
이 책의 서문 격인 글 「집으로 가는 길―기다림의 인간들」에는 저자가 허우 샤오셴의 영화를 보고 거의 즉각적으로 몸을 기울이게 된 순간이 등장한다. 영화에 등장한 철로변 풍경 때문이었다. 대만의 철길 풍경을 보고 저자는 그 자신이 통과해온 철길의 시간을 다시 만나게 된다. 어떤 시간은 그렇게 몸속에 접혀 있다가 기차처럼 느리게 달려오기도 한다. 우리가 극장 안에서 영화의 시간을 살아내는 동안 우리 삶도 스크린에 실려 함께 흘러가고 흘러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우리를 넘어서는 어떤 시간, 공간, 지평의 느낌 앞에 설 때가 있지만 그것을 온전히 소유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렇게 감지된 풍경은 허우 샤오셴의 영화를 보았던 그 시간처럼 언젠가 반드시 돌아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듯 그 시간을 통과하며 살아가고 봄을 맞는다.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과 함께 있으려는 태도, 무언가에 마음을 건다는 것은 그런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마음을 걸 때 우리는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해보면 문학은 덩어리지고 혼재된 시간의 안쪽으로 들어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과 함께 있으려는 시선이기도 하다. 킨텍스, 라페스타의 젊고 화려한 불빛과 구일산의 저 오래된 시간 사이에서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은 살아가고, 거기서 오늘도 문학은 삶을 향한 새롭고 오래된 질문들을 벼리고 있을 것이다.(278면)
○추천평
낡고 묵직한 가방을 짊어진 허름한 여행자. 그의 글에서 나는 정홍수를 이렇게 느낀다. 안온한 집필실, 잘 분류된 서가, 말쑥한 계보도, 대상과의 적절한 거리는 그의 것이 아니다. 문학이나 영화에 대해서든 사람이나 세상일에 대해서든 그의 글에는 단숨에 대상을 포획하는 정돈의 언어가 없다. 그는 대상이 한눈에 보이는 시야를 확보하는 대신 걷고 또 걸어 그 곁에 다가간 뒤 그를 만지고 듣는다. 분류와 판정의 논변이 아닌 경탄과 감사, 회한과 상념, 망설임과 부끄러움, 때론 분노와 속울음의 기행문. 그의 글을 나는 그렇게 느낀다.
그런데 그의 낡은 가방은 왜 무거워 보이는가. 그는 언어를 사랑하지만 믿지는 않는 것 같다. 아니, 그 믿음이 아직은 유보되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매몰차게 다그치는 것 같다. 사랑이 그의 아름다운 문장들을 낳았겠지만, 유보된 믿음이 그를 고달픈 기행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나로선 이런 글을 사랑하지 않기 힘들다. - 허문영(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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