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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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책 이야기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금동원(琴東媛) 2017. 10. 21. 01:44

 현재 활동하고 있는 독서토론 모임에서 얼마 전, 버지니아 울프의『자기만의 방』을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눈 적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1882년생다. 지금 소개하려는 소설은 조남주 작가의『82년생 김지영』이다. 제목이 주는 시차만 따지면 버지니아 울프와 김지영은 딱 100년 차이가 난다. (조남주 작가가 이부분을 의식하고 제목을 붙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을 사는 35살의 젊은 여성 주인공은 1982년생으로 가장 흔한 이름 중에 하나인 '김지영'이다. 평범하고 보편적인 일상을 사는 여자주인공을 통해 의외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할머니와 엄마 세대까지의 삶을 아우르며 불균형한 무의식적 인식들을 환기시켜준다.

 

 다음 달 읽고 토론 할 책을『82년생 김지영』으로 선택했다. 선정한 이유 중에는 1882년생 버지니아 울프의 불행한 생애도 영향을 미쳤다. 울프는 막막하고 답답했던 20세기의 시대적 관습과 성적 차별을 겪으며 여성의 정신적, 물질적 독립과 여성 고유의 가치를 설파했다. 버지니아 울프가 보여준 놀라운 통찰력은 감개무량하기까지 하다. 짧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백년이 지나면 이 가치들은 완전히 변하겠지요. 여성은 보호받는 성을 그만 둘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그들은 한 때 자신들에게 허용되지 않았던 모든 활동과 힘든 작업에 참여할 것입니다. 아이 보는 여자는 석탄을 운반할 것이고, 가게 주인 여자는 기관차를 운전 할 것입니다. 여성이 보호받는 성이었을 때 관찰된 사실에 근거를 둔 모든 가설들은 사라질 것입니다....중략 (P 63)

 

 100년이 지난 후 우리 여성들에게 주어진 삶과 존재의 가치는 얼마나 변화했을까. 울프가 지적한 대로 진짜 우리들은 차별없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두 시간이면 읽히는 어렵지 않은 소설이다. 읽어볼 만한 책이다. (참치)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민음사

 

 

 

  ○책 소개

 

 

  공포, 피로, 당황, 놀람, 혼란, 좌절의 연속에 대한 한국 여자의 인생 현장 보고서.

  문학성과 다양성, 참신성을 기치로 한국문학의 미래를 이끌어 갈 신예들의 작품을 엄선한 「오늘의 젊은 작가」의 열세 번째 작품 『82년생 김지영』. 서민들의 일상 속 비극을 사실적이면서 공감대 높은 스토리로 표현하는 데 재능을 보이는 작가 조남주는 이번 작품에서 1982년생 '김지영 씨'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고백을 한 축으로, 고백을 뒷받침하는 각종 통계자료와 기사들을 또 다른 축으로 삼아 30대를 살고 있는 한국 여성들의 보편적인 일상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슬하에 딸을 두고 있는 서른네 살 김지영 씨가 어느 날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인다. 시댁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친정 엄마로 빙의해 속말을 뱉어 내고, 남편의 결혼 전 애인으로 빙의해 그를 식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남편이 김지영 씨의 정신 상담을 주선하고, 지영 씨는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소설은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들은 담당 의사가 그녀의 인생을 재구성해 기록한 리포트 형식이다. 리포트에 기록된 김지영 씨의 기억은 ‘여성’이라는 젠더적 기준으로 선별된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1999년 남녀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되고 이후 여성부가 출범함으로써 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이후, 즉 제도적 차별이 사라진 시대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내면화된 성차별적 요소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 준다. 지나온 삶을 거슬러 올라가며 미처 못다 한 말을 찾는 이 과정은 지영 씨를 알 수 없는 증상으로부터 회복시켜 줄 수 있을까? 김지영 씨로 대변되는 ‘그녀’들의 인생 마디마디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소를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작가 소개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PD수첩」 「불만제로」 「생방송 오늘아침」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10년 동안 일했다. 2011년 장편소설 『귀를 기울이면』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2016년 장편소설 『고마네치를 위하여』로 황산벌청년문학상을 수상했다.

 

 

  ○목차

 

  2015년 가을
  1982년~1994년
  1995년~2000년
  2001년~2011년
  2012년~2015년
  2016년

 

 

  ○책 속으로

 

  그 이후로도 이상한 징후들은 조금씩 있었다. 평소에는 쓰지도 않는 귀여운 이모티콘을 잔뜩 섞어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고, 분명 김지영 씨의 솜씨도 취향도 아닌 사골국이나 잡채 같은 음식을 만들기도 했다. 정대현 씨는 자꾸만 아내가 낯설어졌다. 아내가, 2년을 열렬히 연애하고 또 3년을 같이 산, 빗방울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눈송이처럼 서로를 쓰다듬었던, 자신들을 반씩 닮은 예쁜 딸을 낳은 아내가, 아무래도 아내 같지가 않았다. --- p.14

  “얘, 너 힘들었니? “
  순간 김지영 씨의 두 볼에 사르르 홍조가 돌더니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눈빛은 따뜻해졌다. 정대현 씨는 불안했다. 하지만 화제를 돌리거나 아내를 끌어낼 틈도 없이 김지영 씨가 대답했다.
  “아이고 사부인, 사실 우리 지영이 명절마다 몸살이에요.”
  잠시 아무도 숨을 쉬지 않았다. 거대한 빙하 위에 온 가족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 p.17

  “은영 아빠가 나 고생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둘이 고생하는 거야.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혼자 이 집안 떠메고 있는 것처럼 앓는 소리 좀 하지 마. 그러라고 한 사람도 없고, 솔직히, 그러고 있지도 않잖아.” --- p.32

  김지영 씨는 얼굴형도 예쁘고 콧날도 날렵하니까 쌍꺼풀 수술만 하면 되겠다며 외모에 대한 칭찬인지 충고인지도 계속 늘어놓았다. 남자 친구가 있느냐고 묻더니 원래 골키퍼가 있어야 골 넣을 맛이 난다는 둥 한 번도 안 해 본 여자는 있어도 한 번만 해 본 여자는 없다는 둥 웃기지도 않는 19금 유머까지 남발했다. 무엇보다 계속 술을 권했다. 주량을 넘어섰다고, 귀갓길이 위험하다고, 이제 그만 마시겠다고 해도 여기 이렇게 남자가 많은데 뭐가 걱정이냐고 반문했다. 니들이 제일 걱정이거든. 김지영 씨는 대답을 속으로 삼키며 눈치껏 빈 컵과 냉면 그릇에 술을 쏟아 버렸다. --- p.116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나요. 다 하면서 배우는 거죠. 지영이가 잘할 거예요.”
  아니요, 어머니, 저 잘할 자신 없는대요. 그런 건 자취하는 오빠가 더 잘하고요, 결혼하고도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김지영 씨도, 정대현 씨도,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 p.128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김지영 씨는 혼인신고를 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는 정대현 씨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 --- p.132

  김지영 씨가 회사를 그만둔 2014년, 대한민국 기혼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결혼, 임신, 출산, 어린 자녀의 육아와 교육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출산기 전후로 현저히 낮아지는데, 20~29세 여성의 63.8퍼센트가 경제활동에 참가하다가 30~39세에는 58퍼센트로 하락하고, 40대부터 다시 66.7퍼센트로 증가한다. --- p.146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 p.165

 

 

 

 

  ( yes24 리뷰)

  ○2016년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도서1팀 김은진 | 2016-11-28

 

 

  82년생 김지영씨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다. 소설은 그녀의 삶을 차분하고 건조하게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서술하고 있다. 반면 담담한 문체에도 불구하고 나는 같은 여자로써 이 소설을 읽으며 많이도 속상했던 것 같다. 어떤 부분에서는 읽기 조차 힘들었고 읽고 난 후에도 한참을 어지러워했다.

  김지영씨는 삽십대 중반의 전업 주부다. 서울 변두리의 아파트에서 남편과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어린 시절에도 평범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서울권 대학에 진학했다. 졸업 후 홍보대행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아이를 낳으며 일을 그만두었다. 언뜻 평범하고 모자람 없어 보이는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 말하기 시작한다. "아이고 사부인, 우리 지영이 명절마다 몸살이예요." 어느 날은 장모님이 또 어느 날은 대학 선배가 되기도 한다.

  증세를 상담하기 위해 상담 치료를 받으며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온 여자로써의 삶을 회고한다. 똑같은 조건에서도 여자이기 때문에 그녀에게 벌어졌던 일들, 여자이기 때문에 그녀가 포기해야 하고 동료가 되지 못하고 또 과소평가 받는 일들이 일상속에 녹여져있다. 하나 하나의 에피소드들이 아마도 이 또래의 여자라면 누구나 겪을만한 일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놀랍다. 평범한 일상이 어떻게 비수가 되어 균열을 일으키는지 너무나 훌륭하게 표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을 읽으며 많이 아팠다. 이미 나에게도 힘들었던 일들을 다시 꺼내어보게 되어 아팠고, 또 어떤 부분은 난 무심결에 넘겨 버렸던 일들 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이미 난 상처를 발견해서 아팠다. 같은 여자면서도 아직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알지 못했거나 오해하고 있던 부분들에 대해서는 반성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종종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을 본다. 비슷한 경험이 없거나 입장이 다르면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말이다. 그런데 소설은 다른 사람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또 그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평범해 보이는 여성들의 삶 이면에 어떤 아픔이 있는지 간접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김지영씨의 삶은 기록 되는 것 만으로도 너무나 값지다. 김지영씨의 바람처럼 그녀의 딸은, 그리고 이 시대의 모든 딸들은 그녀의 어머니 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설이 되지 못한 모두의 이야기

  게스 | 2017-10-10

 

  그녀에게, 앞으로 100년의 시간이 주어져야 해.  90년전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다. 100년의 시간이 필요한 그녀는 세익스피어의 누이다. 세익스피어와 똑같은 재능과 열정을 지니고 태어난 세익스피어의 누이가 같은 세익스피어가 쓴 글과 같은 글을 쓰기 위해 인류에겐 100년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익스피어의 시대에는 같은 재능, 같은 열정, 같은 가정 환경을 가진 그의 누이가 작품을 쓰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90년 전, 세익스피어가 죽은 지 300년이 넘는 시점, 직업적인 글쓰기가 사회적으로 가능해진 새 시대에, 그녀는  재능있고 열정으로 가득한 당대의 여성 문학 지망생들에게 아직도 멀었다고, 10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문화와 사회 제도, 가치와 관습 전반에 걸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헤밍웨이가 세계를 여행하며 경험을 쌓는 동안 스타킹을 깁고,  제인 오스틴은 시끄러운 거실 한편에서 차를 대접하며 틈틈히 상상력을 옮겨적는동안 처했을 여성으로서의 어려움을 헤아렸다. 가상의 세계에서 캠브리지 캠퍼스 잔듸 위를 걷는 것을 저지당하던 그녀, 도서관 출입을 금지당하던 그녀는 자신이 걷고 있는, 걷게 될, 여성 작가의 길이 폭신폭신하고 말끔하게 깎여진 잔듸길이 아닌 이곳 저곳 돌뿌리가 발길을 방해하는 자갈밭임을 알았다. 
 
  
   90년이 지났다. 지난 90년동안 인류 전역사에 걸친 변화만큼 커다란 변화를 겪으면서 세계는 하나가 되고 풍성한 문화적 교류를 이루고 평화와 자유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음을 우리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고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누구나 울프가 이야기한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누구나 자신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도록 법적, 사회적 제도가 마련되었다. 사회는 이제 여성의 특권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여성이 결혼하면 가정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직장 남성들은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고, 하릴없는 맘충들은 남편이 뼈빠지게 돈벌며 고생하는 동안 한가하게 비싼 커피 마시고 다닌다고 이야기한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이야기하는 소설들은 대개 우리에게 조금은 이질적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역동의 근대사를 온몸으로 통과하는 이야기, 불의에 저항하거나, 복수하는 이야기. 그렇지 않고 우리에게 가까운 이야기들은 적어도 어떤 드라마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드라마가 없다.  역사도, 고통도, 분노도, 복수도 없다. 매일매일 여성으로서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일 뿐이다.  매일매일 겪다보니 드라마가 되지 못하고 일상이 되어 버린, 이야기가 되지 못한, 일상 중 부딪치는 미세한 차별이 낳은 작디 작은 슬픔들의 합이 만들어낸 갑작스런 환기가 있을 뿐이다.  
 
 
 양성 평등 조항이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훌륭한 헌법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미국에서도 유래가 없던 '여성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국민들이 모여 사는 나라에서 차별을 이야기하는 일은 때때로, 아니 자주 과잉으로 여겨진다. 어쩌면 그런 503을 뽑는 국민들이기에 차별을 이야기하는 일이 치부를 들추는 일처럼 되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일상중 일어나는 그 미세한 작은 차별들에 일일히 대응하고 따지고 분노하면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며, 커져버린 반향의 힘에 부딪혀 무기력해지고 또한 무감각해진다. 그래서 김지영은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인격이 되는 길을 택했다. 82년생 김지영이 말이다. 72년생 이미영보다는 조금 상황이 나아졌는지 모르겠지만, 92년생 유진과 2002년생 보람의 삶이 72년생 김지영과 얼만큼 더 달라졌을지... 

 

 

 

 

  82년생 김지영

  신목 | 2017-10-02 |

 

  난 여자, 내딸도 여자, 내어머니도 여자, 마음을 나누고 힘이 되는 친구도 여자.

  그래서 이 책은 읽기가 싫었다. 매체를 통해서 언뜻언뜻 접하는 정보도 내가 아는 내가 겪은, 내가 걱정하는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고...원래 사실을 직면하고 어쩔 수 없음을 깨닫는 것만큼 마음의 짐이 되는 일은 없으니까.

  그래서 인문학 동아리 책 목록에 정해졌을 때도 탐탁치 않아, 읽을 목록에서 뒤로뒤로 미뤄 뒀었고, 구매도 당연히 미뤘었다. 피할 수 있는 만큼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읽기 시작하고 끝까지 정말 금방 읽어버렸다.

 

  당연히 하나도 낯설지 않았다. 82년생이면 나보다 7년이나 뒤인 사람인데...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남편이 좀 더 나은 사람인 듯 싶다는 것 이외에는...

  나처럼 악착같이 버티지 못하고 아픔을 실제 생활에 드러냈다는 것 이외에는- 뭐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는 건 당연히 아니다.

 

  김지영의 아픔을 사실적인 자료들과 잘 버무려 더 현실적이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르포기사같다.

바램이 있다면 나를 사랑한다고 말만 하는 남편과 딸을 사랑으로 키우고 있는 부모들이나 여학교 또는 여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나 여성 직장동료들과 함께 직장생활을 하는 남성들이 제발 읽어줬으면 싶다.

  당한 사람들은 오히려 안 읽어도 좋다. 인식하거나 하지 못하거나 다들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니까.

  이건 피해당사자들의 노력만으로 당연히 고쳐지지 않을 현실이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감정이 북받쳐서 옆에 있는 김서방에게 당신도 읽어보라고 권했다. 읽으면 나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당연히...

  별로 읽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설명해주고 싶었으나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잘하고 있잖아 식의 자기 방어적인 말들을 나도 힘들거든 식의 공격적인 대답을 들을지 뻔히 아니까.

  그렇다고 해서 같이 사는 김서방이 아주 나쁜 사람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냥 보통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야기 속 정대현 씨가 부러울 정도다. 설명하고 이해시키지 못하는 내가 게으르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12년 동안 살면서 깨달았을 뿐이다. 내가 싸워 이기자는 것도 아닌데, 그냥 나를 이해해달라는 것도 아닌데, 이 관계는 근본적으로 매우 불합리하고 불공정하며 내가 어떤 시도를 하면 할수록 나는 억울함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걸.

  비겁하게 선택한 평화가 나의 억울함을 가중시킬 수 밖에 없는데, 일상에서는 그게 더 편한 방법이라는 걸 깨닫고 선택한 내가 한편으론 부끄럽고 안타깝다.

 

 

  p32

 "너 고생만 시키고. 미안하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는데 순간 아버지의 등 뒤로 커다란 그림자가 생겼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본인 몸집보다 더 큰 상자들을 번쩍번쩍 들어 마루에 옮겨 놓고 아버지 곁에서 비질을 했다.

 "은영 아빠가 나고생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둘이 고생하는 거야.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혼자 이 집안 떠메고 있는 것처럼 앓는 소리 좀 하지 마. 그러라고 한 사람도 없고, 솔직히, 그러고 있지도 않잖아."

 

  ; 지영이 엄마, 멋있다. 안됐고. 지영이 아빠가 특별히 나쁜 사람 당연히 아니다. 고생시켜 미안하다고 저렇게 말하는 남자도 간혹 밖에 없으니까. 자신이 진 짐의 무게만 어마무시하게 느끼는 것이 보통 인간이고 특히 남자니까. 같이 짐지고 옆에 있는 배우자 따위는 느끼지도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니까.

 

  p40

   또 뭐라고 혼을 내려나 긴장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선생님은 김지영 씨 앞자리에 마주 앉더니 사과했다. 상황 파악부터 하지 않고 무조건 혼내서 미안하다. 당연히 실내화 주인의 장난일 줄 알았다. 선생님이 지혜롭지 못했고 앞으로 주의하겠다, 라고 차분차분 해명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

   " 남자애들은 원래 좋아하는 여자한테 더 못되게 굴고, 괴롭히고 그래. 선생님이 잘 얘기할 테니까 이렇게 오해한 채로 짝 바꾸지 말고, 이번 기회에 둘이 더 친해지면 좋겠는데."

   짝꿍이 나를 좋아한다고? 괴롭히는 게 좋아한다는 뜻이라고? 김지영 씨는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빠르게 되짚어 봤지만 아무래도 선생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좋아한다면 더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에게도 그래야 하는 거다. 그게 여덟 살 김지영 씨도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 아이의 괴롭힘 때무넹 학교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이제껏 당해 온 것도 억울한데, 친구를 오해하는 나쁜 아이가 되기까지 했다.

 

 

  ; 저 선생님 괜찮았는데...김지영씨가 친구를 오해하는 나쁜 아이라고 말한 건 아닌데...그렇게 들리기도 한다. 이 대목을 여러번 읽었다. 딸아이보다 한살 어린 딸을 키우는 집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집 아빠가 꼭 저 선생님처럼 이야기 했더랜다. 친구랑 둘이 막 분노했었다.

  우리는 커오면서 저런 이야기들을 한번쯤은 들었고, 운이 좋지 않아 선생님한테 오해받은 경우도 당연히 있었다. 무섭지...당연히 싫고. 내 아이에게, 내 아이의 아버지에게, 친구 딸의 아버지에게 그렇게 얘기 한면 안된다고 한다. 그건 정말 여덟살도 아는 일이니까. 좋아하면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 줘야 하는 거다.

  그게 제대로된 마음의 표현인거다. 튕기고 안튕기고는 상대방의 선택일 뿐이고.

 

 

  p49

  "여기 서울 좀 봐. 그냥 점이야, 점.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이 점 안에서 복작복작하면서 살고 있다는 거다. 다 가 보진 못하더라도 알고는 살라고. 세상이 이렇게나 넓다."

 

  ; 김지영씨의 어머니 오미숙 여사는 꽤 괜찮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정도나마 버틸 수 있었겠지. 그래도 뭐 별 수 없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 조금씩 나아지기는 하려나. 하지만 개인이 나아질 수 있는데는 한계가 있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니까.

 

 

  p123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효율과 합리만을 내세우는 게 과연 공정한 걸까.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는 결국 무엇이 남을까. 남은 이들은 행복할까.

 

  ; 이 질문에 대한 답들은 다 부정문이다. 공정하지 않다. 남은 이들은 행복하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효율과 합리를 내세운다. 내세우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뼈에 발린 것처럼 거의 모두의 속에 내재되어 있다.

 

 

  p132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김지영 씨는 혼인신고를 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는 정대현 씨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

 

 

  ; 둘다이겠지만...세상이 바뀌는 것을 느끼고 수혜를 입었다고 느끼기엔 아직도 억울하다.

 

  p137

  안 그러려고 했는데 억울하고 손해 보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김지영 씨와 달리 일하고 돈 버는 것이 싫어서 전업을 선택하는 여자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남편이 수입이 좋기를 바라고 그걸로 자신의 시간을 즐기는데 쓰는 사람들도 그마저도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p139

   ...주어진 권리와 혜택을 잘 챙기면 날로 먹는 사람이 되고 날로 먹지 않으려 악착같이 일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을 힘들게 만드는 딜레마.

 

  ; 그렇다. 멘탈이 강해서 선택해야 한다. 이런 고민들을 남자들에게 말해봤자. 자신들도 억울하다고 할거다. 이백퍼센트

 

 

  p149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깍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 오랫동안 당연히 무보수로 해와졌던 일이라서도 이기도 할 것이다. 내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집안을 돌보고 집안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 그 무형적인 대가로 받아들이며 해왔던 일이니까...

 이제사 비용을 환산하는 일이 정말로 새삼스러운 일인것이다.

 그냥 누군가에 의해서 해지는 일일뿐. 그 누군가가 되고 싶지 않은 일일 뿐.

 

 

  p161

 "물론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순 없지. 그런데 지금 지영아, 나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 나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너 하고 싶은 일 못 하게 만든 걸로도 모자라, 하고 싶지 않은 일 하라고는 못하겠다. 아무튼 지금 내 생각은 그래."

 

  ; 정대현 씨의 이 말은 참 나를 울컥하게 했다. 나도 들어보고 싶은 말이었기도 하고...알아줫으면 싶은 말이었기도 했지만, 다시 읽어보니 참 말만 이쁘네 싶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것저것 가리는 고차원적인 사고라니, 호강스럽네.

   전업이었던 주부들이 선택해서 하고 있는 직업들의 대부분은 그냥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은 것이 당연한 현실이다.

   여기서 남자들이 나라고 좋아서 직장다니느냐고 하는 딴지는 사절이다. 대부분 대체휴일날 애들한테 니네는 놀아서 좋겠다. 나도 놀고 싶다라는 말을 하는 멘탈의 소유자들일테니...

 

 

  p173

   "재밌어. 엄청 재밌어. 지금 내 뜻대로 되는 게 이거 하나 밖에 없거든."

   아내는 여전히 초등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고, 나는 아내가 그보다 더 재밌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그거밖에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꼭 하고 싶어서 하는 일, 김지영 씨도 그랬으면 좋겠다.

 

  ; 나도 그런 일을 한다. 아무 의미없어보이지만, 나만 이라고 할 수 있는 일. 그런 걸 꼼지락 거리면서 찾는다. 이거라도 안 하면 미칠 거 같아서 하는 마음으로...

   그거 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꼭 하고 싶어서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하는 마음으로.

 

 

  p185

  ...말을 해도 상황은 그대로이거나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김지영은 점점 목소리를 잃어 갔다.

  ......

   우리 주변의 많은 여성들이 김지영처럼 눈을 감아 버리고 입을 닫아 버린다.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예상할 수 있고 그 일은 피로와 무력으로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 감정, 의견 무엇 하나 말을 하지 않고 속으로 삭이는 게 차라리 나을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서도 소수의 여성들은 목소리를 낸다. 이 여성들이라고 피로감과 무력감을 느끼 않을 리 없다. 다만 비슷한 경험에서 비롯된 공감과 누군갈부터 받은 도움에 힘입어 자신을 위해, 그리고 다른 이들을 위해 용기를 내는 것이다.

 

  ; 그 와중에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은 아주 조금 목소리를 내고 대부분은 말을 안할 것이다. 아마 의식적으로 하려고 하면서도...

   더 용기를 내야겠지...

 

 

  p188

...엄마가 아닌 자신을 드러내면 엄마의 자격을 의심 받는다.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자신을"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아이를, 다음 세대를 키우는 것은 여성의 의무가 아니라 사회의 의무인데, 개별 가정에서 대부분 엄마가 '독박육아'를 하고 있는 현실에 분노가 치민다.

.....

  타인에 대한 돌봄이 사라진 시대에 거의 유일하게 타인을 돌보고 있는 존재인 엄마가 남편이 힘들게 벌어온 돈으로 카페나 다니면서 자기 아이만 위하는 '이기적인 벌레'라고 손가락질 받는 것이다. 여성혐오 시대에 '모성애라는 종교'조차 침탈되는 양상이다. 모성에 대한 신성시도, 맘충이라는 혐오도 여성을 옭아맬 뿐이다. 그러니 어떻게 '나'를 온전히 지킬 수 있겠는가.

 

 

  ;나는 어떻게 나를 온전히 지킬 것인가.

   지킬 수는 있을 것인가.

   내가 생각한 시간들이 나를 기다려 줄 것인가.

   나는 십년만 더 이걸 할거라고 생각하며 참고 있는데, 나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있어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아서...라는 핑계를 대면서...

  편함에 매몰되지 말고 잊지나 말아야지.

   일단 나는 맘충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는다. 쓰는 사람에게 딴지 정도는 걸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도 해야지.

   원전을 없애기 위해 필요없는 불을 끄는 정도의 실천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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