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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2017)

금동원(琴東媛) 2018. 1. 9. 22:15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2017)

 

감독) 발레리 페리스, 조나단 데이톤                  

주연) 엠마 스톤, 스티브 카렐                     


  “여자가 코트에 없으면 공은 누가 줍죠?”

  변화의 바람이 거세던 1973년, 여자 테니스 랭킹 1위, 전 국민이 사랑하는 세기의 챔피언 ‘빌리’(엠마 스톤)는 남자 선수들과 같은 성과에도 그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상금에 대한 보이콧으로 직접 세계여자테니스협회를 설립한다. 남성 중심 스포츠 업계의 냉대 속에서도 ‘빌리’와 동료들은 직접 발로 뛰며 협찬사를 모집, 자신들만의 대회를 개최하며 화제를 모은다.

 

  세계를 뒤흔든 빅매치, 세상을 바꾼 도전

   한편, 전 남자 윔블던 챔피언이자 타고난 쇼맨 ‘바비’(스티브 카렐)는 그런 ‘빌리’의 행보를 눈여겨본다. 동물적인 미디어 감각과 거침없는 쇼맨십을 지닌 그는 다시 한번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기 위해 ‘빌리’에게 자신과의 빅매치 이벤트를 제안하고, ‘빌리’는 다소 무모해 보이는 이 시합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단 한 번의 기회임을 직감하는데…

 

  달 착륙 이후 최고의 시청률! 전 세계 9천만 명을 열광시킨 세기의 대결이 지금 시작된다.

 

  1973년, 여자 테니스 세계랭킹 1위 빌리 진 킹과 전 남자 테니스 챔피언이었던 바비 릭스의 성 대결을 그린 작품. 당시 TV로 전국에 생중계될 정도로 큰 화제를 모은 실화를 토대로 했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배우 엠마 스톤이 주인공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2017년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이동진의 어바웃 시네마]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또렷한 목소리를 담은 위트와 하모니

 

 

 

  물론 '빌리 진 킹 : 세기의 대결'은 주제의식이 명확한 영화다.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대중영화로서의 재미까지 갖췄다. 진지하면서도 밝고, 지적이면서도 코믹하며, 선이 굵으면서도 섬세한 이 영화는 1973년의 실화를 생생히 살려낸 당대의 분위기에 담아 능숙하게 펼쳐낸다. 자신이 어떤 영화를 만들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들의 위트와 하모니가 여기에 있다.

 

 

  여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인 빌리 진 킹(엠마 스톤)은 남자 선수들과 다르지 않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훨씬 적은 상금을 받게 되자 크게 실망한다. 기존 대회에 보이콧을 선언한 뒤 빌리가 직접 행동에 나서 세계여자테니스협회를 설립하고 대회를 개최해 화제를 모으는 가운데, 한때 남자 윔블던 챔피언까지 지냈던 55세의 바비 릭스(스티브 카렐)가 뜻밖의 이벤트를 제안한다. 자신과 최고의 여자 테니스 선수인 빌리가 테니스 시합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능력을 겨뤄보자는 것. 빌리가 거절하자 바비는 여자 테니스 계를 대표하는 또 다른 선수 마거릿 코트(제시카 맥나미)를 설득해 먼저 경기를 벌인다. 

 

 

 

 

 

  확실히 엠마 스톤은 '라라랜드' 이후 배우로서의 체급 자체가 달라진 느낌이다. '라라랜드'에서의 스톤이 하늘에서 사랑스럽게 빛을 발했다면, '빌리 진 킹'에서의 스톤은 땅에서 믿음직스럽게 길을 낸다. 한 순간의 세련된 표현방식으로나 주제 전체를 지고 가는 존재감으로나 무결한 연기가 돋보인다. 스티브 카렐은 이 영화를 통해 그가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력의 소유자 중 하나라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기회와 위기를 함께 맞은 한 인물을 화려하면서도 의뭉스럽게 그려낸 그의 '빌리 진 킹'은 카렐의 필모그래피에서 '폭스캐처'와 '빅쇼트'의 뒤에 당당히 놓일 만하다.

 

 

  남성우월주의를 우스꽝스럽게 드러내면서 논쟁에 불을 지피는 바비 릭스는 그저 당대의 격전지가 어디인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주목받을지를 짐작하고서 과장된 어릿광대 역을 자청했던 쇼맨이었다. 그러니 연령과 성별이 다른 두 테니스 선수의 대결은 애초 서커스 같은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물결과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개인이 만날 때, 희한한 볼거리는 의미심장한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빌리 진 킹이 상대한 것은 바비 릭스가 아니라 낡고 뒤틀린 시스템의 관성과 오만이었다.

 

 

 

 

 

  발레리 페리스와 조나단 데이턴이 함께 연출한 '빌리 진 킹'은 흥미진진한 스포츠 영화이고, 뛰어난 페미니즘 영화이면서, 삶을 뒤흔드는 감정이 어떤 건지를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동성애 영화이기도 하다. "어제 같은 일은 더 이상 없을 거야"라고 힘주어 사랑을 부정하고 난 직후에 다시금 연인에게 키스하는 사람의 통제할 수 없는 열정은 극의 또 다른 격랑을 이룬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그 과정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사실을 겪어낸 후 엘리베이터 앞이나 거실 한구석에 홀로 남겨진 채 황망해 하는 사람들의 옆모습이나 뒷모습을 한동안 응시함으로써 인간미 가득한 페이소스를 부여하기도 한다.

 

 

  '빌리 진 킹'은 약점이 없는 영화가 아니다. 빌리의 핵심적 정체성인 동성애 모티브는 극 중반까지 인상적으로 제시되고도 후반에 이르게 되면 세기의 대결이 지닌 강력한 자장 속에서 길을 잃고 희미해져 서브 플롯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격정적 순간에 이르게 되면 미끄러지듯 떠다니는 카메라워크와 타이트한 클로즈업 그리고 달콤한 음악에 인물의 표정을 거의 자동적으로 담아내곤 하는 방식도 과용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 힘찬 영화의 또렷한 지성과 풍부한 감성이 남기는 여운은 분명 짙고 길다. 

 

 

 

 

 

   바비 릭스와 빌리 진 킹의 나이는 26세 차이였다. 스티브 카렐과 엠마 스톤의 실제 나이 차 역시 그렇다. 빌리 진 킹은 당시에 여자 테니스 계에서 최고의 상금을 받는 선수였다. 2017년의 엠마 스톤 역시 여자 배우 출연료 1위다. 하지만 영화와 현실 사이의 이런 흥미로운 일치보다 더욱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킹과 스톤이 받았던 보상은 최고의 남자 선수와 남자 배우에 비하면 여전히 불합리하다. 그리고 성차별적인 편견을 지적받을 때 극중 빌 풀먼이 연기하는 잭과 스티브 카렐이 연기하는 바비 그리고 경기를 맡은 해설자가 불쑥불쑥 내뱉는 말들은 우리 주변에서 오늘도 수없이 들려오는 내용과 흡사하다. '빌리 진 킹'이 다룬 44년이나 된 오래된 이야기의 시제는 그렇게 현재진행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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