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정영목 역/ 해냄
눈먼 자들의 도시』 이후 4년이 흐른 어느 선거일, 유권자 중 80퍼센트가 백지투표를 던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또다시 벌어진 '백색공포'로 두려움에 떨던 정부당국과 정치가들은 도시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의문의 백색혁명과 그 주동자를 색출하기에 이른다.
불특정 시간, 익명의 공간을 배경으로 권력의 우매함과 잔인함을 풍자하고 있는 이 소설은, 주제 사라마구의 <인간의 조건 3부작>을 잉태한 『눈먼 자들의 도시』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 알레고리와 패러독스의 걸작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가 "만약에 이 세상 모두가 눈이 멀어 단 한 사람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을 통한 경고였다면, 『눈뜬 자들의 도시』는 "세상 눈뜬 자들이여,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소설로 쓴 혁명 그 자체다.
"무적의 작가가 탄생시킨 또 하나의 역작"(키르커스리뷰)이라는 평처럼 작가의 냉철한 비판정신과 개성이 뚜렷이 드러나 있는 이 작품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가의 깊이와 넓이를 느낄 수 있는 대작이다.
○작가 소개
포르투칼 작가로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22년 포르투칼 중부 지역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3세 때 수도 리스본으로 이주했다. 고등학교만 마치고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69년에 공산당에 입당해 반정부 공산주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다 1975년에 국외로 추방되었으며 그 후로는 생계를 위해 번역가 언론인 등으로 활동했다. 신사실주의 문예지 <세아라 노바>에서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79년부터 전업작가가 되어 소설 시 일기 희곡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썼다.
1947년에 소설 『죄악의 땅』으로 데뷔했고 1979년 희곡 『밤』으로 포르투칼 비평가협회가 뽑은 올해의 희곡상을 받았다. 1982년에 포르투칼을 배경으로 한 환상적인 역사소설 『발타자르와 블리문다』를 발표해 명성을 얻었고 이후 같은 해에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포르투칼 펜클럽상과 리스본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2년에는 포르투칼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영화화 되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은 흔히 우화적이라고 표현되는데 그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사실주의와 정치적 회의주의를 실험적 문장과 살아있는 등장인물을 이용해 독창적으로 드러낸다. 마르케스 보르헤스와 함께 20세기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사라마구는 환상적 리얼리즘 안에서도 개인과 역사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며 우화적 비유와 신랄한 풍자 경계 없는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의 작품은 독자들을 몹시 긴장시키는 것으로 유명한데 소설 속에 쓰이는 문장 부호는 마침표와 쉼표뿐, 직간접 화법조차 구분하지 않는다. 나이가 무색할 만큼 왕성한 그의 창작 활동은 세계의 수많은 작가를 고무하고 독자를 매료시키며 작가정신의 살아 있는 표본으로 불리고 있다. 그는 2010년 6월 18일,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란사로테섬에 있는 자택에서 지병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작품으로는 『죄악의 땅(Terra de pecado)』(1947), 『서도와 회화 안내서(Manual de pintura e caligrafia)』(1977), 『바닥에서 일어서서(Levantado do Chao)』(1981), 『수도원의 비망록(Memorial do convento)』(1982), 『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O Ano da Morte de Ricardo Reis)』(1984), 『돌뗏목(A Jangada de pedra)』(1986), 『예수복음(O Evangelho segundo Jesus Cristo)』(1991), 『눈먼 자들의 도시(Ensaio sobre a cegueira)』(1995),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Todos os nomes)』(1997), 『동굴(A Caverna)』(2000), 『도플갱어(O Homem duplicado)』(2002), 『눈뜬 자들의 도시(Ensaio sobre a lucidez)』(2004), 『죽음의 중지(As intermitencias da morte)』(2005), 『코끼리의 여행(El viaje del elefante)』(2008), 『카인(Caim)』(2009) 등 다수의 작품이 있으며 계속해서 번역출간 되고 있다.
○ 책 속으로
우리는 진실을 말할 때도 계속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할 때도 계속 진실을 말해요. 바로 그들처럼. 바로 댁처럼 말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내가 댁한테 나하고 같이 자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면 댁은 뭐라고 말했겠어요. 저 거짓말 탐지기는 뭐라고 말했을까요.--- 본문 중에서
그러면 요원은 마치 이 문제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같은 무관심한 말투로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이거 호기심이 많아 죄송합니다만, 혹시 백지투표를 하셨나요. 그러면 대답하는 사람은 문제를 단순한 학문적 문제로 교묘하게 축소해 버렸다, 아니오, 백지투표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설사 했다 해도 그것은 투표용지에 나온 정당들 가운데 한 곳에 투표를 했을 경우나, 총리의 얼굴을 그려 표를 무효로 만들었을 경우와 마찬가지로 법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백지투표를 던지는 것은 자유로운 권리이며, 법은 그것을 선거인에게 허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백지투표를 했다는 이유로 박해받으면 안 된다고 분명히 나와 있지요, 하지만 댁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 다시 말하지만, 나는 백지투표를 한 사람이 아니올시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저 학문적 가정이었을 뿐이지요, 그뿐입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런 답을 두세 번 듣는다고 해도 아무 상관이 없을 터였다. 그저 세상에는 이 나라의 법을 잘 알아 그거을 유난히 강조하는 사람이 몇 명 있나 보다 하고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성을 내기는커녕 눈썹 하나 치켜올리지도 못하고 마치 암기한 호칭 기도를 듣는 것처럼 백 번, 천 번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은 이 까다로운 임무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음에도 이제 그것을 완수할 수 없음을 알게 된 사람에게는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 p.63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 맹목적으로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 시대에, 나이가 들면서 젊었을 때 꿈꾸던 것과는 달리 돈도 많이 벌며 편안하게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를 만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그들도 열여덟 살 때는 단지 유행의 빛나는 횃불이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신의 부모가 지탱하는 체제를 타도하고 그것을 끝내 우애에 기초한 낙원으로 바꾸어놓겠다고 결심한 대담한 혁명가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온건한 보수주의 가운데 어느 것 하나로 몸을 덥히고 근육을 풀었다. 따라서 그들이 과거 혁명에 애착을 갖던 것처럼 지금 애착을 갖고 있는 그 신념과 관행들은 시간이 흐르면 가장 외설적이고 반동적인 종류의 순수한 자기중심주의로 변해갈 것이다. 예의를 약간 걷어내고 말을 하자면, 이런 남자와 이런 여자들은 자신의 인생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매일 현재의 자신의 모습이라는 가래로 과거의 자기 모습이라는 얼굴에 침을 뱉고 있다.--- 본문 중에서
○줄거리
눈뜬 채로 눈이 하얗게 멀어버리는 '실명 전염병'이 도시에 퍼질 당시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권력자들은 사건에 대한 무언(無言)의 함구령을 내리고 기억 저편으로 지워버린다. 어느덧 4년 후 선거일, 수도의 정치를 평가하는 지방선거에서 유권자 중 83퍼센트가 백지투표를 던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또다시 '백색공포'로 두려움에 떨던 우파, 좌파, 그리고 중도 정당의 정치인들은 당황해 하며 우왕좌왕하면서도 이 상황이 결코 시민에 의한 정부불신임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도시에 비밀경찰을 투입하고, 거짓말 탐지기로 시민들을 테스트하는 등 정부는 주도자를 물색해 보지만 사태는 점점 더 오리무중으로 빠진다. 비밀투표를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는 누가 백지투표를 했는지 절대 밝혀낼 방법이 없기 때문.
해결점을 찾지 못한 정부는 마침내 계엄령을 선포해 타 도시와의 교류를 막고 수도의 관문에 군대를 배치한다. 하지만 시민들의 생활과 도시간의 물류문제 등으로 국고만 낭비될 뿐이다. 대통령과 총리는 전격적으로 수도이전을 결정하고 야심한 밤을 틈타 도시를 빠져나갈 계획을 세우고, 정부를 27개 팀으로 나누어 관저를 동시에 빠져나오기로 한다. 정부당국자들이 은밀히 이동을 시행하자마자 도망자들을 환영이라도 하듯 일순간에 도시 전체에 불이 번쩍 켜지는데…….
○yes24 리뷰
■눈먼 자들의 도시, 그 4년 후의 이야기
컨텐츠팀 홍수연(hautehong@yes24.com)
우익정당 13%-1위
중도정당 9%-2위
좌익정당 2.5%-3위
그/리/고 70% 이상이 백지.
비가 오던 어느 투표일, 한 도시의 사람들이 어떤 조직, 단체와 상관없이 모두 한 마음으로 백지투표를 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선거에서 투표를 하는데, 무효, 기권 없이 백지투표를 70%이상 얻는다면, 그 선거의 효력은 어떻게 될까? 아마 정치/언론인들은 학계에 자문을 구하느라 분주할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과연 이러한 맹점을 가지고 있는 현재의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또한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매우 예외적인 경우가 발생했을 때, 과연 소수의 유효표를 전체의 의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제도적인 방안을 찾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발칙한 상상으로부터 시작한다. 노벨상을 탄 대작가에게 ‘발칙한 상상’이라는 말을 내가 감히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정치적 상상력과 현실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잠시나마 나의 ‘발칙한 공상’을 만들어준 그에게 우선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주제 사라마구는 공산당 활동을 하다가 작가로 뒤늦은 조명을 받았으며, 평소에도 출신성분(?)에 맞게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밝히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이 책은 현대 대의 민주정치에 대한 그의 신념과 상상력을 아우르고 있다. 앞서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백색 실명에 따른 공포를 그리고 있었다면, 그 4년 후 같은도시에서 일어난 일종의 백색 정치 혁명을 묘사하고 있다. 우익, 중도, 좌파를 넘어 모든 ‘정치권’은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를 두고 신경전을 벌인다. 가관인것은 국민을 위한 조직인 정부가 비밀경찰을 투입하고, 시민들을 무작위로 잡아들여 거짓말 탐지기로 시험하는 등, 국가기관이 국민을 향해 전선을 그어버리고, 보이지 않은 백색 조직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는 것이다. 급기야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도시의 관문을 폐쇄하였다.
과연 이 백색 투표는 누구에 의해 조직된 것일까? 정부는 일종의 배임(背任)으로 도시에서 모든 정부 조직을 빼낸다. 마치 백지투표에 반발이라도 하여, ‘너희가 우리를 거부했으니 그 속에서 얼마나 잘 사는가 두고 보라지, 흥!’과 같은 질투처럼 말이다. 뒤이은 은폐된 테러 공작과 무의미한 죽음. 시민들의 분노와 추모가 이어진다. 심지어 우익 정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의 탈출을 받아들이고,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그들을 다시 도시로 받아들이기까지 하는 시민, 대중, 다중, 민중(그 무엇이건 간에.)의 유연성과 포용력에 정부는 두 손, 두 발을 들 수밖에 없다. 이제는 관료들조차 정부에 등을 돌리기 시작하는데, 이쯤 다시 한 번 묻는다. 백색 투표는 누구에 의해 조직된 것일까?
‘내가 위정자라면 이런 난감한 순간에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라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 저자의 해답지를 읽어 내려간다.
그 찰나 어디선가 날아온 투서 한장. 고결한 시민들의 비조직화된 조직적인 행동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정부의 대통령과 고위 관료 앞으로 배달된 편지에는 그 어느 누구도 암묵적으로 이야기 하지 않았던 4년전 백색 실명의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 모든 이가 자유롭지 않았기에, 아무도 이야기 할 수 없었던 백색 실명의 시기, 홀로 눈이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고. 그녀는 7명 남짓의 무리를 이끌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왔고, 또 사람을 살해하였다고 남자는 고백한다.
오호. 자작극 테러로도 통하지 않았던 상황을 타개할 만한 회심의 카드로 사용하기 위해, 정부는 그 여자를 찾는다. 그녀는 4년전 두 번째로 눈이 멀었던 의사의 부인으로, 남편을 지키고 한 무리를 이끌었던 사람이다. 모두가 인간성을 상실한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홀로 도덕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그녀가 이제 정부에 의해 반정부 백색조직의 수장으로 '포장'된다. 단지, 홀로 실명을 겪지 않았다는 이유로 말이다. 우리의 ‘빨간색’에 대한 알레르기 만큼이나 책 속의 정부도 ‘흰색’에 대한 공포도 대단한데, 정작 시민들이 왜 백지투표를 던졌냐에는 관심이 없고 국면을 전환할 카드를 통해 급한 불 끄기에만 여념이 없다. 정부는 자신에 우호적인 신문들을 통하여 이 사실을 터뜨린다. 그녀가 사는 아파트 앞 광장에 운집한 시민들과 일상성을 박탈당한 그녀, 그리고 그녀를 암살하는 전직 총리.
정치는 언제나 코미디 연극 무대였고, 시민들은 알면서도 모른척 당하거나 아니면 진정 모르는 관객이었나?
개 짖는 소리가 싫다는 암살자의 독백으로 이 책은 끝난다.
선거일의 백지투표가 모인 것이 이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 또 과거와는 다른 시민들의 비조직화된 자발적인 응집력을 점지했다는 점에서 저자는 시대의 흐름을 꿰뚫는 사고의 유연함을 자랑한다. 그리고 정부의 해결책이 고작 4년 전 살인을 했던 의사 부인을 용의자로 지목쿇고 그녀를 살해하는 것으로 끝나는 대목을 통해 언제나 ‘근본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하는 언론과 늘 ‘임시방편책’으로 애두르는(혹은 이럴 수밖에 없는) 정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든다. 두 눈을 뜬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방향은 어디일런지. 이를 결정하는 것은 저자의 상상력에서 출발하여 결국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출판사 리뷰
세상의 모든 눈뜬 자들이여,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눈먼 자들의 도시에 일어난 의문의 백색혁명!
권력의 우매함과 잔인함을 풍자한 블랙유머의 역작
여기 여든다섯의 노작가가 있다. 젊은 시절부터 공산당 활동에 심취해 마흔이 넘어서야 문단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그리고 일흔다섯에 드디어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주제 사라마구가 바로 그다. 이미 11년 전 발표해 36개국에 소개된 『눈먼 자들의 도시』를 되새기기라도 하는 듯, 2004년 『눈뜬 자들의 도시』를 발표, 또 한 번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정치가들은 백지표보다는 기권표를 선호한다. 왜냐하면 기권표야 뭐라고 둘러대도 상관없으니까. 사람들이 내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든다고 하지만, 백지표야말로 가장 민주적인 것이라는 점을 난 믿는다"라는 그의 말과 같이 이 소설은 익명의 도시에서 일어난 의문의 백색혁명을 다룬다.
전작이 "만약 이 세상 모두가 눈이 멀어 단 한 사람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하에 눈멀고 난 후의 전복과 혼란을 다루고 있는 반면, 신작에서는 "세상 눈뜬 자들이여,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백색투표라는 '눈뜬 자들'의 공격, 그리고 권력자들의 예상을 뒤엎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나간다. 전작에서 눈멀고 난 후의 약탈과 방화, 강간 등을 경험한 이들은 이제는 두 눈 부릅뜨고 우왕좌왕하는 권력자들을 주시한다. '권력'과 '제도'를 거부한 이들에 대한 보복으로 이뤄지는 포위와 감금은 한낱 무용지물일 뿐. 결국 국가 이성의 이름으로 치러지는 '정당한 암살'로 소설을 마무리하며 작가는 세계화 시대의 인간존재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불특정 시간, 익명의 공간을 배경으로 권력의 우매함과 민주주의제도의 허점을 신랄하게 짚어내고 있는 이 소설은, 주제 사라마구가 문학으로 일궈낸 <인간의 조건 3부작>의 시초, 『눈먼 자들의 도시』 완결판으로서 알레고리와 패러독스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하나의 발길질로, 분노와 저항의 표현으로" 썼다고 말하는 사마라구는 이 작품을 통해 민중에 의해 포위된 권력, 서구에 의해 좌우되는 경제적 세계통합에 반항하고 있는 것이다.
"무적의 작가가 탄생시킨 또 하나의 역작"(키르커스리뷰)이라는 평처럼 작가의 냉철한 비판정신과 개성이 뚜렷이 드러나 있는 이 작품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가의 깊이와 넓이를 느낄 수 있는 대작이다. 꼬리에 꼬리를 이어가는 대화와 서술을 끈질기게 따라가 작품을 완독한다면, 전복된 세상을 그려낸 전작에서 느낄 수 있었던 통렬함을 넘어 다시 한 번 거침없는 문학의 힘을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해냄은 주제 사라마구의 <인간의 조건 3부작> 『눈먼 자들의 도시』 『동굴』 『도플갱어』와 함께 『돌뗏목』 『리스본 쟁탈전』 등을 국내에 소개해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호평을 얻은 바 있으며, 이후 2008년 『죽음의 중지』 등을 출간, 또다시 '주제 사라마구가 펼쳐내는 알레고리의 세계'로 독자들을 인도할 계획이다. '우리 시대의 현자(賢者)'로 불리는 주제 사라마구의 과감한 상상력과 냉철한 현실인식이 계속해서 우리의 인식세계를 확장시키며 고양시켜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해외 언론 리뷰
무명의 도시, 익명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만약…… 한다면"을 다시 한 번 선보이는 작가의 상상력과 익살스런 블랙유머. ―《뉴욕타임스》
투표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꼭 읽어볼 만한 시기적절한 정치적 우화. ―《타임스》
번뜩이는 위트와 가슴을 두드리는 위엄, 그리고 자신의 예술세계조차 가로지르는 위대한 아티스트로서의 담백함으로 소설을 완성하는, 우리 시대의 현자(賢者) 주제 사라마구의 생동감 넘치는 우리 시대 이야기. ―우슐라 K 르 귄(Ursula K. Le Guin), 《가디언》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선보인 알레고리를 뛰어넘어 현장감이 있는 작품. ―《퍼블리셔스 위클리》
무적의 작가가 탄생시킨 또 하나의 역작 ―《키르커스리뷰》
○독자 리뷰
눈초 | 2016-06-02 |
바닥까지 굴러 떨어진 인간들이 부리는 역겨운 탐욕으로 읽어나가기 힘들었던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끝까지 답을 얻지 못했던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위기에 처한 도시민들을 보호해야 할 정부의 정체였습니다. 초급성 실명전염병이 발생하자, 놀랄 만큼 신속하게 초기 역학적 대응-발병한 환자는 물론 그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찾아내 격리시켜 전염병의 확산을 차단시키는-은 완벽하게 했던 정부가 격리된 환자들을 방치하여 죽음으로 몰아넣는 방식으로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이런 저의 생각은 <눈먼 자들의 도시>의 완결편이라고 할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실명 전염병의 확산사태가 종식되고 4년이 지난 뒤에 있던 선거에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는 것으로 끊어진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투표가 진행되는데 꼼짝을 하지 않던 시민들이 오후 4시가 되자 한꺼번에 투표소로 몰려나와 기표를 함으로써 선거관리책임을 맡은 사람들의 위기감을 덜어주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개표가 진행되어 종료되면서 사태가 묘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전체 유효표의 70퍼센트 이상이 백지였던 것입니다. 수도를 제외한 지방에서는 평소와 별다른 점이 없었다는 점이 차이입니다. 일주일 뒤에 선거를 다시 하기로 했지만, 결과는 더 나빠져서 백지투표가 83퍼센트에 이르게 됩니다.
백색실명에 이은 백색투표 사이의 연결고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실명이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면 백색투표는 투표용지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역시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질책이 담겨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각의에서 논의되는 과정에서 드러나지만, 백색실명사태가 종료된 다음 무기력한 대응으로 사태를 키웠던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없었던 것처럼 기억에서 지워버리기로 한 것에 대한 시민들의 무언의 시위였던 것입니다. 지우려한다고 해서 지워지지 않는 것이 기억이라는 것입니다.
■눈 떠
아이작 | 2008-12-06 |
지난 달 말에 [눈뜬 자들의 도시]와 [눈먼 자들의 도시] 두 권의 사마라구 책이 날아왔다. 나는 눈먼 놈들 보다 눈뜬 놈들이 더 궁금해서 이 책을 집어 들었는데, 젠장. 눈먼 놈들이 먼저란다. 확률은 홀짝이었는데 그것도 하나 딱딱 못맞추나 그래? 그러나 별차이는 없을 것 같다. 속편이라고는 해도 전편의 내용이 그다지 많이 연결되지 않으므로 별개의 작품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아직 눈먼 자들의 도시를 보지는 못했지만. 아 놔, 이 할아버지 여든이 넘으셨다는데 노벨 문학상을 받은 노인네들 작품을 읽으면서 이렇게 웃어보기는 처음이다. 뭐랄까, 완전 절묘하다고 해야할까? 아주 번뜩이는 재치가 묻어나는 잘 만들어진 블랙코미디 정치영화를 한 편 본 것 같다. 특히, 관료들이 나누는 대화들은 거의 포복절도 수준이다. 여러가지 영화가 떠 올랐는데 그 이유가 일단 문장 자체가 정말 카메라가 돌아가듯이 그렇게 관찰하고 있어서 그런 듯 싶다. 이제까지 본 여러가지 음모 관련 영화들은 많았지만 그래도 그 중에 가장 최근의 것을 비교해서 꼽자면 프리즌 브레이크가 떠올랐다. 프리즌 브레이크는 당한 시민의 입장에서 위로 치고 올라가며 사건을 바라보는 식이라면, 이 책은 가장 위의 입장에서 아래로 치고 내려오면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석호필은 천재스러울만큼 놀라울 인물이지만, 이곳의 관리들은 멍청이들의 대행진 같다. 결국, 현실로 돌아와서는 반드시 소설속에 인물들만은 아닐 것인 그 멍청이들을 손수 뽑은 것이 우리라는 서글픔에 다소 가슴이 서늘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웃긴 건 웃긴거다. 이 할아버지 놀랍다 놀라워. 그 서글픔을 대변하여 시민으로서의 의무도 이행하면서, 더 이상 울트라 얼간이를 대표로 앉힐수는 없다는 열망을 담은 절묘한 상황설정에 또 한번 감탄! 이야기는 어떤 사상 집단의 대칭 형식으로 꾸려져 나가는데, 이걸 '어떤' 사상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약간의 모호성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익적인 기존 세력안에서 좌파적인 색깔의 행정이 그려지기도 하고, 그 반대편으로 무정부주의 세력인 것 같으면서도 그저, 서민일 뿐이라는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작가의 의도인 건지 내가 그렇게 받아들인 건지 모르겠지만 작가가 그리는 도시의 집권자들이 슈퍼 얼간이들로 나오기 때문에 전체적인 느낌은 조금 좌익 성향이 두드러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또, 딱 그렇다, 라고 말할수 없는게 어쩌면 여든세의 할아버지의 노련함 일는지도. 요즘 우리나라도 대선을 이제 한 달 앞두고 있다. 우리같은 범인들의 입장에서도 왜 그 기업인이 지금 들어왔을까? 운하의 돈줄은 어디서 나오는가, 잠수타있던 노인네가 왜 갑자기 나타나서 혼란을 가중시키는가, 귀국한 기업인은 어떤 거래로 무엇을 보장받고 들어왔는가, 누가 그를 지켜주는 가, 갑작스런 귀국과 갑작스런 노인네의 등장 뒤에는 어떤 자가 밑그림을 가지고 조정하고 있는가, 등등 우리와는 다른세계에서 벌어지는 그 무언가를, 그들만의 리그로 바라보고는 있지만 그 속을 누가 알겠는가. 그런데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는 입장이 정반대이다. 그래서 통쾌한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는 그들, 즉 관리들 지들끼리 모여서 온갖 상상을 다하고 시민들이 속을 알수 없는 형태로 그려진다. 그래서 관리들은 마치 똥마려운 강아지들 마냥 지들끼리 싸우고 뜯고 하다가 또, 그렇게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쓰는데 그 모습이 음...마치, 매트릭스에 나오는 기계군단이 앤더슨으로 하여금 시온과 그들의 예언자 오라클을 찾아 나서는 것처럼 그런 모습이다. 글의 중간에 작가의 고국인 포르투갈이 언급되기는 해도 사실, 사마라구가 말하는 도시현상에 해당되지 않는 나라는 별로 없을 것 같다. 이 책 역시 다양한 각도의 생각을 끌어내는 절묘한 작품이다.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의견이 분분할 수 있는 소지의 작품이기는 해도 뭐랄까, 내가 가장 반한 점은 다소 무겁거나, 진중하게 들여다 봐야 할 문제들을 유머스럽고, 우화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작가의 솜씨이다. 어찌 그렇게 절묘하게, 끊임없이,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것인지, 소설로서의 작가의 내공 뿐 아니라, 사회적인 면으로도 작가의 깊은 통찰력에 경탄을 금치 않을수 없다. 짖자, 개가 말했다, 로 시작한 이 책은 나는 개짖는 소리가 싫어. 라는 문장으로 마무리 된다. 책을 덮고 나면 이 두 문장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생각들이 담겨 있다는 걸 느낄수 있는데 그 맛을 즐기는 것도 일종의 부록일 것이다
백색투표가 백색실명과 연결된다는 점은 처음 눈이 먼 남자가 대통령과 총리 그리고 내무부장관에게 제보를 하여 백색실명 사태에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던 안과의사의 부인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내용인데, 아마도 그녀라면 백색투표와 같은 엄청난 일을 주도했을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제보한 사람은 최초로 실명한 남자였는데, 알고 보면 그 남자는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보았던 역겨운 군상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대통령과 총리는 그녀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목격자가 없기 때문에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수사하지 않기로 결정하지만 내무부장관은 이미 수사팀을 도시로 잠입시킵니다. 수사팀은 그녀는 백색투표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밝혀내게 됩니다. 하지만 내부부장관은 이미 그녀가 사태에 중심에 있다는 각본을 짜놓기까지 한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비밀이 없고,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는 법입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도 저자는 세상에는 살맛나는 무엇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다만 책임을 회피하는데 급급한 기회주의자들이 벌인 무모한 작전이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더라면 하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누군가 정의로운 일을 하는데 생명을 걸어야 한다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가 태어나는 그 순간 평생 지킬 협정에 서명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렇게 자문할 날이 온다. 누가 여기에 나 대신 서명을 했는가.(377쪽)” 우매하면서도 잔인하기까지 한 최악의 권력을 한껏 조롱하고 있습니다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답은 침묵하고 있어 답답할 수도 있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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