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괴테가, 그는 아인슈타인이 좋다고 말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 네버엔딩 지식 배틀
아니카 브로크슈미트, 데니스 슐츠 저/강영옥 역
전통적으로 인문학 전공자와 자연과학 전공자 사이에는 뿌리 깊은 선입견이 있다. 인문학 전공자는 숫자를 모르고 현실적 문제 해결에 무능하며, 자연과학 전공자는 사회적 담론을 이해하지 못하며 괴짜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 이 선입견의 타당성을 알아보고 각자 자기 학문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두 분야의 대표 트레이너가 나서서 ‘지식 배틀’의 장을 꾸렸다. 바로 역사와 독문학을 전공한 그녀, 아니카 브로크슈미트와 저온물리학 박사인 그, 데니스 슐츠가 그들이다. 아니카는 인쇄술과 각종 문화 기록물에 탁월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데니스는 독일의 과학 경진 대회인 ‘사이언스 슬램Science -Slam’의 남독일 지역 챔피언이다. 이 두 사람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주제로 ‘사이언스 파이Science Pie’라는 팟캐스트(www.sciencepie.org)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두 명의 트레이너는 각자 자기 분야의 명망 높은 학자들을 내세워, 총 10라운드의 경기를 치른다.
○작가 소개
저자:아니카 브로크슈미트
독일 베를린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학교를 다녔고 네덜란드에 있는 위트레흐트대학에서 네덜란드어를 배웠으며 독일 하이델베르크와 영국 잉글랜드 주의 더럼에서 역사와 독일어를 공부했다. 『타게스슈피겔Tagesspiegel』과 『차이트 비센Zeit wissen』의 문화 섹션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2016년 중국에서 열린 Girls20 정상 회의에서 독일 대표로 선정되었다
저자:데니스 슈츠
독일의 과학 경진 대회인 ‘사이언스 슬램Science-Slam’의 2016년 남독일 지역 우승자이자 만하임에서 매월 열리는 독서 무대 ‘Laserbuhne 3000’의 일원이다. 하이델베르크 소재 일간지인 『라인-넥카-차이퉁Rhein-Neckar-Zeitung』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일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와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공부했으며, 저온물리학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사진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아날로그 사진작가 그룹인 ‘칼라마리 클루프Kalamari Klub’의 일원으로 활동 중이다
역자: 강영옥
덕성여자대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여러 기관에서 통번역 활동을 했으며, 수학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자 및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 물리학의 역사를 관통하는 50가지 실험』, 『노화, 그 오해와 진실』, 『나는 이기적으로 살기로 했다』, 『우리 동네 냥아치』, 『똑똑한 엄마는 NO라고 말한다』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세대를 거듭해 논의되어 왔고 대학 전공을 선택하기 전 많은 사람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질문이 있다. 어떤 학문에 몇 년 혹은 평생을 바칠 것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나섰다. 인문학과 자연과학 중 무엇이 더 좋을까? 누가 더 설득력이 있고 누가 더 셀까? 이 책은 이러한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여러 라운드에 걸쳐 펼쳐지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팽팽한 대결! 승부는 누구의 입담이 더 좋고 어느 쪽에 더 흥미로운 일화가 많은지에 달려 있다. 링 위에서 우리는 세계 최고의 괴짜, 최고의 연구 성과, 우리 삶에 두루 영향을 끼친 학문적 추론, 이 모든 것을 만난다.--- p.9
페렐만은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할 때 아주 사적인 의식을 치렀다. 먼저 그는 “단일 연결인 3차원 다양체는 구면과 같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읽었다. 이어서 등을 뒤로 기댄 다음 지그시 눈을 감고, 손바닥을 바지에 대고 마구 문질렀다. 그러고는 두 손바닥을 비비다가 눈을 뜨고, 정확하고 완벽한 증명을 써내려갔다. 그의 사전에 실수라는 건 없었다. 복잡한 문제를 풀 때 그는 카미유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Introduction et Rondo capriccioso]를 자기 식으로 흥얼거렸다. 이 소리를 들은 그의 동료는 이 흥얼거림이 ‘구슬프게 우는 소리’나 ‘음향 테러’에 가깝다고 평했다. --- p. 26~27
독일 화학자이자 반유대주의 선동가인 파울 바이란트Paul Weyland는 상대성 이론을 ‘학문의 다다이즘’이라고 했으며 나치주의자들은 양자 물리학과 상대성 이론을 ‘유대인 물리학’이라고 표현했다. 반면 철학에서는 윤리를 비롯한 모든 것이 상대적일 수 있을지에 더불어 물리학이 종교를 대체하는 새로운 신앙이 될 수 있을지를 묻고, 더 집요하게 이론 해석을 파고들었다. 찰리 채플린은 아인슈타인과 대화하면서 이런 상황을 짧은 문장으로 압축해서 표현했다. “사람들이 나를 존경하는 이유는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당신을 존경하는 이유는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작 아인슈타인은 이 말에 별다른 감동을 받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내가 틀렸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으로 족하다”라고 말했다.
--- p. 60
학술 논문 전문 검색 엔진 구글 학술 검색Google Scholar의 검색창 하단에서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라는 구절을 볼 수 있다. 이 구절은 자연과학사에서 선인들의 학문적 업적을 기릴 때 항상 인용된다. 이 구절만 보면 뉴턴의 펜 끝에서 나온 업적이 마치 삶에 대한 겸손한 태도에서 비롯한 듯한 뉘앙스가 풍긴다. 과연 이 구절 어디에서 디스의 낌새를 느낄 수 있는가? 이 구절의 뜻은 그 출처를 알아야만 분명해진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책에도 기사에서도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뉴턴은 로버트 훅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구절을 썼다. 그보다 불과 몇 년 전에 뉴턴은 빛의 성질에 관해 훅과 논쟁했고, 둘은 매우 격렬하게 토론했지만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뉴턴은 훅이 자신을 많은 연구에 초석을 놓은 거인으로 여기고 있다는 걸 알았다. 반면에 훅은 체구가 아주 왜소하기로 유명했다. 돌이켜 보면, 이 몇 마디 단어에 너무 많은 의미가 부여된 것 같지만, 맥락상 이 인용문의 ‘거인’이라는 표현이 훅에 대한 비열한 공격임을 배재하긴 어렵다.
--- p. 112
유럽 최초의 여성 참정권은 1906년 핀란드에서 주어졌다. 독일은 한참 뒤인 1918년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했다. 프랑스는 이보다 훨씬 나중인 1944년에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 정말로 충격적인 사실은 스위스의 행정 구역인 아펜첼이너로덴Appenzell Inerrhoden에서는 1990년에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1990년이라니! 한편 뉴질랜드에서는 1893년에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 즉 북반구 국가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훨씬 늦게 주어진 셈이다. 리히텐슈타인은 1984년에 여성에게 참정권을 허용했다. 이보다 더 심한 곳은 사우디아라비아로, 2015년 처음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 여성의 참정권은 과거 정부가 거저 준 혜택이 아니었다. 여성의 피나는 노력과 투쟁의 결실이었다. 여성의 인권을 변혁으로 보아야 할까? 인문학 중 어떤 학문에서 여성의 인권 요구를 다루고 있는가? 사회학, 역사학, 정치학 혹은 법학? 아마 모두 조금씩은 다루는 듯하다. 여성 인권의 역사는 모든 학문의 협조가 이루어질 때만 완벽한 분석과 연구가 가능하다. --- p.165
○출판사 리뷰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넓지만 얕은 지식’
이 책은 인문학 전공자와 자연과학 전공자가 서로에 대해 가지는 편견을 직격하며 시작한다. 서로가 서로를 ‘너드nerd’나 ‘덕후’ 정도로 보며 상대편의 기행을 비웃지만, 실은 두 학문 전공자 모두 내심 자신들의 기벽에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두 학문사 최고의 기인을 알아보는 것으로 첫 라운드를 여는 것은 꽤 설득력이 있다. 이어지는 ‘관용구 대 공식’의 대결도 마찬가지다. 이 대결을 통해, 수학 및 과학 공식을 보면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라고 생각하는 ‘수포자’들은 이과인들이 그토록 애정하는 공식에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세상 이치를 간명하면서도 격조 있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많은 관용구들이 사실 인문학사의 많은 일화와 저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이과인들이 손쉽게 말장난이라 치부하는 인문학적 정신의 언어가 사실 우리의 일상 표현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외에도 가볍지만 의외로 핵심을 찌르는 이 책의 대결 주제와 거기서 펼쳐지는 ‘넓지만 얕은’ 지식과 역사적 일화의 향연들은, 아직은 서로를 잘 모르고 어색해하나 상대에게 호기심 어린 선망을 가지고 있는 두 학문 분야의 독자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태초에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하나였다
사실 기나긴 학문의 역사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오늘날처럼 명확하게 분리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오늘날 대표적 이과 학문으로 통하는 의학의 역사는 인문학에 속한다. 고대에 의사는 의술만 행하지 않고 수학, 철학, 역사, 문학 등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중세까지만 해도 학문의 영역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도원에서도 의학을 가르쳤다. 한편 수학은 어떤가? 수학은 언어가 아닌 수를 통해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과학과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수학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사고 모델이다. 따라서 논리가 철학의 영역에 속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수학은 순수하게 이론적인 인문학 모델로도 볼 수 있다. ‘활판 인쇄술’도 마찬가지다. 역사에서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은 세상을 변혁시킨 대발명 중 하나로 기록된다. 한편 그것의 세계사적 의미를 빼고 오로지 기술 자체만을 봤을 때, 활판 인쇄술은 기술사에 속한다.
어게인, 박학자의 시대
역사적으로 인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학자들은 특정 학문 영역으로 규정하기 힘든 박학자였다. 가령 우리에게 철학자로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을 비롯한 과학 전반에도 능통했다. 괴테도 마찬가지다. 괴테는 흔히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등을 쓴 문학가로 기억되지만, 광물학, 동물학, 식물학, 화학, 광학, 색채론, 유리 제조에 능통한 르네상스인이었다. 이는 자연과학계의 대표 인물 뉴턴도 마찬가지여서, 뉴턴은 심지어 오늘날 우리가 미신이라고 여기는 연금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런 박학자를 찾기 위해서 굳이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흔히 20세기 최고 지성 중 하나로 꼽히는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논리학자이자 수학자, 역사학자, 철학자, 저술가였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박학자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새로운 연구가 끊임없이 등장하면서 학문의 범위가 넓어지고 그 분야도 극도로 세분된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제 한 사람이 여러 학문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인위적 구분이 만들어내는 학문적 부작용이나, 궁극적으로 온전하게 이 세계를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 학문의 역할임을 상기해볼 때 두 학문 사이에는 가교가 필요하며, 이 책은 그 가장 낮은 곳에서 서로를 이해해보라고 손짓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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