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저 /장희창 옮김 |민음사
○작가 소개
독일의 사상가이자 철학자이자 시인인 프리드리히 니체는 20세기를 연 문제적인 철학자이다. 1844년 독일 레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니체의 조상은 폴란드 계라고 알려져 있다. 5세 때 목사인 아버지를 사별하고 어머니와 누이동생과 함께 할머니의 집에서 자랐다. 14세에 슐포르타 기숙학교에서 엄격한 고전 교육을 받고 1864년 본 대학에 진학하여 신학과 고전 문헌학을 공부했다. 1865년 스승인 리츨을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겨갔으며, 그곳에서 바그너를 알게 되어 그의 음악에 심취하였다. 이 두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을 공부했다. 25세의 젊은 나이로 스위스 바젤 대학의 고전문헌학 교수로 임명되었고,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심취함으로써 철학적 사유에 입문했다.
28세 때 최초의 저작『비극의 탄생』을 펴냈으며 이 저작에서 니체는 아폴론적인 가치와 디오니소스적인 가치의 구분을 통해 유럽 문명 전반을 꿰뚫는 통찰을 제시한다. 1873년부터 1876년까지는 독일과 독일민족, 유럽 문화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가하며,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를 새로운 인간형으로 제시한 『반시대적 고찰』을 집필했다.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재직중이던 바젤 대학을 퇴직하고, 이후 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요양지에 머물며 저술 활동에만 전념했다. 1888년 말부터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 니체는 이후 병마에 시달리다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했다. 니체의 정신병을 두고 원인이 분분하지만 젊었을 적 얻었던 매독이 발전되어 정신분열로 이어졌다는 설이 강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까지도 그의 유고들이 발굴되고 있으며 이 유고들은 니체연구 학자들에 의해 현재 독일에서 니체전집으로 출간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나올 예정이다.
니체가 사망한 해인 1900년은 특별한 상징을 지닌다. 19세기를 마감했다는 의미가 될 수도, 20세기를 새롭게 연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 후자일 것이다. 실제로 니체는 '사후, 나는 신화가 될 것이다'는 예언을 했는데, 이 말이 사실이 되었다. 헤르만 헤세, 앙드레 지드, 프란츠 카프카 등 니체를 선망하는 일련의 작가들이 니체의 사상을 문학으로 형상화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초라고 여겨지는 카프카가 니체를 엄청나게 존경했다는 사실과 카프카의 작품 세계는 결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매듭이다. 또한 하이데거와 야스퍼스 등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니체를 실존철학의 시원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프랑스의 포스트 구조주의자들, 그러니까 푸코와 들뢰즈 그리고 데리다 역시 니체를 위대한 사상가로 평하며 저마다 계승 의식을 발현했다. 한편, 한국에서도 니체에 대한 열광은 대단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라는 박상륭 작가의 소설이 출간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니체 전문가로 꼽히는 사람으로는 고병권이 있다. 마지막으로 파시즘에 의한 니체 사상의 오용이 있다. '권력', '힘', '미학', '귀족주의' 등 니체가 중시한 가치를 파시즘이 차용함으로써 모순적이게도 니체의 사상은 파시즘과 나치즘에 의해 선전된 바 있다.
저서로는『니체 최후의 고백』『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인간적인 것, 너무나도 인간적인 것』『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선악의 피안』『도덕의 계보』『이 사람을 보라』『권력에의 의지』등이 있다.
니체의 작품 세계에서 대표작인『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위치는 각별하다. 이 작품은 그의 집필 활동의 정점에 씌여진 것으로, 그의 활동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켜주는 고리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잠언 형식의 아포리즘이 니체 저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아포리즘의 절정이다. 반대로 영미철학이 자주 구사하는 식의 논지 전개를 니체도 시도한 적이 있는데, 대표적인 저서가 『도덕의 계보』이다.
그의 사상적 특징은 한 마디로 요약하기가 불가능하다. 특히 니체 이후, 니체 계승자라고 자처한 학자들이 제각각의 니체를 창조함으로써 니체 사상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었다. 하이데거는 니체를 적극적 니힐리스트로 규정하였고, 푸코는 권력-지식 담론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이처럼 전반적으로 니체는 고정된 가치에 회의적이었고, 니체 사후 10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니체에 대한 숭배는 끊이지 않는다.
○작가의 한마디:
철학자들에게 내가 바라는 것은 주지하시다시피, 선악의 너머에 서라 -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환상을 짓밟아 버리라는 것이다.(중략) 도덕이란 어떤 특정한 해석,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해 하나의 그릇된 해석에 불과하다.
○책 속으로
저편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건너가는 도중도 위험하고, 뒤돌아보는 것도 위험하고, 덜덜 떨며 멈춰 서는 것도 위험하다.
인간의 위대한 점은, 인간이 다리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의 사랑할 만한 점은, 인간이 건너감이고 몰락이라는 데 있다.
나는 오로지 몰락하는 자로서만 살아가는 이들을 사랑한다. 그들은 저편으로 건너가는 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위대하게 경멸하는 자들을 사랑한다. 그들은 위대한 숭배자이며 저편 기슭을 향한 동경의 화살이기 때문이다.
나는 몰락하고 희생해야 하는 이유를 별들 너머에서 찾지 않고 지상이 언젠가는 초인의 것이 되도록 지상에 헌신하는 자들을 사랑한다.
나는 인식하기 위해 살아가는 자, 언젠가는 초인의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인식하려고 하는 자를 사랑한다. 그는 그렇게 몰락하려 한다.
---본문 17~18면
인간이란 존재는 으스스하고 여전히 무의미하다. 한낱 어릿광대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니.
나는 인간에게 존재의 의미를 가르치려 한다. 그것은 바로 초인, 인간이라는 어두운 먹구름에서 치는 번개다.
---본문 25면
나는 글로 쓰인 모든 것들 가운데서 오로지 피로 쓰인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인 것을 알게 되리라.
타인의 피를 이해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빈둥거리며 책을 읽는 자들을 증오한다.
---본문 50면
나는 그대들에게 이웃이 아니라 벗을 가르친다. 벗은 그대들에게 이 지상의 축제여야 하고 초인에 대한 예감이어야 한다.
나는 그대들에게 벗과 벗의 넘쳐흐르는 가슴을 가르친다. 그러나 넘쳐흐르는 가슴의 사랑을 받으려면, 그 사랑을 빨아들이는 스펀지가 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그대들에게 내면에 선(善)을 감싼 껍질, 세계가 완성되어 있는 벗을 가르친다. 언제나 완성된 세계를 선물할 수 있는 창조적인 벗을.
일찍이 그에게서 세계가 펼쳐졌던 것처럼, 이제 다시 그에게로 세계가 모여든다. 악을 통해 선이 생겨나고, 우연에서 목적이 생겨나면서.
가장 멀리 있는 것과 미래가 그대에게는 오늘의 원인이어야 한다. 그대의 벗이 품고 있는 초인을 그대의 원인으로 사랑해야 한다.
---본문 79~80면
고독한 자여, 그대는 그대 자신을 향한 길을 간다! 그리고 그 길은 그대 자신과 그대의 일곱 악마를 지나간다!
그대는 그대 자신에게 이단자, 마녀, 예언자, 바보, 회의론 자, 불경한 자, 악한일 것이다.
그대는 자신의 불길로 자신을 불사르려 해야 한다. 먼저 재가 되지 않고서 어떻게 새로워지길 바라겠는가!
고독한 자여, 그대는 창조하는 자의 길을 간다. 그대는 그대의 일곱 악마로부터 신을 창조하려 한다!
고독한 자여, 그대는 사랑하는 자의 길을 간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사랑하고, 오로지 사랑하는 자들만이 경멸하기에 그대 자신을 경멸한다.
사랑하는 자는 경멸하는 탓에 창조하려 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경멸할 필요가 없는 자가 사랑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나의 형제여, 창조의 뜻을 품고 그대의 사랑과 더불어 그대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정의가 뒤늦게 그대의 뒤를 절뚝절뚝 따라갈 것이다.
나의 형제여, 나의 눈물과 함께 그대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나는 자신을 넘어 창조하려 하고 그러다 몰락해 가는 자를 사랑한다.
---본문 84~85면
나는 이제 그대들에게 나를 버리고 그대들 자신을 찾아 나서라고 이른다. 그대들이 모두 나를 부인하게 되면, 그때 비로소 나는 다시 그대들에게 돌아오리라.
진실로, 나의 형제들이여, 그러면 나는 다른 눈으로 나의 잃어버린 자들을 찾을 것이다. 다른 사랑으로 그대들을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그대들은 언젠가 나의 벗이 되고 유일한 희망의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나는 세 번째로 그대들 곁에서 그대들과 함께 위대한 정오를 찬미하리라.
위대한 정오는 인간이 짐승과 초인 사이의 길 한가운데 서서 저녁에 이르는 길을 최고의 희망으로 찬미하는 때이다. 그것은 곧 새로운 아침으로 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때, 몰락하는 자는 자신이 건너가는 자임을 깨닫고 스스로를 축복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인식의 태양은 중천에 떠 있을 것이다.
---본문 101~102면
" 언제나 내 곁에는 한 사람이 더 있다." 은둔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언제나 하나에다 하나를 곱하지만 그 결과는 결국 둘이 된다!"
나와 또 다른 나는 언제나 너무 열심히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니 한 사람의 벗마저 없다면 어찌 견디랴?
은둔자에게 벗은 언제나 제3의 인물이다. 이 제3의 인물은 두 사람, 즉 나와 또 다른 나 사이의 대화가 물 속 깊이 가라앉는 것을 막아주는 코르크 마개다.
---P 94(벗에 대하여 중에서)
벗을 원한다면 그 벗을 위해 전쟁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적이 될 줄도 알아야 한다.자신의 벗에 대해서도 적으로 존경할 줄 알아야 한다.
○출판사 서평
서양 철학의 전통을 뿌리째 뒤흔들고, 20세기 이후의 사상적 흐름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혁명적인 사상가, 니체의 사상이 집약된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출간되었다. 철학서이면서도 문학적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작품의 이야기는 산속에서 짐승들과 벗하며 은둔 생활을 하던 차라투스트라가 인간들에게 새로운 사상을 전하기 위해 산을 내려올 결심을 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고독한 예언자 차라투스트라의 여정을 통해, 《초인》, 《영원 회귀》, 《힘에의 의지》 등 니체 철학의 가장 중심적인 사상들이 다양한 문학적 상징과 잠언으로 펼쳐진다. 그런 만큼 위대한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던 니체의 재능이 특히 빛을 발하고 있는 작품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 특유의 율동감 있는 문체와 시적 언어들의 생명력을 고스란히 살려 낸 섬세한 번역으로, 이 작품의 철학적 의미뿐만 아니라 이에 숨을 불어넣는 문학적 가치까지 온전히 아름답게 담아내고자 했다.
*「신은 죽었다!」 《망치를 든 철학자》의 대담한 선언
서양 철학사에서 《혁명적인》, 《파괴적인》이라는 수식어가 니체처럼 잘 어울리는 철학자를 찾기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스스로를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일컬었던 만큼, 니체는 사유의 망치를 들고 인간의 자유롭고 창조적인 삶을 억압하는 모든 가치들을 거침없이 해체하고 파괴하려 했던 사상가였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그러한 니체의 저서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읽히고 거론되는 작품으로, 그의 사상의 절정기에 쓰인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으로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유명한 선언과 함께, 서구 사상에 깊이 뿌리내려 온 초월적이고 종교적인 가치들의 몰락과, 이를 중심으로 유지되어 온 세계관과 도덕적 가치들의 붕괴를 과감하게 선언했다.
그리고 내세가 아닌 지상에서의 삶을 적극적으로 긍정할 것을, 기존의 도덕과 교리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를 극복하여 초인에 이르는 삶을 살 것을 전했다. 신이 없는 세상에 니체가 제시한 새로운 유형의 인간인 《초인》은 초월적인 존재나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기존의 모든 것을 《넘어선 사람》이란 뜻이다. 이 작품을 통틀어 니체는 초인에 이르는 길을 설파하며, 기존의 것을 과감히 파괴하고 뒤엎는 용기를 가지고 스스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가는 삶을 살 것을 당부한다.
*허무를 끌어안고 넘어서는 《긍정의 공식》, 영원 회귀 사상
《신의 죽음》을 선언한 니체가 이 작품을 통해 착수한 또 하나의 과제는 신이 없는 자리에 도래하는 깊은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일이었다. 신이 없는 지상은 신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인간들에게 자유와 해방의 공간인 한편, 깊은 허무의 심연이 입을 벌리고 있는 무의미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덧없는 지상의 삶을 긍정하고 찬미하는 니체의 사상은 그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기본 개념》이며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긍정의 공식》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 《영원 회귀》 사상에서 절정에 이른다.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통해 니체는 지상에서의 이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생이 영원히 반복해서 회귀하더라도 《그것이 삶이었는가? 좋다! 한 번 더!》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용기를 내라고,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사랑하라고 말한다. 이처럼 허무의 심연을 끌어안고 넘어서는 니체의 《영원 회귀》 사상은 그의 철학이 다다른 절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신앙과 초월적 진리를 잃어버린 시대에서의 새로운 긍정의 철학을 제시해 주었다. 이는 고통 속에서도 뜨겁게 자신의 생을 사랑하고자 했던 니체의 치열한 정신을 엿볼 수 있게 하며, 오늘날까지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 주고 있다.
*줄거리
10년 동안 산속에서 짐승들과 벗하며 은둔 생활을 하던 차라투스트라는 그동안 깨달은 새로운 사상의 가르침을 펴기 위해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내려온다. 산을 내려오는 도중 그는 숲속에서 신을 찬미하며 살아가는 늙은 성자와 마주치게 되고, 아직도 《신의 죽음》을 알지 못하는 성자의 모습을 보며 놀라워한다. 그리고 마을의 광장으로 내려와 사람들에게 초인에 대하여 설파하지만, 안일한 삶에 젖어 있는 군중은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조롱과 야유만을 퍼부을 뿐이다. 그때 광장에서 공연을 하던 줄타기 광대가 줄에서 추락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차라투스트라는 땅에 떨어진 광대를 묻어 주기 위해 그의 시체를 들쳐 메고 숲으로 향한다. 그러던 중 그는 자신과 뜻을 함께할 길동무들을 찾아 새로운 여행길에 오를 결심을 하게 되고, 초인에 이르는 사상을 전하고 완성하기 위한 차라투스트라의 길고도 고독한 여정이 시작되는데…….
○책 속으로 2
《이제 나는 죽어 사라지리라.》 그대는 말할 것이다. 《나는 순식간에 무(無)가 될 것이다. 영혼도 육체처럼 죽음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엮여 있는 원인들의 매듭은 되돌아온다. 그 매듭이 나를 다시 창조할 것이다! 나 자신이 영원 회귀의 원인들에 속한다.
나는 이 태양, 이 대지, 이 독수리, 이 뱀과 함께 다시 올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삶이나 더 나은 삶, 비슷한 삶을 살러 오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가장 큰 것에서뿐만 아니라 가장 작은 것에서도 이와 똑같은 삶을 살러 영원히 다시 올 것이다. 그래서 만물의 영원 회귀를 다시 가르칠 것이다.
그래서 지상과 인간의 위대한 정오에 대해 다시 말하고, 인간들에게 다시 초인을 알릴 것이다. 나는 나의 말을 했고, 나의 말 때문에 파멸한다. 나의 영원한 운명이 그렇게 되길 원한다. 나는 예언자로서 몰락해 간다!
이제 몰락하는 자가 스스로를 축복할 시간이 되었다. 이렇게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은 끝이 난다.》
---본문 295면
고통은 또한 기쁨이고, 저주는 또한 축복이고, 밤은 또한 태양이다. 멀리 떠나라, 아니면 현자는 또한 바보라는 것을 배워라.
그대들은 언젠가 기쁨에게 《네》라고 말했는가? 오, 나의 벗들이여, 그렇다면 그대들은 모든 고통에게도 《네》라고 말한 것이다. 만물은 서로 사슬로 묶여 있고 실로 연결되어 있고 사랑으로 이어져 있다.
그대들이 언젠가 한 번이 두 번이 되길 원했다면, 언젠가 《그대가 내 마음에 든다, 행복이여! 찰나여! 순간이여!》라고 말했다면, 그대들은 모든 것이 되돌아오기를 원한 것이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고, 모든 것이 영원하고, 모든 것이 서로 사슬로 묶여 있고 실로 연결되어 있고 사랑으로 이어져 있다. 오, 그대들은 그렇게 세계를 사랑했다.
그대 영원한 자들이여, 세계를 영원히 언제까지나 사랑하라. 그리고 고통에게도 말하라. 「사라져라, 하지만 돌아오라!」
모든 기쁨은 영원을 바라기 때문이다!
---본문 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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