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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금동원(琴東媛) 2018. 8. 9. 00:41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저/ 난다

 

 

 

○작가 소개

 

 

  黃鉉産(황현산)1945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기욤 아폴리네르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폴리네르를 중심으로,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로 대표되는 프랑스 현대시를 연구하고, 문학비평가로 활동하며 ‘시적인 것’ ‘예술적인 것’의 역사와 성질을 이해하는 일에 오래 천착해왔다.

  저서로 『얼굴 없는 희망』 『아폴리네르 : ‘알코올’의 시 세계』 『말과 시간의 깊이』 『해인사를 거닐다』(공저) 『말라르메의 ‘시집’에 대한 주석적 연구』 『이상과 귀향, 한국문학의 새 영토』(공저) 『잘 표현된 불행』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공저) 등이 있으며, 역서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파스칼 피아의 『아뽈리네르』 도미니끄 랭세의 『프랑스 19세기 시』(공역) 『프랑스 19세기 문학』(공역) 드니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집』 기욤 아폴리네르의 『알코올』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브에 관하여 외』(공역)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 등이 있다.

  팔봉비평문학상 대산문학상 아름다운작가상 등을 수상하였다. 번역과 관련된 여러 문제에도 특별한 관심을 지니고 이와 관련하여 여러 편의 글을 발표하였으며, 한국번역비평학회를 창립, 초대 회장을 맡았다.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같은 학교 명예교수이다.

 2018년 8월 8일 암으로 투병 중에 별세했다.

 

 

  ○책 속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과거도 착취당한다」중에서

  현실을 현실 아닌 것으로 바꾸고, 역사의 사실을 사실 아닌 것으로 눈가림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상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비겁하기 때문이다.
  -「상상력 또는 비겁함」중에서

  자유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말이 이 땅에서 자유를 억압한 적은 없지만, 민주주의 앞에 붙었던 말은 민주주의도 자유도 억압했다. 이를테면 ‘한국적 민주주의’가 그렇다.
  -민주주의 앞에 붙었던 말」중에서

  의심스러운 것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며,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폭력이 폭력인 것을 깨닫고, 깨닫게 하는 것이 학교 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처방이다.
  -「폭력에 대한 관심」중에서

  협객은 경공술로 날아가도 벼는 천천히 크고 천천히 익는다. 늙은 농부에게는 벼 크는 소리가 들린다는데, 그러고 보면 농부야말로 눈먼 무사 따위에 비할 수 없는 강호의 협객이다.

---「협객은 날아가고 벼는 익는다」중에서

 

 

 

  ○ 책 소개

 

 

  황현산, 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서두부터 호들갑을 떤다고 뭐라 하실 수 있겠지만 단언컨대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안도되는 어떤 바가 있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 저랍니다. 난해하기로 소문난 프랑스 현대시도 그가 읽어주면 달랐습니다.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을 모른 채 골방 속에서 시와 함께 곰팡내를 풍겼던 우리 시인들 가운데 그가 끄집어내어 볕에 몸 말리게 한 사람 또한 몇이나 되는지 모릅니다. 황병승 시인이 그러했고, 김이듬 시인이 그러했으며, 그밖에 그의 해설로 다시금 재조명되어 한국 시단의 새로움이 된 시인들로 치자면 여기에 일일이 나열하기도 버거울 정도니까요.

  그뿐만이 아니지요. 그는 굴곡진 우리 현대사에 정의의 이름으로 바로 서지 못하는 순간순간을 목도하고 그때마다 더 크게 부릅뜬 눈으로 그 안타까움과 분노를 글에 새겼습니다. 그가 밤마다 눈물로 써나간 글은, 그러나 아침이면 우리들 몸속에 피로 돌았습니다. 그는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태어난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 운명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이 세상을 희망으로 껴안을 수 있게 인도하는 참 ‘어른’의 운명으로 지금껏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밤이 선생이다』를 펴냅니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선생은 밤에 일하는 자로 유명합니다. “어둠 속에서 불을 얻어온다”라는 말을 문학에서 쓰듯 어둠을 불로 쓰는 것인데,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선생님의 속내로 보자면 타당성이 더할 것 같아 살짝 옮겨봅니다.

  “내가 비평할 때 분석하는 이유는 분석이 안 되는 것에 도달하기 위해서예요. 깊이가 있다는 말은 나는 모른다는 말과 같아요. 바위 속에 혼이 들어있다는 건 그 안에 귀신이 있다는 건데, 다시 말해 그 속에 내가 모르는 게 있단 거죠. 그게 곧 깊이가 있다는 말이거든요. 밝은 곳에 있는 가능성은 우리가 다 아는 가능성이고 어둠 속에 있는 길이 우리 앞에 열린, 열릴 길입니다. 때로는 그 가능성 자체가 문학이죠.”
-『GQ』와의 인터뷰 중에서

  이번 책은 문학에 관한 논문이나 문학비평이 아닌 글로는 처음 엮는 선생의 첫 산문집입니다. 1980년대부터 2013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삼십여 년의 세월 속에 발표했던 여러 매체 속 글 가운데 이를 추려 1부와 3부에 나누어 담았고, 그 가운데 2부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 두 사람인 강운구, 구본창의 사진 가운데 이 책을 말하는 데 있어 그 기저의 비유가 될 수 있는 몇 컷을 골라 글과 함께 실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어둠은 더욱 많아집니다. 하늘을 꿰뚫을 것처럼 빛나는 순간은 아주 가끔이죠.
  그래도 다행인 것이 나이가 들면 어둠에 익숙해지고 어둠을 용서하게 된다는 거예요.”

 

 

  선생의 산문을 보자면 놀랍게도 그의 연배를 잊게 합니다. 어떠한 미사여구의 도움 없이 단문으로만 치고나가는데 참으로 강골 있으니까요. 선생의 산문은 위에서 누르는 식의 ‘말씀’이 아니라 함께 어깨동무하고 보폭 맞추는 ‘행동’이라고 해야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우리를 절로 깨어나게 하거든요. 그렇게 자리에서 거리로 발걸음을 옮기게 하거든요. 예컨대 이러한 문장들 앞에서 우리 각자 무릎 탁 친 연유 뒤에 할 일이 무얼까 하고 보자면 말이지요.

  “도시 사람들은 자연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자연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도 없다. 도시민들은 늘 ‘자연산’을 구하지만 벌레 먹은 소채에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자연에는 삶과 함께 죽음이 깃들어 있다. 도시민들은 그 죽음을 견디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처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철저하게 막아내려 한다. 그러나 죽음을 끌어안지 않는 삶은 없기에, 죽음을 막다보면 결과적으로 삶까지도 막아버린다. 죽음을 견디지 못하는 곳에는 죽음만 남는다.”
-p21「소금과 죽음」 중에서

  그런데 묘합니다. 송곳보다 더 뾰족하고 망치보다 더 단단한 선생만의 ‘일침’ 뒤에 묘하게 남는 게 어떤 ‘슬픔’인 걸 보면요. 때로는 화를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때로는 애정을 숨기지 못한 목소리로 그 감정의 묻어남이 사뭇 절절한데도 왜 지렛대의 가운데자리에 서지 않았냐고 평론가인 그에게 따져 묻지 못하는지…… 우리 시대에 진심을 다해 진실을 말해주는 스승이 어디론가 다들 숨어버린 까닭에 선생 혼자 그 감당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은 생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눈 없고 귀 없다 해도 삶이야 살아지겠지요. 그러나 ‘현재’라는 말을 그 앞에 붙인다고 했을 때 우리는 과연 눈 없고 귀 없이 지금의 ‘오늘’을 사는 거라 말할 수 있을까요? 선생의 산문은 바로 그런 ‘정의’를 말해왔습니다. 순전히 순정으로 옳다, 하는 방향으로만 시선을 모을 때 그 끝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삶의 방식들, 그 움틈이야말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유행을 좇고 돈 앞에 머리 조아리며 권위 뒤로 숨는 우리들 삶의 유일한 본보기가 아닐는지.

  『밤이 선생이다』에는 총 여든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습니다. 선생의 말마따나 “결과적으로 삼십여 년에 걸쳐 쓴 글이지만, 어조와 문체에 크게 변함이 없고, 이제나저제나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한데요, 저는 바로 이 대목에서 밑줄을 쫙 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포기할 수 없는 전망 하나와 줄곧 드잡이를 해온 것 같기도 하다”라는 구절이었는데요, 이렇듯 선생이 평생을 걸고 싸운다는 그 ‘전망’, 모름지기 저마다 여러 단어들로 대입이 가능한 그 ‘전망’ 앞에 나는 어떤 싸움을 해왔던 것일까 오래 되새김질을 해보게도 되었습니다. 아, 이렇듯 평생을 걸고 싸울 수 있는 어떤 대거리가 있어 선생은 그토록 젊고 유연한 사고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일까, 문득 도통 늙을 줄 모르는 그 ‘감각’에 부러움이 일기도 하였고 말이지요.

  책 표지는 독일 현대회화를 이끌고 있는 팀 아이텔의 그림을 삼았습니다. 로마어, 독일어, 철학에 회화를 전공하여 미술 뿐 아니라 문학에도 지대한 관심이 많다는 그는 자신이 그려낸 인물과 선생이 이토록 닮을 수 있음을 미처 알지 못할 것입니다. 밤에 일하는 자들의 표정은, 그 뒷모습은 이처럼 숭고할까요. 이는 편집자의 사담이었습니다만.

 


  ○작가의 말

 

 

  문학에 관한 논문이나 문학비평이 아닌 글로는 내가 처음 엮는 책이다. 지난 4년간 한겨레신문에, 그리고 2000년대 초엽에 국민일보에 실었던 칼럼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지난 세기의 80년대와 90년대에 썼던 글도 여러 편 들어 있다. 결과적으로 삼십여 년에 걸쳐 쓴 글이지만, 어조와 문체에 크게 변함이 없고, 이제나저제나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내가 보기에도 신기하다. 발전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동안 포기할 수 없는 전망 하나와 줄곧 드잡이를 해온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내가 품고 있던 때로는 막연하고 때로는 구체적인 생각들을 더듬어내어, 합당한 언어와 정직한 수사법으로 그것을 가능하다면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 생각들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존경받고 사랑받아야 할 내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그리워했다. 이 그리움 속에서 나는 나를 길러준 이 강산을 사랑하였다. 도시와 마을을 사랑하였고 밤하늘과 골목길을 사랑하였으며, 모든 생명이 어우러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었다. 천년 전에도, 수수만년 전에도, 사람들이 어두운 밤마다 꾸고 있었을 이 꿈을 아직도 우리가 안타깝게 꾸고 있다. 나는 내 글에 탁월한 경륜이나 심오한 철학을 담을 형편이 아니었지만, 오직 저 꿈이 잊히거나 군소리로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작은 재주를 바쳤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문학동네의 편집진과 김민정 시인에게 감사한다. 이 놀라운 재능들이 아니었더라면 이 책은 출간되지 못했거나 어쭙잖게만 출간되었을 것이다.

  2013년 6월
  황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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