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1~3
토스토옙스키/ 김연경 역/ 민음사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심오한 사상과 다양한 주제 등 내용 면에서뿐 아니라 그 분량도 방대한 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소재와 긴장감 넘치는 구성으로 인해 한번 손에 들면 끝까지 읽어 내려가게 된다. 부자간의 재산 다툼, 한 여자를 둘러싼 갈등, 결국 이런 반목에서 이어지는 친부 살해라는 다분히 선정적인 소재에, 범죄소설 혹은 추리소설 기법으로 쓰인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가독성이 높다. 여기에,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됨으로서 자극적인 사건은 보다 더 흥미롭게 전개된다.
독특한 개성과 사상을 대변하는 인물들이 빚어내는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도스토예프스키는 삶과 죽음, 사랑과 욕정 등 인간 존재의 근본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바로 신과 신념에 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은 있느냐 없느냐?”라는 표도르의 질문과 각기 상반된 이반과 알렉세이의 대답은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커다란 화두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꾸준히 탐구해 왔던 일관된 주제는 신과 인간, 선과 악 등 서로 모순되는 원리들이었다. 인간성의 어두운 측면을 부각시켜서 신성(神聖)의 의미를 더욱 높이고, 구원과 부활과 같은 종교적인 개념을 삶의 영역에서 구체화했다. 이를 위해 도스토예프스키는 살인 등 범죄 사건을 즐겨 사용했다. 그러나 사건 자체가 아닌, 이러한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사고와 행동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도 친부 살해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살해된 표도르 주위의 인물들이 사건을 전후로 겪는 심리적 갈등에 주목하였다.
출간된 지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 작품이 최고의 고전으로 불리는 것은, 문학의 한계를 뛰어넘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세기 후반의 러시아뿐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주제를 다루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여전히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도스토예프스끼의 마지막 장편 소설. 40여 년에 걸친 작가 창작의 결산으로서 도스토예프스끼의 작품 가운데 가장 심오한 사상적 깊이와 이에 걸맞은 예술적 구조를 구현한 것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원래 2부작으로 구상되었는데, 첫 번째 이야기를 완성한 지 약 석 달 만에 찾아온 작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물군과 크고 작은 사건들, 무수한 에피소드를 담은 방대한 규모의 소설은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 주며, 많은 비평가들에 의해 '문학 작품의 총체성'을 구현한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작가 소개
토스트 옙스키( 러시아의 심리학자이자 소설가이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과 세계에 존재하는 불변의 진리를 종교·철학·사상적 관점에서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20세기 문학 전반에 심오한 영향을 주었다. 톨스토이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며 인간 심성의 가장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심리적 통찰력으로, 특히 영혼의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20세기 소설 문학 전반에 심오한 영향을 주었다.
모스크바 말린스키 시립병원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로서 사형 집행 몇 분 전에 특사를 받은 바 있었고, 4년간의 시베리아 유형생활과 불치의 간질병 등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질곡과 고난을 다 겪으며 살았다. 절망적인 인생을 살아왔던 그였지만, 인간 내면의 추악함에만 집착하지 않고 영혼의 아름다움과 궁극적인 정화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집필한 전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상적 기조는, 인간 생활에 있어서 모순되는 선과 악의 투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죄와 벌』『백치』『악령』『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등 그의 장편소설들은 삶의 지혜와 영혼의 울림을 전달하는 데 예술이 매체로 이용된 뛰어난 본보기이며, 그에게 세계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가의 한 사람이라는 명성을 안겨주었다.
모스크바 빈민구제병원 의사의 차남으로 태어나 15살 때까지 생가에서 지냈다. 공병학도와 작가 시절을 보낸 페테르부르크는 이야기의 무대로서 여러 편의 작품에 등장한다. 1846년 첫 작품 『가난한 사람들』로 비평가 펠린스키로부터 '제 2의 고골리'라는 격찬을 받으며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하였다. 데뷔 전에 도스토옙스키로부터 직접 작품을 건네받아 읽었던 네크라소프는 감동을 받은 나머지 밤중에 그의 집을 찾아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데뷔는 화려했을지 모르나, 이어서 발표한『이중인격』은 혹평을 면치 못했다.
그 후 미하일 페트라셰프스키 주재의 이상적인 사회주의 모임의 일원이 되었다는 이유로 1849년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다. 사형판결을 받고도 총살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황제의 명으로 특별 사면되어(이 일련의 특사는 모두 계획된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시베리아에 유형을 가는 것으로 감형되었고, 옴스크에서 1854년까지 유배생활을 하였다. 이 시기의 체험을 바탕으로 나중에 『지하실의 수기』를 펴냈다. 그 밖에도 『백치』 등의 작품에 사형집행 직전의 심정을 묘사하는 등 이 사건 이후 그의 작품 색깔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형을 마치고 군대에서 사병으로 근무한 후 1858년에 페테르부르크로 귀환한다. 이 무렵에 이상주의적 사회주의자에서부터 기독교적 인도주의자로의 사상적 변화를 겪었다. 그는 다시 창작에 정열을 쏟아 그는 다시 창작에 정열을 쏟아 『스테판치코포의 마을』 『학대받고 멸시받는 사람들』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이후 유럽 여행을 떠난 도스토예프스키는 한때 도박에 빠져 빚에 시달리면서도 계속되는 창작 활동을 통해 『악어』 『도박사』 『영원한 남편』 등을 써내려갔고,『백치』『악령』을 잡지『루스키 베스트니크』에 연재했다. 또한 그 시기에 그를 세계적인 대문호로 만들어준 작품『죄와 벌』을 발표하였고 호평을 받았다.
1858년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서『온순한 여인』을 비롯한 몇 작품들을 모아『작가일기』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표했다. 『우스운 자의 꿈』은 이듬해에『작가일기』에 추가되어 발표되었다. 1878년부터 1880년까지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마지막 작품인『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루스키 베스트니크』에 연재한다. 1881년 1월 28일, 고질적인 폐질환이 악화되어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유해는 같은 달 31일에 페테르부르크 소재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사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최근 한국에서 그의 작품을 '돈'이라는 코드로 재해석 하기도 하였다. 지주 출신인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곤차로프 등 다른 작가가 돈에 초연했던 것과 달리, 그는 돈에 얽힌 작가의 개인사와 소설 속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를 풀어내었으며, '가난한 사람들'부터 최후의 대작 '카라마조프…'에 이르기까지 돈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중심 모티브라고 분석하였다
○역: 김연경
1975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동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4년 모스크바 국립사범대학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서울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1996년 [문학과 사회]를 통해 등단했다. 소설집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소설』, 『미성년』, 『내 아내의 모든 것』, 경장편 『그러니 내가 어찌 나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장편소설 『고양이의 이중생활』 등이 있다. 현재 소설 쓰기와 번역, 러시아 문학 강의 및 연구를 병행하고 있으며 역서로는 『악령』,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지하로부터의 수기』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신은 있느냐 없느냐?”
“신은 없습니다.”(이반)
“알료쉬카, 신은 있느냐?”
“신은 있습니다.”
“이반, 그렇다면, 불멸은 어떠냐?”
“불멸도 없어요.”
“알료쉬카, 불멸은 있느냐?”
“있어요. 신 속에 불멸이 있습니다.”
“이반, 그럼, 악마는 있는 거냐?”
“아니요, 악마도 없어요.”--- 본문 중에서
○줄거리
1860년대 러시아의 소도시 스코토프리고니예프스크. 왕년의 사업가이며 이 지방의 지주인 표도르 카라마조프는 이기주의와 탐욕의 집적체로, 평생 방탕하게 욕정을 좇으며 살아온 호색한이다. 두 아내가 낳아 준 세 아들을 내팽개쳤고, 마을의 백치 여인에게서 사생아를 낳기도 했다. 이런 그의 집에 20여 년 만에 아들들이 찾아온다. 첫째 아들 드미트리는 아버지와 재산 문제를 단판 짓기 위해 왔다. 그는 약혼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점찍어 둔 여자 그루셴카에게 반해 버린다. 돈뿐 아니라 여자를 놓고도 아버지와 갈등하게 된 것이다. 드미트리는 카라마조프 특유의 열정과 생에 대한 정열을 지닌 인물이다. 반면 둘째 아들 이반은 아들들 중 가장 교육을 많이 받고 신문에 글을 쓰는 지식인으로, 신과 종교를 부정하는 무신론자이다. 형의 부탁으로 그를 도우려다가 그의 약혼녀인 카체리나를 사랑하게 된다. 셋째인 알렉세이는 수도원에서 참된 신앙의 길을 걷는 신실하고 어진 청년이다. 알렉세이는 이런 아버지와 형들을 안타깝게 지켜본다. 카라마조프 집안의 갈등이 점점 커져만 가고, 드미트리와 이반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혐오를 억누르지 못한다. 드미트리는 아버지에게 자기 몫의 돈을 받아 그루셴카와 결혼하려 하지만, 표도르는 마치 그를 조롱하듯이 그루셴카가 자신에게 오면 그 돈을 그녀에게 주겠다고 공표한다. 드미트리는 공공연히 아버지를 죽여 버리겠다고 하고, 이반 역시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키워 가면서 스메르쟈코프에게 ‘모든 것은 허용된다.’는 사상을 불어넣는다. 결국 탐욕과 분노가 절정에 이른 어느 밤에 드미트리는 그루셴카를 찾아 헤매고, 표도르는 살해된 채 발견된다. 마침내 그루셴카에게 사랑을 고백받은 드미트리는 친부 살해범으로 체포된다
○출판사 리뷰
비극적인 천재’ 도스토예프스키가 남긴 최고의 작품
1878년,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최고의 작품이 될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 후 3년 만에 소설은 완성되었으나, 다시 3개월 후에 그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는 애초에 이 작품을 2부작으로 구상하여, 「작가로부터」에서도 밝히고 있듯,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후 20년이 지난 시점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후속작을 쓸 계획이었다. “앞으로 20년은 더 살 것이며, 계속 쓸 것이다.”라고 당당히 포부를 드러낸 바 있었다. 아쉽게도 그는 그 계획을 이루지 못했고,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그의 가장 마지막 작품이자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25세이던 1846년에 첫 소설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당시 러시아 문단의 총아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 후, 사회주의 경향을 띤 페트라셰프키 모임에 출입하다가 사형선고를 받기에 이른다. 결국 사형은 집행 직전에 취소되고 그는 유형을 떠나게 된다. 전도유망한 신계 작가였던 도스토예프스키가 감옥과 군대에서 8년의 유형 생활을 하는 동안 유일하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은 성서였다. 자유의 몸이 되어 다시 세상에 나온 그는 그야말로 극우 보수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초기작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신’ 혹은 ‘종교’가 소설의 화두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사회적인 문제의식이 심리적, 철학적 차원을 넘어 윤리적, 종교적 차원으로 움직인 것이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는 그런 도스토예프스키가 평생 동안 탐구해 온 인간 존재의 문제들이 모두 어우러져 있다.
젊은 시절, 8년 간 시베리아에서 유형하면서 들었던 이야기 하나가 그의 마지막 작품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사실도 매우 흥미롭다. 그는 옴스크의 감옥에서 ‘친부 살인범’인 한 귀족 출신 남자에 대해 알게 되었다.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결국 유산을 노리고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후 그 남자가 무죄였으며, 실제로 범죄는 남자의 약혼녀를 사랑했던 동생의 소행이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사건에 대한 메모를 차근차근 정리해 갔으며, 마침내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 소설로 완성했다. 따라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그의 전 문학 인생에 걸친 대 기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품 속의 작품, 인간 영혼의 구원 문제에 대한 서사시 「대심문관」
4부 12편으로 구성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가운데 5편 「Pro와 Contra」는,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이 이 소설의 정점이라 부른 부분이다. 여기에는 「대심문관」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이반의 서사시가 포함돼 있다. 이반이 동생 알렉세이에게 ‘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신이 만든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라는 요지의 고백을 하고, 이 논리를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대심문관」이며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로마 가톨릭의 부패가 극에 달하고 연일 종교재판이 열리던 16세기 스페인에 그리스도가 나타난다. 대심문관은 그를 감옥에 가두고 자신의 지상낙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는 인간에게 빵을 주고 대신 자유를 반납받았으며, 그리하여 그들을 온순한 양떼로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대심문관의 긴 이야기가 끝나자 그리스도의 그의 창백한 입술에 말없이 입을 맞춘다.
작품이 발표된 이후 수많은 비평가와 철학자들이 이 「대심문관」에 대해 논평하고 분석해 왔다. 이 부분만이 따로 책으로 묶여 출간되기도 했다. 예리한 독창성과 번득이는 논리로 무장한 「대심문관」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에 대한 반론으로 조시마 수도사의 설교인 6편 「러시아의 수도승」이 이어지면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신성(神聖)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된다.
19세기의 대가, 20세기 지성의 흐름을 바꿔놓은 작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톨스토이가 임종을 맞을 때 그의 침대 곁에 놓여 있었던 책으로 알려져 있다. 톨스토이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서적, 특히 문학 서적은 나 자신의 것을 포함해서 모두 불살라 버려도 무방하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만은 예외이다. 그의 작품은 남겨 두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는 한 번도 서로 만나보지 못했고, 작품세계도 많은 차이를 보였으나, 동시대 러시아 작가였고, 러시아, 더 나아가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톨스토이뿐 아니라 20세기의 무수한 작가, 철학자, 심리학자 들이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무한한 존경을 표시했다. 카뮈, 카프카,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프루스트, 헤밍웨이, 헤세, 앙드레 지드, 마르케스, 오르한 파묵 등 작가들뿐 아니라 니체나 프로이트 같은 철학자, 심리학자까지, 도스토예프스키가 20세기에 끼친 영양은 실로 막대한 것이었다. 특히 인간 존재의 문제 속에서 실존을 추구한 그의 발상은 프랑스 실존주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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