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책 이야기

천국과 지옥의 결혼/ W.블레이크

금동원(琴東媛) 2018. 9. 3. 12:12

 

 

천국과 지옥의 결혼』

 윌리엄 블레이크/ 김종철/ 민음사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에게는 그림과 시가 하나였다.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짓는 데 있어서 윌리엄 블레이크가 시종일관 강조한 것은 이성의 억압적인 성격에 맞서는 상상력 혹은 내적 비전의 전복적이고 창조적인 힘이었다.
  블레이크는 또한 매우 급진적인 사상가로서, 그의 시 세계는 빈번하게 헤겔의 정반합 변증법에 적용되고 또 설명된다. 가령, 그의 대표적인 두 시집 《순수의 노래》와 《경험의 노래》에는 제목이 똑같거나 유사한 내용의 작품들이 마치 거울을 마주 보고 있는 듯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블레이크 자신의 표현대로 서로 “변증법적 대립 또는 상반”(dialectical contraries)을 이룬다. ‘순수’와 ‘경험,’ 이 두 세계는 루소식의 순수한 자연과 타락한 문명세계, 기독교 신화를 적용하면, 인간의 타락 이전 세계와 그 후 세계의 대립이자 차이를 나타낸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미국혁명, 프랑스혁명, 산업혁명 같은 혁명의 시대를 살았던 시인으로서, 그의 작품들에서 크게 도드라지는 또 한 가지가 예언자, 선지자의 목소리다. 그는 당대의 역사, 사회, 문화예술, 정치 등의 제반 문제들에 자신의 예언적 전망들을 덧씌우고 그것을 ‘창조-타락-구원’으로 이어지는 기독교적 역사에 합치시킴으로써 자신만의 독특한 상징체계로 재창조한 예언자, 선지자 같은 시인이었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당대와 후대의 시인들에게 상상력의 표현으로서의 시, 급진적인 사상과 세계관, 시인-예언자로서의 전망 같은 위대한 유산을 전파한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였다고 할 수 있다.

 

  ○작가 소개

 

  윌리엄 블레이크는 1757년 11월 28일 런던의 브로드가(Broad Street) 28번지에서 아버지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와 어머니 캐서린 블레이크(Catherine Blake)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2세가 되는 1769년부터 짧은 시들을 습작했고, 이때의 작품들은 ≪시적 소묘(Poetical Sketches)≫(1783)에 실려 있다. 15세 때부터 7년 동안 당시 꽤 알려져 있던 판화가 제임스 버자이어(James Basire) 밑에서 도제 생활을 했다. 그의 이른바 완성작이라고 불리는 동판화 시화집 제작에 필요한 밑그림, 수채화, 유화 등의 기술들이 이때 연마된다. 청년 블레이크는 남의 책에 삽화를 그려 넣거나, 판화를 제작해 돈을 벌었고, 간간이 시를 쓰기도 했다. 그는 25세가 되던 1782년에 채소 농장을 경영하던 윌리엄 바우처(William Boucher)의 딸 캐서린 소피아 바우처(Catherine Sophia Boucher)와 결혼한다. 결혼한 이듬해에 인쇄된 ≪시적 소묘≫ 이후 블레이크는 더 많은 자신의 글과 그림을 동판화로 제작하는데, ‘채색 인쇄법(illuminated printing)’이라는 자기 고유의 동판화 제작법을 고안해 내기도 한다. ≪순수와 경험의 노래≫를 위시한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모두 이 방법에 의해 동판화로 제작되었다.

  1790년 템스 강의 반대편 지역인 램버스(Lambeth)로 이사하고 이곳에서 ‘램버스 예언시’라고 불리는 일련의 예언시들을 쓴다. 이때의 블레이크는 출판업자 조지프 존슨(Joseph Johnson)의 출판물에 삽화를 그려 넣기도 하며, 그의 집에서 당시의 급진적 개혁주의자들인 조지프 프리슬리(Joseph Priestley),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등과 회동하게 된 것도 이 어름이다. 블레이크가는 1800년에 남부 해안의 시골 마을 펠펌(Felpham)의 조그만 오두막으로 이사하게 된다. 이곳에서 그의 장시 3부작이 구상되거나 일부 창작된다. 1803년 8월에 있었던 펠펌에서의 술 취한 국왕 직속 기병대 소속의 사병 ‘스코필드(John Schofield) 사건’ 으로, 일련의 송사 이후 이 사건은 그의 시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는 스코필드와 그 동료를 ≪예루살렘≫에서 악당의 한 무리로 형상화해 심판한다. 나아가 그는 후기의 장시들을 두꺼운 개인적 신화 체계로 둘러싸 시의 상징적이고 암시적인 분위기를 더욱 강화했다.

  만년의 블레이크는 시 창작보다는 동판화 작업에 더 경주했다. 이 시기 초서(Geoffrey Chaucer)의 ≪캔터베리 이야기≫, 그리고 <욥기> 및 단테의 작품, 밀턴의 ≪복낙원≫ 등의 삽화를 제작했다. 블레이크는 1827년 8월 12일 6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세기 중엽 스윈번(Algernon Charles Swinburne)을 위시한 라파엘전파의 시인들이 그의 천재성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20세기 초엽을 지나며 그의 시세계가 지닌 독창성과 문학적 가치는 영국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성취로 간주되게 되었다. 반파시즘을 호소한 희곡 <하얀 역병>(1937)과 <어머니>(1938)에서는 군비 경쟁의 정지를 호소하고, 나치의 체코슬로바키아 침입을 앞두고 침략자와의 싸움을 호소한다. 일설에 의하면 차페크가 노벨 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당시 유럽을 영향권 아래에 두고 있던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스에 의해 반(反)나치주의자였던 그의 수상이 무위로 돌아갔다고 한다. 차페크의 미망인의 증언에 따르면, 히틀러의 눈치를 보던 스웨덴 한림원이 차페크로 하여금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작품을 다시 쓰면 노벨상을 고려해 보겠다고 했지만, 그는 벌써 박사 논문을 제출했으니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를 독일 나치에게 넘겨준다는, 영국렷조壕볜독일 3국에 의한 뮌헨 협정의 체결로 조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1938년 크리스마스에, 48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그는 자신의 일생을 통해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현대 사회와 기계문명의 병폐에 대한 아픔을 작품화한 문학적 재능과 열정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지금까지도 깊이 기억되고 있다.

 

  ○책 속으로

 

  오, 해바라기여! 시간에 지쳐서
  태양의 발걸음을 헤아리며,
  나그네의 여정이 끝나는 곳
  저 아름다운 황금의 나라를 찾는다.

  욕망으로 수척해진 젊은이와
  눈(雪)의 수의(壽衣)로 둘러싸인 파리한 처녀가
  그들의 무덤에서 일어나 가기를 열망하는 곳
  그것은 나의 해바라기가 가고자 하는 곳이다.
--- p.48 

 

  독자 리뷰

    ■자연, 그 힘의 분출과 인류의 구원

      카플/  2004-11-17 |

  시에 대한 소감을 적는 건 사실 시라는 상상력의 세계를 새장에 가두는 것이다. 블레이크에게 상상력은 자연이었다. 자연을 가두는 모든 것에 그가 저항했듯이 상상력을 가두는 것에 그는 반대하리라. 하지만, 그가 내귀에 들린 이야기의 한귀퉁이라도 담아두고자 하니 어쩔 수 없지... 그의 시에는 로크의 [인간사회의 기초로서의 자연]사상에 대한 강한 동의가 묻어난다. 나아가서 경험의 세계에만 확신을 두는 마음자세도 로크나 흄과 같은 공기를 마신 사람임을 느끼게 한다. 인간 동의하의 사회계약이 가져다준 재앙, 왕권의 부권적 해석에 대한 분노는 루소의 정치권력에 대한 생각과 자연주의를, 인위적 권력 체제에 기름붓는 종교에 대한 혐오에는 흄을 본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시에 녹아있다. 그의 하나님은 교회가 정의하는 것이 아니며, 자연인인 그가 [느끼고 자연스레 옳다 생각되는 존재]여야 했다. 종교적 색채 특히 계시록적 색채가 강하게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상상력과 상징의 세계는 그래서 너무도 18세기적이다. 그의 시 안에서 인류는 지옥으로부터 천국으로 올라온다. 속아 들어간 새장으로부터 해방되어 힘껏 날개짓 한다. [아기는 강보보다 소중한 것이다] 이제 둘은 하나로 결합하고 인간을 통해 천사는 악마가 된다. 굳어진 정의(definition)와 이성(reason)의 틀은, 상상력과 예술의 세계에서 지옥으로 사라지고 새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어리석음속에 빠져 벗어나오지 못하는 자신의 조국이 이런 시대정신을 입고 다시 태어나길 그는 간절히 바라며 이 시를 쓴 것이다. 그가 남긴 그림들의 이미지와 어울어져, 그의 시는 강렬한 인상으로 폭풍속의 18세기 유럽을 느끼게 해 준다.

 

  ■시적 상상력의 만개

     ymo98/ 2001-06-30 |

 

블레이크의 시는 두 개의 경계선을 갖는다. 순수와 경험의 세계가 바로 그것인데, 그것은 인간 생활의 경험을 전후로 하여 나누어진다. 그의 시에서 이처럼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하듯, 그는 두 개의 극과 극을 연결시키는, 말하자면 천국과 지옥이라는 양극을 결혼을 통해 매개하듯, 모든 사물들에게서 이중의 극단적인 요소를 발견해낸다. 그리하여 겉모습만으로는 우호적인 아름다움이 결국 우리 자신에게서 자유를 박탈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든가, 분주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라든가, 어리석은 시간은 시계로 재어지나, 지혜로운 시간은 시계로 잴 수 없다라든가, 저수지는 가두며 샘은 흘러 넘친다는 대조적 상황을 도출해낸다. 이것은 곧 그의 시적 상상력의 만개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상상력의 진전은 나아가 상징의 만개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는 「순수의 전조」에서 "한 알의 모래 속에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고 한다. 또한 선과 악의 고정관념을 깨는 아이디어 창출을 일삼는다. 선은 체제에 순응적이어서 활력이 없지만 악은 반항적이어서 활력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러한 활력은 낭만주의의 근간이라는 것을 이미 파악하고 있는 듯 싶다. 그리하여 억압당할 수 있는 것은 천재가 아니어서, 천재는 결코 억압되지 않으며, 그렇게 되면 그는 분노하고 폭발한다고 본다. 이것은 곧 "기쁨을 위해 태어난 새가 어찌 새장에 갇힐 수 있겠는가?"하는 대목과 연결되는데, 여기서 천재는 시적 상상력의 만개를 머리 속에서 유희하는 시인일 수 있다. 각 시대는 언제나 동등하지만 천재는 언제나 시대 위에 있다고 그가 말하듯, 천재인 시인, 블레이크는 시대와 사물의 표면 위에 서서 세상사와 사물의 이면, 혹은 그 너머를 보고 있다. 그것이 곧 시인으로서의 그의 임무며, 것이 곧 시적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 프란츠 카프카  (0) 2018.09.05
불안의 개념/ 죽음에 이르는 병/ 키에르케고르  (0) 2018.09.05
팡세/ 블레즈 파스칼  (0) 2018.08.29
야만인을 기다리며/ J.M.쿳시  (0) 2018.08.25
종이 / 신달자  (0) 2018.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