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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성/ 프란츠 카프카

금동원(琴東媛) 2018. 9. 5. 22:17

 

 

 

『성』

  프란츠 카프카/ 권혁준 역/ 창비

 

 

『성』은 현대인이 겪는 실존의 부조리성을 초현실적으로 그려낸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마지막 장편소설이다. 카프카는 ‘고독의 3부작’이라 불리는 세편의 장편소설을 미완으로 남겼는데, 이들 중에서도 『성』은 작가의 집필 의도와 구상이 온전히 반영된 동시에 미로 같은 세계를 그려 여러 해석을 도발하는, 카프카가 남긴 작품들 중 가장 매혹적인 소설이다.

 

 

 ○작가 소개

       

 유대계 독일 작가. 현대 사회 속 인간의 존재와 소외, 허무를 다룬 소설가이다. 그는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상황 설정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끊임없이 추구한 실존주의 소설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력한 인물들과 그들에게 닥치는 기이한 사건들을 통해 20세기 세상 속의 불안과 소외를 폭넓게 암시하는 매혹적인 상징주의를 이룩했다는 평을 받는다.

  프란츠 카프카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프라하의 독일어를 쓰는 중간계급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수성가한 상인으로 기골이 크고 독선적이었던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못했다. 현실적이고 빈틈없는 아버지의 눈에는 아들의 모습이 몽상가에 불과했으며, 어린 카프카의 눈에 아버지는 지독한 일벌레에 가족은 안중에도 없이 사업의 성공에만 몰입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신분상승을 위해 어머니조차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야 했기 때문에 그는 줄곧 남의 손에 의해 키워졌고, 그의 나이 두 살 때, 그리고 네 살 때 동생인 게오르크와 하인리히가 태어났지만 곧 죽고 마는 일을 목격하게 된다. 이후 그의 나이 여섯 살 때인 1889년 여동생 엘리가, 또 1년 뒤에는 발리가, 그리고 그 2년 뒤에는 오틀라가 태어나지만, 이 세 자매 역시 제2차 세계 대전의 광기에 희생당하고 만다. 아버지와의 불화와 동생들의 잇단 죽음을 목격하면서 그는 불안정한 유년기를 보낸다.

  그의 아버지는 카프카에게 상인의 기질이 보이지 않자 독일계 인문 중고등학교에 입학시킨다. 이곳에서 카프카는 '루돌프 일로비, 시오니스트 후고 베르크만, 에발트 펠릭스 프리브람, 오스카 폴락 등 평생을 두고 교유하는 몇 명의 중요한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1901년 프라하의 카를 페르디난트 대학에 진학한 카프카는 주로 문학과 예술사 강의에 흥미를 보였으나, 아버지의 바람대로 법학을 전공으로 선택한다. 하지만 법관이나 변호사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므로, 1906년 법학 박사 학위를 받고 법원에서 1년간의 수습 기간을 마친 뒤 일반 보험 회사에 입사한다. 1908년 보헤미아 왕국 노동자 상해 보험 회사로 자리를 옮긴 후로는 죽기 2년 전인 1922년까지 그곳에서 법률고문으로 근무하는 한편, 오후 2시에 퇴근하여 밤늦도록 글을 썼다.

  이 무렵 유럽의 노동 환경은 무척 열악했다. 카프카는 공무 출장과 노동자들과의 접촉 등 이곳에서의 업무를 통해 관료기구의 무자비성,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대우와 이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직접 체험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내면을 속속들이 꿰뚫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카프카가 자신의 작품에서 개인의 소외와 무력감에 대해 보여주는 깊은 통찰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19년 각혈을 했으나 의사의 진찰을 거부하다 증세가 악화되어 결국 요양소와 여동생들의 집을 전전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 그는 죽을 때까지 함께한 도라 디만트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비로소 일찍이 맛보지 못한 삶의 애착과 행복을 경험한다. 도라는 그의 곁을 밤낮으로 지키며 간호했지만 1924년, 병약하고 내향적이었던 그는 자신에게 부과되는 출세,결혼 등의 중압감에 쫓기며 글을 쓰다가 폐결핵에 영양부족까지 겹쳐 41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에 이른다.

  카프카는 평생 불행하게 지냈다. 프라하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던 독일인에게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같은 유대인들로부터는 시온주의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배척받았다. 생전에 카프카는 출판업자들의 요청으로 마지못해 발표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를 꺼렸으며, 발표된 작품들도 대중의 몰이해 속에 거의 팔리지도 않았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친구에게 보낸 유서에서 자신의 모든 글을 불태워줄 것을 부탁했을 만큼 쓰는 것 외의 다른 것을 바라지 않았지만, 세계의 불확실성과 인간의 불안한 내면을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그려낸 그의 작품은 타계후 전 세계에 알려졌다.

  1912년에 『실종자』(후에 『아메리카』로 개제), 『변신』을 쓰기 시작했고, 1914년에는 『유형지에서』와 『심판』 집필에 들어갔다. 1916년에는 단편집 『시골 의사』를 탈고했다. 1917년에 폐결핵이 발병하여 여러 곳으로 정양을 다니게 되고, 1922년에 『성』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결국 폐결핵으로 1924년에 빈 교외의 키어링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변신』 외에 대표작으로 『심판』 『성城』 『실종자』 『유형지에서』 『시골의사』 『시골에서의 결혼 준비』 등 다수가 있다.
          

 

  ○역자: 권혁준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독문학을 공부하였고, 독일 쾰른 대학교에서 독문학, 철학, 영문학을 전공한 뒤 2006년 프란츠 카프카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 논문「카프카 문학에 나타난 성서의 ‘인류 타락’ 신화 수용과 형상화 연구」는 같은 해 독일 쾨니히스하우젠 & 노이만 출판사에서 학술 총서의 하나로 출판되었다. 현재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IPUS)에서 HK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고 서울대, 한양대 등에서 독일 문학, 독일 및 유럽 문화, 독일 영화 등을 강의했다. 옮긴 책으로는 카프카의『소송』 알프레트 되블린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크눌프』등이 있다. 

 

 

○책 속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성에서 베푸는 은총의 선물이 아니라 내 권리요.--- p.108

  그 순간 K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연결이 모두 끊어진 것 같았고, 과거 어느 때보다도 자유로움을 느꼈으며, 평상시에는 그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그곳에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다른 어떤 사람도 해낼 수 없는 이러한 자유를 쟁취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누구도 그에게 손을 대거나 쫓아낼 수 없음은 물론, 차마 그에게 말도 걸지 못하리라. 그러나 동시에-이 생각 또한 못지않게 강력했는데?이러한 자유, 이러한 기다림, 이러한 난공불락의 상태보다 더 무의미한 것, 더 절망적인 것도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p.153

 어서 가보세요. 저편에서 어떤 일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여기서는 모든 것이 기회로 가득하니까요. 물론 어떤 기회들은 이용하기에는 너무 크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서 좌절을 맛보기도 해요. 그래요, 정말 놀라운 일이죠.
--- p.382

 

 

  ○출판사 리뷰

 

  지상의 마지막 경계선을 향한 돌진

  인간 존재의 부조리성을 초현실적으로 그려내 싸르트르와 까뮈로부터 현대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추앙을 받은 프란츠 카프카. 카프카는 1883년 프라하 내 소수 인구인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자수성가한 아버지의 뜻에 따라 독일계 학교를 거쳐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오후 2시에 퇴근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해 14년간 재직했다. 계속되는 파혼과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신경쇠약을 앓았고, 서른넷에 발병한 폐결핵이 점차로 악화되어 결국 1924년 마흔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러한 삶의 이력은 작가 카프카에게는 다만 자신의 “꿈 같은 내면세계”를 기록하는 작업의 이면에서 발생한 부수적인 사건이었다.

 

  카프카가 작가로서 돌파구를 마련한 때는 1912년 9월 22일에서 23일 밤사이에 단편소설 「선고」를 완성하고부터였다. 같은 해,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변신」을 집필하고, 첫 작품집 『관찰』을 출간하게 되면서 직장 생활과 작가로서의 삶을 병행하면서 꾸준히 작품을 써나간다. 그러다 건강이 악화되어 1920년부터 1년 정도 휴식기를 갖고는 새 소설 집필에 매진하게 되는데, 이 작품이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인 『성』이다. 당시 카프카는 자신의 건강 상태와 글쓰기를 일컬어 “지상의 마지막 경계선을 향한 돌진”이라 표현했다.

  하지만 『성』은 끝내 완성을 보지 못한다. 카프카는 평생의 지기였던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사후에 발견되는 모든 원고를 불태울 것을 요청하나, 브로트는 세편의 장편소설 『소송』(1925) 『성』(1926) 『실종자』(1927년 『아메리카』로 출간됨)를 직접 편집해 출간한다. ‘고독의 3부작’으로 불리는 이들 작품 중에서도 『성』은 카프카의 집필 의도와 구상이 온전히 반영된 동시에 해석이 불가해한 듯 보이는 미로 같은 세계를 그려 여러 해석을 도발하는 카프카의 대표작이 되었다. 즉 “모든 문장이 나를 해석해보라고 하지만 어떤 문장도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아도르노(Theodor W. Adorno)의 말이 반증하듯 신학적·종교적 해석에서부터 실존주의적, 정신분석학적, 전기적, 사회적 해석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관점에서 다층적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나 독자를 유혹하는 작품이다.  



  성의 권위에 종속된 기형적인 다수에 맞선 이방인 K 그리고 카프카


  눈이 내린 늦은 밤, 한 남자가 성에 딸린 마을에 도착한다. 토지 측량사라 자처하는 K는 묵을 곳을 찾아 여관에 들어 마을 사람들을 대면하게 되면서 줄곧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겪게 되는데 이때부터 한주 동안 K가 성을 드나들며 성의 관청으로부터 자신의 업무 능력을 인정받고, 마을 처녀와의 결혼을 통해 이 마을 공동체에 편입되기 위해 벌이는 절망적인 투쟁이 『성』의 주된 줄거리를 이룬다.

  K는 자신이 백작의 초빙을 받은 토지 측량사이고, 성에 대해 자신이 잠정적으로 아는 바란 “그곳 사람들이 훌륭한 토지 측량사를 찾아낼 줄 안다는 것뿐”이라고 자신만만해하나 마을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전혀 토지 측량사 같지 않”고 “거짓말을 일삼는 천박한 부랑자, 아니 더 악질”로 보이는 행색이 몹시도 남루한 삼십대 남자, 마을에 어떤 해악을 끼칠지 모르는 이방인에 불과하다. K는 자신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 장래에 대한 기대를 품고 먼 길을 여행해왔으나, 정작 성은 규모나 외관 면에서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다가서려 할수록 오히려 멀어지는 듯 혼미한 인상을 준다. 또 학대를 당한 듯한 외모의 마을 사람들 역시 성의 관료들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며 성에 진입하려는 K의 시도를 방해하면서 자신들이 겪은 불가해한 사건에 그를 연루시키거나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암시만을 늘어놓는다.

 

  K는 이방인이자 아웃사이더로서 성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무조건적인 복종에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대응한다. K는 특히 성의 고위 관리인 클람과의 대면을 요구하면서 계속 금기와 맞서며, 이해할 수 없는 관습에 사로잡힌 마을 공동체에 상식과 계몽의 힘을 보여주려 애쓴다. 하지만 K의 연인인 프리다의 비난처럼 “분명히 모든 것을 반박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어떤 것도 반박된 것이 없”는 상황만이 되풀이될 뿐이다. 이러한 아이러니의 반복으로 미로 같은 세계가 형성되고, 수많은 물음이 빚어진다. K의 노력은 결국 실패하고야 마는가? K는 누구이며, 왜 그토록 성에 닿으려 하는가? 성은 과연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에 정작 소설은 너무도 많은 가능성을 제시하며 독자들을 유혹한다. 혹자는 ‘성’을 가부장적 권위로, K의 투쟁을 가장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본다. 정치적이고도 사회적인 투쟁으로 이해하며 20세기에 나타난 전체주의 체제의 권력구조를 그린 작품이자 현대 관료제에 대한 풍자로 보는 시각도 있다. 성이 무의식의 영역 혹은 친밀한 가정의 영역과 대립하는 서류, 기록 등의 기호체계로 점철된 남성적 세계의 상징이라는 해석도 있다. 카프카라는 개인을 유대민족으로 확장해 서구사회에서 인정을 얻기 위해 헛되이 노력하는 유대민족의 상황을 묘사한 작품으로도 읽힌다. 심지어 혼인에 거듭 실패한 독신자 신세로 결핵을 앓으며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한 작가 자신의 실패한 삶에 대한 기술이자 글쓰기에 몰두하면서 자신의 삶을 고립시킨 예외적 존재에 대한 성찰의 기록으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해석을 아울러 결국 『성』은 작가로서의 삶을 산 카프카라는 한 인간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도달하려 했던 ‘지상의 마지막 경계선’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경계선은 토마스 만의 표현대로 ‘전적으로 자전적인 소설’로 체현되었다.

 


  ■ 옮긴이의 글
  『성』 역시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전후 맥락이 분명하지 않은 갇힌 상황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토지 측량사임을 자처하는 K라는 인물이 한 마을에 도착해 그 마을이 속한 성과 성의 관청으로부터 자신의 직업 활동과 개인적 삶을 인정받기 위해 절망적으로 벌이는 투쟁이 이 소설의 주된 줄거리를 이룬다. 개인이 어떤 대상을 두고 투쟁을 벌이는 구도는 카프카의 여러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데, 『성』에서는 개인의 투쟁이 생존 차원의 투쟁으로 보다 확장되는 형국이다. 하지만 K의 노력은 결실을 거두지 못한다. 성에 진입해보려는 한주 동안의 시도는 물론 마을에 정착하려는 시도 역시 실패하고 만다. K는 성에 들어가기 위해 마을 주민들의 도움을 기대하지만, 주민들은 특이하고 비극적인 존재들로서 통찰하기 어려운 사건들에 K를 연루시키며 또 그가 해독할 수 없는 모순적인 암시들만 제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