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다는 것
황순원
피사의 사탑이 기울어졌지만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별로 기운 것 같이 않기도 하고
아주 기울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기도 하다
내 시각에 의하면
피사의 사탑을 보기 전 이미 거쳐온
밀라노도 기울었고
피사의 사탑을 보고 난 뒤 거친
로마도 플로렌스도 베니스도 다 기울어 있었다
그래도 밀라노는 스칼라 오페라하우스가 버티고 있고
로마는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이,
플로렌스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버티고 있지만
베니스만은 버티고 있는 것이 없었다
베니스 공화국의 화려했던 궁전도
거기 붙어 있는 마르크 성당도
이를 버틸 힘이 없었다
그대여
그대의 시각에
나는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가
아무리 위태롭게 기울었다 해도
버텨줄 생각일랑 제발 말아다오
쓰러질 것은 쓰러져야 하는 것
그저 보아다오
언제고 내 몸짓으로 쓰러지는 걸.
-1984년 시 <기운다는 것>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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