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해줘요 내게, 사랑
잉게르보크 바흐만
당신 모자가 가볍게 쳐들리는군요, 인사를 하고,바람에 들썩이는군요
당신의 드러난 머리는 구름을 걸치고 있고
당신의 가슴은 어딘가 다른 곳과 맺어져 있으며
당신의 입은 새로운 언어와 한몸을 이룹니다.
땅 위엔 방울내풀이 무성하고
여름은 아스터꽃을 불어 일으키고 또 불어서 없앱니다.
날리는 꽃송이에 눈멀어 당신은 얼굴을 드는군요,
당신은 웃고, 울다 지쳐 당신 자신에게 쓰러집니다.
당신께 무슨일이 또 일어나야 하는 것인지...
설명해줘요 내게, 사랑!
공작이 놀랍도록 화려한 몸짓으로 꼬리를 폅니다.
비둘기는 털깃을 높이 올리고
구구거리는 소리 흘러넘쳐 공기는 한껏 팽창되구요,
숫오리는 외쳐대는데,
온 대지에서 야생 벌꿀이 조금만 덜어내지고,
다듬어진 정원에서도 금빛 꽃가루가 화단마다 꽃술 장식을
물고기가 홍조를 띄며, 무리를 앞질러 가면서
동굴을 지나 신호밭으로 달려가고
전갈이 수줍게 은모래 음악에 맞춰 춤을 춥니다.
딱정벌레는 멀리서 풍겨오는 가장 황홀한 암컷 향기를 맡습니다
내가 그저 그 감각기관(感覺器官)을 가졌다면, 나는 또
날개가 그 갑옷 아래에서 번뜩이는 것을 느낄 텐데요.
그리고 멀리 딸기덤불로 가는 길을 취할 텐데요.
설명해줘요 내게, 사랑!
물은 이야기 할 줄 알지요,
물결은 물결끼리 손을 잡고
포도밭에서는 포도송이가 부풀어오르고, 튀어나오고, 떨어집니다
저렇게 아무 생각 없이 달팽이가 집에서 나오는군요!
하나의 돌은 다른 돌을 부드럽게 할 줄 안답니다!
설명해줘요 내게, 사랑이여, 내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무섭도록 짧은 시간을
그저 상념(想念)들과 어울리면서 오직
사랑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고 사랑의 행위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하는
사랑은 생각이란 걸 해야 합니까? 그런 게 없이 되는 상태는 없나요?
당신은 말하는군요; 그에겐 다른 정신이 있을 수도 있지...
아무런 설명도 말아 주세요.
나는 온갖 불길을 통과해가는 도룡뇽을 바라봅니다
어떤 구경꾼도 놈을 사냥하지 못하죠, 아무것도 놈을 아프게 하지 못하구요.
-시집 『장미와 벼락 속에서』, (열음사, 1989)
잉게보르크 바흐만(1926~1973) 오스트리아 시인, 소설가
1926년 오스트리아 남부 클라겐푸르트에서 태어나 빈, 그라츠, 인스부르크 등의 대학에서 법률과 철학을 공부했으며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3년 첫 시집으로 47그룹 문학상을 받았으며 1973년 10월 로마에서 객사하기까지 서정시인이자 소설가로 활동하면서 브레멘 시 문학상, 게오르크 뷔히너 상 등 많은 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시집 [유예된 시간](1953), [큰곰자리의 부름](1956) 등과 방송극 [만하탄의 선신](1958), 장편소설 [말리나](1971)가 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의 강연도 유명하다. 인생을 투시하는 철학적인 사고와 새로운 언어로 짜여 있는 바흐만의 작품들은 현대의 고전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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