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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설국/가와바타 야스나리

금동원(琴東媛) 2018. 11. 17. 18:55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作/ 유숙자 옮김

 

금동원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설국』에 나오는 너무나 유명한 첫 문장이다. 언제나 읽어도 늘 새롭고 환상적인 문장이다.

 시미즈 터널을 뚫고 나가자 마자 맞이하는 하얀 설국의 나라......온전히 새하얀 풍경이 그대로 가슴 안으로 들어온다. 겨울이 되면 한 번씩 생각나는 눈의 나라, 사실 일본이 아니라 해도 겨울이 되면 눈으로 덮히는 풍광은 우리나라에도 많다. 개인적으로는 제주도 한라산의 겨울 산은 하얗게 눈꽃으로 뒤덮힌 나무와 어우러진 숲길과 눈길은 가히 환상적이라 말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유하는 듯 깊고, 고요하게 읽히는 소설 속 그의 문체는 환상적이기도 하고 낭만적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사로잡는 것은  고요하고 차분하게, 사색적인 기분에 이렇게까지 사로잡힐 수 있나 싶은 내 마음의 태도가 그렇다.

 

  사실 이 소설은 그리 재미 있지는 않다. 극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줄거리도 없고  등장 인물들 간의 갈등도 거의 없어서 무미 건조한 느낌 마저 든다. 취향에 따라서는 이 소설이 왜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거니와 실제 장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도중에 읽기를 그만 두었다는 독자도 몇 명 만난 적이 있다. 이 소설의 미덕은 바로 이 싯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동떨어진 아름답고 고요한 소도시 유자와 마을의 겨울풍경은 잠시 우리를 현실세계로 부터 유리시켜놓는다.

 

  주인공 시마무라를 따라 함께 기차를 타고 눈의 지방 니가타현의 유자와 온천마을을 함께 여행하는 것이다. 그 곳에는 게이샤로 살고 있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여성 고마코가 시마무라에게 그랬듯 우리들에게도 열정적이고 관능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릴 것도 같고, 온천마을에 도착하는 날 기차안에서 만난 사랑에 모든 걸 거는 순수하고 맑은 요코라는 소녀도 만날 것 같은 것이다. 시마무라처럼, 한량처럼, 이방의 여행객처럼  조용하고 자그마한 온천마을에 한동안 머물고 싶어진다.

 

 시마무라가 안고 있는 허무적인 감상과 삶의 무료함은 두 여인에게  각각의 감정을 품고 있음에도 매력적인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 시마무라의 시간은 매우 수동적인 듯 무의미하게(약간 허무적으로) 흘러가지만, 그가 속해 있는 니카타현의 작은 온천 마을은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삶이 생성 되는 평화로움 속에 나름대로의 소란함도 지닌 곳이다.

 

  줄거리의 모호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뚜렷한 플롯이 없는 소설이 주는 애매모호함과 흥미로움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얽혀 복잡하고 어수선한 갈등구조의 줄거리로 가득한 많은 소설들 속에서 『설국』은 단연 돋보이는 소설임에 분명하다. 첫 문장이 가져다주는 강렬한 인상은 말할 것도 없고, 눈에 덮힌 숲길을 걸으며 사색에 빠져들기도 하고 시마무라가 머물렀던 온천장에서 온천을 하고 있는 듯 따뜻하고 화사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일본식 료칸이 주는 아늑한 분위기도 저절로 느껴지고... 이 소설은 이야기로 읽히는 소설이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가 주는 무게와 묘사를 통해 가슴으로 읽히는 것이다.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표현들이 읽는 내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마음을 이끌었던 아름다운 문장들을 몇 개 소개해보려고 한다.

 

 "극장 벽도 없고 청중도 없고 도시의 먼지도 없어, 소리는 다만 깨끗한 겨울 아침을 맑게 지나며 멀리 눈 쌓인 산들까지 곧바로 울려퍼졌다."

 "그 고독은 애수를 짓밟고 야성의 의지를 품고 있었다."

 "기차가 움직이자마자 대합실 유리가 빛나고 고마코의 얼굴은 그 빛 속에 확 타오르는가 싶더니 금새 사라지고 말았다.

 바로 눈 온 아침의 거울 속에서와 똑같은 새빨간 뺨이었다. 시마무라에게는 또 한번 현실과의 이별을 알리는 색이었다."

 "희미한 달밤보다 엷은 별빛인데도 그 어떤 보름달이 뜬 하늘보다 은하수는 환했고 지상에 아무런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는 흐릿한 빛 속에서 고마코의 얼굴이 낡은 가면처럼 떠올라, 여자 내음을 풍기는 것이 신기했다."

 "시마무라는 뭔가 비현실적인 것을 타고 시간도 거리감도 사라진 채 덧없이 몸이 실려가는 듯한 방심 상태에 빠져들자, 단조로운 차량의 울림이 그녀의 말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

 무수하게 많은 문장들이 소설 속에 포진해 있어서 읽을 때마다 다른 의미와 느낌을 전해준다.

 자연과 인간 운명에 내재하는 존재의 유한한 아름다움을 우수어린 회화적 언어로 묘사한 것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이유라고 스웨덴 한림원에서 선정 이유로 밝히고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예민하고 고독한 인상과 더불어 설국은 작가 자신의 이미지와도 닮아 있다.

 

 

  ○작가소개

가와바타 야스나리

   

  유럽의 허무주의, 미래파,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일본 문학 유파인 신감각파를 대표하는 작가. 난해한 문체 속에 내밀하게 숨겨진 탐미와 죽음, 그 미학적 경지의 불가해성으로 일본 평론가들 사이에서조차 그의 언어체계가 보여주는 의미망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1899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와 조부모, 하나뿐인 누이와 사별했다. 사별한 혈육을 추모하고, 외롭고 허무한 인생을 견뎌내는 방법으로 그는 문학을 선택한다. 동경대 국문학과 졸업 후 신진작가 약 20명과 함께 「문예시대」를 창간한다. 직접 창간사를 썼던 「문예시대」는 일본문학계에 ‘신감각파’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가 된다. 그러나 신감각파 문학은 1927년 일원이던 아쿠다가와 류우노스케의 돌연한 자살로 사실상 흐지부지 끝을 맺는다. 다행하게도 이 무렵부터 그의 문학은 독자적인 미적 세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설국』에 이르러 일본의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자리매김한다.

  작가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꼽았던 『설국』은 그다지 길지 않은 중편소설이지만 기고에서 완성까지 무려 13년의 세월이 걸린 작품. 발표 도중 「문예간담회 상」을 받았다. 시작은 1935년 「문예춘추」 1월호였고, 끝은 1947년 「소설신조」 10월호였다.

  196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작가로서 영예의 절정에 이른 시기, 그러나 1972년 4월 16일 그는 자살로서 돌연 생을 마감한다. 제자인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가 자결한 뒤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죽음이다. 그의 자살에의 이유에 대해 특별하게 알려진 이유는 없다. 그가 자살할 당시 책상에는 쓰다 중단한 원고와 뚜껑이 열린 만년필이 놓여 있었을 뿐. 그의 작품으로는 『이즈의 무희』, 『서정가』, 『금수(禽獸)』, 『천우학(千羽鶴』, 『산의 소리』, 『잠자는 미녀』, 『아름다움과 슬픔』, 『고도(古都)』등이 있다.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무슨무슨상으로 소개되기 보다는 그 자체의 서정적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것이 책에 대한 예의일지도 모른다. 이미 여러번 번역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이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백미랄 수 있는 '눈 지방의 정경을 묘사하는 서정성 뛰어난 감각적인 문체'를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번 읽어도 여전히 감동을 준다. 이 작품의 특징은 인물과 배경 묘사가 치밀한 데 반해, 그 안의 두드러진 줄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 행위의 유한함을 자연의 무한함에 비교하려고 했던 저자의 의도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또다른 대표작으로 꼽히는 『산소리』는 몽환 세계와 현실 세계의 귀로에 서서, 과거에 동경했던 연상의 여인에 대한 집요한 집착과 현실의 터부에 대한 과감한 도발이 차가울 정도로 차분히 전개되는 소설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후기 대표작으로 꼽힌다. 해몽 소설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이 텍스트에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유머로 그려지는데 그 유머에는 읽는 이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그런 차가움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장편 소설 『고도(古都)』라는 작품은 아이 때 버려졌던 치에코는 양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자랐지만 가슴속에 알 수 없는 외로움을 품고 있다. 아름다운 처녀로 자란 치에코는 축제의 밤, 홀로 신사에 참배를 갔다가 자신과 똑 닮은 나에코를 만나게 된다. 어릴 적 헤어진 쌍둥이 언니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원했던 나에코는 치에코를 반가워하지만 치에코의 가슴에는 격정적인 파란이 인다. 한날한시 한배에서 태어났지만 신분이 다른 치에코와 나에코. 그 운명의 엇갈림이 고도(古都) 교토를 배경으로 애잔하게 펼쳐진다.

 『여자라는 것』은 그가 쓴 여성을 위한 소설로서 변호사의 부인으로 여자의 이상형에 가까운 중년의 이치코. 그런 이치코를 동성애라도 할 듯이 흠모하면서도 이치코의 옛 애인과 남편을 유혹하는 사카에. 깊은 슬픔을 간직한 채 처음 시작하는 사랑에 불타오르는 다에코. 젊은 두 여성, 이들은 이치코를 흠모하면서 각자의 연애에 자신을 불태운다. 『여자라는 것』은 이들 세 여자의 다양한 행동과 심리적 갈등을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불가사의한 여자들만의 심리상태와 여자의 슬픔을 훌륭하게 표현해낸 작품으로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서 여자가 여자를 알아가는 공포, 여자가 모르는 여자의 고독과 자부심을 그려내 여자의 생명력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저자의 다른 작품으로 단편집 『이즈의 무희』는 한 고등학교 학생이 훌쩍 여행을 떠나, 우연히 만난 놀잇패거리와 어울려 며칠간 같이 지내다 헤어지는 내용이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제목인, 『이즈의 무희』는 새카맣고 숱많은 머리카락과 대조적인 작고 흰 얼굴에 마음이 설레던 놀이패의 젊은 여자가 알고보니 고작해야, 12-13살 남짓의 어린애에 지나지 않았다는 작은 에피소드에서 나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또 다른 단편을 모은 『어머니의 첫사랑』은 어머니가 죽은 후 어머니의 첫사랑이었던 시야마에게 맡겨진 유키코가 시야마를 남몰래 연모하면서도 와카스기에게 시집을 간다는 내용으로 유키코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간결한 필체로 묘사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