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아마추어
폴 발레리
내 진정한 생각을 문득 들여다보게 될 경우, 나는 인칭도 태생도 없는 이 내면의 말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사실에 쉬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 이 하루살이 같은 형상들을, 자신들의 편의로 중단되며 또 그러면서도 무엇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서로를 탈바꿈시키는 이 무한의 시도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 이처럼 겉보기와는 달리 일관이라곤 없으며, 우발적으로 발생하여 순간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생각에, 애당초 양식이란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내게는 매일 꼭 필요한 몇몇의 존재들에게 집중할 힘도, 지긋지긋한 도망대신 시작과 충일과 결말의 모습을 갖추는 정신적 장애들을 가장할 힘도 없다.
한 편의 시란 하나의 지속으로, 독자인 나는 그것을 읽는 내내 앞서 마련된 하나의 법칙을 호흡한다. 내 숨을, 내 목소리에서 비롯된 장치들을, 아니면 침묵과 양립할 수 있는 이들의 힘을 내밀 따름이다.
나는 근사한 걸음걸이로 빠져들어 단어들이 이끄는 곳을 읽고 산다. 단어들의 발현은 기록되어 있다. 그 울림은 계획되고 그 진동은 앞서 행한 관조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 그리하여 단어들은 절묘하거나 순수한 무리를 지어 공명으로 몸을 던지리라. 감탄마저도 당연하다. 왜냐하면 감탄이란 미리 숨겨놓은, 이미 셈이 들어 있는 것이기에.
숙명적인 문체에 이끌린 나는, 언제나 미래일 운율이 영영 내 기억을 얽매기만 한다면, 말 하나하나를, 내가 무한히 기다렸던 그 온전한 힘 속에서 느낄 수 있다. 나는 실어 나르기도, 또 내가 색칠하기도 하는 이 운율은 나를 진짜와 가짜로부터 지켜준다. 의혹이 나를 분열시키지도, 이성이 나를 다듬지도 않는다. 결코 우연이란 없으니.- 오직 하나의 비상한 기회가 견고해질 따름이다. 아무런 노력도 않고서 이 행복의 단어를 발견하게되니, 나는 기교를 통해 생각을 생각한다. 온전히 확실한, 경이로울 정도로 앞을 내다보는,- 빈틈마저 계산된, 본의 아닌 막연이라고는 없는, 움직임이 내게 명하고 그 분량이 나를 채워주는, 기이하게도 완성된 하나의 생각을.
-『가장 아름다운 괴물이 저 자신을 괴롭힌다』, (읻다 시선집, 2018)
○발레리(Paul Valery, 1871~1945)
프랑스의 시인, 사상가, 평론가 이다. 남부 프랑스의 세트에서 출생하여 몽펠리에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였으나, 건축, 미술. 문학에 뜻을 두었다. 보들레르가 시조라고 일컬어지는 프랑스 상징주의에 매혹되었으며, 말라르메의 뒤를 이어 아폴리네르 등과 함께 상징주의의 주요지류를 차지하고 있다. 1917년《젊은 파르크》를 발표하고, 1922년 그 동안의 시를 모은 시집 《매혹》을 발표함으로써 20세기 상징주의 시인 중 최고의 한명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그 후부터는 시는 쓰지 않고 산문과 평론을 계속 발표했으며, 평생 일기형식의 기록을 매일 아침 남겨, 엄청난 분량의 기록(Cahiers)을 후세에 남겼다.
발레리는 사후 프랑스 국장으로 예우받았으며, 20세기 전반기 유럽의 대표적인 지식인의 하나로 손꼽힌다. 대표작으로 시집 《젊은 파르크》, 논문 《정신의 위기》, 《현대의 고찰》, 평론집 《바리에테》5권을 비롯하여 시극 《나의 파우스트》등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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