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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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詩를 읽다

장소에 대하여/ 정현종

금동원(琴東媛) 2018. 12. 31. 21:18

장소에 대하여

 

정현종

 

 

모든 장소들은

생생한 걸 준비해야 한다.

생생하게 준비된다면

거기가 곧 머물 만한 곳이다.

물건이든 마음이든 그 무엇이든

풍경이든 귀신이든 그 무엇이든

생생한 걸 만나지 못하면

그건 장소가 아니다

(가령 사랑하는마음은 문득 생생한 기운을 돌게 한다.

슬퍼하는 마음은 항상 생생한 기운을 일으킨다

올바른 움직임은 마음에 즐거운 청풍을 일으킨다)

생생해서 문득 신명 지피고

생생해서 온 몸에 싹이 트고

생생해서 봄바람 일지 않으면

그건 장소가 아니다.

오 장소들의 지루함이여.

인류의 시간 속에 어떤 생생함을

한 번이라도 맛볼 수 있는 것인지.

참으로 드문 그런 은총을

한 번이라도 겪을 수 있는 것인지......

시간은 한숨 쉬며 웃고 있고나.

그나마 시와 그 인접예술들은

곧 장소의 생생함 이어야 하므로,

모름지기 우리의 시간

그리하여 우리의 사는 곳이

생생하기를 바라는 움직임이거니와......

 

 

- 광희의 속삭임』, (문학과 지성사,2008)

 


  정현종은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나 1965년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에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사물의 꿈』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세상의 나무들』 『갈증이며 샘물인』 『견딜 수 없네』 『광휘의 속삭임』 등과 시선집 『정현종 시전집』 『섬』, 시론집 『숨과 꿈』 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경암학술상(예술부문), 네루다 메달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