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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욕망의 탄생 /장-미셸 우구를리앙

금동원(琴東媛) 2018. 12. 22. 02:38

 

 

욕망의 탄생』- 모방이론을 통해 보는 사랑의 심리학  

 장-미셸 우구를리앙 저/김진식 역 | 문학과지성사

 

 

  인간 욕망의 모방적 본질을 밝혀내는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장?미셸 우구를리앙의 심리학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우구를리앙은 ‘모방’을 중심으로 인간의 행동과 사회·문화의 작동 방식을 분석하는 ‘모방이론’을 심리학 영역까지 확장시키고, 이를 임상 치료에 도입하여 정신과 치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인물로 유명하다.

  이 책에서 그는 40여 년간 심리 상담을 한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생겨나고 작동하는지를 살펴본다. 그는 ‘주체’의 내부에서 주체를 움직이는 힘을 발견하려고 하는 기존의 심리학을 거부하며, 욕망을 비롯한 모든 심리적 문제의 원인이 특정 개인이 아닌 개인들 간의 ‘관계’에 있다고 주장한다. 주체의 ‘자율성’이니 ‘무의식’이니 하는 말들은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그러한 것으로는 인간의 심리가 왜 변화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인간사의 수많은 문제들이 모방에서 비롯되며 어느 누구도 모방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주는 한편, 그것이 역설적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공감과 연대를 가능하게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모방 메커니즘을 이해함으로써, 모방의 힘을 긍정적인 힘으로 전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사랑을 영원하게 하는 것이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작가 소개

 

  저 : 장-미셸 우구를리앙 

  Jean-Michel Oughourlian프랑스의 심리학자이자 정신의학자. ‘모방’을 중심으로 인간의 내면을 분석하는 ‘모방이론’을 임상 심리 분석에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1970년대에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며 같은 대학에서 강의하던 르네 지라르와 함께 모방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 후로도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오랫동안 파리 아메리칸 병원 정신의학과를 이끌었다.
지은 책으로 『제3의 뇌Notre troisieme cerveau』(2013), 『심리정치Psychopolitique』(2010), 『욕망이라는 이름의 모방Un mime nomme desir』(1982), 『약물중독자La personne du toxicomane』(1974) 등과, 르네 지라르, 기 르포르와 함께 쓴 『세상 설립 이래 감추어져온 것들Des choses cachees depuis la fondation du monde』(1978)이 있다.

 

  역 : 김진식

  서울대학교 불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울산대학교 프랑스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르네 지라르』 『세계 프랑스어권 지역의 이해』
『르네 지라르에 의지한 경제논리 비판』 등이, 옮긴 책으로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 『문화의 기원』『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희생양』 『폭력과 성스러움』(공역) 등이 있다.

 

 

  ○책 속으로

 

  마르타 부인은 내가 선의의 환자라고 부르는 사람에 속한다. 내 말을 귀담아 들으면서 이해하려고 애쓰고 나를 자기의 적군이 아니라 조언자이자 연합군으로 여겼다. 그녀의 문제가 해결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환자들이 모두 마르타 부인 같지는 않다. 악의를 갖고 있는 환자들도 많다. 말하자면 그들은 애먹이려고 정신과 의사를 찾아온다. 의사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그들의 기다란 희생자 리스트에 의사의 이름을 추가해 넣으려고 진료실을 찾는 것이다. --- p.28

  나는 항상 욕망이 인간관계의 핵심이자 원동력이며 우리를 생生으로 이끄는 첫번째 운동이라고 생각해왔다. 수년의 연구와 임상을 거친 끝에 나는 우리를 인간이게 하고 하나로 모이게 할 뿐 아니라,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우리를 서로 닮은 존재로 만드는 것이 바로 욕망이라고 믿게 되었다. 욕망은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감정을 일깨우는 만큼이나 우리 성격을 결정짓기도 한다. 그러나 욕망은 우리가 타인과 가까워지도록,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우정과 지지와 인정을 추구하게도 하는 반면, 경쟁을 일으키고 사랑만큼이나 증오를 유발하기도 한다. --- p.29

  모방적 욕망의 개념을 더 잘 밝히기 위해서 나는 독자들에게 「창세기」를 읽어볼 것을 제안한다. 「창세기」는 우리가 모방적 욕망에 의한 교환 관계 속에서 심리 반응에 눈뜨고 우리의 정체성과 개성이 형성될 수 있었다는 것을 그 어떤 기록보다 더 잘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행복 충만한 멋진 낙원으로부터 ‘타락의 세계’로 추락하게 된 것 역시 항상 경쟁과 연결되어 있는 우리 욕망의 속성 때문이다. --- p.35

  한참 전 이브 생로랑에게 그가 디자인한 옷들이 대중들의 취향에 일치할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는 내가 그토록 간단한 대중심리를 모른다는 데 당황했다는 듯 날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하지만 박사님, 어떻게 하든 여자들은 제가 바라는 대로 옷을 입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심리학 분야에서 그 의미가 밝혀지기도 전에 이미 광고에서 암시의 기술과 모방적 욕망의 조종술이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 p.42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놀라서 “이건 말도 안 돼. 내가 변했어”라고 중얼거린다. 우리는 늘 같은 존재가 아니며, 자아는 변한다. 상태의 연속성에 대한 기억과 자신의 욕망의 기원을 감추는 망각 덕택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지속성과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 다르다는 식으로, 사실은 완전히 허구에 불과한 ‘귀납적인’ 재편을 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p.67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서 하느님과 닮은 모양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우리의 시각에서 해석해보면, 인간에게는 모방이 우주적 차원에서 새겨져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느님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진 인간 창조는 다른 창조와 같은 제작이나 재편 작업이 아니라, 하느님이 피조물에게 하느님의 정보를 전해주는 모방적 전이라는 과정으로 소개된다. 성서의 이 이야기는 인간에게는 모방의 특성이 있다는 것과 함께, 무엇보다도 창조의 첫 순간부터 인간 본성에 모방이 들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 p.91

  반면에 강박증에 빠진 사람의 욕망은 끊임없이 장애물을 만나려 한다. 이 욕망은 항상 지는 싸움을 그야말로 아주 즐기는데, 욕망-장애물의 벽은 그의 ‘통곡의 벽’이 된다. 나는 한 환자에게 그가 ‘워털루 증후군’에 걸렸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폴레옹이 “만약에 그루시 장군이 도착한다면……”과 같은 온갖 종류의 ‘만약에’에 의지하면서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지는 전투를 즐겼던 것처럼 말이다. --- p.258

  나는 마리나의 두 남자를 향한 태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야기해주었다. ‘사랑’의 차이가 아니라 모방 시스템의 차이 말이다. 위베르에 대한 사랑은 그를 경쟁의 대상으로 만들어준 제삼자 경쟁자의 개입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일어난 것이다. 마리나는 에디 역시 사랑했다. 에디에게 존경심을 품고 있었고, 나중에는 아주 진지하게 사랑했다. 하지만 에디에 대한 사랑의 열기에 자양분을 제공해준 것은 그녀의 경쟁자였다. --- p.306

  로렌스는 “격렬한 포옹과 뜨거운 애무에도 작은 틈새는 있는 법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불행하게도 사랑은 선망, 탐욕, 질투 그리고 타인을 지배하거나 통제하려는 욕구로부터 우리를 절대 보호해주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사랑의 결점이나 환상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징표이다. 
--- p.321

 

 

 

  ○출판사 리뷰

 

 

  ‘모방이론’을 임상 심리 치료에 도입하여 인간 욕망의 모방적 본질을 입증하다

 

  파리 아메리칸 정신의학과를 이끌며 수십 년간 연구와 임상 치료를 병행해온 우구를리앙은, 그중에서도 특히 위기에 봉착한 커플들의 사례에 주목하여 과연 무엇이 이 커플들을 사랑하게 하고 또 헤어지게 하는지 알아내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는 프랑스의 문학평론가이자 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가 1961년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에서부터 발전시켜온 ‘모방이론’을 끌어들인다. 국내에는 주로 지라르의 이름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우구를리앙 역시 대표적인 ‘모방이론가’로, 1970년대 스탠퍼드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며 지라르와 함께 모방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으며 그 결과를 『세상 설립 이래 감추어져온 것들』로 엮어낸 바 있다. 모방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망은 어떤 대상을 향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모방’한 것이다.

  저자는 헤어진 애인과 새 애인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하는 여성, 배우자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 알코올 중독 상태가 된 가정주부, 아내에게 다른 연인을 만들기를 권하는 남편, 서로의 의견에 적대적으로만 반응하는 엘리트 커플, 스스로를 비참한 상황에 빠뜨림으로써 아내에게 복수하려는 남자 등 다양한 갈등의 사례를 통해 이들 심리의 배후에 숨어 있는 모방 메커니즘과 그것이 유발하는 잘못된 경쟁의 상호작용을 설명한다. 일단 이러한 경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면 거기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다.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상대에 대한 극심한 증오와 비난의 감정에 빠져들며, 정작 경쟁하는 대상 자체의 중요성은 줄어든다. 모방이 야기하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사람이 악의 길을 가는 것은 그것이 사랑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존 스타인벡

 

  우구를리앙은 문제의 출발점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에서 해결책이 나온다고 말한다. 연인들의 문제는 어느 한쪽에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 욕망 메커니즘의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것을 깨닫는 데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모방의 영향력에서 결코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모방의 원리를 이해하여 그 방향을 돌려놓음으로써 우리의 사랑을 공고하게 만드는 데 역이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내 욕망의 고유성과 정당성만을 고집하던 태도에서 한 발 물러서 상대의 욕망 역시 같은 메커니즘에서 비롯되었음을, 다시 말해 ‘욕망의 타자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흔한 오해 중 하나는 사랑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이 본성상 유한하다고, 지키려고 애를 써봐야 실망만 커질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랑은 노력을 통해 채워지고 강화되는 것이다. 저자가 인용한 니체의 말처럼 “사랑 역시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만유모방의 메커니즘

 

  한편, 우구를리앙은 모방이론이 주체와 욕망의 허상을 폭로함으로써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허구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는 비판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그는 우리가 왜 사랑에 빠졌는지를 이해한다고 해서 그 격렬한 감정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모방이론은 상대에 대한 욕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소모적인 경쟁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작은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지점에서 모방이론에 기반한 심리학은 신화에서 빠져나와 과학의 범주에 올라서게 된다.

  모방이론은 자칫 인간의 위상을 위협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나를 나 자신일 수 있게 하고 인간을 서로 닮은 존재로 만드는 것, 또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우정과 지지와 인정을 추구하게끔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니라 인간이 서로를 끊임없이 모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방 덕택에 인간은 끊임없이 학습하고 변화한다. 그러지 않았다면 인간은 주어진 본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하나의 정체성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상투적인 생각을 거부하고 주체와 욕망의 개념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그럼으로써 이 메커니즘의 ‘노리개’가 되지 않고, 스스로 행복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을 살며시 열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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