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유나 편 / 폴 발레리, 노발리스, 릴케등저 외 24명
나는 일요일의 휴식을 살핀다
기욤아폴리네르
나는 일요일의 휴식을 살핀다
게으름을 찬양한다
감각들이 내게 떠넘기는
저 끝없이 미미한 지식을
어떻게 어떻게 줄여야 하는가
감각은 산이다 하늘이다
도시다 내사랑이다
감각은 사계를 닮는다
그것은 목이 잘린 채 산다 그 머리가 태양이고
달은 그것의 잘린 목이다
나는 끝없이 뜨거운 시련을 겪고 싶다
청각의 괴물인 네가 포효한다 울부짖는다
천둥이 녜 머리칼을 대신하며
네 발톱이 새들의 노래를 반복한다
괴물 같은 촉각이 파고들어 나를 중독시킨다
눈은 내게서 멀리 떨어져 헤엄친다
법접할 수 없는 별들은 시련을 겪지 않은 지배자들이다
연기로 된 짐승은 머리가 꽃피었다
월계수의 풍미를 지니고서
가장 아름다운 괴물이 저 자신을 괴롭힌다
-『가장 아름다운 괴물이 저 자신을 괴롭힌다』, (읻다 시선집, 2018)
○기욤 아폴리네르 (1880~1918)
1880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모나코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생애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지내다가 죽기 2년 전에야 비로소 프랑스에 완전히 귀화하였다. 1918년 그는 전쟁에서 입은 상처와 스페인 독감으로 제1차 세계 대전 종전을 3일 앞두고 38세의 나이로 짧은 생애를 마감하였다.
1898년부터 여러 잡지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 한편으로는 전위예술에 매혹되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예술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면서 피카소, 브라크, 막스 자콥 등과도 교류하였던 그는 불문학사에서 상징주의의 황혼기이며 초현실주의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시기인 20세기 초에 당대의 시대정신을 가장 충실하게 구현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알코올』은 아폴리네르의 첫 시집으로, 1913년 메르퀴르 드 프랑스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부제인 「시집 1898-1913」이 말하듯이 『알코올』은 아폴리네르가 시인으로서 처음 이름을 알린 이후 15년간의 결산이라고 할 수 있다. 형태와 주제, 음조와 길이가 다른 50편의 시를 혼란스럽게 늘어놓고 있지만 이 시집 전체가 지니고 있는 특이한 분위기는 거기에 어떤 '숨겨진 건축', '초현실적 상상력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건축'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떨쳐 버리기 어렵게 한다.
○책 속으로
이것은 내 사랑의 유정(遺精)이다. -그렇다.
그 전부를 나 사랑했다. 그녀가 왔고, -
나는 보았다 그녀의 얼굴을,
그녀의 무의식을
그녀의 일하는 손을,
그 전부를 나 사랑했다
그녀를.
그녀를 드러내야 했다,
그녀가 그렇게 바라보았으며 내게
그렇게 가까웠기에. -
이제 그녀는 떠났으며,
이제 나는 그녀의 몸을 마주한다.
---23쪽, 에곤 쉴러, 「말 없는 그녀의 창백한 초상」중에서
나는 이 방치된 사물이 내게 놀라움을 마련해두었으리라고는 미처 예기치 못했는데, 한 모금 빨아들이자마자 내가 작업해야 할 위대한 책들은 잊어버리고, 탄복하고, 감동하여, 다시 돌아오는 지난겨울을 들이마셨다. 나는 이 충실한 친구를 프랑스에 돌아온 이래 채 건드리지도 않았건만, 이제 모든 런던이, 일 년 전 오직 나 혼자서 온전히 살아낸 바로 그 런던이 모습을 드러냈다.
---40쪽, 스테판 말라르메, 「파이프」중에서
황혼이 깃드는 순간 찾아오면
모두 감탄이지 대문 아래 앉아
낮의 마지막 섬광을 바라봄은
노동의 마지막 시간을 맞이함은
바라보네 밤을 머금은 대지를
감격으로, 그의 헤진 넝마를
늙은 손으로 한 움큼 뿌려대는
고랑에 박힌 미래의 수확을
---84쪽, 빅토르 위고, 「파종의 계절, 저녁」중에서
…그거는 그래 천연덕스럽게도 하나의 파렴치한 멋 부리기;
그건 그거거나, 그게 아니거나: 뭣도 아니거나, 뭐거나…
(…)
예술은 나를 모르고, 나도 예술을 모른답니다.
--- p.112~116쪽, 트리스탕 코르비에르, 「그건?」
네가 보이지 않는다 해도, 나는 한숨을 쉬지도 울지도 않아.
너를 보고 정신을 잃지도 않지.
하지만 오랫동안 너를 보지 못하면
무언가 빠진 느낌, 누군가를 보고 싶은 갈망,
그리움에 나는 질문을 던지지,
이것이 우정일까, 사랑일까?
-
-- 120쪽, 아담 미츠키에비치, 『불확실』중에서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네 사랑/ 기억해야 하는가/ 기쁨이란 언제나 고통 뒤에 온 것임을// 밤이 온들 시간이 울린들/ 하루하루가 떠나가고 나는 머무네// 손에 손을 잡고 서로를 마주 보자/ 비록 저기/ 우리의 팔로 이어진 다리 아래/ 영겁의 시선에 지친 물결이 흐를지라도// 밤이 온들 시간이 울린들/ 하루하루가 떠나가고 나는 머무네
_34쪽,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중에서
빛이 부서진다 태양이 비추지 않는 곳에서./ 그 어떤 바다도 흐르지 않는 곳에서, 심장의 물결이/ 밀물로 밀려든다./ 그리고, 머리 속에 반딧불이가 들어 있는 창백한 유령들,/ 빛과 같은 것들이/ 줄지어 살을 통과해간다 그 어떤 살도 뼈들을 치장하지 않는 곳에서.
_36쪽, 딜런 토머스, 「빛이 부서진다 태양이 비추지 않는 곳에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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