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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詩를 읽다

꽃2/ 김춘수

금동원(琴東媛) 2019. 1. 15. 22:15

  꽃2

 

  김춘수

 

  바람도 없는데 꽃이 하나 나무에서 떨어진다.  그것을

주워 손바닥에 얹어놓고 바라보면 바르르 꽃잎 훈김에

떤다. 花粉도 난(飛)다. 꽃이여!」라고 내가 부르면, 그

것은 내 손바닥에서 어디론가  까마득히 멀어져 간다.

  지금, 한 나무의 변두리에 뭐라는 이름도 없는 것이

와서 가만히 머문다.

 

 

  디딤돌1

 

  디딤돌이 달빛에 젖어 있다

  아내의 한쪽 발이 놓인다

  어디선가 가을 귀뚜리가 운다

  무중력 상태의 한없이 먼 곳에

  아내는 떠 있는 느낌이다

 

 

  라일락 꽃

 

  한 아이가 나비를 쫓는다.

  나비는 잡히지 않고

  나비를 쫓는 그 아이의 손이

  하늘의 저 투명한 깊이를 헤집고 있다.

  아침 햇살이 라일락 꽃잎을

  흥건히 적시고 있다

 

 

  아침에

 

  크고 꺼칠한 손이

  햇서리가 내린 밀감나무의

  밀감을 따고 있었다

  밀감밭이 있는

  탱자나무 울 저쪽의 언덕길을

  바다를 바라고

  한 마리 살진 망아지가 달리고 있었다

 

 

  인동 잎

 

  눈 속에서 초겨울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다.

  서울 근교에서는 보지 못한

  꽁지가 하얀 작은 새가

  그것을 쪼아먹고 있다.

  월동하는 인동 잎의 빛깔이

  이루지 못한 인간의 꿈보다도

  더욱 슬프다

 

 

  시1

 

  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새의 날개가

  보이지 않는 어둠을 혼자서 날고

  한 사나이의 무거운 발자국이 지구를 밟고 갈 때

  허물어진 세계의 안쪽에서 우는

  가을 벌레를 말하라.

  아니

  바다의 순결했던 부분을 말하고

  베고니아의 꽃잎에 듣는

  아침 햇살을 말하라.

  아니

  그을음과 굴뚝을 말하고

  겨울 습기와

  한강변의 두더지를 말하라.

  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새의 날개가

  보이지 않는 어둠을 혼자서 날고

  한 사나이의 무거운 발자국이

  지구를 밟고 갈 때

 

 -김춘수 시선 『처용』, (민음사,1995)

 

 

  

   KIM,CHUN-SOO,金春洙 (1922~2004) 경상남도 통영시 동호동에서 출생하였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43년 니혼대학[日本大學] 예술학과 3학년에 재학중 중퇴하였다.경북대 교수와 영남대 문리대 학장, 제11대 국회의원,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했고, 제2회 한국시인협회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문화훈장(은관) 등을 수상하였다.

  1945년 유치환, 윤이상, 김상옥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결성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으며, 1946년 광복 1주년 기념시화집 『날개』에 「애가」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대구 지방에서 발행된 동인지 『죽순』에 시 「온실」 외 1편을 발표하였다. 1948년에 첫 시집 『구름과 장미』를 내며 문단에 등단한 이후, 「산악」·「사」·「기(旗)」·「모나리자에게」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주로 『문학예술』·『현대문학』·『사상계』·『현대시학』 등의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였고, 평론가로도 활동하였다. 초기에는 릴케의 영향을 받아 삶의 비극적 상황과 존재론적 고독을 탐구하였으며,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실을 분명히 지시하는 산문 성격의 시를 써왔다. 그는 사물의 이면에 내재하는 본질을 파악하는 시를 써 '인식의 시인'으로도 일컬어진다.

  시집으로 첫 시집 외에 『늪』·『기』·『인인(隣人)』·『꽃의 소묘』·『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김춘수시선』·『김춘수전집』·『처용』·『남천(南天)』·『꽃을 위한 서시』·『너를 향하여 나는』 등이 있으며, 시론집으로 『세계현대시감상』·『한국현대시형태론』·『시론』 등이 있다. 이 외에도 『한국의 문제시 명시 해설과 감상』(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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