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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네메시스 Nemesis / 필립로스

금동원(琴東媛) 2019. 2. 13. 20:56

 

 

네메시스 Nemesis』

 필립 로스 저/정영목 역  | 문학동네

 

 

 ○책 소개

 

 현대문학의 살아 있는 전설,

 절필을 선언한 필립 로스의 마지막 작품!

 “죽은 자들의 무덤에까지 가닿는, 문학과 인생에 대한 마스터클래스.”
 _가디언

  모두가 입을 모아 “이제 노벨문학상만 받으면 된다”고 말할 정도로, 필립 로스는 작가에게 허락된 거의 모든 것을 성취한 작가다. 1959년 『굿바이, 콜럼버스』로 데뷔해 50여 년간 서른한 권의 작품을 발표했고,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펜/포크너 상, 펜/나보코프 상, 펜/솔 벨로 상, 미국 예술문학아카데미 골드 메달,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등을 수상했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꾸준히 주목을 받아온데다 열렬한 논쟁의 한복판에 서는 일도 여러 차례 있었으니, 어쩌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작가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작가 소개

 필립로스  (Philip Roth, Philip Milton Roth, 1933~2018)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작가. 저명한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필립 로스를 코맥 매카시, 토머스 핀천, 돈 드릴로와 함께 ‘미국 현대문학의 4대 작가’로 꼽은 바 있다. 필립 로스는 1933년 미국 뉴저지의 폴란드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시카고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졸업 후 이곳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쳤다. 이후 아이오와와 프린스턴,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지속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창작 활동을 계속했다.

  1959년 유대인의 풍속을 묘사한 단편집 『안녕 콜럼버스』를 발표하며 데뷔한 로스는 이듬해 이 작품으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후 1969년 어느 변호사의 성생활을 고백한 『포트노이 씨의 불만』을 발표하며 상업적 성공과 비평적 성공을 동시에 거둔다. 필립 로스는 1998년 『미국의 목가』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해 백악관에서 수여하는 문화예술훈장(National Medal of Art)을 받았고, 2002년에는 존 도스 파소스, 윌리엄 포크너, 솔 벨로 등의 작가가 수상한 바 있는, 미국 문학예술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Arts and Letters)에서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상인 골드 메달을 받았다. 필립 로스는 전미도서상과 전미비평가협회상을 각각 두 번, 펜/포크너 상을 세 번 수상했다. 2005년에는 “2003~2004년 미국을 테마로 한 뛰어난 역사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미국을 노린 음모 The Plot Against America』로 미국 역사가협회상을 수상했다.

  또한 최근에는 펜(PEN) 상 중 가장 명망 있는 두 개의 상을 수상했다. 2006년에는 “불멸의 독창성과 뛰어난 솜씨를 지닌 작가”에게 수여되는 펜/나보코프 상을 받았고, 2007년에는 “지속적인 작업과 한결같은 성취로 미국 문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에게 수여되는 펜/솔 벨로 상을 받았다. 로스는 미국의 생존 작가 중 유일하게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Library of America, 미국 문학의 고전을 펴내는 비영리 출판사)에서 완전 결정판(총 9권)을 출간한 작가다.


  그런 그가 지난 2012년 돌연 절필을 선언했다. “저는 다 끝냈습니다. 『네메시스』가 제 마지막 책이 될 겁니다.” 필립 로스답게 간결하고 단호한 선언이었고, 이 말은 이후 번복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네메시스』(2010)는 우리가 읽을 수 있는 필립 로스의 마지막 소설이 되었다.

 

  ○역자 :정영목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현재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지은 책으로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옮긴 책으로 『로드』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책도둑』 『미국의 목가』 『에브리맨』 『울분』 『포트노이의 불평』 『굿바이, 콜럼버스』 『네메시스』 『죽어가는 짐승』 『달려라, 토끼』 『제5도살장』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 등이 있다. 『로드』로 제3회 유영번역상을, 『유럽 문화사』로 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책 속으로

 

  정의의 저울은 어디 있는 거요?” 가련한 남자가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마이클스 씨.”
  “왜 비극은 늘 그것을 당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 덮치는 거요?”
  “저도 답을 모르겠습니다.” 캔터 선생님이 대답했다.
  “왜 내가 아니라 그애인 거요?”
  캔터 선생님은 그런 질문에는 전혀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 p.53쪽

  “우리는 아무런 근거 없이 우리 자신을 가혹하게 심판하기도 해. 하지만 잘못된 책임감은 사람을 쇠약하게 만들 수 있다네.” --- p.107

  “자네는 양심이 있는 사람이고 양심은 귀한 것이지만, 그것이 자네가 자네의 책임 영역을 넘어선 것에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시작한다면 그건 귀한 게 아니게 되네.” --- p.109

  그는 삶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우리 모두가 환경의 힘 앞에 이렇게 무력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여기 어디에 하느님이 개입하고 있단 말인가? 하느님은 왜 한 사람은 손에 라이플을 쥐여 나치가 점령한 유럽에 내려보내고 다른 사람은 인디언 힐 식당 로지에서 마카로니와 치즈가 담긴 접시 앞에 앉아 있게 하는가? 하느님은 왜 위퀘이크의 한 아이는 여름 동안 폴리오에 시달리는 뉴어크에 놓아두고 다른 아이는 포코노 산맥의 멋진 피난처에 데려다놓는가? 이전에는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에서 자신의 모든 문제의 해법을 찾았던 사람에게는 지금 일어나는 일이 왜 지금처럼 일어나고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았다.

--- p.156∼157

  사람의 운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누구의 인생이든 우연이며, 수태부터 시작하여 우연―예기치 않은 것의 압제―이 전부다. 나는 캔터 선생님이 자신이 하느님이라 부르던 존재를 비난했을 때 그가 정말로 비난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 p.243

  그가 자신에게 남은 명예를 보전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위해 원했던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이었다―만일 마음이 약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는 마지막 패배를 겪게 되는 셈이었다.

--- p.263
 
  ○출판사 리뷰
  불운, 쓸데없는 죄책감, 그리고 잘못된 선택
  운명과 화해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벌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1944년 여름의 뉴어크. 주인공은 스물세 살의 ‘놀이터 감독’ 버키 캔터다. 키는 작지만 몸이 다부지고 운동신경이 뛰어난 버키는, 자신도 전장으로 가겠다는 오랜 꿈이 시력 탓에 좌절되자 크게 낙담한다. 또래들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안 버키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돌본다. 버키 자신은 그 사실에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지만, 놀이터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늠름하고 확신에 찬 버키 선생님은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던 중 폴리오 유행병이 뉴어크 전역을 장악한다. 아직 폴리오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던 시절, 아이들이 하나둘 폴리오에 감염돼 병원에 실려가고, 몸이 마비되거나 목숨을 잃는다. 도시 전체가 불안과 공포에 전염된다. 남은 아이들을 의연하게 돌보던 버키도 혼란과 두려움을 느낀다.
  방학 동안 포코노 산맥의 인디언 힐 유대인 소년 소녀 캠프에 교사로 가 있던 버키의 여자친구 마샤는 뉴어크에 있는 버키가 폴리오에 걸릴까 걱정하며, 놀이터 감독을 그만두고 인디언 힐에 오라고 버키를 설득한다. 아이들을 두고 떠날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우던 버키는 마샤 아버지와의 대화 도중 충동적으로 인디언 힐 행을 결심하고 마샤에게 청혼까지 한다.
그러나 포코노 산맥에 도착한 그는 이내 격렬한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그는 이미 심각한 실수를 했다. 경솔하게 공포에 굴복했으며, 그가 있는 곳에 머물며 할 일을 하는 것이 유일한 의무인 상황에서 공포에 사로잡혀 아이들을 배반하고 자신을 배반했다. 마샤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를 뉴어크에서 구출하려고 하는 바람에 어리석게도 자신을 훼손했다. 여기에 있는 아이들은 그가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여기는 전쟁 지대가 아니었다. 인디언 힐은 그가 필요하지 않은 곳이었다. (본문 178쪽)

뉴어크에서 죽은 다른 아이들의 소식과 전쟁터에서 죽은 친구의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버키는, 운명의 가혹한 장난을 제지하지 않고 허용해버리는 신의 성품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신을 향한 그의 분노는 뉴어크에서 홀로 탈출한 자신에 대한 지독한 자책과 자기 삶에 내리는 가혹한 형벌로 이어지기 시작한다.

  “왜 하느님이 앨런 마이클스의 부모의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았을까? 그분들도 틀림없이 기도를 했을 텐데. 허비 스타인마크의 부모도 틀림없이 기도를 했을 텐데. 그 사람들 다 좋은 사람들이야. 선량한 유대인들이야. 왜 하느님이 그분들을 위해서는 개입하지 않았을까? 왜 하느님이 그분들의 자식은 구하지 않았을까?”
---(본문 172∼173쪽)

  (…) 비극이라는 것, 그것을 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비극을 죄로 바꾸어야만 했다. 벌어진 일에서 필연성을 찾아야만 했다. 유행병이 생겼고 그에게는 그것을 설명할 이유가 필요하다. 그는 왜냐고 물어야만 한다. 왜? 왜? 그것이 의미 없고, 우연이고, 터무니없고, 비극적이라는 말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그것이 급격히 증식하는 바이러스라는 말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대신 그는, 이 순교자는, 왜에 미친 이 사람은 필사적으로 더 깊은 원인을 찾으며, 그 왜를 하느님이나 그 자신 안에서 발견하거나, 아니면 신비하게도, 불가사의하게도, 그 둘이 무시무시하게 합쳐져 생겨난 단일한 파괴자에게서 찾는다.
---(본문 266쪽)


  “자신에게 맞서지 마세요. 지금 이대로도 세상에는 잔인한 일이 흘러넘쳐요.
  자신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지 말라고요.”

  한국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단어 ‘네메시스Nemesis’의 사전적 의미는 ‘천벌’ 또는 ‘복수의 여신’이다. 필립 로스는 한 인터뷰에서 ‘네메시스’의 의미를 “운명, 불운, 어떤 이를 골라 희생자로 만드는 극복할 수 없는 힘”이라고 직접 설명한 바 있다. 그가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미국 문학의 고전을 펴내는 비영리 출판사)에서 펴낸 완전 결정판에 ‘네메시스Nemeses’로 분류해 묶은 후기 작품, 『에브리맨』『울분』『전락』『네메시스』는 모두 예기치 않은 불운으로 죽음 혹은 몰락을 맞닥뜨린 인생에 대해 깊이 있게 사유하고 있다.
 
  평면적으로 『네메시스』 속의 네메시스는 폴리오 유행병인 것처럼 보인다. 폴리오는 무차별적으로 무자비하게 여러 아이들과 버키 캔터의 삶을 짓밟았다. 하지만 버키를 무너뜨린 진짜 네메시스는 그의 가혹한 의무감, 병적인 죄책감, 엄격한 선善에 대한 집착 그리고 두려움이다.
『네메시스』는 전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시선이 더 바깥까지 가닿는다는 인상을 준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닥친 비극보다 이웃에게 닥친 비극에 집중한다. 그 비극을 생생히 목도하고 자신의 책임에 대해 고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필립 로스 식으로 전개되고, 또 그 와중에 어떤 부분에서는 독자의 허를 찌르는 반전과 블랙코미디를 선사한다. 그동안 필립 로스의 작품들에서 반복해 이야기되어온 테마들이나 이전과 비슷한 등장인물들을 떠올리며 읽는 재미도 크다.
무엇보다 『네메시스』는 필립 로스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가 그것을 예견하고 있었든 아니든, 한 명의 대가가 작가로서의 삶을 마무리하며 심취한 문제들이 무엇인지 엿보는 것은 독자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