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배신』- 착한 유전자는 어째서 살인 기계로 변했는가
-리 골드먼 (Lee Goldman) / 부키
인간이 20만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멸종을 면하고 번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경이로울 정도로 훌륭한 유전자 덕분이었다. 진화의 여정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필요 이상으로 음식을 먹어 두고, 소금을 간절히 원하고, 불안해하거나 우울해지는 전략을 취하고, 신속하게 혈액을 응고시키는 보호 체계를 발달시켰다. 이런 네 가지 유전 형질 덕분에 인간은 역사를 통틀어 가장 큰 사망 요인인 굶주림, 탈수, 폭력, 출혈의 위험을 피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형질들이 최근 겨우 2세기라는 짧은 기간 사이에 목숨을 보호해 주기는커녕 도리어 빼앗아 가는 주요 현대병의 원흉으로 돌변해 우리의 건강과 삶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인류의 생존을 도왔을 뿐 아니라 지구 생태계를 장악하는 근원이 된 바로 그 특징들이 어째서 오늘날 이토록 치명적인 독이 되어 버린 것일까?
저자는 역사와 진화라는 거대한 맥락 속에서 유익한 유전자들이 어떻게 자연 선택 되고 실제로 작동해 왔는지 그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것들이 이제 어째서 비만과 당뇨병, 고혈압, 불안과 우울증, 심장 질환과 뇌졸중을 부르는지 명쾌하고 설득력 있게 입증해 보인다. 나아가 유전자가 세상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인류 역사상 이 초유의 사태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길을 제시한다
○작가 소개
리 골드먼 (Lee Goldman)
세계적으로 저명한 심장병 전문의로, 현재 컬럼비아대학교 의학건강과학대학원 학장, 컬럼비아대학병원 원장 겸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예일대학교에서 의학 및 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대학교샌프란시스코병원, 매사추세츠종합병원, 예일뉴헤이븐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밟았다. 하버드의학대학원 의학 교수와 하버드공중보건대학원 전염병학 교수를 거쳐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캠퍼스 의학대학원 의학부 부학장과 임상학 학장을 지냈다. 미국의학원 회원이며 미국일반내과의사협회, 미국의사회, 미국의대교수협회가 수여하는 최고상을 수상했다. 흉부 통증 환자의 입원 여부 결정 기준으로 높이 평가받는 골드먼 표준(Goldman Criteria), 골드먼 지수(Goldman Index)로 대표되는 비심장 수술이 심장에 미치는 위험 예측에 관한 연구로 유명하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의학 교과서인 《골드먼-세실 의학 교과서(Goldman-Cecil Medicine)》의 수석 편집인이며, 지금까지 45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역자: 김희정
서울대 영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 동시통역대학원을 졸업했다. 가족과 함께 영국에 살면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채식의 배신』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견인 도시 연대기』(전 4권) 『코드북』 『두 얼굴의 과학』 『우주에 남은 마지막 책』 『영장류의 평화 만들기』 『아인슈타인과 떠나는 블랙홀 여행』 『내가 사는 이유』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이러한 역설이야말로 이 책의 뼈대를 이룬다.
식량 부족을 견디고, 가뭄을 이겨 내고, 위험한 상황을 인식해 피하고, 상처를 입었을 때 피가 응고되는 형질은 우리 조상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우리가 일으켜 온 급속한 환경 변화와 우리 유전자가 변화해 가는 느린 속도 사이의 불균형은, 산업화 이전 오랜 세월 동안 생존을 보장했던 유전 형질에 우리가 오히려 발목을 잡혀 버린 이유를 설명해 준다.
잘 알려진 경구를 뒤집어 말하자면, 우리는 인류 생존이라는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적응이라는 전투에서는 지고 있다.
영양 실조와 굶주림은 인간의 생존을 끊임없이 위협해 왔다. 그러니 우리 몸이 음식?특히 몸에 꼭 필요한 핵심적인 음식?을 원하고, 오염되거나 독이 든 음식은 먹고 병들거나 죽지 않도록 알아서 거부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 몸은 허기와 입맛, 소화를 북돋고 제어하는 다양한 호르몬과 기관에 의존한다. 결국 우리는 충분한 열량을 섭취해 소화하도록 하는 유전자와, 주기적인 식량 부족에서 살아남아 종을 보존할 수 있게 지방을 넉넉히 저장하도록 하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의 후손인 것이다.---89쪽, 2장 굶주림, 음식 그리고 비만과 당뇨라는 현대병
1945년 당시만 해도 고혈압의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 증상이 우리 조상들의 건강에 큰 위협이 되고 심지어 목숨까지 앗아간 탈수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생물학적 메커니즘 때문에 벌어진다는 것을 안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현대인보다 더 많은 육체 활동을 해야 했으므로 우리보다 더 많은 열량이 필요했다. 거기에 더해 그들은 땀을 더 많이 흘렸다. 특히 원래 인류가 살던 아프리카라는 환경에서 활동적인 생활을 하는 데는 더 많은 양의 물과 소금이 필수적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혈압이 극적으로 오르는 경향이 있다. 35세 이하에서는 5퍼센트인 고혈압 환자 수가 35~44세에서는 15퍼센트, 45~54세에서는 35퍼센트, 55~64세에서는 50퍼센트, 65~74세에서는 65퍼센트가 되고, 75세 이상 인구 중에서는 70퍼센트가 고혈압을 가지고 있다. 이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고혈압이 심장 마비와 뇌졸중으로 인한 사망의 원인 중 약 50퍼센트를 차지하며, 심부전과 신부전의 주요 원인으로도 꼽힌다. 고혈압은 매년 미국 내에서만도 4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는 700~800만 명이 이 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고혈압은 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병이기도 하다. 이 병 치료에 드는 의료비와 이 병으로 인해 근무를 못 한 날의 비용을 모두 합치면 미국에서만 매년 무려 750억 달러를 웃돈다. (…)
조상들은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자기 방어 또는 식량, 물, 배우자를 확보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명예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도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죽음?살해나 다른 방법으로?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인간은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어떤 두려움은 타고나 우리의 반사적 행동 중 일부가 되고, 어떤 두려움은 경험을 통해 얻는다. 상황에 따라 우리는 어떨 때는 맞서 싸우고, 어떨 때는 위험으로부터 도피하며, 또 어떨 때는 순종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폭력을 휘두르는 상대방이 너무 심한 상처를 입히지 않기를 바란다.
구석기 시대 조상들의 12퍼센트, 초기 농업 정착민의 25퍼센트가 살인과 치명적 부상으로 사망했다면, 죽지 않을 정도로 베이고 부딪히고 멍드는 일은 얼마나 빈번했을지 가히 상상이 간다. (…)
선사 시대에는 부상도 큰 걱정이었지만 종족 보존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출산에 따른 출혈이 더 큰 문제였을 것이다. (…) 구석기 시대 여성이 평생 평균 10명의 아이를 낳고 이와 비슷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면 출산 중 또는 그 직후 출혈로 목숨을 잃을 확률은 평생 30분의 1이었을 것이다.
봉합술, 수혈, 줄어든 폭력, 그리고 향상된 산과 의료 기술 덕분에 우리는 이제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 과다 출혈로 죽을 위험이 가장 낮은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혈액 응고에 아주 능했던 사람들의 자손이므로, 그들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적 특징은 산업화 사회에서 가장 흔한 사망 원인들과 직접 연관된다.
그 돌연변이 유전자가 평범한 다형성이어서 인구의 약 10퍼센트에서 발견된다고 할지라도 5세대가 지나면 인구의 40퍼센트가 이 유전자를 지니게 된다. 5세대는 20만 년이라는 인류 역사에 비하면 눈 깜짝 할 사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에이즈가 임상적 증상으로 처음 보고된 시점과 그 병에 대한 효과적인 약품이 개발된 시점 사이 기간인 1세대와 비교하면 다섯 배나 긴 시간이다.
우리는 누구나 여러 가지 장애를 극복하고 더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가지려는 시도가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서 과거 우리가 살아남는 데 필요했던 형질들의 부작용인 비만, 당뇨병, 고혈압, 불안과 우울증 그리고 과도한 혈액 응고를 피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체중을 감량하고 운동량을 늘리고 소금 섭취를 줄일 수 있으며, 시각화와 명상을 통해 살을 빼고 혈압을 낮추고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심장 마비와 뇌졸중 위험을 낮출 수 있다. 그러자면 건강한 삶을 위해 과학적으로 증명된 실질적인 조언에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좋은 생각과 의도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슬픈 진실이다. 우리 중 약 35퍼센트는 비만, 또 다른 3분의 1은 과체중이다. 그중 많은 수가 체중 감량 시도를 반복하고 줄인 체중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무리 최선을 다한들 조상들을 아사의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그랬던 것처럼, 신진 대사율을 낮추고 더 많이 음식을 섭취하도록 자극하는 일련의 호르몬이 작업에 착수해 우리의 노력을 좌절시키곤 한다. ---449~450쪽, 7장 우리 행동 바꾸기
새로 도래한 이 정밀 의학 시대에는 우리가 건강 관리와 의학을 대하는 태도에도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건강 보험이 처음으로 도입되었을 때는 이미 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 드는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제는 건강 보험의 범위가 점점 확산되어 예방과 진단을 위한 다양한 검사를 포함하고 있다. 게놈 분석 능력 덕분에 건강 관리는 질병이 걸릴 위험이 높아지거나 증상을 나타내기 훨씬 전에, 그러니까 태어날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미 질병을 앓은 사람의 재발이나 악화를 방지하는 ‘이차 예방’, 또는 심지어 질병에 걸리거나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방지하는 ‘일차 예방’에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이제 우리는 ‘원천 예방’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원천 예방이란 질병에 걸리게 될 상당한 위험에 처하기 훨씬 전에 위험 요소 자체를 없애는 것을 말한다. _510쪽, 8장 우리 체질 변화시키기 --- 본문 중에서
호모 속 출현 후 230만 년, 호모 사피엔스 출현 후 20만 년이라는 아득한 세월을 견디고 인류는 지금 여기까지 와 있다. 단순히 살아남는 데 그친 것만이 아니다. 4만 년 전부터는 유일하게 생존한 호모 종이 되어 찬란한 문명을 건설하고 말 그대로 지구를 정복했다.
우리 조상들은 굶주림과 탈수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지구상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인류를 위협한 가장 큰 문제는 ‘굶주림, 탈수, 폭력, 출혈’이었다.(10~12쪽) 이 위험을 극복하고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우리 조상들은, 나아가 우리 유전자들은 어떤 방어 체계를 마련해야 했을까?
먼저 굶주림에는 어떻게 대비했을까? 음식이 생길 때마다 지나칠 정도로 배불리 먹어 두는 보호 전략을 취했다. 이를 위해 우리 몸은 20개가 넘는 분자와 호르몬이 허기와 포만감 조절에 관여하고,(90쪽) 3가지 유전자가 좋아하는 단맛과 감칠맛을 감지하는 한편 25가지가 넘는 유전자가 위험한 쓴맛을 감지한다.(94쪽) 또 배, 허리, 둔부에 집중된 350억 개의 지방 세포는 약 13만 칼로리(비만일 경우 1400억 개, 100만 칼로리)의 열량 비축 능력을 자랑한다.(136쪽)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우리 조상들은 늘 아사의 위협에 직면해야만 했다. “굶주림은 개인뿐 아니라 생물 종 전체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의 본능과 인체 내 조절 장치는 전부 과식을 해서라도 당장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을 흡수하는 쪽으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기울어”(72쪽) 있도록 프로그래밍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폭력과 출혈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폭력과 그로 인한 비명횡사는 우리 조상들에게 다반사였다. 한때 우리 조상들이 ‘온화한 야만인’이었다는 신화가 존재했지만 금방 허구로 판명 났다. 일례로 5000년 전 사람 ‘아이스맨 외치’와 9400년 전 사람 ‘케너윅맨’의 사체를 정밀 조사해 보니 폭력의 흔적이 역력했다.(227~228쪽) “이러한 사례를 놓고 볼 때, 선사 시대의 비명횡사는 거의 대부분이 동물의 공격이나 절벽에서 떨어지는 등의 사고보다 살인에 의한 것이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230쪽) 그렇다면 왜 인간은 1만 세대 동안 강한 살해 욕구를 가지고 살아왔을까? 그것이 진화의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답한다. “살인을 통해 식량과 물, 그리고 원하는 여성과 그녀의 자손 번식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230쪽) “살인자가 희생자보다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은 명백하다.”(232쪽)
20만 년간 우리를 지켜 주던 유전자가 죽음의 원흉으로 돌변했다
1988년 오프라 윈프리는 비만과 건강 문제를 염려해 체중 감량 작전에 들어가 95킬로그램에서 65킬로그램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 1990년대 들어 줄었던 체중이 금방 다시 불어나자 또 한 번 38킬로그램 감량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몸무게는 계속 늘어만 갔고 2005년 4개월간 거의 굶다시피 해서 72.5킬로그램으로 줄였다. 그렇지만 2008년 또다시 18킬로그램이 쪄 있었고, 그 뒤로 그녀의 체중은 요요처럼 오르내리기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398쪽)
우리 유전자가 현대 사회의 변화 속도를 못 따라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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