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필요한 순간』- 인간은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가
김민형 저 | 인플루엔셜
○책 속으로
“결국 모든 삶은 수학적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사고 능력과 우주에 대한 탐구를 현대 수학으로 풀어낸 7개의 강의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연산, 매일 이야기하는 확률, 쉽게 그리는 좌표 등도 한때는 전문가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이론이었다. 페르마, 뉴턴, 아인슈타인은 물론, 지금 잘 알지 못하는 현대 수학 이론들도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상식이 될 것이다. 결국 인간은 ‘수학적 사고’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최초 옥스퍼드 대학 정교수이자 세계적인 수학자 김민형 교수. 그가 인간의 사고 능력과 우주에 대한 탐구를 총 7개의 강의를 통해 풀어냈다. 『수학이 필요한 순간』은 현대 수학의 대가가 복잡하고 어려운 수학의 세계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상식적인 언어로 설명한 놀라운 작업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우주를 이해하는 법도, 윤리적인 판단까지도 수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더 깊게 생각하는 데서 오는 짜릿하고 매력적인 희열에 빠지게 될 것이다.
○작가 소개
김민형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머튼칼리지 교수이자 서울고등과학원 석학교수이다. 낭만주의 영시를 외우고, 쇼팽의 악보에서 수학적 아름다움을 말하는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인문학자 김우창 교수의 차남이기도 하다. 중학교 1학년 때 몸이 아파 학교를 쉰 것을 계기로 혼자 집에서 공부하며 서울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했다. 서울대 개교 이래 첫 조기 졸업생이며, 예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 연구원, 퍼듀대학교,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 교수를 거쳐 포스텍의 석좌교수, 서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초빙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2011년 한국인 수학자로서는 최초로 옥스퍼드대 수학과 정교수로 임용되었고, 2012년 호암과학상을 수상했다.
김민형 교수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서 유래된 산술대수 기하학의 고전적인 난제를 위상수학의 혁신적인 방식으로 해결하여 세계적 수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오일러 도서상을 수상한 수학자 조던 엘렌버그는 그를 두고 “약 3천 년간이나 수와 수체계의 이론을 연구해왔지만 실제 탄생한 이론은 많지 않다. 누군가 진짜 새로운 방식으로 그 작업을 해낼 때마다 큰 사건이 된다. 김민형이 그 일을 실제로 해냈다”고 평했다.
영국에 체류 중이며, 한국을 오가며 본인의 연구 외에도 일반인들에게 수학의 세계를 안내하는 작업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초등학교 수학영재, 직장인, 대기업 임원, 심지어 수학과 무관해 보이는 발레 전공자에게까지 수학을 가르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수학 대중화를 위한 ‘수학콘서트 K.A.O.S’의 메인마스터로 활동했으며, 웅진재단, 네이버커넥트재단 등에서 수학영재를 위한 강의 및 멘토링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참여했다. 지은 책으로『수학의 수학』,『소수 공상』,『아빠의 수학여행』,『수학자들』(공저)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제가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러 온 학생들 중에서도 수학적인 증명이 무슨 특별한 사고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하지만 증명은 특별한 기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명료하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분명하게’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1강 수학은 무엇인가」중에서
우리는 살면서 여러 질문을 하죠. 그런데 질문을 하면서도 어떤 종류의 답을 원하는지 분명치 않을 때가 많습니다. 가령 x를 구한다고 했을 때 답이 만족스러운 답일 수도 있고 불만족스러운 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뉴턴의 경우처럼 어떤 답을 우리가 만족스러운 답으로 받아들이느냐 자체가 분명치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따라서 과학적인 이론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적당한 답의 틀’을 만드는 것 자체도 중요합니다. ---「2강 역사를 바꾼 3가지 수학적 발견」중에서
여러분은 선한 사람입니까? 악한 사람입니까? 그런 판단은 무엇을 기준으로 내릴 수 있을까요?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돕는 사람이 선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법을 어기지 않는 사람이 선한 사람일까요? 저는 가끔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가령 작년에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총 10명이 살해됐다. 이는 큰일일까요, 아닐까요? ---「3강 확률론의 선과 악」중에서
수학사에는 틀린 증명과 틀린 정리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수많은 실패가 현상을 이해하게 하는 데 더 큰 도움을 주곤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제약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 역시 제한점을 마련하고,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이후 연구자들에게 지표가 되어주었습니다. ---「4강 답이 없어도 좋다」중에서
이 질문에 대한 요점은 찾을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당히 많은 수학적인 문제가 세 가지 이슈를 한꺼번에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해가 있느냐 없느냐, 두 번째는 찾을 수 있느냐, 세 번째는 찾을 수 있어도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느냐. 누구는 효율적으로 느끼고 누구는 비효율적으로 느끼는 방식이 아니라 객관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효율성이라는 게 있을까요? 이 효율성의 정의와 그에 관련된 이론은 수학과 계산과학에서 상당히 활발히 연구되고 있기도 합니다. ---「5강 답이 있을 때, 찾을 수 있는가」중에서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시공간의 곡률을 느끼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시공간이 휘어졌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기본적인 착안입니다. 공간이 휘어서, 우주가 휘어서 중력을 느낀다면, 그럼 우주가 휘어졌다는 게 뭘 의미하는가? 이걸 그럴싸하게 말로 표현할 수는 있어도 사실 직관적으로도 알기 어렵습니다. 우주가 휘어졌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 이유가 뭘까요? 우리가 우주 안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는 우주의 밖에서 우주를 들여다볼 수 없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내면기하의 개념 없이 우주가 휘어졌다는 주장을 하기가 불가능한 겁니다. ---「6강 ‘우주의 실체, 모양과 위상과 계산」중에서
일상의 문제에서도 정답부터 빨리 찾으려고 하기보다 좋은 질문을 먼저 던지려고 할 때, 저는 그것이 수학적인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대범하게도 수학적 사고를 통해서만 우리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고, 우리가 찾은 답이 의미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마치며」중에서
○출판사 리뷰
_인간의 놀라운 사고 능력과 수학에 관한 7개의 강의
17세기에 발명된 확률 이론은 한때는 전문가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수학 이론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37%의 비 올 확률’을 읽고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을 관찰하며 떠오른 직관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하나의 이론이 되고, 이는 점차 널리 활용되며 많은 사람들의 상식이 되었다. 세계적인 수학자 김민형 옥스퍼드대 교수는 이런 과정이 수세기 동안 거듭되고 축적되면서 인간의 사고 능력은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우리에게 아주 복잡한 현대 수학이론들도 머지않아 누구나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상식이 된다는 것이다.
김민형 교수의 신간『수학이 필요한 순간』은 인간의 사고 능력을 확장시켜온 수학이라는 장대한 세계에 관한 7개의 명강의를 담고 있다. 기본적인 수학의 원리부터 정보와 우주에 대한 이해, 윤리적인 판단이나 이성과의 만남 같은 사회문화적인 주제에 이르기까지 세상 모든 순간을 이해하는 데 바탕이 되는 수학적 사고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그가 진행한 다양한 대중 강연의 내용을 포함하여 1년여에 걸쳐 진행된 강의를 총망라한 이 책은 이 시대에 필요한 수학적 사고에 관한 깊은 탐구와 메시지를 오롯이 담고 있다. 마치 강의실에 앉아 있는 듯 질문과 답으로 구성된 이 책을 따라 차근차근 생각의 온도를 높여가다 보면, 어느덧 수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게일 섀플리 이론이나 애로의 불가능성의 정리, 오일러의 수나 내면 기하처럼 물리학과 수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대 수학의 개념들까지도 상식적인 언어만으로 쓰여 있어 누구든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다.
인간은 얼마나 깊이 생각할 수 있는가?
_일상부터 우주에 대한 탐구까지 ‘수학이 필요한 순간들’
‘수포자’에게 수학은 늘 두려운 존재다. 하지만 수학을 못하는 사람도, 이미 누구나 ‘수학적 사고’를 하고 있다. 수학적 사고란 인간이 세계를 사고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능력이기 때문이다.『수학이 필요한 순간』은 우리 안의 수학적 사고를 발견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에 의하면 수학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질문을 던지고 그에 필요한 개념적 도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빛은 어떻게 이동하는가?”라는 17세기의 과학자 페르마의 질문이 몇백 년에 걸쳐 뉴턴의 운동법칙,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발전한 것처럼, 수학의 질문은 수 세기를 이어가며 세상을 탐구해간다.(2장, ‘역사를 바꾼 3가지 수학적 발견’ 중에서)
우리가 인문학의 문제라 여겼던 윤리적 판단에서부터 우주의 무한한 세계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수학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란 없다. 예를 들어 철학 영역이라 알려진 트롤리 문제, “망가진 자동차에서 누구를 살릴 것인가?”는 현재 MIT에서 자율주행 자동차에 들어갈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한 게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피실험자들이 위험한 상황 앞에서 내릴 ‘윤리적인 판단’을 확률 데이터, 즉 수학적인 문제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4강 ‘확률론의 선과 악’). 이는 과학기술이 윤리적으로 사용되는가의 쟁점에서 더 나아가 다가올 미래에는 인간의 윤리 자체가 확률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시공간과 우주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역시 수학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중력은 우주가 휘어졌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물리학의 기본 가정은 ‘내면기하’라는 수학적 개념 없이는 설명할 수 없으며, 양자장론이나 초끈이론처럼 최신 물리학의 연구는 우주에 존재하는 수학적 구조를 발견하는 과정과 다름없다.(6강, 우주의 실체 모양과 위상과 계산) 이처럼 현대 수학이 이룩한 주요한 발견과 증명은 우리로 하여금 기존의 세계관과 통념을 뛰어넘으며 자연과 우주에 관해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도록 만든다.
생각의 근육을 키우다
_포기하지 않고 더 깊이 사고하게 만드는 수학의 힘
꼭 수학이 아니더라도, 문제를 사고하는 과정에 조금이라도 부하가 걸리거나 오답을 마주하면 사람들은 이를 포기하거나 건너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수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계기는 오히려 답이 틀렸거나 없는 상황일 때 더 많이 일어났다. 4강 ‘답이 없어도 좋다’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대표자를 선출하는 방법에는 수십 가지가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완벽할 순 없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사회문화적 고려사항과 현실적 딜레마에도 불구하고 제한적인 조건에서 문제를 이해하고 적당한 답의 틀을 만들 때 오히려 문제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게 된다. 수학의 힘은 여기에 있다. 답에 가까워지는 과정이나 혹은 답이 없는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더 깊이 이성적으로 사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수학적 방법론은 자연과학이나 공학뿐 아니라 사회학이나 경제학, 인문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럽게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의 5강 ‘답이 있을 때 찾을 수 있는가’에서 소개하는 201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게일-섀플리 이론은 애초에 두 명의 수학자가 ‘수학적 사고란 무엇인가’를 알려주기 위해 수학 교육 저널에 게재한 논문이었다. 각각의 남녀 100명 모두가 안정적인 짝을 지을 수 있는가?라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이 이론은 수학적 사고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처럼 답이 없을 것 같은 문제조차 더욱 명료하게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면 이는 수학적 사고에 가까워지고 있는 신호일 것이다.
수학이 필요한 시대, 문과생·기업 임원·발레리나도 푹 빠져든 지적 즐거움
빅데이터나 머신러닝 등이 일상이 된 첨단 정보과학의 시대, 수많은 정보를 논리적으로 처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면서 수학적 사고는 개인과 기업이 지녀야 할 필수적인 능력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김민형 교수는 수학 대중화에 앞장서는 대표주자로서 방한할 때마다 다양한 대중을 대상으로 수학 강의를 펼치고 있다. 천 명의 유료 객석이 매진된 수학콘서트 K.A.O.S를 비롯하여 네이버커넥트재단 등 김민형 교수의 강연장을 가득 채운 방청객은 초등학교 수학영재에서부터 직장인, 대기업 임원, 심지어 중학생 발레 전공자까지 다채롭다. 이들은 복잡한 내용의 수학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 하나같이 감탄하며 수학의 매력에 푹 빠져든다. 더 천천히 쉬운 말로 설명하는 것 같지만 더 깊게 끝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그의 강의 방식 덕분이다.
이 책은 옥스퍼드 수학과의 명강의를 포함하여 김민형 교수가 한국에서 진행한 각종 수학 강의의 내용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마치 강연의 현장에 찾아온 듯 수학에 대해 묻고 답하는 세밀한 대화로 가득하다. 평소 셰익스피어와 쇼팽을 사랑하며 물리학, 뇌과학, 인문학 등 학문 분야를 넘어 해박한 지식을 지닌 그는 스스로 “수학을 하기보다 수학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즐긴다”고 일컫는다. 그런 그가 수학이라는 방대한 세계에 대해 평생을 걸쳐 탐구해온 주제를 이 책에 오롯이 녹여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수학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쁨, 깊고 넓은 시야로 세상을 읽어내는 그 순수한 지적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 인터뷰
김민형 교수 “우리는 매일 수학적으로 사고하고 있다”
『수학이 필요한 순간』 펴내 , 옥스퍼드 대학교 머튼칼리지 교수가 안내하는 수학의 세계
이해하면 싫은 마음이 사라지고, 궁금증이 생겨요. 수학적 이해력은 세상을 알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2018. 09. 10)
글 | 성소영
사진 | 신화섭(스튜디오 무사)
이른 새벽, 알람이 울린다. 출근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남짓. 10분 더 자기 위해 아침 식사를 포기하기로 한다. 집을 나서기 전, 스마트폰 화면에 표시된 ‘배터리 잔량 30%’를 보고 보조배터리를 가방에 챙겨 넣는다. 최대한 빨리 지하철역에 도착하기 위해 지름길로 발길을 재촉하고, 라디오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환율 하락 소식을 들으며 다가올 해외여행에서 쓸 돈을 미리 환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수학적 사고를 하고 있다. 동시에 줄곧 수학은 어렵다고 말하면서.
한국인 최초 영국 옥스퍼드대 수학과 정교수이자 세계적인 수학자인 김민형 교수는 방학이면 한국을 찾아 대중을 위한 수학 강연을 한다. 수학은 나와 무관한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을 수학의 세계로 안내하기 위해서다. “여러분은 선한 사람입니까? 악한 사람입니까?”라는 물음을 시작으로 확률론을 설명하고, “서로에 대한 선호도가 다른 남녀 100명을 어떻게 짝지으면 안정적일까요?”라는 질문으로 게일-섀플리 알고리즘을 이야기한다. ‘수포자’는 알아보기 어려운 복잡한 수학 공식도 김민형 교수의 언어를 통하면 이해할 여지가 생긴다. 『수학이 필요한 순간』 은 그 강연의 정수가 담긴 책이다.
■ 수학의 아름다움, 세상의 아름다움
*‘지은이의 말’에서 편집자들을 향한 애정이 묻어났습니다. 출간 제의를 받고 소감이 어땠나요?
고맙고 기뻤습니다. 수학에 대해 소통할 기회가 생기는 것을 무척 즐겁게 생각하기 때문에 재미있게 받아들였습니다.
*1년여의 강의가 책으로 묶였어요. 책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요?
인플루엔셜 출판사 편집자들로부터 수학에 대한 궁금증이 담긴 질문들을 받았고, 이를 토대로 한국에 올 때마다 편집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했어요. 이 책은 그 강의의 내용을 엮은 것입니다.
*책에 실린 7개 강의는 어떤 기준으로 구성되었나요?
접근하기 비교적 쉬우면서도 수학의 진실된 맛을 전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수학에 호기심만 가지고 있거나, 학교에서 배운 수학을 어느 정도 기억하는 수준의 사람들이 들었을 때도 이해할 수 있을만한 내용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일반 대중을 위한 강의라고 해도, 겉핥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주제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대중과학서들 중에는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 멋있는 말로만 치장하려 쓴 글을 종종 봅니다. 그걸 피하고자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주제를 잡는 데 무척 고심했습니다. 여러 해 걸쳐 대중강연을 하며 쌓아둔 자료들이 책을 구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강연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공부를 할 때, 대화가 굉장히 큰 도움을 줍니다. 수학이라고 하면 혼자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모습을 주로 떠올리는데 사실 수학 공부를 할 때도 대화가 무척 중요하죠. 책을 읽고 난 뒤에도, 그 책을 읽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 훨씬 더 이해가 잘되고 오래 기억할 수 있잖아요. 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울만한 깊이가 있는 내용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부하는 게 중요한데, 그중에서 대화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 방법론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수학에 ‘아름답다’는 형용사를 붙이는 경우가 드문데, 교수님의 강의는 ‘수학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평을 받습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는 수학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수학을 업으로 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관점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화가에게 “그림을 왜 그리는가?”라고 물었을 때,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서라고 답하진 않을 것 같거든요. 진리를 추구하거나, 자신의 신념을 명확히 표현하려고 한다는 경우가 더 많겠죠. 그런 관점의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느끼는 수학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면 아마도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깨우치는 과정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있겠지요.
■수학은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책을 읽고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그동안 수학을 오해했다’는 것입니다. 수학은 어려운 논리 혹은 특별한 사고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생각할 때 수학은 세상을 이해해가는 과정입니다. 흔히 수학은 세상을 이해하는 것과 다른 종류의 문제라고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건 대중뿐 아니라 때로는 수학자들조차 하고 있는 오해이기도 합니다. 또, 보통 우리가 하고 있는 사고를 좀 더 정밀하고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수학적 사고를 하게 됩니다. 저는 거의 모든 사고가 수학적 사고로 이어지는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수학사에는 틀린 증명과 틀린 정리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수많은 실패가 현상을 이해하게 하는 데 더 큰 도움을 주곤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제약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178쪽)
*‘반드시 답이 있다’는 것도 흔한 오해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물론 답이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가령 ‘어떤 현상이 있는가, 여기에서 내가 알고 싶은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나면 이를 이해하기 위해 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정답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이해’거든요. 답을 찾는 것은 결국 이해하기 위한 과정의 한 도구일 뿐이죠.
*가장 인상적인 파트는 ‘확률론의 선과 악’입니다. 깊이 있는 사고를 가능케 하고, 편견에서 벗어나는 데 수학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내용이었어요.
그 부분은 수학적 사고는 특별한 사고가 아니라는 주장과도 연결됩니다. 우리가 매일 하는 생각을 좀 더 정확하고, 정밀하게 하려고 노력하면 수학적 사고가 되는 것이죠.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학적 사고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해당 부분에 나오는 “지능이 굉장히 높은 여자는 대부분 자기보다 지능이 낮은 남자와 결혼한다는 통계가 있는데 왜 그럴까요?”라는 질문을 수강생들에게 던지면 우스갯소리로 ‘여자가 남자를 이용하려 한다’든지 ‘똑똑한 남자는 똑똑한 여자를 싫어한다’는 등의 다양한 답변이 나옵니다. 이러한 답은 “근거가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단순한 느낌이고, 사회적 편견이니까요. 그런데 확률적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능이 ‘굉장히 높은’ 여자보다 지능이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수학적 사고는 정밀하게 생각하는 도구가 되곤 합니다. 물론 수학자도 사회적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어요. 하지만 보다 더 일관적으로 생각하고, 근거가 없는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데 수학적 사고가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대학에서 배우는 수학이론도 미래에는 상식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시대가 왔을 때,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현재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과 17세기 사람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상당히 다릅니다. 가령 우리는 확률에 대해 굉장히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거든요. ‘비 올 확률 37%’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알고, 복권을 사면서 기댓값이 얼마인지도 이해하고 있죠. 이처럼 미래에 대해 체계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큰 차이입니다. 또 우리는 별의별 신기한 이론들이 다 실현된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럴싸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면, 그걸 현실에서 만들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중요하다’는 시각도 100년 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운 관점이었을 거예요. 이런 변화를 토대로 비교적 단기간 내에 일어날 변화 중 하나는 정보와 굉장한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정보를 정밀하게 수학적으로 생각하는 방법론이 현재 부단히 개발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생활화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엑셀을 통해 여러 정보를 질서정연하게 정리하고, 간단한 수식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정보를 손쉽게 처리하는 현상이 지금보다 훨씬 심화될 거예요.
■수학을 못한다는 생각이 문제다
*우리 사회에는 ‘수포자’를 자처하는 이가 많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수학이 어려우니까요.(웃음) 사실 수포자는 전 세계적으로 많습니다. 저는 수학을 포기한 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 수학을 포기했기 때문에 수학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어떤 일을 할 때, 포부가 지나치게 크면 대체로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포부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그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국민의 수학적 목표가 높다는 뜻인가요?
높은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 효과가 나타나요. 첫째는 평균적 수학 수준이 굉장히 높습니다. 이뤄야한다는 기준이 높기 때문이죠. 사회에서 100을 요구하면 아무리 못하는 사람이라도 50은 달성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평균 수준 자체도 높아집니다. 이건 좋은 효과에요. 하지만 반대로 ‘나는 50까지밖에 못 갔기 때문에 수학을 못 한다’고 낙담하는 나쁜 효과도 나타나죠.
*그럼 교수님께서는 국내의 수학 교육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시나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하지만, 아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수학과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수학을 설명할 때 기초적인 함수를 알아보거나 어떤 산술들을 알고 있는 모습을 보며 깜짝깜짝 놀라곤 하거든요. 이건 외국에서는 거의 경험할 수 없는 일이에요. 전반적으로 수학 수준이 높다는 것은 교육의 힘인 것이죠. 또 중?고등학교 수학 선생님들의 수준이 굉장히 높아요. 실력이 좋을 뿐 아니라 교육열과 학구열이 강하다는 것도 무척 인상적이죠. 사회적으로 가르치고,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높다는 것은 상당한 강점이에요.
*그래서 포기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맞아요. 열의가 높은 만큼 실망도 강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웃음)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다함께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공계생 중에는 문학을 멀리하는 이들이 많고 문과생들은 수학, 과학과 담을 쌓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마찬가지입니다.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문과라고 해도 상당히 많은 이들이 수학을 알고 있고, 이공계생들도 충분히 문학을 즐길 줄 압니다. 컴퓨터로 계산을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그것도 수학입니다. 하지만 이걸 굉장히 낮은 수준의 수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수학을 못해’라고 단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같아요. 지금처럼 모든 사람들이 글을 읽고 쓰게 된 것은 상당히 최근의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문맹률도 낮죠.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면 어떨까요? 어느 수준에서 포기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이지, 서로 접하지 않는다거나 모른다는 가정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보다 이 분야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거나 혹은 내가 원하는 만큼 이룩하지 못했다고 해서 얻은 게 없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가진 것을 귀하다고 생각하는 관점이 필요해요.
*이해하면 달리 보인다
문과생의 입장에서 『수학이 필요한 시간』은 결코 쉬운 책이 아닙니다. 하지만 완벽히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끝까지 읽을 수는 있어요. 교수님의 친절한 설명과 풍부한 예시 덕분입니다. 깊이 있는 수학의 내용을 쉽게 전달하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이게 비결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사람과 대화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수학 전공자가 아닌 분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려고 하고, 수학에 관해 궁금한 것이 있는 분들께는 언제든지 제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그것을 설명해드릴 용의가 있어요. 방금 “모두 이해하지 못했지만,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한 번에 이해를 안 해도 괜찮다는 걸 아는 게 중요하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대충 보고 넘어가도 됩니다. 한참 지났을 때 다시 살펴보고, 또 살펴보면 언젠가 흡수할 수 있는 순간이 오거든요. 처음 읽었을 때는 무슨 내용인지 몰랐던 책을 몇 년 지나서 다시 펼쳤을 때 감동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수학도 그렇게 접근하는 게 필요합니다. 사람은 굉장히 복잡한 과정을 통해 배워나가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쓰면서 ‘어렵다면 그냥 넘어가도 괜찮다’는 직관을 전해주려고 노력했어요. 한 번에 이해하지 않아도 되니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고, 이 사고의 과정을 거듭해보라는 권유가 암시적으로 들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웃음)
*과거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부터 수학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언제부터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되신 건가요?
고등학교 때를 생각해보면, 수학보다 논리학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철학과에 입학을 했었어요. 아마 세상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텐데, 지금 세상의 관점에서는 수학적 사고 없이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너무도 자명하더라고요. 그래서 수학과로 전공을 바꾸었고, 대학에서 수학을 제대로 공부하면서부터 점점 흥미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대중을 위한 수학 강연에 힘쓰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첫 번째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학문을 하는 이의 가장 지속적인 즐거움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만한 사실을 알려주고, 사람들이 그것을 즐겁게 받아들여주는 것이거든요. 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위한 강의도 즐겁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과 이러한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경험이 참 좋습니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수학 교육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실력에 낙담하는 사람들을 북돋우는 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수학적 사고를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요?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거창하게 설명하면, 지금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두려움이 많잖아요. 물론 정당한 두려움도 있지만, 세상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오는 두려움도 분명 있을 거예요. 모르는 요소,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가 우리를 두렵게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볼 때, 결국 이해한다는 것은 삶을 지금보다 쉽게 만들어줍니다. 그런데 세상을 이해하는 데는 수학적인 사고가 굉장히 중추적 역할을 하죠. 수학과 관련된 예는 아니지만, 가령 모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모기를 공부해서 이해하게 되면, 모기가 다르게 보입니다. 이 동네에도 굉장히 여러 종류의 모기가 있어요. 모기마다 생활습관도 상당히 다르고요. 조금 공부를 하고 나면 모기가 나타났을 때 짜증이 나기 전에 궁금해지죠. ‘저건 어떤 모기일까? 왜 저런 식으로 행동할까?’ 하면서요. 그렇다고 물린 부위가 가렵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무작정 싫어하거나 두려워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이해가 우리 삶에 도움을 주는 예죠.
*모기를 정말 공부하신 건가요?(웃음)
아주 예전에 조금 공부를 했었어요. 지금은 다 잊어버렸지만. 하하하. 이해하면 싫은 마음이 사라지고, 궁금증이 생겨요. 수학적 이해력 또한 세상을 알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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