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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금동원(琴東媛) 2019. 5. 26. 21:55

 

 

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 문학과지성사

 

  그래, 리종, 이건 오로지 내 몸에 관한 일기란다.

  배설, 성장통, 성(性), 질병, 노화, 죽음
  가식도 금기도 없는 한 남자의 내밀한 기록, 『소설처럼』의 작가 다니엘 페나크가 차린 ‘삶’의 성찬!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에게 남긴 선물. 그 선물은 바로 “평생 동안 몰래 써온 일기장”이다. 30년 가까이 중고등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친 선생님, ‘말로센 시리즈’와 어린이 책 ‘까모 시리즈’ ? 『소설처럼』 『학교의 눈물』의 작가, 기발한 상상력과 소박하면서도 재치 있는 입담으로 대중성과 문학성을 두루 인정받는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나크의 장편소설 『몸의 일기』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2012년 출간 당시, 제목부터 독특한 이 소설은 프랑스 서점가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몸’의 일기라니…… 도대체 몸에 관해 일기를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투병기? 건강을 지키는 비법? 아니면 몸을 멋지게 가꾸는 비법? 페나크는 놀라운 발상과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성실성으로 문학에서는 낯설지만 동시에 우리의 삶에서는 익숙한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한 남자가 10대에서 80대에 이르기까지 ‘존재의 장치로서의 몸’에 관해, 몸이 신호를 보낼 때마다 상태를 충실히 기록해온 것이다.(무려 한 남자의 70년이 넘는 삶을 일기로 풀어놓는 작업은 영감 못지않게 성실성을 필요로 하는 작업일 것이다.)

  주인공은 아주 진솔하게, 우리가 잊어버리고 사는, 혹은 잃어버린 몸을 직시하고 몸의 신호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이건 생리학 논문이 아니라 내 비밀 정원이다”라고 했듯이, 몸에 관해 쓰겠다고 작정하고 쓰기 시작한 일기엔 결과적으로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삶의 애환이 다 녹아 있다.

 

  ○작가 소개

 

 

   다니엘 페나크(Daniel Pennac)는 1944년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태어나,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아시아·유럽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창 시절에는 열등생이었으나 기숙학교에서 생활하는 동안 독서에 남다른 흥미를 갖게 되었다. 프랑스 니스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고 1996년부터 파리와 근교의 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1973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말로센 시리즈’와 어린이 책 ‘까모 시리즈’를 통해 대중성과 문학성을 두루 인정받으며 작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밖에 강압적인 독서 교육을 비판하고 책 읽기의 즐거움을 깨우치는 『소설처럼』을 비롯한 에세이와 다수의 소설, 시나리오를 발표했고, 2012년 출간된 일기 형식의 소설 『몸의 일기』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1995년 교직에서 물러나 집필 활동에 전념하는 한편, 정기적으로 교실을 찾아다니며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미스터리 비평상(1988), 리브르앵테르 상(1990), 르노도 상(2007)을 수상했다.

  ○역자

  조현실은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까모는 어떻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나?』 『공주의 발』 『괜찮을 거야』 『내 인생이 바뀐 날』 『뚱보, 내 인생』 등이 있다.

 

  ○책 속으로

  내가 매일 일기를 쓴 건 그와는 다른 몸, 그러니까 우리의 길동무, 존재의 장치로서의 몸에 관해서란다. 사실 매일 썼다곤 할 수 없지. 모든 걸 다 적었으리라고도 기대하지 말거라. 난 매일매일의 느낌을 적은 게 아니란다. 열두 살 때부터 여든여덟 살 마지막 해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일이 생길 때마다―우리 몸은 놀랄 거리를 제공하는 데 인색하지 않지―기록을 한 거란다. [……] 사랑하는 내 딸, 이게 바로 내 유산이다. 이건 생리학 논문이 아니라 내 비밀 정원이다. 여기야말로 여러 면에서 우리가 공동으로 가꾼 영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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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세 1개월 10일 1936년 11월 20일 금요일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을 정확히 묘사하기만 한다면, 내 일기는 내 정신과 내 몸 사이의 대사(大使) 역할을 할 것이다. 또 내 감각들의 통역관이 될 것이다.

  14세 9개월 25일 1938년 8월 4일 목요일
  두려워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무슨 일이든 당할 수 있는 거야! 그렇다 해도 신중할 필요는 있지. 아빠가 말했었다. 신중함이란 지성을 갖춘 용기란다.

  17세 2개월 17일 1940년 12월 27일 금요일
  [……] 난 내 몸을 관찰해보고 싶다. 아직도 내겐 내 몸이 속속들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물론 대놓고 이렇게 대답하진 않았다). 의학 연구가 아무리 진척되었다 해도, 이 낯선 느낌을 없애주진 못할 것이다. 루소가 산책길에 식물채집을 했던 것처럼 나도 내 몸을 채집하고 싶다. 죽는 날까지. 그리고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

  26세 11개월 13일 1950년 9월 23일 토요일
  모나의 사랑의 구두점. 이 쉼표를 내게 맡기면 느낌표로 만들어줄게.

  35세 1개월 24일 1958년 12월 4일 목요일
  [……] 우리 몸에서 풍겨 나오는 것들, 즉 실루엣, 걸음걸이, 목소리, 미소, 필체, 몸짓, 표정 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 곁에 있다 사라진 사람들을 떠올려볼 때, 그런 것들이야말로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유일한 흔적들인 것이다. 전투기 안에서 가루가 되어버린 자기 오빠에 대해 팡슈는 이렇게 말했다. 입술이고 입이고, 그래, 다 산산조각 날 수 있어. 하지만 미소는 아냐. 절대로 사라지지 않아. 그녀는 또 작은 글씨체를 통해 자기 엄마를 기억한다고 했다. 엄마가 쓴 r자나 v자의 완벽한 곡선을 떠올리며 울컥한다고. [……]

  44세 10개월 3일 1968년 8월 13일 화요일
  우리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선, 우리의 모습보다도 우리의 습성이 더 많은 추억을 남길 거라는 생각을 하면 흐뭇해진다.

  45세 1개월 2일 1968년 11월 12일
  [……] 사춘기 소년은 어떻게든 말하는 고역을 피하게 해줄 수 있는 표정을 지으며 의미 있는 침묵에 빠져든다. 그럴 때 얼굴은 영혼의 X레이 사진이 된다. [……] 그 무표정에 아버지는 과민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이런 죽은 사람 얼굴 같은 표정을 마주해야 할 만큼 아들에게 잘못한 게 뭐지? 풀지 못할 수수께끼 때문에 유치해진 아버지는 자문한다. 그러고는 외칠 것이다. 이건 부당해!

  49세 28일 1972년 11월 7일 화요일
   내 이명, 내 신트림, 내 불안증, 내 비출혈, 내 불면증…… 결국 이것들이 내 자산인 셈이다. 수백만 명의 사람과 함께 공유하는.

  50세 3개월 1974년 1월 10일 목요일
  만약 이 일기를 공개하야 한다면, 우선은 여자들에게 바치고 싶다. 그 대신 나도 여자들이 자기 몸에 관해 쓴 일기를 읽어보고 싶다. 미스터리를 다소나마 벗겨보고 싶어서다. 무슨 미스터리냐고?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자기 젖가슴의 모양과 무게에 관해 어떤 느낌을 갖는지 전혀 모른다. 또 여자들은 남자들이 자기 성기의 발기에 관해 어떤 느낌을 갖는지 전혀 모른다.

  52세 2개월 4일 1975년 12월 14일 일요일
  어제저녁 R네 집에서 식사하던 중 열띤 논쟁이 벌어졌고, 난 명실상부하게 좌중을 휘어잡고 있었다. 이제 막 모두의 동의를 얻으려는 찰나…… 돌연 말문이 막혔다! 기억이 차단된 것이다. 발밑의 함정에 빠진 기분. 그런데도 난 다른 표현을―새로운 표현을―찾으려 하는 대신, 미련하게도 문제가 된 그 단어만 찾고 있었다. 도둑맞은 주인처럼 분노를 느끼며 기억을 추궁했다. 원래의 단어를 내놓으라고 떼를 썼다! 망할 놈의 그 단어를 찾는 데 얼마나 집착했던지, 끝내 포기하고 다른 표현을 선택한 순가, 이번엔 대화의 주제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다행히도 사람들은 이미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62세 9개월 16일 1986년 7월 26일 토요일
  불안이 죄의식으로…… 모나는 내 얘기를 듣더니 ‘죄의식을 갖게 하다culpabiliser라는 단어가 프랑스어에 생겨난 건 1946년이었다고 설명해준다. 그리고 ’죄의식에서 벗게 하다deculpabiliser’라는 동사는 1968년에 생겼다고. 역사가 스스로에 관해 이야기하던 시절……

  62세 9개월 17일 1986년 7월 27일 일요일
  타인이 내 불안증을 치료해줄 수 있는 건, 날 속속들이 알지 못하거나 어느 정도 무관심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나도 일하는 동안엔 불안을 이길 수 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사회적 인간이 불안에 떨고 있는 인간을 눌러버린다. 그리고 곧 남들이 내게 기대하는 바에 순응한다. 주의, 충고, 축하, 명령, 격려, 농담, 질책, 진정…… 난 대화 상대, 동료, 경쟁자, 부하 직원, 좋은 상사 혹은 꼰대가 된다. 한마디로 성숙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이다. 나의 역할이 늘 내 안의 불안을 압도한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들, 우리 식구들, 그들은 매번 피해를 입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확히 내 사람들이요, 나 자신의 구성 요소들이요, 평생 내가 벗어나지 못하는 유치한 어린애의 속성에 희생되는 제물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그레구아르가 희생을 치른 것처럼.

  70세 5개월 3일 1994년 3월 13일 일요일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는 몸이 있기 때문에 죽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죽음은 한 문화의 소멸입니다.

  73세 1개월 18일 1996년 11월 28일 목요일
  소변 줄을 단 채 밖에 나갔다. [……]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내 기능,―오줌 누는 기능―당연히 내 것이라 믿고 있었던 그 기능이 문제다. 언제나 내 의식에 복종하고, 내 욕구에 따라 작동하고, 내 결정에 따라 충족되던 기능, 그 기능이 이제 내 의지를 벗어나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 보이지 않아야 할 치부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 평생 감추고 입 다물고 지내왔던 것이 갑자기 눈과 손이 닿는 곳, 그것도 주머니 안에 들어 있다니.

  75세 1개월 28일 1998년 12월 8일 화요일
  티조가 죽기 며칠 전,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J. C에게 전화를 걸었다(티조의 친구들은 거의가 청소년기에 사귄 이들이다.) 가장 친하다는 그 친구는 티조를 보러 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늘 활기 넘쳤던’ 티조의 이미지가 ‘깨지는’ 걸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빌어먹을. 그래서 친구 홀로 임종을 맞게 하겠다, 이거지. 꽤나 섬세한 척하지만 속이 빤히 들여다보인다. 난 정신적인 친구들이 싫다. 그냥 살과 뼈만 있는 친구들이 좋다.

  86세 9개월 16일 2010년 7월 26일 월요일
  우리 몸은 끝까지 어린아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

 

  ○출판사 리뷰

 

  가장 가까운 것조차도 알 수 없다는 겸손
  도서1팀 김성광(comma99@yes24.com)
  다니엘 페나크의 『몸의 일기』는 한 남자가 10대부터 80대까지 자신의 몸에 관해 기록해 온 일기다. 남자는 평생 동안 아무도 몰래 이 일기를 썼고, 지금 막 세상을 떠났으며, 죽기 전 이 일기를 딸에게 서프라이즈 선물로 남겼다. 그런데 아무리 유품이라지만, 딸은 굳이 이걸 읽어보고 싶을까? 아버지의 몸을, 아버지의 자위와 코딱지와 배설까지 모두 기록한 이 일기를 말이다. 부녀 사이는 가장 가까운 관계일 수도 있지만, 부녀 사이의 몸만큼은 가장 먼 관찰대상이다. 가깝다고 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무조건 잘 알고 싶은 것도 아니다.

  사실 딸이 실제로 읽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가까운 것과 아는 것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그가 ‘몸의 일기’를 쓰겠다는 결심을 한 13세 어느 날의 일기는 이렇다. “모든 사물은 무엇보다도 먼저 관심의 대상이다. 따라서 내 몸도 관심의 대상이다. 난 내 몸의 일기를 쓸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마저 사물로 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는 가장 가장 가까운 것조차도 아직 알지 못하는 외부의 것이었다.

  이런 결심의 배경에는 냄새나는 한 사건이 있다. 친구들의 장난으로 나무에 묶인 채 해가 넘어갈 무렵까지 혼자 남겨진 그는, 개미떼가 자신을 파먹어 버릴 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 공포는 그의 괄약근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렸고 바지는 똥범벅이 되었다. 이 치욕을 겪은 것은 몸이었으나 낳은 것은 심리였다. 다시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았던 그는 ‘몸의 일기’를 쓰기로 결심했고, 평생에 걸쳐 실천했다. 내 기분과 생각에 따라 몸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내 몸이 이런 반응을 보일 때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늘 성실하게 관찰하며 적어나갔다. 그는 자신의 몸을 잘 알고 있다고 결코 확신하지 않았다.

  이 책의 미덕으로는 흔히, 인간 혹은 남성의 몸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겪게 되는 변화를 비밀스러운 영역까지 세세하게 묘사한 점을 많이들 얘기한다. 그리고 몸이 정신에게 영향을 미치고 정신은 또 몸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흥미롭게 서술하며, 육체/정신 이분법과 거리를 두는 점 역시 매력적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내 마음을 특히 끄는 것은 주인공이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몸을 잘 알지 못하는 것으로 대했다는 사실과 그래서 기록을 끝까지 이어갔다는 사실이다.

  이 겸손함과 성실함이야말로 ‘모르겠다’는 말과 달리 그가 누구보다도 몸에 대해 잘 알게 했을 것이다. 이 겸손하고 성실한 남자의 덕택에, 우리는 바지를 묵직하게 만드는 체험을 직접 하지 않고도 인간의 몸에 대해 굉장히 광범위한 지식을 얻게 된다. 무언가를 깊이 알아간다는 것은, 모른다는 겸손과 집요한 성실을 끝까지 유지할 때가능한 일인 것 같다. 성실한 사람은 많아도 겸손한 사람은 많지 않은 세상에서, 나는 이 책을 읽고 더 없이 든든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소설이 맞다. 다니엘 페나크는 13세에 똥범벅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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