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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 /토마스 만

금동원(琴東媛) 2019. 5. 31. 00:13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

 토마스 만 /윤순식 역  | 아카넷 |

 

 

 

  괴테와 버금가는 작가 토마스 만이 남긴 마지막 작품, 집필 기간 50년, 토마스 만 문학의 총결산

  1929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토마스 만은 괴테와 버금가는 작가로 간주된다. 토마스 만 역시 괴테처럼 다작의 작가로 알려져 있고, 그의 작품의 대부분은 번역되어 있으나 유독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은 제대로 번역이 되어 있지 않다. 토마스 만 특유의 만연체와 그만이 구사할 수 있는 독특한 아이러니로 인해 이 작품의 번역은 무척 난해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집필 기간이 무려 50년이고, 자서전적 고백의 형식을 취하며, 특히 토마스 만이 남긴 마지막 작품으로서 그의 문학을 총결산하는 의미도 있어서 이의 번역이 주는 의의는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작가 소개

 

  1875년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곡물상이자 시의회 의원이고, 어머니 율리아는 반은 포르투갈계이고 반은 크레올계인 남부 출신으로, 그는 아버지에게는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토마스 만의 유년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사가 정리되면서 가족들은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토마스 만은 일찍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1893년에는 산문 습작을 했으며, 자신이 발간하는 『봄의 폭풍우』지에 글을 기고했다. 토마스 만은 다니던 김나지움을 그만두고 가족이 이미 1년 전에 이주한 뮌헨으로 가서 화재 보험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하지만, 곧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1895년에서 1896년까지 뮌헨 공과대학에서 미학, 예술 문학, 경제 및 역사 강의를 들었다. 그 시절, 김나지움 시절부터 이미 그를 사로잡았던 슈토름, 헤르만 바르, 폴 부르제, 헨리크 입센 등을 탐독하였고, 직접 『짐플리치시무스』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01년 첫 장편소설 『부르덴브르크 가의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이 무렵 단편소설들을 모아 단편집『토니오 크뢰거』(1903)도 발표하였다.

  1905년 뮌헨 대학교 수학 교수의 딸인 카타리나(카챠라는 애칭으로 불림) 프링스하임과 결혼하여 3남 3녀가 태어났다. 하지만 토마스 만의 가족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토마스 만의 두 여동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듯이, 아들 클라우스 만이 자살했고, 막내 미하엘 만도 신경안정제 과용으로 의문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탈출하다가 남편을 잃은 모니카 만은 정신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1912녀 폐병 증세가 있어 부인이 다보스 요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문병을 간 토마스 만은 그곳의 분위기와 그곳에 체류하는 손님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느낀 인상에도 매료되었는데, 이런 체험을 글로 쓰기 시작, 점점 방대해져 12년 후에 완성된 것이 『마(魔)의 산』이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창작을 중단하고, 평론집 『비정치적 인간의 성찰』(1918)과 같은 정치 평론을 발표했다. 전쟁 초기 독일 문화와 독일 시민 계층의 와해를 걱정하며 국수주의적 입장을 보이며 형 하인리히 만과 불화를 겪게 되지만, 평론「독일 공화국」(1922)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민 계급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던 중 1929년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1931년 히틀러가 총통에 취임한 이후 나치에 협조하지 않은 작가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1933년 바그너 서거 50주년이 되던 날, 토마스 만은 뮌헨 대학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뇌와 위대성〉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을 끝으로 그는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1935년에는 나치 정권에 대해 공개 반박을 하기에 이르렀고, 193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 교수가 되어 나치 타도를 부르짖었으며,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49년 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 강연 청탁으로 16년 만에 독일 땅을 밟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토마스 만은 현실의 공산주의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의 기본 이념인 사회적 평등을 존중했다. 그래서 구동독 정권에 대해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매카시 위원회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다. 이에 환멸을 느낀 토마스 만은 1952년 미국을 떠나 스위스 취리히로 향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12일 F.실러 사망 150주년 기념식 참석차 독일 여행 중 발병하여 취리히로 되돌아와 8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키 작은 프리데만 씨Der kleine Herr』(1897),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Buddenbrooks』(1901), 「트리스탄Tristan」(1903), 「굶주린 사람들Die Hungernden」(1903), 「글라디우스 다이Gladius Dei」(1903), 「토니오 크뢰거」(1903), 「신동Das Wunderkind」(1903), 「벨중족의 혈통」(1905), 「피오렌차Fiorenza」(1906), 「대공 전하」(1909), 「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1912), 「주인과 개Herr und Hund」(1919), 『마의 산Der Zauberberg』(1924), 「무질서와 젊은 날의 고뇌」(1926)등이 있으며, 『요셉과 그의 형제들』(1943)는 1926년에 쓰기 시작해서 1943년에야 비로소 완간되었다. 또한 『바이마르의 로테Lotte in Weimar』(1939), 『파우스트 박사Doktor Faustus』(1947), 『선택받은 사람』(1951), 「속은 여자Die Betrogene」(1953)가 있으며, 1910년부터 쓰기 시작한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Die Bekenntnisse des Hochstaplers Felix Krull』은 1954년 〈회상록 제1부〉라는 제목이 덧붙여져 출간되었으나, 결국 이 소설은 그의 미완성작으로 남았다.

 

 

  ○역자

 

  윤순식은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공군사관학교 독일어 전임교수를 역임했으며,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박사후 연수(Post-doc) 과정으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현대독문학을 연구하였으며, 한양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하고 오랫동안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했다. 현재 덕성여자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에는 『아이러니』, 『토마스 만』, 『전설의 스토리텔러 토마스 만』이 있으며, 역서로는 『교양』, 『일반정신병리학』, 『역사의 지배자』, 『작약등(芍藥燈)』, 『아이 사랑도 기술이다』, 『마의 산』, 『변신』, 『괴테, 토마스 만, 니체의 명언들』, 『로스할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등이 있다.

 

 

  ○ 출판사 리뷰

 

  토마스 만은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을 1905년에 구상하고, 1910년에 집필하기 시작하여 1954년에 완성한다. 이 기간 동안 일어났던 제1차 세계대전, 나치 제국, 제2차 세계대전 등의 끔찍한 체험을 거친 후 토마스 만은 삶과 현실과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얻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한 비정치적 인간’의 정치적 개안을 보여 주는 『마의 산』(1924), 나치의 유대인 핍박과 학살이 너무나 끔찍해서 직접적인 저항이 무의미함을 자각한 결과 파시즘을 지원하고 있는 지식인들한테서 신화를 빼앗아 그 신화를 인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4부작 『요젭과 그의 형제들』(1943), 정치적으로 미숙한 독일 민족이 악마와 같은 히틀러와 결탁하게 되어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정치적 비극을 낳았음을 보여 주는 『파우스트 박사』(1947), 그리고 이후 보다 낙천적이고 신화적인 세계로 방향을 전환시켜 주인공 그레고리우스가 죄인으로부터 교황으로 고양되는 내용을 담은 『선택받은 사람』(1951) 등에서 토마스 만의 새로운 인식에의 고뇌를 넘어선 사투를 벌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선택받은 사람』의 발표 직후 토마스 만은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을 다시 집필하기 시작한다. 이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은 토마스 만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몇 가지 특이한 점을 지니고 있다. 집필 기간이 거의 50년에 가깝다는 점과 자서전적인 고백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특히 중요한 것은 토마스 만의 다른 모든 작품이 주도면밀한 가공에 따라 완결되어 출간된 데 반해, 이 작품은 세 번이나 미완의 단편으로 남아 있는 미완성작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 1편이 1922년 독일에서 「어린 시절의 책(Buch der Kindheit)」, 2편이 1937년 암스테르담에서 펴낸 확대판, 마지막으로 1954년에 이르러 「회상록 제1부(Der Memoiren erster Teil)」로 단편(斷篇) 형태로 발간된 토마스 만의 최후 작품이다.

  토마스 만의 마지막 작품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이 그답지 않게 미완성으로 끝나지만, 그것이 또한 토마스 만다운 특징을 보인다. 왜냐하면 미완성이라고는 하지만 완결된 작품으로 보아도 전혀 손색이 없고, 또 독자들에게 스스로 채울 수 있는 여백을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작품은 토마스 만의 초기로부터 후기까지 이르는 전 과정을 같이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의 산』이 시대적인 지성을 너무나도 무겁게 지니고 있고, 『요젭과 그의 형제들』이 종교적인 소재를, 그리고 『파우스트 박사』가 지나친 문제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면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은 소재와 지성이 가장 균형 잡힌 형식으로 소설화되어 있어서, 토마스 만 문학의 핵심인 삶과 정신 사이의 조화의 원칙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토마스 만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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