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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내 삶에 스며든 헤세

금동원(琴東媛) 2019. 6. 5. 09:00

 

 

 

내 삶에 스며든 헤세 』

  강은교 등저/전찬일 기획  | 라운더바우트 |

 

 

 

 『데미안』 출간 100주년을 맞아 헤세 문학이 다시 조명 받고 있다. 헤르만 헤세는 1877년에 태어나 1962년 85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그의 첫 책은 22세 때에 펴낸 시집 『낭만적인 노래들』과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이다. 그리고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받아든 책은 1957년 80세 기념으로 펴낸 『헤세전집 제7권』이다.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 중반까지 85년 동안 살며 58년에 걸쳐 수많은 작품을 상재했던 헤세. 이를 기리고자 사회명사 58인이 헤세 문학을 긴급(?) 소환했다. 

 

 

책 속으로

 

열다섯, 외롭고 가난한 소년의 가슴에 어느 날 헤세가 걸어왔다.
헤세를 읽으며 보낸 그 겨울밤의 맑고 시린 바람 소리는
지금도 내 안에 살아있다.

인생에
『데미안』 발간 100주년에 부쳐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인생에 주어진 권리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진정한 나를 찾아 살겠다는 한 가지 권리뿐
인생에 주어진 책임은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사랑하라, 사랑하라는 한 가지 책임뿐
그리하여 인생에 주어진 단 하나의 진리는
행복하려면 행복의 반대쪽으로 걸어가라는 것
거기 또 다른 내가 울고 있으니까
사랑은 내가 아닌 남이 되는 일이니까. ……--- 5p(박노해 시인의 헌시)

 


  헤세는 히피들 사이에 그들이 늘어놓은 책자 가운데서 『유리알 유희』 『황야의 이리』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왜 이 작품들이 히피의 교본이 되고, 그들의 애독서가 되었을까. 헤세 문학의 본질은 그 속에 조용히 숨어있다. 반전, 반체제로 대변되는 히피들의 정신은 헤세의 소설 및 시와 연결된 바 비폭력의 유머가 그의 핵심이었던 헤세문학의 정수에 그야말로 홀딱 매료되었던 것이다.
헤세의 시와 소설은 곧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는 태어난 지 한 세기 가까이 되어서야 본모습이 제대로 평가되었다.

 …… --- pp.11~12 (김주연 문학평론가의 헌사)



  종로 거리, 하교하면 부지런히 달려가 헤세의 작품이나 사르트르의 작품을 한 책방에서 10페이지씩 읽곤 하던 책방들. 숭문사, 종로서적…. 분주한 사람들의 분주한 신발들, 상점들,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잔뜩 얼굴을 찡그리고 서 있는 가로수들, 항상 만원이던 88번 버스.
그 시절의 내 거리 체험들은 최초의 장편 에세이집(장편 에세이는 그 이후 아직 쓰지 못하고 있지만) 『그물 사이로』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아브락사스를 찾아 알 수 없는 길을 걸어갔다. 미지의 공간에 그 신의 새는 살고 있을 것이었다.

…… --- pp.23-24

  제1차 세계대전은 헤르만 헤세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 자신에게는 물론 그의 작품 세계에도 그랬다. 헤세는 당시의 여러 유럽 지식인들처럼 전쟁 초기에는 이 전쟁이 국가의 주권을 지키는 의로운 전쟁이라고 이해하고 자원해서 참전했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못했고 곧 자신의 결정을 깊이 후회하면서 고뇌에 빠졌다. 이런 배경에서 2,000만 명의 희생자를 야기한 이 엄청난 파괴가 끝나고 파리평화회담이 열린 1919년, 헤세는 그 유명한 『데미안』을 출간했고, 전쟁의 와중에 ‘O Freunde, nicht diese T?ne’라는 제목의 반전 에세이를 발표했다.
  친구가 누구고 적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이 에세이에서 헤세는 국가주의 이념이 야기한 사회적이고 정신적인 광란과 이념이 조장하는 적대적 관계가 유럽인들이 공유하는 문화적 정체성을 파괴한다고 지탄했다.

…… --- pp.72-73

  슬픔은 가지런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정열이 때로 서글퍼지는 이유는 그 배열이 가지런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헤세의 책이 성장통을 다룬다고 말한다. 부분은 동의할 수 있지만 전체를 동의하긴 곤란하다.
『데미안』 속에는 인간의 격조에 가장 가까운 비명이 담겨있다. 다정한 비명들이여! 안부처럼 캄캄하게 내게로 오시라!
헤세의 책엔 뱀이 바위 위를 지나간 자리 같은 것이 남겨져 있다. 햇볕을 피해 뱀이 축축한 아랫배를 밀고 지나간 바위 위를, 습도와 온도와 냄새를 헤세는 독자에게 남긴다. 그것은 성장보다는 정념에 가깝다. 나는 그곳에 인기척을 남기기 위해 처음으로 기록을 시작했다.

 …… --- p.85

  바로 이 전환의 시대에 헤세는 68세대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많은 영감과 상상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 독문학자들은 시장이 전면적으로 지배하는 야만의 시대에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는 투쟁의 선봉장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어쩌면 뿌리칠 수 없는 필연이고 운명이다. 독문학자들이 맛본 세계가 바로 인간의 가장 깊은 심연이고, 인간의 가장 높은 존엄이기 때문이다.

…… --- p. 109

  목수가 되어 읽은 『데미안』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았다. 『데미안』이 담고 있는 다소 극단적으로 양분된 ‘두 세계’의 인식은 적어도 공예를 하는 내게 실감하기 어려운 설정이다. 목수라는 직업을 가진 내가 느끼는 세상은 ‘밝음’과 ‘어둠’으로 대비되며 나누어져 있지 않다. 두 세계가 한자리에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두 세계, 아니 수많은 세계의 적층이 하나의 세계라고 느낀다. 어느 한 세계도 대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과 시절에 따라 각기 다른 세계가 다가오거나 내가 선택해나갈 뿐이다. 어느 시절의 어느 누군가에게 나는 싱클레어였고, 어느 시절 어느 누군가에게 나는 프란츠 크로머였던 것이다.

 …… --- p.144

  나의 10대 역시 격정과 좌절, 우울과 환희가 파도처럼 일었다가 사그라지는 시절이었다. 입시가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굴러도 뭔가 될 거라는 막연한 희망과 다소의 자만심은 늘 나를 미래로 달려가게 등 떠미는 힘이었다.
최인호의 『우리들의 시대』를 토론하면서 우리들의 아브락사스는 어떤 존재이고 우리들은 어떻게 알을 깰 것인지 떠들어댔다. 지금에야 고백하건대, 나는 사실 『데미안』보다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더 좋아했다.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종교적으로 무거운 『데미안』보다는 골드문트적 감성과 격정이 나에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pp.166-167

  나는 외롭고 싶지 않은 ‘실존적 상태’에 처할 때마다 그 시절에 배운 고독의 감정 속으로 되돌아간다. 『데미안』은 생애의 옆구리나 갈비뼈, 염통이나 허파, 손톱, 발톱 같은 것을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운명의 형식을 알려준 이름이다.
인간의 영혼에 파문을 남기는 체험이 존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그만큼 알기 쉽게 보여준 예는 없다. 다들 언젠가는 누군가를 좋아했으나 그것을 잃고 보니 그것이 단지 ‘누군가’가 아니라 자신의 본체였음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잃음으로써 자신의 옛날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 pp. 191-192

『데미안』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책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이해했던 몇 안 되는 내용 중 하나인 ‘카인의 표지’는 초등학교를 마칠 즈음 이미 끝나가고 있던 나와 기독교의 인연을 결정적으로 끊어버렸으며, 이어지는 삶에 대한 절망적인 질문들은 사춘기의 고통스러운 나날들과 최루가스로 범벅이 된 대학 시절을 관통하며 내 삶을 휘몰아쳤다.
알속에서 껍질을 깨부수려고 몸부림치는 새의 이미지는 삶이라는 심연에 던져진 깊은 파장이었다.

 …… --- p.201

  나는 오랜 공직 생활을 하면서 참 많은 크로머들을 만났다. 얼핏 거칠게 보이지만 대부분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는 힘없고 여린 이들이었다. 내가 힘든 시간을 지나오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그늘을 미처 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두운 골목에서 울어본 사람은 안다. 어둠 속으로 걸어갈 때까지 한 사람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이 얼마나 길고, 상처는 또 얼마나 깊고 아득한지를.

…… --- pp.279~280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건 30대 중반이었다. 미세먼지 문제를 다룬 『아픈 아이들의 세대』를 쓰면서 내 안의 감성을 생각해보니까 나에게 가장 강렬한 것은 전쟁을 반대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전쟁을 찬성하는 남편과 그의 친구들 대화에 실망해 말다툼하고 템스강에 뛰어든 버지니아 울프의 편지가 그렇게 가슴을 때렸다. 제국주의와 전쟁에 반대한 19~20세기의 남자들, 그들은 진짜로 시대 불화의 삶을 살았을 것 같다. 축구 강국이고 축구에 미친 이탈리아에서 축구 보기를 싫어하며 살았던 움베르토 에코가 ‘축구반대’를 외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때 어렴풋이 알았다. 이런 내 감성이 처음 형성된 순간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사실을.

 …… --- pp.297~298

  싱클레어가 데미안과 사귀며 하나의 몸으로 성장해간 것처럼, 새가 알을 깨는 고통을 통해 다른 세상으로 나아간 것처럼, 한 청년이 사랑을 경험하고 떠나면서 아득한 감동을 느낀 것처럼, 우리도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고통을 받아들였던 젊은 날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
그것이 바로 새가 아브락사스를 향해 날아가듯, 한 청년을 태운 기차가 다시 세상을 향해 떠나듯,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면서 ‘치명적 도약’을 수행해간 순간이 아니었겠는가.

…… --- p.325

 
 
  ○출판사 리뷰
 
  헤세의 작품들 중에서도 『데미안』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세계 문학사의 변곡점적 성장소설이자 시대소설! 그 점은 국내 한 일간지의 독자 투표 결과(조선일보, 『데미안』은 왜 압도적 1위가 됐나, 2017. 8. 11)로도 드러난바 있다. 『데미안』이 이제 막 18세에 접어들며 성인이 된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1위로 뽑힌 것.(496p, '왜 헤르만 헤세인가' 중)

  책을 기획한 전찬일(영화?문화 콘텐츠비평가)은 ‘기획의 변’을 통해 이같이 밝히면서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BTS(방탄소년단) 또한 2016년 두 번째 앨범 『Wings』의 타이틀곡 「피 땀 눈물」의 뮤직비디오를 만들며 그들 스스로 『데미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점을 강조했다. 이렇듯 1919년 출간된 『데미안』은 헤세 문학의 정수다. 특히 한국 독자들과의 인연은 유독 깊다. 『내 삶에 스며든 헤세』의 출발은 바로 그 점에서 비롯됐다. ‘헤세 문학이 내 삶에 어떻게 스며들었는가?’ 원고청탁의 주제는 명료했다.

  헤세 읽는 법, 헤세 품는 법, 헤세와 걷는 법 등등 다양한 필자들이 다양한 소재로 쓴 ‘헤세 문학 입문서’

  헤르만 헤세의 시집이나 소설은 누구나 한 번쯤은 펼쳐보았을 것이다. 그의 대작 『데미안』이 올해로 100년을 맞았다. 이 기념비적 헤르만 헤세의 거작을 논하면서 우리의 시성 윤동주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왜일까. 1919년에 『데미안』이 탄생했고 그 2년 전인 1917년 윤동주 시인이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으니 탄생의 시차는 있지만 동시대의 개화기 문학 사조를 조명하며 이 ‘수기’를 쓴다.(206p, ‘헤르만 헤세에 바치는 망백 자연주의자의 육필 수기’ 중)

  글의 처음을 이렇게 시작한 박상설 ‘캠프나비’ 대표는 올해 91세다. 필진들의 면면은 이렇듯 다양하다. 문인들과 대학교수들이 참여했는가 하면, 정치인과 종교인, 그리고 영화와 음악, 미술계 등 다양한 영역의 문화 예술계 인사들과 인권운동가(고상만), 장인(김윤관목가구공방 대표목수), ‘아이러브스쿨’ 개발에 함께했던 IT기업인(고진석), 교육기업인(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 북카페 사장(김정순), 사회운동가(김종백 한국신지식인협회 중앙회 회장), 술 전문가(이종기 ‘오미나라’ 대표), ‘책벌레’로 유명한 변호사(최재천 전 국회의원), 그리고 글로벌 기업인(허필수 한국케냐협회 회장) 등 사회 각계를 망라한 여러 필자들이 ‘내 삶에 스며든 헤세 이야기’를 수필 형식으로 풀어냈다.

  이들의 글 속에는 헤르만 헤세의 명성을 드높인 소설 『페터 카멘친트』(1904년)를 비롯해 『수레바퀴 아래서』(1906), 『데미안』(1919), 『싯다르타』(1922), 『황야의 이리』(1927), 『나르치스와 골드문트』(1930),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 준 『유리알 유희』(1943) 등 여러 걸작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 작품에 빠졌을 무렵의 후일담과 밑줄 그었던 문장들과 헤세 문학을 다시 꺼내든 이유와 청소년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이유 등을 작품의 줄거리와 함께 소개한다. 따라서 ‘헤세 문학 입문서’라 해도 손색없다.

  강은교, 김경주, 박노해, 이외수, 이해인 등 여러 문인들, 필진으로 참여

  열다섯, 외롭고 가난한 소년의 가슴에 어느 날 헤세가 걸어왔다. 헤세를 읽으며 보낸 그 겨울밤의 맑고 시린 바람 소리는 지금도 내 안에 살아있다.(4p, 박노해 시인의 ‘헌시’ 편 중)

  책은 박노해 시인의 헌시로 시작된다. 『내 삶에 스며든 헤세』에는 유독 ‘열다섯’이 많다. 그리고 ‘겨울밤’과 ‘시린 바람 소리’가 잦다. 15세 시절은 봄이다. 하지만 헤세에 취했던 이들의 그즈음은 아직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었다. 한국전쟁이 있었고, 4.19혁명이 있었고, 5.16과 유신, 그리고 ‘서울의 봄’을 한 방에 날렸던 80년 광주와 수많은 적폐가 켜켜이 쌓여갔던 시기였다.

  이들 문인들의 글은 제목만 봐도 작가들의 글답다. 강은교 시인의 글 제목은 ‘나의 헤세 시절을 위하여’다. 또 김경주 시인은 ‘기억의 습작’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신동엽 시인의 50주기로 분주한 가운데도 원고청탁에 응한 김형수 신동엽문학관장(시인)은 ‘자기가 파괴한 세계를 동경하는 존재’라는 제목을 보내왔다.

  이밖에도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이자 문화 월간지 「쿨투라」 편집주간인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다시 세상을 향해 떠나듯 헤세의 시와 소설’이란 제목을, 그리고 독일 뮌헨에 머물며 이미륵기념사업회 독일회장 직을 맡고 있는 박수영 작가는 ‘아름답고 힘든 길’이란 제목을 달았고, 이외수 소설가는 ‘맨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란 제목으로 작금의 사회 문제를 지적했다. 또 수녀시인으로 유명한 이해인은 ‘헤르만 헤세를 기억하면서 흰 구름 시인에게 흰 구름 수녀가 쓰는 편지’란 제목을 통해, 그리고 이번 책을 출판한 ‘라운더바우트’ 대표이자 여행작가인 최희영은 ‘『데미안』에서 길을 찾다’란 제목으로 헤세 문학이 자신의 삶에 끼친 영향을 돌아봤다.

  헤세 문학 통해 ‘인문의 부활’ 강조한 학자그룹 필자들의 깊은 담론 담아낸 책

  개인적 성숙을 바탕으로 성숙한 사회를 향한 사회적 실천에 나선 에밀 싱클레어. 『데미안』 탄생 100년, 개인과 사회의 근본이 위협받는 작금의 현실 앞에서 그의 면모가 새삼 다가서는 건 무슨 이유일까. 우리 시대의 싱클레어를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289p, ‘에밀 싱클레어,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 혹은 『데미안』의 말 씨(seeds)' 중)

  오성균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글의 마지막 문장이다. 학자그룹 필자들은 이번 책을 통해 헤세 문학 ‘깊이 읽기’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맡았다. 특히 헌사를 쓴 김주연 문학평론가(숙명여대 독문학과 명예교수)를 비롯, 김누리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중대), 정현규 한국헤세학회 회장(숙대), 정경량 노래하는 인문학 연구소장(목원대) 등 독일 문학 권위자들이 필진으로 참여해 그 깊이와 넓이를 더했으며, 헤세 문학의 힘을 설명하는 한편 문장 속 ‘행간 읽기’의 안내자 역할에도 충실했다.

  이밖에도 ‘로쟈’란 필명이 더 익숙한 인문학자 이현우는 헤세의 고향 독일 칼브(Calw) 여행기와 유럽 문학사를 버무리며 자신의 인생진로까지 바꿨던 『수레바퀴 아래서』의 문학적 가치를 해설했고, 가톨릭대 교수 출신의 인문학자 김경집은 ‘『데미안』은 청소년기에 한 번 읽고 세상 다 아는 것처럼 여기는 간이역이 아니라 한평생 자신의 삶이 타성에 젖을 때마다 꺼내 영혼을 말리는 건조대로 삼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리고 『88만원 세대』의 경제학자 우석훈은 ‘헤르만 헤세의 감성’이 필요한 이유를 역설했고, 그가 ‘인류학 최고의 스타’라고 평한 권헌익 영국 캠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 석좌교수는 제1차 세계대전이 헤르만 헤세와 그의 작품에 끼친 영향을 깊이 있게 설명했다.

  또 필자로 참여한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는 “결국 데미안도 기성세대의 ‘꼰대’가 만든 하나의 세계일 수 있다”고 비꼬면서 “알을 뚫고 나온 새는 더 이상 데미안이 말하는 신에게로 날아가지 않고 ‘헬조선’에서 벗어나 자기 인생의 길을 무소의 뿔처럼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고, 박홍규 영남대 법학과 명예교수는 ‘왕따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데미안』은 절대적인 정직을 통한 자아의 규명과 자기 길의 발견, 그리고 자율적인 존재로서의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주장한 새로운 왕따였다”는 논리를 펼치기도 했다.

『내 삶에 스며든 헤세』를 통해서는 학자그룹 필자들의 청년기 시절을 들여다보는 맛도 제법 크다. 언론인 출신의 윤승용 남서울대 총장은 ‘시대와의 불화와 맞짱 뜨도록 만들었던 데미안의 힘’을 회고했고, 중국 베이징대 ‘한국인 1호 박사’ 김태만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는 10대 시절의 독서 경험이 아직도 자신의 정신세계를 지배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밖에도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이기도 한 이미희 삼육대 교수는 10대 시절에 읽었던 『데미안』을 추억하며, ‘춤삶’에 대한 단상을 잔잔하게 풀어썼고, 사단법인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 이사장이기도 한 임대근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자신의 10대 시절과 전혜린의 수필을 버무리며 헤세의 시 세계를 살폈으며, 최해범 창원대 총장은 ‘『데미안』 100주년에 부쳐’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데미안』의 주인공인 싱클레어가 그랬던 것처럼 내면에 울려 퍼지는 자기 성찰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계, 종교계 인사들도 필자로 참여 그들이 읽은 『데미안』, 그들에게 스며든 헤세 문학은?

  나는 오랜 공직 생활을 하면서 참 많은 크로머들을 만났다. 얼핏 거칠게 보이지만 대부분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는 힘없고 여린 이들이었다. 내가 힘든 시간을 지나오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그늘을 미처 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두운 골목에서 울어본 사람은 안다. 어둠 속으로 걸어갈 때까지 한 사람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이 얼마나 길고, 상처는 또 얼마나 깊고 아득한지를.(279p~280p, ‘시장이라는 직업병 : 프란츠 크로머를 위한 변명’ 중)

  민주당 소속의 오거돈 부산시장은 『내 삶에 스며든 헤세』를 통해 ‘말더듬증’으로 고생했던 자신의 지난 시절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자신이 만났던, 그리고 지금도 만나고 있는 ‘크로머’들을 위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나아갈 길은 또 무엇인가를 제시했다. 그리고 필자로 참여한 김선동 지유한국당 의원은 ‘데미안은 꼭 한 번은 아파하고 경험한 듯 느껴지는 내 청춘의 데자뷔’라고 고백하며 ‘정치 세계의 현실’과 ‘일에 혼을 갖고 뛰는 국회의원이 돼보겠노라고 다짐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부족한 싱클레어로서의 고민’을 버무렸다. 그러면서 그는 ‘알을 깨고 재탄생해야 할 세대는 정작 성인 세대’라는 점도 강조했다.

  또 필자로 참여한 명법 스님(은유와마음연구소 대표)은 ‘『데미안』을 읽는 법’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네다섯 살 너무도 이른 나이에 도달했던 ‘절대적인 무’에 대한 생각을 다시 일깨운 책이 『데미안』이었다”고 고백하며, “최루가스로 범벅이 된 대학 시절을 관통하며 내 삶을 휘몰아쳤고, 알속에서 껍질을 깨부수려고 몸부림치는 새의 이미지는 삶에 심연 깊은 파장을 던졌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그는 “좋은 책이란 지성의 표면을 뚫고 들어가 영혼의 심연을 뒤흔드는 것”이며 “엄청난 집중력으로 자신을 직시하도록 하는 것, 그리하여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꾸어놓는 파문을 일으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헤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전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곽효근 목사 또한 『데미안』이 젊은이들의 자아 성장교과서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이유가 발간 당시의 현실적 배경에 있다고 진단했다. 즉 ‘1차 세계대전 직후, 특히 전범 국가인 독일의 경우는 그 전흔의 잔재 속에서 허탈감에 젖어있었고, 그들에게 전쟁이 주는 아픔이 도리어 또 하나의 생명을 창출하기 위해 알에서 깨어나는 기회를 부여받게 된다는 표현이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절대적 위로가 되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창조주의 활동으로 성경을 인식하고 진리로 믿는 목사의 신분으로는 『데미안』이 제시하는 ‘인간 자아 성장을 향한 교과서’로 읽어낼 수 없었다”는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다양한 분야의 평론가들과 예술인들에게 스며든 헤세 문학, 그리고 그들의 삶과 끼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지금의 방황이 나중을 위한 고상한 분투라는 것을, 피부가 느끼는 이 저열한 욕망은 당장의 실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저 고귀한 업적을 위한 시험이라는 것을. 이 중대한 사실을 왜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을까. 진짜 인생이 여기에 있다. 『데미안』은 ‘모든 인간의 삶은 각자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임을 알려준다. 극도로 아름다운 언어로 참된 인생을 열어젖힌다. 그리하여 누구나 『데미안』과 함께 궁금하던 인생의 윤곽선을 그리는 것이다. 문학도에서 문인으로, 독서 청년에서 편집자로…. 나한테는 그랬다.(421p~422p, ‘안녕, 데미안’ 중)

  출판인이자 출판평론가인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의 고백이다. 『내 삶에 스며든 헤세』에는 이렇듯 다양한 분야의 평론가들과 예술인들에게 스며들어 확대 재생산된 헤세 문학의 힘이 날것으로 담겨 있다. 사실 그들의 글맛이 이번 책의 백미다. 특히 자신의 예술적 끼와 헤세 문학이 만나 어떤 작품으로 승화되었는지, 그리고 그 작품들이 다시 세계 곳곳으로 확산돼 21세기 지구촌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음미해보는 맛이 크다.

  우선 영화평론가 심영섭(헤세, 영원히 내 현명한 멘토의 일부분으로)과 감독 고봉수(I Have a Mission from God), 조정래(내 인생의 데미안), 배우 김영선(데미안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안미나(알을 깬다는 것) 등 영화 쪽 사람들의 글이 눈에 띈다. 그리고 음악평론가 임진모(문학적 소양 인도해준 ‘나의 교사’, 헤세)와 뮤지션 양지훈(Again Enter, Demian)의 글과 성악가 우주호(내 노마드적 예술 여행은 헤세의 노마드적 삶과 닮은꼴), 피아니스트 임현정(‘옴’에 대한 단상), 대한민국 오페라단연합회를 이끌고 있는 이소영(알을 깨고 나오기 위한 투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등 음악동네 사람들의 글 읽는 재미 또한 크다.

  이밖에도 김미혜(헤세의 『황야의 이리』가 극단 명과 극장 명으로), 유민영(나는 헤세 덕분에 망했다) 등 연극평론가 두 사람이 필자로 참여했으며, 국내 최고 권위의 춤평론가 김태원(유신의 우리에 갇힌 ‘황야의 이리’)과 뮤지컬 프로듀서 송한샘(영원히 지속되는 꿈은 없다?), 세종문화회관 사장 김성규(예술, 내 인생의 데미안), 사진작가 김홍희(알과 알 사이) 등도 이번 책의 필자로 초대됐다.

  필자로 참여한 화가 이영희, 한희원의 작품들로 미학적 완성도 높인 책

  나는 나의 길을 가면서 그림 그리는 것을 동반자로 삼았다. 헤르만 헤세가 시작(詩作)을, 소설 쓰기를, 나아가 그림 그리기를 동반 삼았듯이.(357p, 이영희, ‘기다림은 모든 사람의 희망이기 때문이다-헤세의 길과 이영희의 길’ 중)

  생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꿈을 꾼다. 꿈은 알을 깨뜨리는 투쟁 속에서 얻어진다. 우리가 걷는 생의 시간은 ‘아브락사스’의 숙명을 지니고 있다.(480p, 한희원, ‘나의 싱클레어, 나의 데미안’ 중)

  58명의 필자들이 참여하다보니 500p 분량의 제법 두꺼운 책이 됐다. 시각적 이미지 없이 활자만으로 꾸미기엔 답답했다. ‘헤세 실크로드’ 교차점 곳곳의 오아시스가 필요했다. 화가 이영희와 한희원이 그 문제를 해결했다. 헤세 독자들을 위해 작품 8점을 대가 없이 제공한 것. 책의 중간 중간에서 만나는 「산동성 가는 길」(2003), 「산티아고 가는 길」,(2016), 「삶의 길」(2016-2017), 「북한산 가는 길」(2018)은 ‘길의 화가’ 이영희의 작품들이다. 그리고 「밤」(1993)과 「빈들」(2012), 「바이올린 켜는 사람-양림 골목길」(2016), 「푸른 길」(2019) 등은 시인이기도 한 한희원의 그림이다.

  귀한 그림들을 흔쾌히 협찬해주신 이영희, 한희원 두 화가, 「2019 ‘데미안’ 프로젝트」 추진위원들, 그리고 이 ‘기념비적인 단행본’을 가능케 해준 모든 분들께도 그 못지않은, 크고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499p, ‘기획의 변’ 중)

  기획자 전찬일은 화가 두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이번 출간 작업을 마무리했다. 책은 2018년 가을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겨울과 봄을 거치며 발아했고, 이제 2019년 초여름의 문턱에서 작은 열매 하나를 맺게 됐다. 초고를 본 출판평론가 김성신의 말대로 ‘『내 삶에 스며든 헤세』는 전찬일의 넓은 오지랖에서 나온 보기 드문 책’이다.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30년가량 문화예술계와 함께했던 그의 넓은 인맥과 추진력이 58명의 묵직한 필자들을 초대할 수 있었다는 평가인 것. 표지 글씨는 캘리그래피스트 최옥덕이 썼고, 디자인은 PND 작품이다. 500p 양장본.

  [책 속으로 이어서] 
 
  고교 시절 남들보다 심각하게 방황했음에도 불구하고 난 대학에서도 또다시 시대와의 불화에 시달리며 좌충우돌해야만 했다. ‘긴급조치’로 상징되는 억압적 정치 체제인 박정희 유신 독재 체제는 대학가를 자연스레 민주화 투쟁의 전초기지로 만들도록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난 별다른 두려움이나 주저함 없이 학생운동 대열에 뛰어들었다.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가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전체주의의 망령에 맞서 공동체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던 절친 데미안의 영향을 받아 그 모임에 참여해 우정과 사랑을 만끽했을 뿐 아니라 미래 세계에 대한 고민의 해결을 모색했던 것처럼.
…… 331p~332p(윤승용 남서울대 총장의 글 ‘시대와의 불화와도 맞짱 떴던 데미안의 힘’ 

  대부분의 방송국이 먹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신의 결핍이나 영혼의 결핍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헤르만 헤세에게 진단을 의뢰한다면 온 국민에게 정신적 발육 부진과 영적 미성숙이라는 차트를 내밀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내밀어 보이면서 지독한 혐오감과 구토감을 표명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 364p(이외수 소설가의 글 ‘맨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중)

  열두 살 때부터 시인을 꿈꾸고, 그 꿈을 이루어 가장 사랑받는 세기의 시인이 된 당신. 구름의 다양한 변화에 매번 놀라워하며, 시간마다 계절마다 구름 관찰하기를 즐긴 구름의 시인인 당신. ‘작가는 독자에게 빛을 통과 시켜주는 창문일 뿐’이라고 말한 평론가이기도 한 당신.
당신은 또한 화가이기도 했지요. 시들어가는 백일홍의 색채가 아름답고 신기해서 환성을 지른 화가이기도 한 당신의 수많은 그림 중 저는 1921년에 그린 「책들을 올려놓은 걸상」, 그리고 1930년경의 작품으로 알려진 「나선형 계단」을 좋아합니다. 그 비슷한 계단이 우리 집에도 있거든요.
…… 376p(이해인 수녀시인의 글 ‘헤르만 헤세를 기억하면서 흰 구름 시인에게 흰 구름 수녀가 쓰는 편지’ 중)

  지난해 가을 헤세의 고향 칼브(Calw)를 다녀왔다. 독일문학 기행에 참여한 일행과 함께였다. 칼브는 독일 남부의 작은 마을이다. 현재 인구는 2만 3,000명가량이라고 하는데 헤세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세기 말에는 훨씬 적었을 것이다.
헤세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고, 마을 한복판에 헤세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헤세에 대해 알지 못하고 방문한 여행자라 하더라도 칼브가 헤세의 마을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마을 곳곳에 ‘헤세의 길’이란 표지판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헤세의 시구절도 새겨 넣은 표지판들이다. 거기에 더하여 마을로 들어서는 니콜라우스 다리 중간에는 노년의 헤세가 칼브를 다시 찾은 모습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칼브에서 헤세는 여전히 살아있는 작가였다.
…… 382p(이현우 인문학자의 글 ‘독일 문학 기행단과 헤세의 고향 칼브를 거닐다’ 중)

  그러나 고백하자면 『데미안』을 처음부터 독파했던 건 아니다. 돌아보면 소년은 아마도 소설 앞머리 묘사를 따라가는 일이 벅찼을 것이다. 착 달라붙지 않는 이국의 삶과 생각을 이해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이었다.
『데미안』을 다시 만난 건 전혜린 때문이었다. 일세를 풍미했던 수필가의 이름과 처연한 처지를 꾹꾹 눌러 담았을 것만 같은 유고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때문이었다. 지금 그녀의 수필에서 기억나는 건 ‘검다’는 색깔 이미지와 ‘슈바빙’이라는 뮌헨의 동네 이름이 거의 전부다. 그러나 전혜린과 슈바빙은 한참 동안 내 정신을 구속하고 있었다. 소년에게 그들은 낭만을 완성하기 위해 도달해야 할 불가지(不可至)의 대상이자 공간으로 남았다.
…… 398p~399p(임대근 한국외대 중국어통번역학과 교수의 글 ‘다시 헤세에게 가는 길, 혹은 전혜린과 흰 구름’ 중)

『데미안』으로부터 받은 영향 때문이었을까? 나는 25세에 ‘사명 선언서’를 작성했다. 앞날의 직업에 대해 고심하던 중 평생 공부하는 학자가 되어야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무엇보다도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비롯해 지치고 힘든 사람들과 인문학을 통해 터득한 삶의 지혜를 나누며 그들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 431p~432p(정경량 노래하는 인문학 연구소장의 글 ‘헤세를 노래하다’ 중)

  ‘나만의 데미안’을 만나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외려 그때가 시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홀린 듯 「귀향」을 시작했고, 그때부터 ‘실패와 구걸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영화 「귀향」이 제작되기까지 무려 14년이라는 세월이 걸렸고 오랜 제작 기간,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가며 매몰차게 돌아섰습니다. 마지막으로 「귀향」의 핵심 동지들을 만나기까지 수많은 거절의 역사, 그리고 무엇보다 제도권 속에 있던 그 어떤 투자, 배급의 손길도 잡을 수 없었던 절망적인 상황들…. 돈도 없는 무명의 영화감독에게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 452p(조정래 영화감독의 글 ‘내 인생의 데미안’ 중)

  돌이켜보면 『데미안』은 성장의 한 모델이었다.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알을 깨뜨려야 할 줄 알았다. 세상은 번데기가 탈바꿈하듯 끊임없이 알에서 깨어나는 변혁과 창조의 과정인 줄 알았다. 열정과 노력으로 거쳐야 되는 과정인 줄 알았고, 그 정도의 사색과 철학이 예비되어 있는 줄 알았다. 반드시 그래야만 되는 줄 알았다.
그러했을까. 매몰차게 묻자면 과연 성장했을까 성숙했을까. 나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 나와 세상과의 끊임없는 대화, 나와 세상 너머와의 대화는 결코 끊기지 않았을까.
…… 459p(최재천 변호사의 글 ‘『데미안』으로부터의 자유’ 중)

  미술대학을 다니면서 수많은 데미안과 싱클레어를 만났다. 밤마다 막걸리를 마시며 예술과 세상을 한탄하고 노래했다. 광주 양동시장 닭장머리 거리에 있는 적산가옥 2층에 있는 선배 작업실에서 밤이 새도록 선배들의 인생철학을 말없이 들었다. 그 시절 나에게는 모두가 데미안이었다.
…… 479p~480p(한희원 화가의 글 ‘나의 싱클레어, 나의 데미안’ 중)

  내가 40여 년을 헤세와 더불어 살아오며 그에게 남다른 주목과 존경을 바쳐온 또 다른 까닭은 그가 개별 인간의 자아 성찰·탐구는 물론 인간 일반의 근원적 존재성을 탐색한 문화예술가-인간이어서다.
그 어떤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80대 중반 저 세상 사람이 될 때까지 평생을 노마드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말이다. 내가 아는 한 분야를 불문하고 그런 길을 헤세처럼 초지일관 걷다 저 세상으로 떠난 이는 없다. 헤세야말로 작금의 우리 시대에 가장 절실히 소환·요청돼야 할 존재라고 여기는 것은 그래서다.
 …… 497p(전찬일 영화평론가의 ‘기획의 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