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제사 크리스핀 저/유지윤 역 | 북인더갭
사회 각 분야에서 페미니즘의 요구가 거세지는 시기에 오히려 오늘날의 페미니즘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매우 색다르고 도발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책이 출간되었다. 미국 페미니즘 사상가 제사 크리스핀(Jessa Crispin)의 신작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는 자기역량 강화에 몰두하는 라이프스타일 페미니즘을 끝내고 가부장제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급진적 페미니즘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남성들에 대한 분노와 울분을 넘어서 이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냉철하게 직시하는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작가 소개
1978년 미국 캔자스 주의 링컨에서 태어났다. 페미니즘 사상가이자 작가로 온라인 매거진 『북슬럿』(Bookslut)을 창립하고 편집자로 활약했다. 웹진 『북슬럿』은 『뉴욕타임즈』 등 주요 매체에서 주목을 받았고 그녀의 서평은 『가디언』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현재 『뉴욕타임스』 『가디언』 『워싱턴포스트』의 기고자로 있으며 페미니즘과 책에 관련된 칼럼을 쓰고 있다. 저서로 『죽은 부인들 프로젝트』(The Dead Ladies Project), 『죽은 숙녀들의 사회』(The Creative Tarot)가 있다.
○목차
1. 보편적 페미니즘의 문제
2. 여성들이라고 꼭 페미니스트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3. 무엇을 선택하든 당신은 페미니스트?
4. 페미니즘이 결국 가부장제의 시녀가 된 이유
5. 자기역량 강화란 나르시시즘의 다른 말일 뿐이다
6. 우리가 선택한 싸움
7. 남자는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8. 안전은 타락한 목표다
9. 앞으로 가야 할 길
○출판사 리뷰
도대체 페미니즘은 무엇을 한 것인가?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MeToo)운동이 전세계로 확산된 지금, 우리에게도 페미니즘은 더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또한 하루가 멀다 하고 페미니즘 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정치·문화·사회 전반에 걸쳐 페미니즘은 하나의 큰 주제로 자리잡고 있다. 문제는 페미니즘이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잡으면서 원래 페미니즘이 지닌 급진성은 점점 사라지고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는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는 점이다. 제사 크리스핀은 현재 유행하는 페미니즘을 가차없이 비판하면서 이를 ‘보편적 페미니즘’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보편적 페미니즘은 2세대 페미니즘의 급진성을 내버리고 좀더 친근한 버전의 페미니즘을 만들었다. 이는 여성이 삶에서 받는 억압을 정치·사회적으로 맥락화하는 대신 모든 것을 개인의 선택으로 치환한다. 가령 안드레아 드워킨 같은 2세대 페미니스트들의 논의는 성(性)과 결혼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보편적 페미니즘은 자기를 꾸미고 계발하여 사회에 나서는 사람은 누구나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함으로써 그 급진성의 자리에 자기역량 강화라는 헛된 의식을 심어놓았다. 저자는 이러한 개인적 라이프스타일 페미니즘이 지배문화의 가치체계는 그대로 둔 채 페미니스트라는 이름표만 따온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페미니즘은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에 여성 CEO가 몇명인지, 의대 졸업생 중 여성이 몇명인지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그 여성 CEO가 아이들과 여성들을 착취한다고 해도, 또 힐러리 클린턴 같은 여성 정치인이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민간인을 희생시키는 국제개입에 찬성한다고 해도 그리 놀라지 않는다.(1장)
보편적 페미니즘이 여성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꿈을 내세워 더 많은 여성들을 포섭하는 동안, 여성들은 사회적 가치들, 즉 가족이나 이웃, 돌봄의 가치들을 희생해야만 했다. 그 대가로 돌아온 것이 치열한 경쟁이며 추락한 직업 안정성, 어마어마한 학자금 대출이라면 도대체 페미니즘은 무엇을 한 것인가? 여성들이 가정과 돌봄, 공동체 같은 여성의 가치들에 남성의 자리를 마련하는 대신, 경쟁과 가부장적 가치 같은 초남성성의 세계에 들어가고 말았다는 저자의 지적은 그래서 뼈아프게 다가온다. 이제 여성들은 가부장제에 도전한 페미니스트들을 혐오하고 그 대신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위해 강력하고 세련된 중산층 여성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페미니스트를 추앙한다.(2장)
남은 것은 각자도생, 역량강화뿐?
저자가 보기에 이런 중산층 여성 페미니즘의 한계는 명백하다. 어느 정도의 돈과 권력을 얻은 여성들은 더이상 모두의 평등을 위해 싸우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싸우기 때문이다. 가령 육아문제에서 이들은 모든 여성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자기 아이들을 사립학교 같은 좀더 괜찮은 교육기관에 맡기는 일에 더 몰두한다. 건강보험과 의료, 공공주택 등 저소득층 여성들에게 시급한 문제들은 페미니스트의 관심사에서 멀어져갔다. 그 결과 페미니즘에 남은 것은 각자도생이자 역량강화뿐이다.(3장)
역사적으로 가부장제는 남성 가장의 권력과 재산을 위해 여성을 착취하고 이용하는 제도적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가부장적 기업, 가부장적 국가로 이어졌다. 이 시스템은 권력과 돈의 논리를 중심으로 돌아가며 항상 누군가를 착취해야 하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여성혐오 같은 현상은 그저 여성에 대한 막연한 혐오가 아니라, 동성애혐오나 빈곤혐오와 마찬가지로 상대를 비인간화여 정상/비정상을 구분하려는 가부장제의 구조로 봐야 한다. 문제는 페미니즘이 돈과 권력에 접근하면서 가부장제에 맞서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에 적극 참여한 것이다. 이로써 페미니즘 덕분에 더 평등한 세상이 온 것이 아니라, 여전히 불평등한 세상에 여성만 더 많아진 결과가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4장)
이 책에서 가장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부분은 이른바 ‘남자들과의 싸움’에서조차 페미니즘이 돌아볼 것이 많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우선 그 싸움의 심리적 기제는 ‘투사(投射)’일 경우가 많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즉 남자들을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대책 없으며 골치 아픈 사이코패스로 치부해버림으로써 여성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쉽게 안심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하나 싸움의 기제는 ‘분노’다. 여성혐오 발언이나 성희롱에 관련된 남성들에 대한 페미니즘의 대응은 흔히 욕이 난무하고, 시위가 조직되며, 결국 해당 남성이 해직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는 여성의 마음속에는 이른바 리스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여성이 겪은 모든 불의와 모욕, 나약했던 순간들이 기록돼 있으며 이 목록은 ‘분노문화’의 동력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터져나오는 분노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남성들은 끊임없이 등장하는가? 저자는 이런 분노가 개개인을 솎아내는 기능을 할 뿐 여성혐오를 구조적으로 뿌리 뽑는 역할은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처벌에 집중하는 분노문화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경쟁과 폭력은 보상하고 연민과 보살핌의 가치는 깎아내리는 이 시스템 자체와 싸워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5-6장)
낭만적 사랑을 넘어서 새로운 상상력으로
페미니즘이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는 분노문화만이 아니다. 오히려 더 결정적인 한계는 낭만적 사랑과 결혼이라는 제도 밖으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만약 한 여성이 낭만적 사랑과 결혼의 구조 밖에서 살기로 결심하다면, 그녀에게 남은 선택은 고독한 삶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여성 다수가 사랑과 결혼 안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외의 삶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인데, 이는 새로운 양육 공동체나 한부모 육아 같은 문제를 상상하지 못한 페미니즘 탓도 크다. 지금까지 여성들은 낭만적 사랑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자기역량 강화에 주력해왔다. 낭만적 사랑에 기대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에 여성들은 어린 시절부터 미래의 배우자에게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돈과 직업이 경쟁인 것처럼 사랑도 경쟁이기 때문에 사랑과 섹슈얼리티에서 이득을 보는 여성은 이를 지키기 위해 경쟁에 나선다. 페미니즘은 결국 여성들이 낭만적 사랑의 복합체 밖에서 살아볼 만한 인프라와 상상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7장)
여성의 안전 문제와 관련해 페미니스트들이 분노하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여성들은 이 문제로 고통을 받았고, 그 고통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그러나 여성의 안전은 지난 수세기 동안 남성들의 선전도구로 이용당해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성들은 전쟁에 나서고 싶어할 때마다 자신들의 적이 여성에게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를 부각해왔다. 또한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여성의 안전을 이용했다. 무조건 여성들만 피해자라는 인식도 위험하다. 여성도 거짓말을 할 수 있고 남성을 함정에 빠트릴 수 있다. 도덕적·정치적 올바름으로 무장하고 울분을 터뜨리는 것이 꼭 정의로운 방식은 아니다. 페미니즘은 시민적 정의와 더 올바른 싸움에 눈을 떠야 한다.(8장)
이 책의 역자가 지적하듯이 과연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한국에서도 똑같은 맥락으로 읽힐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그 막강하다는 한국의 아이돌들조차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회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이 그간 논의돼온 페미니즘에 얼마간 균형추를 달아주고 새로운 질문들을 던져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문제를 인정하고 직시하는 일은 올바른 길을 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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