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8.18 18:17
금동원 시인
너는 매미고 나는 시인이다/온전한 목소리로 속삭이기엔/고통이 너무 큰 기다림이었기에/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다//
아득한 세월을 품어온 너의 핏빛 울음이/가도 가도 끝이 없는 나의 노래가/똑같은 이름표를 단 뜨거운 가슴이라는 것//
-금동원 ‘8월의 노래’ 중
매미 소리가 한창이다. 찌를 듯한 매미 울음소리를 매우 좋아한다. 가까운 친구들조차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를 주고 별스럽다고 놀리지만 사실이다. 귀와 머리를 어지럽히는 소음이 아니라 한여름의 무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처럼 느껴진다. 매미 소리가 바람결로 느껴지는 건 어린 시절 추억과 관련이 있다.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여름방학이면 외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신 시골에서 한여름을 보내곤 했다. 방학이 끝날 무렵까지 얼굴이 새까매지도록 외가 마을의 뒷산과 들판, 시냇가와 신작로를 헤집고 다녔다.
그때 매미 소리인지 실제 바람인지 알 수 없지만 희한하게 온몸은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온 듯 나른하고 오싹해지는 상쾌함에 무더위는 순식간에 모두 달아나버리곤 했다. 차르르르… 부서지며 세차게 흔들리던 미루나무 잎사귀와 쉴 틈 없는 매미의 숨찬 울음소리는 대합창이자 잊을 수 없는 환상의 오케스트라 연주였다. 어른이 돼서도 그 기억의 장치는 사라지지 않아서 도시 한복판 뙤약볕 밑에서 울어대는 매미 소리도 바람처럼 느껴져 시원했다.
오랫동안 살던 아파트 단지의 매미는 유난스럽고 극성스럽게 울어대는 말매미로 방송을 탈 정도의 소음으로 뉴스거리였다. 동네 주민들은 매미 우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잠도 못 자고 짜증스럽다며 민원도 내고 개체 수를 줄이는 방안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에게는 쉬지 않고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자장가 소리로 들리니 비정상이거나 이상한 것이 분명하다. 한여름 잠시 낮잠이라도 들면 온 사방에서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시원한 바람처럼 느껴지니 스스로 신기할 정도이다. 언젠가는 이웃들과 동석한 자리에서 이 증상을 잘못 이야기했다가는 한 대 얻어맞을 분위기여서 모른 척 매미 소음의 괴로움에 동의해주기도 했다.
문득 공감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공감이란 말 그대로 누군가의 감정에 비슷한 느낌을 공유하거나 그 상황을 이해해주는 정서적 교류를 말한다. 말로는 누구나 이해와 공감의 의미를 사용할 수 있다. 마음이 아닌 머리로 얼마든지 고개를 끄덕여줄 수 있다. 아는 척 그럴듯하게 추임을 넣어줄 수 있지만, 심정적으로 동감하고 위로한다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공감능력’이라 한다. 경험과 추억의 공통분모가 없더라도 진심으로 타인의 마음을 읽고 고민과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감정을 역지사지(易地思之)할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 따뜻하고 기분 좋은 표정과 말투로 다가갈 수 있다. 한여름의 찢어질 듯한 매미 울음소리에서 미루나무를 흔들어대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무덥고 습한 한여름 잠시 함께 행복해질 것 같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나의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으로 말해요 (0) | 2020.12.15 |
---|---|
커피 만나러 가는 길 (0) | 2020.10.20 |
그리움은 문득 다가선다 (0) | 2020.06.17 |
아버지가 남긴 글과 글씨 (0) | 2016.01.09 |
구에디우마(Guediouma M Sanago) (0) | 2015.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