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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시는 이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금동원(琴東媛) 2020. 9. 19. 14:08

 

《시는 이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김언저 | 난다 |

 

○작가 소개

1973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산업공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98년 [시와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시집 『숨쉬는 무덤』 『거인』 『소설을 쓰자』 『모두가 움직인다』 『한 문장』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산문집 『누구나 가슴에 문장이 있다』 등을 출간했다. 박인환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책 속으로

시는 이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시는 고독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가 사랑에 대해서 말하는가. 아니다. 시는 사랑에 대해서도 증오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시는 무엇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시는 무엇 자체다. 시는 고독 자체이고 결별 자체이며 또한 사랑 자체다. 증오도 애원도 슬픔도 모든 감정도 시는 말하지 않는다. 시는 그것들 자체다. 그런 점에서 시는 저항하지 않는다. 항의하지도 않는다. 절망은 더더욱 모른다. 시는 저항 자체이자 항의 자체다. 절망을 모르는 시는 절망 그 자체다. 우리가 절망에 대해서 얘기할 때 그 시가 잠깐 동원될 수 있을 뿐이다. 저항에 대해서도 항의에 대해서도 시는 있는 그 자체로 잠깐 동원된다. 그 이상을 위해서 헌신하는 시가 있다면 그 또한 자유겠지만, 시는 자유에 대해서도 모른다. 왜냐하면 시는 자체니까. 그것 자체이자 무엇 자체로 시는 말한다. 말하는 것 자체로 그것은 있다. 시가 있어야 한다면 바로 그 순간에 있기 위해서 있다. --- p.32~33

나는 아무것도 쓸 수 없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들어차지 않는 곳에서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내 생각은 산책을 잊어버린 지 오래. 내 얼굴은 사색을 놓아버린 지 몇 달. 어쩌면 몇 년, 몇 년의 누적 끝에 찾아온 폐허와 다름없는 감정 상태. 어떤 글에도 체중이 실리지 않는 시간을 또 얼마나 견뎌야 할까. 엄살같지만 사실이다. 글에 대한 모든 생각의 정지 상태. 시간에 대한 모든 구상의 답보 상태. 이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면 아마도 시를 접어야 하리라. 이 상태를 어떤 식으로든  견딘다면 그래서 또 다른 얼룩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한동안은 더 무언가 쓸 수 있는 상태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

---P82

 

 그중 하나만 잠깐 언급하자면 바로 '대학'이다. 과거에는 대학이 문학에서 그 자양분을 수혈받는 처지였으나(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학교수를 할 수 있었던 꿈같은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은 대학에서 문학이 배출되고 육성되고 문학의 운명까지 좌우하는 시절이다. 말하자면 대학이 문학을 점령해버린 시대이다. 현장으로 대변되는 문학이 학문으로 대변되는 대학의 시스템에 종속되면서 현장과 유리된 논문 같은 비평이 버젓이 나돌아다니고 현장 감각을 상실한 비평의 잣대가 현장 문인들( 특히 시인들)의 운명까지 좌우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한 술 더 떠서 이제는 시인들마저 대학에 적을 두면서 제 운명을 맡기고 있으니 가히 대학 천하의 시대가 시단에 도래한 셈이다.

덕분에 시인들에겐 한동안 두 가지 길밖에 없을 것 같다. 대학에 항복하든가 아니면 기생하든가. 그도 아니면 스스로 방치되는 시간을 묵묵히 견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어쩌나. 대학이 문학의 적이라는 것을 공감하면서도 막상 진로에서는 대학에 적을 두는 시인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니. 대학은 이제 풍요로운 무덤이다. 수많은 문학이 알아서 기어들어가 자진하고 있으니

---P207

 

아쉽게도 한국 시인들에게는 만년의 작품으로 신화가 된 사례가 매우 드물다. 당연히 만년을 준비하는 시인들이 참고할 만한 선례도 드물 수밖에 없다. 젊은 시절보다 만년에 더 풍성한 꽃을 피운 사례는 물론이고 젊은 시절만큼의 성과를 유지하는 경우도 드물기 때문에 만년의 문학 자체가 머나먼 미답지나 불모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반면에 외국 시인들에게는 신화로 남은 만년작에 대한 기억이 우리보다는 풍부하게 난아있다. 따라서 만년의 문학 또한 막연한 미답지나 불모지라기보다 오히려 뚜렷한 가능성의 세계로서 그들 앞에 열려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불안 대신 확신을 심어주는 곳에 그들의 만년작이 기자리고 있는 셈이다.

---P211

 

바닥에 대한 애기가 이러하다면, 누군가는 멋진 추모시를 쓸 수 있고 누군가는 도무지 추모시를 쓸 수 없는 이유도 바닥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 땅의 많은 시인 중 과연 몇 명에게 해당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몇몇은 분명 자신의 바닥과 연결되는 차원에서 추모시를 쓸 수 있을 것이며, 또 몇몇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신의 바닥과는 연결이 되지 않는 탓에 추모시를 포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누군가의 시 세계에서 바닥에 해당하는 지점이 어떤 숭고한 사상이나 사유 혹은 이념과는 사실상 무관하다는 사실이다. 사상은 높고 바닥은 낮다. 낮고도 깊다.(...) 누군가의 바닥이 되는 지점은 그리하여 누구라도 손쉽게 건드리고 움직일  수 있는 그 무엇이 될 수 없다. 그정도로 수월하게 길들일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차라리 바닥이 아니다. 바닥은 자기 자신이면서 동시에 영원히 길들일 수 없는 야생의 그 무엇이다. 바닥은 그런 점에서 명백히 타자다. 타자 중에서도 가장 먼 타자다.

---P257

 

 

○출판사 리뷰

시인 김언의 시론집을 펴낸다. 1998년 『시와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총 6권의 시집, 『숨쉬는 무덤』 『거인』 『소설을 쓰자』 『모두가 움직인다』 『한 문장』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을 출간한 등단 21년차 중견 시인의 ‘시에 대한 기록이자 한 시절에 대한 기록, 『시는 이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제목을 앞에 두자니 알쏭달쏭 궁금증이 아니 일 수가 없다. 시론을 말하는 데 있어 쓰인 단어 ‘시’와 ‘이별’과 ‘말’이라니…… 그렇다면 시는 무엇에 대해 말한단 말인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시론집은 여타의 관련 도서들과 일단 구성 면에서나 내용 면에서 꽤 큰 차이를 갖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일견 ‘시’에 대한 넓이와 ‘시’를 향한 깊이를 자랑하는 시라는 일반적인 학문에 있어 그 ‘논’의 기저를 기본으로 하되 그 넓이를 재는 ‘줄자’가, 그 깊이를 파는 ‘삽’이 ‘made in 시인 김언’ 라벨을 자랑하더라는 말이다. 시라는 우주를 향한 그만의 예리한 사유가 그만의 정확한 문장으로, 시라는 미래를 향한 그만의 타고난 입담이 그만의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될 때 우리에게 번지게 되는 시라는 장르의 흥미, 그 재미를 온몸으로 끼치게 하더란 말이다.

시처럼 제멋대로 흘러가고 풀려가는 시론. 이 한 권의 책이 한 편의 시로 수렴되고 있다 싶은 시론. 시에 미친 사람 많고 많지만 그중 으뜸 가운데 으뜸 시인을 단연 자신 있게 김언으로 꼽는다 할 때 일단 이 책은 시에 대한 ‘다짐’과 ‘가짐’의 그 ‘태도’라는 ‘정신’을 기본기로 혹여 우리 안에 있을지도 모를 시라는 것의 매너리즘의 흐물흐물한 뼈대를 다시금 곧추세우게 한다.

시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니까. 시는 계속 움직이는 무엇이니까.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 시를 정의하려는 작업이니까. 시는 그렇게 정의되지 않는 작업이기도 하니까. 시에게도 지도가 없으니까. 시는 눈의 문제로 시작해서 귀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니까. 시는 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니까. 그리하여 시라는 운동성, 그 운동성의 건강성, 멈추지 않고 고이지 않음으로 인한다면 헤어지고 안 만나는, 비유적인 표현으로의 세상 모든 ‘이별’ 따위는 생기지도 않을 홀홀, 그 혈혈단신 한갓짐. 그 길로 향해 가기 위해 헌신하는 시가 있다면 그 또한 자유겠지만, 그 자유에 대해서 또 모른다고 할 시. 왜냐하면 시는 자체니까. 그것 자체이자 무엇 자체로 말하는 시. 그렇다면 이 지점에 닿는다. 닿으면서 미끄러지며 시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말하는 것 자체로 그것은 있다. 시가 있어야 한다면 바로 그 순간에 있기 위해서 있다!

이 책 구석구석 살피자면 시라는 어려움 속 시의 어떤 힌트들이 돌처럼 마구 널려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맘껏 주워가시라. 실컷 훔쳐가시라. 그리고 절대로 돌려주지 마시라. 주면 오히려 되갚아준다고 상처받을지도 모르겠다 싶은 시인이 김언일 수도 있으니 지금도 차고 넘칠 그의 ‘시시’거림, 그 시에 대한 펌프질로 그는 충분히 건강한 몸을 만들었다 싶기도 하거니와 맘껏 이 책을 가져주심이 그에 대한 그의 시에 대한 사랑이라 시인은 알 것도 같으니와 무엇보다 표지의 앞과 뒤를 나란히 채운 화가 송은영의 그림을 시인 김언의 시론과 함께 반복하며 봐주십사 하는 데는 글과 그림 사이 읽는 분들 저마다의 ‘시론’이 자발적으로 발동하게 됨을 또한 바라는 마음에서이니 부디 작심하고 부린 이 욕심을 마구 부려주셨으면 하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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