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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책을 읽고 소유한다는 것

금동원(琴東媛) 2021. 8. 25. 23:17

 

 

책을 읽고 소유한다는 것

 

헤르만 헤세

 

 

  인쇄된 종이가 어떤 가치를 나타내고, 모든 인쇄물이 정신적인 노고에서 태어났으므로 존중할 만하다는 것은 우리의 낡은 견해다. 바다나 높은 산속에서 사는 사람도 많은 인쇄물을 접하며 산다. 그들에게는 달력이나 소책자, 신문이 소중한 소유물이고 보관할 가치가 있는 소유물이다. 우리는 많은 양의 인쇄물을 무료로 집에서 받아보는 데 익숙하다. 그리고 모든 문서나 인쇄물을 신성시하는 중국인을 비웃는다.

  그럼에도 책에 대한 존중은 없어지지 않는다. 최근에 들어서야 비로서 무료증정본이 배포되고 있고, 여기저기서 책이 덤핑 상품이 되기 시작한다. 게다가 바로 독일에서는 책의 소유를 기뻐하는 풍조가 커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제대로 된 의미에서 책 소유에 대한 이해가 아직 크게 부족하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맥주나 싸구려 술집에 들이는 시간의 10분의 1만이라도 책에 들이기를 꺼려 한다. 다른 좀 더 구식인 사람에게는 책은 좋은 방에서 플러시 보자기 위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성물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올바른 독자는 책 애호가이기도 하다. 책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좋아할 줄 아는 사람은 그것을 되도록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다시 읽고 , 소유하고, 언제나 손이 닿는 가까운 곳에 두려 하기 때문이다. 책을 빌려서 통독하고 되돌려주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읽은 내용은 대부분 책이 집에서 사라지는 것 못지않게 금방 없어진다. 매일 한 권의 책을 탐독할 수 있는 독자가 있다. 특히 할 일이 없는 주부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에게는 결국 대여 도서관이 제격이다. 그들은 재물을 모으고 친구들을 얻거나 삶을 더 풍요롭게 하지 않고 다만 욕망을 충족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고트프리트 켈러가 언젠가 그들에 관한 훌륭한 그림을 그리기도 했던 이런 종류의 독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악습을 그대로 유지하게 놔둘 수밖에 없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좋은 독자에게는 낯선 사람의 본질과 사고방식을 알게 되고 저자를 이해하려고 하며, 그를 될 수 있는 한 친구로 삼으려 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시인의 시를 읽을 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알게 되는 인물과 사건의 좁은 범위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고 바라보는 시인, 그의 기질, 내적인 모습, 급기야는 필적, 예술가적 수단, 사고와 언어의 리듬이다. 책에 어떻게든 사로잡혀 있는 자, 저자를 알고 이해하기 시작하는 자, 그와의 관계를 얻은 자, 그런 자에게 이제야 비로소 책의 올바른 영향이 시작된다. 따라서 책을 넘겨주거나 잊어버리지 않고 사서 간직할 것이다. 필요에 따라 다시 책을 읽고 그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책을 사는 자, 어조와 영혼에 언젠가 감동을 받은 책만 그때그때 취득하는 자는 곧 더는 목표 없이 아무 책이나 마구 탐독하지 않고, 기쁨과 깨달음을 주는 작품, 사정이야 어떻든 손에 들어오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우연히 읽기보다, 더 가치 있는 범위의 사랑스럽고 소중한 작품을 점차 자기 주위에 모을 것이다.

  천 개나 백 개에 달하는 '최상의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개인마다 자신에게 친근하고 이해되며, 사랑스럽고 소중한 특별히 선택된 책의 목록이 존재한다. 따라서 좋은 도서관은 주문을 받고 만들어질 수 없다. 누구나 자신의 필요와 사랑에 따라야 하고, 친구를 얻을 때와 꼭 마찬가지로 점차 자기 자신의 장서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면 그 작은 장서는 그에게 혹시 작은 세계를 의미할지도 모른다. 몇몇 책에만 욕망을 한정시킨 아주 훌륭한 독자들이 항상 있었다 성서만 소유하고 성서만 아는 많은 농부의 아내들이 거기에서 더 많은 것을 읽어냈고, 버릇이 잘못 든 부자가 자신의 귀중한 장서에서 얻은 것보다 더 많은 지식과 위안, 기쁨을 길어 냈다.

  책의 영향은 신비롭다. 모든 아버지나 교육자가 때를 그르치지 않았다는 것을 보기 위해 제 때에 소년이나 젊은이의 손에 꽤 좋은 양질의 책을 쥐어 줄 생각을 했던 경험을 알고 있다. 조언과 친절한 감독이 많은 것을 해줄 수 있기는 하지만, 사실 늙었든 젊었든 누구나 책의 세계로 들어가는 자신의 길을 발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일찍부터 시인에게서 친숙한 감정을 느끼는 반면, 다른 사람은 오랜 세월이 흘러야 시인의 시를 읽는 것이 얼마나 달콤하고 유별난 일인지 알게 된다. 호메로스에서 시작해 도스토옙스키에서 끝날 수 있거나 또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시인과 함께 성장해서 결국 철학자로 건너갈 수 있거나 또는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그런 길이 수백 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도야하고 책에 의해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단 하나의 법칙과 유일한 길이 있다. 읽는 것을 존중하고, 참을성 있게 이해하려고 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승인하고 경청하는 것이다. 단지 심심풀이로만 책을 읽는 자는, 아직 그런 자가 많고 또 그게 최상일지도 모르지만, 독서한 뒤에 읽은 책을 잊어버려 나중에도 책을 읽기 전이나 마찬가지로 빈곤할 것이다. 그러나 친구의 말에 경청하는 자처럼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책이 그에게 열려 그 자신의 것이 될 것이다. 그가 읽는 것은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고 그에게 남고 그의 것이 되어, 친구만이 할 수 있는 것처럼 그에게 기쁨과 위안을 줄 것이다.( 1908)

 

-헤르만 헤세 《잠 못 이루는 밤》, (홍성광 옮김, 2013, 현대문학) 중에서

 

열화당책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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