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9.07 20:00
금동원 시인
여행은 일상의 권태와 피로에 지친 우리에게 신선한 에너지를 제공해준다. 삶에 꼭 필요한 산소이자 세상을 향해 넓은 안목의 통찰을 배우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몇 해 전 호주 남동부에 있는 멜버른을 여행한 적이 있다. 인구 100만 명 이상의 큰 도시로 호주의 옛 수도이기도 하다. 전통과 현대가 잘 어우러진 유서 깊고 매우 아름다운 도시다. 멜버른에는 1867년부터 문을 연 10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재래시장이 있다. 여행객에게 좀 더 알려진 퀸 빅토리 마켓과 현지인이 더 많이 찾는 사우스 멜버른 마켓이다. 매주 수금토일에 열린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여행이었기에 평소 좋아하는 전통시장에 들렀다. 이국적이고 다양한 물건의 시장풍경과 먹거리, 현지인들의 활기찬 모습을 여유롭게 즐기며 마음에 휴식이 되었던 특별한 여행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제주도에도 5일에 한 번씩 열리는 전통 재래시장이 있다. 2와 7의 끝자리에 열리는 제주 오일장을 나는 좋아한다. 재래시장 특유의 활기찬 느림이 좋다. 오가는 사람들의 소란스럽지만 건강한 여유로움이 좋다. 다양한 먹거리와 푸근하게 웃는 사람들의 인심과 수런거림이 주는 활기는 일상에 찌든 마음을 유쾌하고 신나게 상승시켜준다. 개인적으로 자주 가는 오일장 단골 맛집도 있다. 장이 서는 날이면 춘향이네 무뼈 닭발이나 돔베고기, 해물파전은 꼭 먹고 오는 별미 중 하나다. 곁들여 마시는 제주 우도 땅콩 막걸리 맛도 일품이다. 식욕이 발동하는 날은 시원한 콩국수나 멸치 잔치국수로 입맛을 갈무리한다.
정감 가는 재래시장의 멋과 맛, 넉넉한 인심과 소박한 시끌벅적함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기본적 기능도 있지만 오고 가는 만남의 장소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문화적 공간이다. 아날로그적 감성과 따뜻한 인간미가 남아있는 곳이다. 천천히 시장을 돌며 물건을 고르고 흥정하고 시장바구니 가득 장을 보고 덤을 얻고 덤을 청한다. 모든 게 흥과 정이 적당히 어우러진 오일장 날의 풍경이자 낭만이다.
모든 게 너무 빠르고 풍부해서 한기가 드는 감정들 앞에서 느리고 싸고 맛있고 멋이 곁들여진 시장의 공간이 좋다. 여유와 느림의 시끌벅적 광장이 좋다. 전통은 사람이 만들고 시간이 만든다. 호주 멜버른에서 즐겼던 백 년 역사의 재래시장이 그렇듯 제주 오일장도 고유한 멋과 개성으로 오랫동안 남아있으면 좋겠다.
오늘도 재래시장으로 힐링 여행을 떠난다. 대형 상점과 인터넷에 거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있는 요즘, 제주 오일장은 언제든지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힐링의 시간을 준다.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는 편안한 시간이 빨리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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