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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문

바다로 이어진 희망

금동원(琴東媛) 2022. 1. 18. 19:48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1.18 19:15

       
금동원 시인
 
 
 

 새해를 맞아 송악산 둘레길을 다녀왔다. 언제 걸어도 아름다운 곳이다. 주변 풍광이 주는 경이롭고 평온한 분위기는 쓸쓸하면서도 한편 여유롭다, 멀리 산방산의 우뚝 선 위용이 든든하다. 용머리 해안의 신비로운 모습은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아도 아련하다. 눈이 시리게 푸른 수평선에 걸려있는 화물선은 작은 깃발처럼 아득하고, 겨울 바다의 바람 냄새는 묵은 먼지를 걷어내듯 개운하고 상쾌하다. 가슴 안으로 환한 설렘이 밀려든다. 드넓은 바다의 아늑함은 시름과 걱정, 분노와 까칠함의 응어리를 녹여주고 풀어준다. 우울한 무기력을 차분하게 다독이며 부드럽고 따뜻한 위로를 준다.

  충만한 힘은 무엇인가. 황홀한 금빛으로 퍼지며 온몸을 감싸는 듯한 영적 기운, 자연과 하나 되는 일체감이 주는 행복, 텅 빈 듯한 공간에서 전해지는 투명한 위안, 차분한 내적 에너지가 불러낸 뭉클한 감동은 서늘하고 사색적이다. 기쁨과 축복의 환한 빛은 온 사방으로 눈이 부시게 퍼져나간다. 시공을 초월한 침묵의 자리, 여기가 안락의 공간, 천국의 어디쯤이라 상상해본다.

  자연은 말없이 그저 바라보고 있어도 위로와 치유의 재생력을 가진다. 있는 그대로의 가슴을 열어 지치고 상처받은 영혼들을 받아준다. 바다가 뿜어내는 포근하고 따뜻한 아우라는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하다. 리듬을 타듯 찰랑거리며 토닥이고 쓰다듬어 주는 물결의 손길이 부드럽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말없이 내 곁을 지키며 흘러간다. 

  19세기 덴마크 철학자이자 시인이었던 쇠렌 키에르케고르가 1847년 조카 헨리에타에게 보낸 편지글이 떠오른다. “무엇 보다 걷고자 하는 열망을 잃지 않길 바란다. 날마다 나는 나 자신을 행복 속으로 바래다주고, 모든 아픔에서 걸어 나온다. 나는 나 자신을 최고의 생각 속으로 데려다준다. 그리고 나는 사람이 걸어 나오지 못할 정도의 괴로움을 알지 못한다.” 바다로 이어진 길을 걷노라니 스스로 행복해지고 새롭게 변화하는 의식의 확장을 느낄 수 있다. 희망의 달콤한 꿈을 꾼다.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가 생긴다. 겨울 야자수의 꿋꿋함에서 추위를 이겨낸 유연함을 발견한다. 묵묵한 인내심으로 거칠고 모진 바닷바람을 견뎌낸 밝고 투명한 빛과 마주한다. 

  어디선가 어린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활기찬 들뜸이 전해진다. 새들의 재잘거림처럼 흥겨운 생기가 되살아난다. 연갈색 들판에는 망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까불어댄다. 우리 모두 어려운 시절을 건너오고 있다.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인 ‘오늘’, 그 하루하루가 사랑과 감사로 채워지는 행복한 날들이기를 꿈꾸며 걷는다. 검은 호랑이의 힘차고 묵직한 에너지로 새해에는 우리 모두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축복으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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