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상징이다
김 주 연(문학평론가)
상징이 뭘까. 아주 쉽게 말해서, 그 글에서 쓰여진 언어가 지시어(指示語)가 아닌, 지시된 사물과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 혹은 추상어를 구체적인 사물로 표시하는 것. 가령 사람을 보고 "당신은 꽃이다" 라고 적는다면, 당신 곧 꽃이라는 사물이 아니라 꽃과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때 "당신은 꽃과 같은 사람이다"라고 적는다면 그것은 시가 아니다. 적어도 '시적 詩的'이지는 않다.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이런 말을 새해 아침부터 늘어놓는 까닭은? 수 만명을 헤아리는 시인들이 우리 시단을 풍성하게 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징의 빈곤, 그 상징을 가능케 하는 상상력의 결핍을 느끼기 때문이다. 상징과 상상력은 궁핍한데 시와 시인은 많다? 대체 어떤 시와 시인들일까.
물론 상징은 하나의 어휘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어휘들이 합쳐진 문장으로, 또 문장들이 모인 더 큰 패러그라프를 이루면서 상징의 숲을 만들기도 한다. 그 숲이 풍요로울수록 우리는 시인의 깊고 오묘한 상상력 속으로 들어가서 현실에서 맛볼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 기계가 만들어내는 3D, 4D 아닌 언어의 nD 세계를 누린다. 시가 주는 행복이다.
내 입술에서 네 입을,
성문 앞에서 이방인을,
눈에서 눈물을 찾지 마라.
일곱 밤 더 높이 빨간 색이 빨간 색으로 뒤바뀌고,
일곱 가슴 더 깊이 손길은 성문을 두드리고,
일곱 장미 핀 다음에야 샘물은 소리내고 흐른다
- 파울 첼란 「 크리스탈 」전문
단어 하나 하나 그리고 한 행 한 행 상징으로 생각하지 않고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시다. 그러나 얼마나 흥미로운 깊이로 우리를 이끄는가. 시는 이렇듯 해석해 보는 재미와 함께 이해된다. 무조건 난해한 시는 곤란하지만 아무 상징의 날개없이 평면의 지상에서 산문적 이동만 하는 시가 쉬운 시로 용인되어서도 딱하다. 위의 시만 하더라도 첫 연(聯)에 나오는 입술이나 입, 성문, 이방인, 눈, 눈물은 모두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들은 사랑의 만남과 이별을 말해주면서 두 번째 연으로 의미를 연결시켜준다. 예컨대 첫 연 첫 행에서의 입맞춤은 둘째 연 첫 행에서 빨간 색의 교차, 즉 키스로 실현된다. 다음 행, 성문을 두드리는 손길은 무엇인가. 은유의 낱말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결국 더 깊은 욕망의 상징 아닌가. 마침내 그 욕망은 마지막 행에서 장미를 피우고 샘물을 터지게 한다.
이 시를 이렇게 읽으면 더 할 나위없이 아름다운 그리고 다소 격렬하기까지 한 사랑의 시로 보인다. 일곱 밤, 일곱 가슴, 일곱 장미는 얼마나 상징적으로 야한 장면을 고양 (高揚) 시키고 있는가. 육체적인 사랑의 현장에 영혼의 교류를 함께 승화시키는 이러한 모습 속에 시의 힘, 상징의 힘이 숨어있는 것이다. 이 시는 '일곱 - '이라는 숫자를 통해서 '완성'의 이미지 상징을 이끌어내고, 그것이 사랑하는 연인들 한 쌍의 완성이라는 의미를 수행한다. 더 나아가 이 시의 절묘한 상징성은 그것이 유토피아의 출현을 예감케 하는 결정체, 크리스탈과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의 상징은 그것을 구축해 나가는 시인의 풍부한 상상력, 그리고 역추적해가는 독자의 흥미로운 분석과 시독법(詩讀法) 양쪽에게 '시란 무엇인가'라는 아름다운 정신의 충격을 준다. 시와 시인이 무시당하지 않고, 존경받고 존재하는 이유다. (2022)
- 《문학의 집.서울》(통권243호)
○작가 소개
김주연 문학평론가는 1941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 대학과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독문학을 연구했다. 『문학과지성』 편집동인으로서 『상황과 인간』, 『문학비평론』, 『변동 사회와 작가』, 『새로운 꿈을 위하여』, 『문학을 넘어서』, 『문학과 정신의 힘』, 『문학, 그 영원한 모순과 더불어』, 『사랑과 권력』, 『가짜의 진실, 그 환상』, 『디지털 욕망과 문학의 현혹』, 『근대 논의 이후의 문학』, 『미니멀 투어 스토리 만들기』, 『문학, 영상을 만나다』, 『사라진 낭만의 아이러니』, 『몸, 그리고 말』, 『예감의 실현』(비평선집) 등의 문학평론집과 『고트프리트 벤 연구』, 『독일시인론』, 『독일문학의 본질』, 『독일 비평사』 등의 독문학 연구서를 펴냈다. 한국독어독문학회 학회장, 한국문학번역원장을 역임했다. 30여 년간 숙명여대 독문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詩 이모저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론 ‘허수경 후기시론―자연의 고아, 시간의 낙과, 우주의 난민’ (0) | 2022.02.08 |
---|---|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0) | 2022.01.12 |
《기러기》- 메리 올리버 시선집 (0) | 2021.12.11 |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0) | 2021.10.12 |
고블린 도깨비 시장/크리스티나 G. 로세티 (0) | 2021.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