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찰스 부코스키 저/황소연 역 | 민음사 |
원서 : The Last Night of the Earth Poems the Last Night of the Earth Poems
시인이 노년에 마지막으로 출간한 대표작 『THE LAST NIGHT OF THE EARTH POEMS』이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와 『창작 수업』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스트에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을 포함하여 찰스 부코스키의 시집이 4권 포함되게 되었다. 죽음과 시간에 대한 고민이 많이 담겨 있고, 초기 시와 달리 사색적인 색채를 더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 내뱉는 말들에 담긴 아픈 의미들을 끄집어내면서도 특유의 유머로 승화해 낸다.
○작가 소개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는 당대 미국의 가장 저명한 시인이자 산문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많이 모방되는 시인으로 꼽는 사람도 많다. 부카우스키는 1920년 독일 안더나흐에서 미국 군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으로 왔다. LA에서 자라고 도합 50년간을 살았으며, 마흔아홉 살에 한 출판사의 제안에 따라 전업 작가가 될 때까지 오랫동안 하층 노동자, 우체국 직원 등으로 일했다.
스물네 살 때인 1944년에 첫 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작품들이 빛을 보지 못하자 스물여섯부터 십 년간 글쓰기를 포기했다가 서른다섯 살에 큰 병을 앓고 난 후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94년 3월 9일 캘리포니아 주 샌피드로에서 일흔셋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소설 『펄프』(1994)를 막 완성하고 난 뒤였다. 부카우스키는 생전에 『우체국』(1971), 『팩토텀』(1975), 『여자들』(1978), 『햄 온 라이』(1982), 『할리우드』(1989) 등의 장편소설과 시집, 산문집 등 마흔다섯 권 이상의 저서를 냈다. 작가 사후에도 『가장 중요한 건 불속을 뚫고 얼마나 잘 걷느냐는 것』(1999), 『철야 영업 중?신작 시집』(2000) 등 여러 권의 책이 편집, 출간되었다. 그의 작품은 현재 10개가 넘는 외국어로 번역되어 세계 각처에서 읽히고 있다.
○역자
황소연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출판기획자를 거쳐 전문 번역가가 되었다. 옮긴 책으로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 전집』, 루이자 메이 올콧의 『작은 아씨들』,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 『케이크와 맥주』,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헤밍웨이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휴버트 셀비 주니어의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찰스 부코스키의 시집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위대한 시를 쓰는 것이 쉬워 보일 수 있다는 점,
이것이 부코스키의 뛰어난 재능이다.” ― [가디언]
시인이 노년에 마지막으로 출간한 대표작 『THE LAST NIGHT OF THE EARTH POEMS』이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와 『창작 수업』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스트에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을 포함하여 찰스 부코스키의 시집이 4권 포함되게 되었다. 죽음과 시간에 대한 고민이 많이 담겨 있고, 초기 시와 달리 사색적인 색채를 더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 내뱉는 말들에 담긴 아픈 의미들을 끄집어내면서도 특유의 유머로 승화해 낸다.
노시인은 죽음 앞에서도 결코 지나온 삶을 미화하진 않는다. “하지만 나이는 /우리의 행적이다.”라면서 ‘노년’이라는 주제를 말랑하게만 다루고 있지 않다. 작가에게 죽음은 인간 보편의 경험이자 생명력에 힘을 부여하는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거기 윗동네는 /진짜 멋진 /별천지. (…) 거기도 /여느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죽음에 /봉사하는 게 /전부이긴 /하지만.”
그렇게 못생긴 남자가
그렇게 여자가 많은 건
처음 봐.
게다가 질투도 심해.
누가 자기 여자를 쳐다보기만
해도 주먹을 휘둘러.
그리고 술에 쩔어 헛소리를
해 대고 노래를 부르지.
그런데 이거 알아? 그 남자
시인이야.
가자고, 문병하러
주먹을 부르는 그
늙다리!
― 「구경거리」,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에서
일흔의 나이에 “작가의 벽에 부딪힌” 시인은 그래도 “난 아직 /운이 좋아. /작가의 벽에 부딪혔다는 /글이라도 쓰는 게 /아예 못 쓰는 것보다는 /낫잖아.”라며 삶을 긍정한다. 왜냐하면 시인에게 글쓰기는 삶을 살게 하는 가장 큰 가치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내게 /젊음의 샘 /나의 창녀 /나의 사랑 /나의 도박이었다.”
거장이 뒤돌아보는 작가지망생의 삶!
”술집과 홍등가의 시인이자, 과도함과 광기의 제단을
숭배하는 낭만주의적 예지자“ ― [뉴욕 타임스]
고달픈 막노동 일을 전전하다 마흔아홉 살에 전업작가가 될 수 있었던 부코스키는 오랜 세월 반복적으로 거절당하는 경험을 인내해야 했다. “배를 곯고 살 때도 /나는 출판사의 거절 통지에 개의치 않았다. /편집자들이 참 멍청하구나 /생각하고는 /계속 글을 쓰고 또 /썼다. /그래도 그렇게 행동으로 거절해 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최악은 텅 빈 /우편함이었다.”
오랜 무명 시절은 시인에게 삶 속으로 더 들어가는 계기이자 동시에 끊임없이 작가적 상상력을 공급받는 귀한 시간이었다. ”새파란 애송이 시절 /내 삶은 술집과 도서관으로 양분돼 있었다. /그 외에는 일상을 어떻게 꾸려 갔는지 모르겠다. /그쪽으론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책이나 술이 있으면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다. /바보들은 자신의 파라다이스를 /만드는 법이다.“ 그렇게 시인의 낮과 밤은 완전히 양분되었었다. ”술집에서는 /왈짜를 자처해 물건을 부수고 /사내들과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도서관에서는 달랐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조용히“ 돌아다녔다. 그리고 유명한 시인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그의 낮과 밤은 완전히 달랐다.
시인은 작가지망생이 느끼는 서러운 감정들을 통쾌하게 발산하기도 한다. “문학보다 문학 평론가라는 자들이 더 좋았다. /참으로 밥맛 떨어지는 그자들은 /세련된 언어를 동원해 아름다운 방식으로 /다른 평론가와 작가를 등신 취급했고 /나는 그 덕에 기운이 났다.”
마음이 약해지거나 기대를 한 적이
있었다면
거절한 편집자를 한번
만나 보고 싶은
정도랄까.
(…)
알다시피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나를 변변찮다 말하는
종이 한 장뿐이라면
편집자를
신의 반열에 오른
존재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배를 곯을 때는
지옥은 닫힌 문이다
가끔 문 열쇠 구멍으로
그 너머가 얼핏
보이는.
젊든 늙었든, 선량하든 악하든
작가만큼
서서히 힘겹게 죽어 가는 것은
없다.
― 「지옥은 닫힌 문이다」,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에서
또 처음 컴퓨터로 시를 쓸 때의 심경을 이렇게 고백한다. “이제 나도 제대로 망조가 든 걸까? /이 기계는 나를 /술도 여자도 가난도 어쩌지 못한 나를 /끝장내려나?” 작가에게 글은 생명이다. 시인은 자신을 “위로 위로 헤엄쳐 보지만 /옆으로 /하강하는 /밤의 /지옥 물고기” 같은 존재로 느끼면서도 “함순을 생각한다. /글 쓸 시간을 벌기 위해 /자기 살을 먹었던 /그를.” 그의 글쓰기 열망은 치열하지만, 작품에서 작가로서의 삶은 서늘하게 승화된다.
“가족이니 일이니
항상 방해물이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집을 팔아 버리고
이 큰 원룸을 구했지, 보다시피
공간과 빛이 있는 방이야.
내 평생 처음 창작할 공간과 시간이
생긴 거야.”
아니야, 이 양반아.
창작 의지만 있다면
창작은
하루 열여섯 시간 탄광 일을 해도
애 셋을 데리고
단칸방에서
정부 보조금으로
살아도
몸과 마음이
일부 망가져도
눈이 멀어도
절름발이가 되어도
― 「공기와 빛과 시간과 공간」,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에서
결국 생존 작가로서 미국과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이 되었지만, 그는 “뉴올리언스의 쥐들”이 아직도 떠오른다고 한다. “작가가 되려고 인내해야 했던 것들”은 비참한 삶을 연상시킨다.
피골이 상접해 어깨뼈로 빵도 자를
정도였는데 자를 빵이 있어야
말이지……
그 와중에도 종이에
끄적이고 또
끄적였다.
― 「작가」,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에서
”기이하고 영웅적인 남자들의 이야기“를 쓴 잭 런던, ”음울하고 시적인 작품“을 쓴 유진 오닐 등 곳곳에서 시인이 사랑한 작가들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고통을 먹고살았던 시인의 눈에 현대 문학계에서는 ”잔디는 너무 파릇하고 책은 너무 따분하고 /삶은 목마름에 /죽어 간다.“
작가지망생 시절의 비참한 현실을 창작으로 승화한 시들 가운데 하나가 「전당포는」이라는 시다. “어려운 시절 전당포는 나를 도와주었다. /달리 방법이 없을 때 전당포가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검은 커튼이 쳐진 부스는 /뭔가를 포기하고 더 간절한 것을 /얻는 /신기방기한 /성소(聖所)다.” 그렇게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통과한 시인은 시를 이렇게 정의한다. “헤아릴 수 없는 절망 불만 환멸을 겪어야 나오는 것이 한 줌의 좋은 시.”라고.
하류인생의 계관시인이 남긴 현대 시학!
“야생마 같은 과도한 존재감을 표현하는 데 있어
한결같이 저널리즘의 무표정한 내러티브로 접근하는 방식이
바로 그의 시에 육중한 아이러니를 덧입힌다.“ ― [인디펜던트]
부코스키도 대학에서 창작 수업을 들은 적이 있지만, ”아무 쓸모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단순화를 단지 정규 과정에 대한 아웃사이더의 반박으로 읽는다면 작품을 축소시키는 꼴이 될 것이다. 그것은 가능성을 제한하는 완고함, 창의력을 고갈시키는 규정 방식 등에 거부감을 느끼는 예술가의 예민한 촉수일 것이다.
나는 유죄다, 대학에서 한 번
그걸 들었으니.
거기서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
이런 식으로는 절대 창의성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작가가 되려면
이건 하고
저건 하지 말라는
교수의 조언은
아주 애매모호하고 평균적인 얘기일 뿐
(…)
― 「창작 수업」, 『창작 수업』에서
부코스키는 어떻게 그 고된 무명 시절을 견뎌냈을까? 김동훈 고전학자는 부코스키에게서는 작가로서의 강박을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부코스키도 처음부터 그러한 강박을 아무렇지 않게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아닐 것이다.
작가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당신은 아마도 꽤나 유명한 작가들을 부러워하여 자신과 끊임없이 비교할 것이고, 원고 마감 시간에 쫓겨 평범한 일상생활을 신경질적으로 멀리할 것이다. 더욱이 위대한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조급증에 시달린다면, 당신은 갖은 수단을 동원해 현실을 철저히 차단하고 최적화된 글쓰기 공간을 확보하려 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위대한 작가는 현실 적응 불능자가 된다. 하지만 찰스 부코스키에게서는 이런 강박을 찾기 힘들다. (…) 위대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비교 강박과 현실도피 강박, 그리고 시간 강박에서 벗어날 것. 강박의 원인은 대중의 인기와 예술적 작품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 김동훈, 『브랜드 인문학』에서
가식에 대한 거부감은 시인으로 하여금 점잔과 구속을 벗어 던지게 하고, 부르주아 의식에 대한 반감은 기성 제도에 대한 풍자로 이어진다. 하지만 ”진실한 것들“에 대한 의구심은 진실을 향한 시인의 강한 갈망이기도 하다. ”재능이라곤 /쥐뿔도 없는 자들이 /칭송을 받는 /현실. //바보들은 또 /번번이 /속는 /현실.“
내가 e. e. 커밍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말에서
신성함을 쪽 빼고
매력과 도박을 가미해
똥밭을 돌파하는
시를
우리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
― 「대가」, 『창작 수업』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작가의 창작 태도는 명확하다. 철저하게 일상의 삶에 뿌리박아야 한다는 신념, 그리고 그것은 알맹이 없는 형식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확신이다. 그래서 ”능수능란한 글이지만 /형편없는 허술함, 부자연스러운 /구멍이 있“는 글을 경계한다, ”수명을 재촉하는 원고“이므로. ”뜬구름 잡는 소리“는 ”지나가는 풍경처럼 따분하고 지루“하다고 말하는 시인은 구체적인 에피소드에 자기 철학을 담는다.
새 길을 찾아보고
한 길만 파 보고
지옥행 계단을 걷고
소실점을 다시 설정하고
다른 방망이를 써 보고
다른 자세를 취해 보고
식단과 걸음걸이를 바꾸고
시스템을 조정하고
한물간 꿈에 매달리고
기계를 우아하고 신중히
몰고
꽃이 건네는 말을
알아듣고
거북이의 큰 고통을
이해했다면
(…)
불을 끈 후 한번
기다려 보시게.
― 「장미 그늘 아래」, 『창작 수업』에서
상아탑이 아닌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보여준 작가의 강인한 생명력은 삶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긍정하는 힘에 있다. 그는 ”우리의 이기심, 우리의 비통함에도 /삶은 아직 여기 있다.“고 긍정한다. 이것은 지옥 같은 기나긴 삶의 터널을 지나 성공한 작가가 내린 결론이다.
정말 궁금하다, 삶이 아직 여기 있는지.
그 세월을 거쳐 우리의 오류와 우리의 미약함
우리의 탐욕으로 점철된 구렁텅이를 거치고도
아직 있는지.
(…)
이제 다시 녀석 앞에 앉아 녀석을 팬다. 나는 살살 치지
않는다, 팬다. 패는 소리를 듣고 싶다. 녀석이 재주 부리는 걸
보고 싶다. 녀석은 최악의 여자들과 최악의 남자들과
최악의 일터에서 나를 구해 주었다.
악몽을 맨정신으로 바꿔 주었고
바닥을 기던 나를 사랑해 주었고 실제의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으로 느끼게끔
해 주었다.
(…)
― 「서늘한 검은 공기」, 『창작 수업』에서
1973년 시작하여 가장 긴 생명력을 이어온 문학 시리즈!
“탄광촌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할 때
세계시인선을 읽으면서 상상력을 키웠다.” ―최승호 시인
“세계시인선을 읽으며 어른이 됐고, 시인이 됐다.” ―허연 시인
“나에게 세계시인선은 시가 지닌 고유한 넋을
폭넓고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 ―김경주 시인
「민음사 세계시인선」은 1973년 시작하여 반세기 동안 새로운 자극으로 국내 시문학의 바탕을 마련함으로써, 한국 문단과 민음사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문학 총서가 되었다. 1970-1980년대에는 시인들뿐만 아니라 한국 독자들도 모더니즘의 세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때로는 부러움으로, 때로는 경쟁의 대상으로, 때로는 경이에 차서, 우리 독자는 낯선 번역어에도 불구하고 새로움과 언어 실험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러한 시문학 르네상스에 박차를 가한 것이 바로 세계시인선이다.
민음사는 1966년 창립 이후 한국문학의 힘과 세련된 인문학, 그리고 고전 소설의 깊이를 선보이며 종합출판사로 성장했다. 특히 민음사가 한국 문단에 기여하며 문학 출판사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바로 ‘세계시인선’과 ‘오늘의시인총서’였다. 1973년 12월 이백과 두보의 작품을 실은 『당시선』,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검은 고양이』, 로버트 프로스트의 『불과 얼음』 네 권으로 시작한 세계시인선은 박맹호 회장이 고 김현 선생에게 건넨 제안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보는 외국 시인의 시집이라는 게 대부분 일본판을 중역한 것들이라서 제대로 번역이 된 건지 신뢰가 안 가네. 현이(김현)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프랑스나 독일에 다녀온 이들 아닌가. 원본을 함께 실어 놓고 한글 번역을 옆에 나란히 배치하면 신뢰가 높아지지 않을까. 제대로 번역한 시집을 내 볼 생각이 없는가?”
대부분 번역이 일본어 중역이던 시절, 원문과 함께 제대로 된 원전 번역을 시작함으로써 세계시인선은 우리나라 번역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기여하게 되었다. 당시 독자와 언론에서는 이런 찬사가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요, 또 책임 있는 출판사의 책임 있는 일이라 이제는 안심하고 세계시인선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세계시인선은 문청들이 “상상력의 벽에 막힐 때마다 세계적 수준의 현대성”을 맛볼 수 있게 해 준 영혼의 양식이었다. 특히 지금 한국의 중견 시인들에게 세계시인선 탐독은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밑바탕이었다. 문화는 외부의 접촉을 독창적으로 수용할 때 더욱 발전한다. 그렇게 우리 독자들은 우리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시성들과 조우했고, 그 속에서 건강하고 독창적인 우리 시인들이 자라났다.
하지만 한국 독서 시장이 그렇게 시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시문학 전통이 깊은 한국인의 DNA에 잠재된 자신감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토대에서 자라난 시문학은 또 한 번의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국내 출판 역사에서 시집이 몇 권씩 한꺼번에 종합베스트셀러 랭킹에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세상을 향해 보다 더 인상적인 메시지를 던져야만 하는 현대인에게 생략과 압축의 미로 강렬한 이미지를 발산하면서도 감동과 깊이까지 숨어 있는 시는 점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 씨앗을 심어 왔던 세계시인선이 지금까지의 독자 호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리뉴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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