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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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詩 이모저모

죽마고우/ 강우식

금동원(琴東媛) 2022. 3. 11. 16:52

 

《죽마고우》

-강우식/ 리토피아

 

지은이로부터.1

 

가만히 생각해 보니

죽음만이 죽마고우가 아니라

詩도 죽마고우였다.

 

이승에서 배운 게

마음도둑질이라고

시를 팔아 입에 풀칠해 왔다.

 

그러면서도 늘 시쟁이라고

손가락질만 받아왔으니

걸어온 발이 부끄럽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죽으나 사나 저승에 가서도

시를 쓰겠다는 일념뿐이다.

                                       -2022년 2월 봄을 기다리며

                                                    水兄散人 강우식

 

 

○시 속으로

 

죽마고우 竹馬故友

 

젊었을 때는 곁에 말 걸 상대라도 없으면

세상 혼자 떨어져 사는 거 같아 싫었다.

그것보다는 늙으면 더 외롭다 하는데

딱히 그렇지는 않다.

늘 곁에 누군가 잇는 것 같다.

둘러보니 없긴 없는데 있는 것 같다.

가만히 보니 죽음이다.

당연히 죽음이 날 데려 갈 테니

외톨이로 살아 고독하여도 두렵지 않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미리미리

죽마고우처럼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서다.

사람이니까 죽음도 죽마고우라 부른다.

 

고향 바다

 

아내는 나하고는 살 비비며 살만큼 살았으니

이제는 혼자 있고 싶다며

십 오륙년 전에 주소를 고향 바다로 이전했다.

오늘은 분가한 그 바다 앞에서 어디선가

'여보 나 여기 있어요.' 하며 어제이련 듯

물속에서 맑은 얼굴을 쏘옥 내밀 것 같아

행여나 하는 심사로 속 터지도록

안동 답답히 하염없이 서 기다린다.

그사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만나면 마음 속에 두고 못 피웠던

'사랑해'란 말 한마디 간절히 하고 싶어

여태도, 여직까지도 기다린다.

 

때문에

 

죽어도 좋다던 옛사랑이

때문에, 때문에 입만 열면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무서워서

언택트 하잔다. 때문에 라는

탓, 핑계거리가 마음이 짠하다.

안 만나고 안 보면 인지상정으로

있던 정도 멀어지니까

그러면 헤어지는 수밖에 없지.

그 말끝에 세상없는 돌림병이 창궐해도

산 사람이 내일 당장 죽어 나가더라도

움직일 動해야지

어이 꼼짝 없이

방구석 귀신이 되느냐고 해주었다.

요즈음은 유튜부가 대세이니까

내 말도 좋으면 구독 싫으면 거부.

구독 거부 하려해도 아무 것도 없네.

그러니까 詩지.

 

몸이 집이다

 

나는 철근처럼 내 뼈로 기초를 세우고

살로 시멘트 외벽처럼 내 몸을 만들어

두 발로는 걷거나 뛰어

움직이는 단독주택을 만들었다.

몸이 집이고 자동차다. 몸으로 다 된다.

자동 네비게이터도 있어

자율 주행과 위험 요소도 피하며

두 팔로는 아무데나 휘젖고 다니는

인지능력이 있는 집을 만들었다.

거기에 상하수도와 자동 화장실도 갖추었다.

이만하면 강남 집 값이 암만 올라도

노숙자되어 서울역 지하도에 낮밤을 자도

아무 걱정이 없는 내 몸이 집인 나를 만들었다.

디오게네스가 왜 그토록 햇볕 하나만 있어도 행복했는지 알겠다.

사람들은 물건을 내 몸 같다고 말하면서도

아직 진짜 사람마음이 담긴 것은 내놓지 못했다.

 

밤송이

 

아무도 범접 못할 창으로 촘촘히 무장하고 있는

저 돌멩이 같은 비밀이 궁금해 그 속을 보려고

너무 서둘러 헤집거나 까지 마라.

제철이 되면 그 우주의 견고한 고집도 자연이 된다.

홀딱 벗고 냇가에 뒤어든 아이같이 알몸이 된다.

 

(餘適)

(.....) 나는 시 쓰면서 이제까지 끊임없이 참회하고 때로는 처절하게 절규하기도 했다. 원죄의 알몸으로 적나라하게 배회하기도 했다. 시는 타고난 팔자다. 나에게 소망이 있다면 나다운 목소리와 티를 내는 것이었다. 죽기 전에 내 목소리가 깃든 누가 읽어도 시인 강우식의 냄새가 묻어나는 시집을 갖고 파서 이 시각까지 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 여기서 짧은 시란 18행 이내의 시를 의미한다. 소박하게 시집의 한 페이지를 넘지 않는 시를 말하며 이름을 넓은 의미에서 2행, 3행, 4행, 기타의 짧은 시를 아우르는 것으로 범박하게 통용하면 어떨까 한다. 또 자유시와 短詩라 내가 스스로 일컬어 온 10행을 넘어선 미묘한 단계를 掌篇小說에 빗대어 掌篇詩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만들어 온 시다.

근일 우리 시단의 흐름도 짧은 시 쪽으로 가는 경향이 있어 넓게 사용해도 괜찮지 않으라 내보인 의견이다. 굳이 掌篇詩의 형식을 말하라면 사륙판시집의 한 페이지를 넘지 않는 詩, 손바닥 만한 詩, 손바닥만한 자리에 써도 좋을 내용과 형식을 갖춘 詩, 掌篇小說의 대칭으로 掌篇詩도 필요하다고 보아 단 의미다.

(......) 좀 낡은 냄새가 날지 모르겠지만 나는 젊은 날에 너무 나대며 쓴 시들보다 늙어 요즈음 차분히 가라앉은 일상사를 시로 읊조리는 것이 좋다. 우리는 흔히 人德이란 말을 자주 입에 올린다. 나는 살아오면서 고맙게도 여러 사람들에게 인덕을 입으며 여기까지 시를 써 올 수 있었다고 믿는다. 덕불고필유인 이웃이 있어 덕이 외롭지 않다는 것은 나에게는 시유동성덕불시가 있어 외롭지 않다는 것이고 시가 외롭지 않다는 것은 바로 人德 때문이라 믿는다.

-「손바닥 시와 書畵 이야기」 중에서

○강우식 시인은 1941년 강원도 주문진에서 출생하여 196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사행시초》, 《마추픽추》, 《바이칼》, 《백야》, 《시학교수》 등이 있다. 성균관대학교 시학 교수로 정년퇴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