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본질의 어두운 시간을 나는 사랑합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김재혁 옮김
내 본질의 어두운 시간을 나는 사랑합니다,
이 시간이면 나의 감각은 깊어지니까요,
마치 오래된 편지에서 느끼는 것처럼
이때 나는 지나온 나날의 삶의 모습을
저만치 전설처럼 아득하게 바라봅니다.
어두운 시간은 내게 알려줍니다, 또 다른 삶에 이르는
시간을 넘어선 드넓은 공간이 내게 있음을.
그리고 어쩌다 나는 한 그루 나무와 같습니다,
묘지 위에 자라나 바람결에 가지를 흔들며
죽어간 소년이 슬픔과 노래 속에서 잃었던
(그의 주변에는 따스한 나무 뿌리가 얽혀 있습니다)
그 꿈을 이루어 주는 그 나무와 같습니다.
-『기도시집 Das Stunden-Buch』- 제 1부 수도사 생활의 서」 에서
-《소유하지 않는 사랑》,(2003, 고려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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