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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이모저모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금동원(琴東媛) 2022. 8. 8. 22:03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김혜순 저 | 문학과지성사 

 

 

“모래의 시간은 늘 이별이야”

지배적 언어에 맞서는 몸의 언어로 한국 현대시의 미학을 갱신해온 ‘시인들의 시인’, 김혜순의 열네번째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567으로 출간되었다.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에서 김혜순은 세상의 죽음을 탄식한다. 1부는 시인의 ‘엄마’가 아플 때와 돌아가신 후에 죽음을 맴돌며 적은 비탄의 시들이다. 2부에는 코로나19라는 전 인류적 재난을 맞이한 시대적 절망이, 3부에는 죽음의 바깥에서 텅 빈 사막을 헤맨 기록이 담겼다. 시인은 사적으로 경험한 병과 죽음을 투과하여 세상의 죽음을, 그 낱낱의 죽음에 숨겨진 비탄 하나하나를 바라본다. 비탄의 연대를 도모하면서 모래처럼 부서진 생명의 조각들이 죽음 그 자체인 망각의 사막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온 힘을 다해 지켜본다. 그렇게 죽음이란 ‘삶 속에서 무한히 겪어나가야 하며 무한히 물리쳐야 하는 것, 살면서 앓는 것’임을 김혜순의 시를 통해 우리는 마침내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시 속으로

 

엄마는 꿈속의 인물도 꿈 밖의 인물도,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똑같이 취급한다.

가위 달라 할 때도 거기 걔 좀 줘, 한다. 가랑이 빨간 거! 한다. 모두 인간 취급한다.

엄마는 시인들보다 말을 잘한다.

우리가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다 죽음과 삶 중간에 있는 거라고 한다.

이 세상은 거대한 병원이라고 한다.

--- 「체세포복제배아」 중에서

 

언어는 항상 왜 뒤에 올까?

시는 왜 그림자를 찍어서 쓸까?

 

공포는 저 혼자 제 몸을 만들 수 있다

후회도 저 혼자 제 몸을 만들 수 있다

 

죽음을 잉태할 땐 누구나 고아다

 

지구를 가득 뒤덮은 사람들이 각자의 엄마를 부르는 소리는

언어일까? 새 울음소리 같은 걸까?

--- 「잊힌 비행기」 중에서

 

엄마 옆 침대엔 엄마보다 30세 어린 여자가 작은 새처럼 동그마니 앉아 있다. 항상 웃다가 눈물을 쓱 훔친다. 죽기 직전까지 사회생활을 하느라 저렇게 겸손하다. 정신줄보다 끈질긴 사회생활.

--- 「인생의 마지막 필수 항목 세 가지」 중에서

 

눈물은 전염성이 강해서 달 사막의 오목렌즈들 아래

저마다 하나씩 조그만 호수가 나타난다.

 

여전히 우주 미아 둘이 조그만 얼음덩이 같은 집을 가슴에 품고

 

모래 위에 엎드린

지구의 마지막 여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이 생의 깊은 곳에서 쳐다보고 있다.

 

계세요?

계세요?

문상하러 왔어요.

연속해서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도 우리는 문을 열지 않고 있다.

죽은 이들과 소꿉놀이에 빠져서.

 

(나는 갑자기 내 딸에게 딸처럼 굴고 싶은 걸 참고 있다.)

---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중에서

 

엄마는 나를 두 번 배신했다

첫번째는 세상에 나를 낳아서

두번째는 세상에 나를 두고 가버려서

[…]

결국 엄마는 나를 두 번 배신했다

첫번째는 세상에 죽음을 낳아서

두번째는 세상에 죽음을 두고 가버려서

--- 「엄마란 무엇인가」 중에서

 

모든 사람이 다 지워져도 작별만은 지울 수 없는 법

--- 「죽음의 베이비파우더」 중에서

 

마지막 들숨의 안타까가 시시각각

엄마를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안 돼 안 돼 지금은 안 돼

하얀 천으로 서로 얼굴을 덮고

모래 속에서 피는 두 송이 흰 꽃을 저속으로 촬영한

필름 속에 있는 듯

모래시계 속에서 서로 더듬으며

그러나 시계도 없고 흰 꽃도 없고

 

안타까로 서로 얼굴을 감싸안으며 안타까 안타까

 

나는 이 안타까를 물리치고 싶은가 아니면 이것만이라도 품고 싶은가

이제 두 사람은 이 안타까에서만 만날 수 있는가?

나는 나보다 더 안타까운 안타까에 잠긴 채 소리소리 지르며

안 돼 안 돼 지금은 안 돼

--- 「형용사의 영지」 중에서

 

가끔 생각한다. 이 세상 모든 단어의 영지를. 사실 명사들의 영지가 넓은 것 같지만, 형용사나 부사, 접속사의 영지가 더 넓다. 그중에서도 부사들의 영지가 제일 넓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나 부사, 접속사의 상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명사나 대명사에 달라붙지 않게 된 그들의 무한한 자유. 그들의 합종연횡. 내게서 떠난 이들도 형용사나 부사, 접속사의 모습으로 지금의 나를 감싸고 있다고 생각해본다.

--- 「시인의 글」 중에서

 

 

◎작가 소개

김혜순 (1955~)은 대상을 주관적으로 비틀어 만든 기괴한 이미지들과 속도감 있는 언어 감각으로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온 김혜순이 시를 통해 끈질기게 말하는 것은 죽음에 둘러싸인 우리 삶의 뜻없음, 지옥에 갇힌 느낌이다. 그 죽음은 생물학적 개체의 종말로서의 현상적,실재적 죽음이 아니라, 삶의 내면에 커다란 구멍으로 들어앉은 관념적,선험적 죽음이다. 그의 세 번째 시집 제목이 『어느 별의 지옥』인 것도 우연은 아니다. 『어느 별의 죽음』은 세계의 무목적성에 대한 오랜 응시로 삶에 예정되어 있는 불행을 눈치채버린 이의, 삶의 텅 빔과 헛됨, 견딜 수 없는 지옥의 느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비관주의적 상상력이 빚어낸 시집이다. 그의 시 세계는 일상적이고 자명한 것의 평화와 질서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의 의식을 난폭하게 찌르고 괴롭힌다.

김혜순은 1955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초등 학교에 입학할 무렵 강원도 원주에 이사해 거기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원주여고를 거쳐 1973년 건국대학교 국문과에 들어가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78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처음 써 본 평론 「시와 회화의 미학적 교류」가 입선하고, 이어 1979년 「문학과 지성」에 「담배를 피우는 시인」,「도솔가」등의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나온다. 대학 졸업 뒤 「평민사」와 「문장」의 편집부에서 일하던 그는 1993년 「김수영 시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는 1998년 '김수영 문학상'을 받음으로써, 낯설고 이색적이어서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던 그의 시세계는 비로소 문단의 공인을 받는다. 2019년 캐나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그리핀 시 문학상(Griffin Poetry Prize)를 수상했다.

김혜순 시의 착지점은 '몸', 그것도 해탈이 불가능한 '여성의 몸'이다. 해탈이 불가능한 몸에서 출발한 그의 시적 상상력은 때때로 그로테스크한 식육적 상상력으로까지 뻗친다. 이런 점에서 김혜순의 시를 "블랙유머에 바탕을 둔 경쾌한 악마주의"의 시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는 자기 시의 발생론적 근거를 '여성'과 '여성의 몸'에서 찾는다. 이에 대해 그는 "식민지에 사는 사람은 절대 해탈이 불가능하다. 여성은 식민지 상황에서 살고 있다. 사회학적 요인이 아니라 유전자에 새겨진 식민지성이 있다. 이때의 여성은 인식론적 여성이 아니라 존재론적 여성이다."라고 말한다.

 

 

◎출판사 리뷰

“왜 우는지 여자들은 안다. 그냥 안다”

숨어서 차례를 기다리는

엄마 없는 세상의 내일, 내일.

―「체세포복제배아」 부분

 

이 시집의 1부 ‘지구가 죽으면’에 실린 33편의 시들은 시인의 ‘엄마’가 병상에 계시다 돌아가신 2019년 무렵 씌어졌다. ‘아빠’의 죽음을 겪고 쓴 시가 실린 지난 시집 『날개 환상통』에서부터 이어지는 ‘작별의 존재론’에 관한 시들은, “부재의 존재와 존재의 부재를 함께 겪어내는 애도의 문장”(이제니)을 통해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잠재성의 출현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죽음 주변을 맴돌던 ‘엄마’와 그런 엄마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시인의 이야기가 담긴 1부에서 김혜순은 비탄 속으로 깊이 들어가보려 시도한다. 호스피스 병동의 공기에는 죽음이 배어 있다. “호스피스에서도 아침이면 밥 주고 점심이면 밥 주고 저녁이면 밥 준다. 찻잔에는 얼룩이 남고, 수건에는 물기가 남는다. 다른 것이 있다면 모두 지나치게 친절하달까”(「인생의 마지막 필수 항목 세 가지」). 엄마가 세상과 이별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딸에게서 “애도는 죽음보다 먼저 태어”난다(「저 봄 잡아라」). 결국 홀로 남겨진 이에게 세상 모든 것은 떠나간 엄마를 떠오르게 한다. “내 얼굴을 내 손으로 감싸면 엄마의 얼굴부터 만져졌다”. 엄마가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거대한 상실감은 시인에게 침묵을 안겨주었지만 오히려 침묵보다 더 큰 증언을 요구하기도 했다. 상실의 자리를 바라다보며 시인은 그 텅 빈 구멍을 비탄으로 채운다. 자신의 몸-말을 꺼내어 끊임없이 새로운 목소리로 확장시키고 비탄을 증언한다. 몸을 바꾼 엄마와 딸은 무한히 변용되고 생성되면서 이 시집을 가득 채워나간다. 그런 방식으로 “엄마는 사라져도 죽지 않고,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다”(강성은).

 

 

“모래의 시간은 늘 이별이야”

 

엄마의 몸과 마음이 쪼개질 때 눈부시게 솟아오르는 것.

반짝거리는 것, 햇빛에 비친 황금 먼지 같은 것, 엄마의 어깨를 뚫고 쏟아지는 것,

신기루 같은 것,

―「죽음의 베이비파우더」 부분

 

시집에 수록된 시들을 쓰는 동안 시인은 오직 비탄만이 고통받는 존재와의 연대이며 고통에 참여하는 행위임을 통찰해냈다. 그것은 김혜순에게 시인이란 죽음에 들어서서 죽음을 탄식하는 자라는 인식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시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 전 세계에 산재한 죽음과 비탄을 바라보게 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2부 ‘봉쇄’에 실린 시들은 코로나19라는 재난을 수년째 겪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살핀다. “우리가 안쓰러워 나는 우리에게 편지라도 보내”(「죽은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꽃」)고 싶었던 걸까. 이 시집은 수신인이 특정되지 않은, 죽음을 함께 겪고 물리치고 앓아갈 인간 동료들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읽히기도 한다. “늙은 엄마들이 자기보다 더 젊은 엄마를/엄마 엄마 부르며 죽어가는 이 세계”(「먼동이 튼다」)에서 서로의 비탄을 언어로써 나누는 일은 근거 없는 낙관이나 무력한 기도보다 가치 있다.

고통과 슬픔을 증언하기 위한 시 쓰는 행위는 또한 시인을 비탄의 바깥으로 데려다주기도 한다. 비탄의 바깥에는 불모의 텅 빈 사막이 있다. 시인에게 문학은, 시 쓰는 행위는 이 텅 빈 사막이 자신에게 다가오던 순간의 체험을 형상화하는 일이다. 3부 ‘달은 누굴 돌지?’에서는 세상 어디에도 없고 모든 인간이 사라진 시간과 장소인 ‘사막’을 헤매는 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 사막의 모래는 뿔뿔이 쓸쓸해, 뿔뿔이 쓸쓸해”(「사막의 숙주」). 사막을 채우는 모래는 바스러진 우리의 ‘생명과 시간과 나날’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막으로 누군가를 떠나보낸 남은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마음에 숨어 있는 낱낱의 비탄들일 것이다. 우리의 시간들이 결국 향하는 곳,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인 동시에 모든 거룩한 권력과 진리와 ‘말씀들’이 사라진 사막을 맴돌며 김혜순은 이 모래들을 그러모으고 쉼 없는 시 쓰기로 오히려 죽음의 능력을 상실시킨다. “가장 가까운 데서 가장 아득한 것을 발견해내는”(황인찬) 것이 시인의 일임을 잘 알고 있는, ‘죽음을 가장 잘 발음하는 시인’ 김혜순. 그가 일으키는 모래바람이 불어온다. 이 76편의 모래-시는 “시집에 귀를 대고 있으면 알 수 있는”(백은선) 질문 하나를 당신의 마음속에 남길 것이다. 비탄을 짊어진 이 지구는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슬픈 사람은 썩고

아픈 사람은 모래

 

운다.

운다.

운다.

―「3부 ‘달은 누굴 돌지?’에 부치는 글」에서

 

시인의 말

 

엄마, 이 시집은 읽지 마, 다 모래야.

 

2022년 4월

김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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