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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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詩 이모저모

이 시대의 아벨 / 고정희

금동원(琴東媛) 2022. 6. 29. 22:53

사랑법 첫째

 

그대 향한 내 기대가 높으면 높을 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 매달아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에 내 기대 높이가 자라는 쪽으로 커다란 돌덩이 매달아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해서 내 외롬 짓무른 밤일수록 제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 놓습니다.

 

 

사랑법 세째

 

제가 제 살 찌르지 못하는 법 이리 와요

제가 제 절망 찌르지 못하는 법 이리 와요

제가 제 아픔 자르지 못하는 법 이리 와요

제가 제 죽음 죽이지 못하는 법 이리 와요

제가 제 사랑 이기지 못하는 법 이리 와요

이리 와요 곪은 살일수록 깊이 들어가는 가시

탱자나무 가시 받아요

 

확실한 것을 우린 죽여야 해

분명한 것을 우린 죽여야 해

소리나지 않는 것을 우린 죽여야 해

 

이리 와요 썩은 살을 골라요

아프지 않는 맘을 골라요

멍들어 있는 골반을 골라요

아프지 않는 살일수록 깊이 박히는 가시

자, 가시를 받아요

 

 

사랑법 네째

 

시를 쓰듯 설렁대는 말들을 일격에 눕히고 성나는 말과 말 사이를 잘라냅니다.

시를 쓰듯 보다 많은 생략법과 저녁 어스름 같은 침묵의 공간 안에 한 생애의 여유를 풀어버리고 두 귀를 쭈볏히 세워 동서남북으로 뻗은 가지를 자릅니다. 동서넘북으로 뻗은 화냥기를 자르고 자르며 돋아나는 아픔까지 잘라냅니다.

자존심 부드러운 열 손가락으로 시를 완성하듯 마침표를 지워버립니다. 두 배의 객토를 뿌리 위에 얹습니다.

 

 

사랑법 다섯째

 

저절로 떨리는 세계를 가질 것

그대 정신의 미세한 파장

파장의 목덜미를 크게 잡아 버릴 것

과녘으로 걸리는 그대 영혼 한 뼘을 향해

팽팽하게 시위를 잡아당길 것

매 순간 쓰러지는 소리를 들을 것

쓰러지는 소리 가슴에 쾅쾅 못박아버릴 것

 

비로소 화인火印 한 장

넋받이로 비축할 것

 

 

사랑법 여섯째

 

주룩비 내리고 바람 우는 이 밤에

그대 비끄러맬 비방 하나

끈 풀고 싶은 이 밤

이별 싹둑 잘라버리는 비방 하나

그대 가슴에 풀어버릴거야

행여 그대 안오시면

고이 간직한 비방 뉘 가슴에 풀꼬?

주룩비 내리고 바람 우는 어느 밤에

그대 숲에서

불새 한 마리 내게 날아왔거니

그대야 불새, 불새, 불새

내 품에 푸득이는 이 밤에

불새 품어 날아가버리자

 

 

사랑법 일곱째

 

미리 늙은 살 이쪽저쪽 도려내고

톱니처럼 두 마음 꽉 들어맞을 때

두 마음 매인 말 엉덩이

혼신의 채찍으로 후려치거라

이십사 시간 신경을 죄어

한쪽으로 한쪽으로 달리게 하라

먼지 자욱하고 돌맹이 날으나

뒤돌아보아서는 아니 되느니

마차가 빠를수록

먼 곳을 보거라

 

 

-《이시대의 아벨》,(문학과 지성사, 1983)

 

 

○작가소개

고정희 시인은 1948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출생하여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했다. 광주 YWCA 대학생부 간사, 교사, 잡지사 기자를 지냈으며 출판사에서 근무하였다. 1975년 [현대시학]을 통해 시단에 나왔다.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실락원 기행』, 『초혼제』, 『이 시대의 아벨』, 『눈물꽃』, 『지리산의 봄』,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 『광주의 눈물비』, 『여성해방출사표』, 『아름다운 사람 하나』, 시선집 『뱀사골에서 쓴 편지』, 유고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91년 4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책 속으로

 

 

설흔두 살의 늦가을

징그러워라

설흔두 살 여자의 독기와 슬픔으로

설흔두 해 뿌리 내린 머리를 깎았다

나치 수용소의 유대 여자들처럼

나는 내 땅에서 삭발했었다

자수성가 세대의 아픔을 헤집고

즈믄 강물 휘도는 소리

간간이 들으면서

유대 여자처럼 거울을 보았다

파르스름한 벌거숭이산 위에

튼튼한 원목들 쿵쿵 쓰러지고

거센 마파람 맨발로 몰려와

열두 번도 더 추위를 덮었다

모자를 쓰고 거리로 나왔다

모자 속에서 너를 바라보았을 때

세상은 어김없는 빈집이었다

허천들린 외로움의 세상을

타는 목젖으로 벌컥벌컥 들이키며

유대 여자처럼 나는 걸었다

(하느님도 침묵하신 잘 익은 땅이여)

껄끄러운 입안에서 아직

단내가 풍기지만 그래도

푸른 신호등이 잘 보이는 두 눈에

철철 넘치는 총명한 눈물,

 

설흔두 해 뿌리 자르고 나서도

그리움 하나만은 끝내지 못했다

종말론적 벼랑에서 너를 바라보았을 때

우리는 이제 어둠의 꽃이었다

단발령의 격문이었다.

--- 「그해 가을」중에서

 

너희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 고통을 짊어진 아벨

너희 족보를 짊어진 아벨

너희 탐욕과 음습한 과거를 등에 진 아벨

너희 자유의 멍에로 무거운 아벨

너희 사랑가로 재갈 물린 아벨

일흔일곱 날 떠돌던 아벨을 보았느냐?

아흔아홉 날 한뎃잠을 청하던 아벨을 보았느냐?

 

이제 침묵은 용서받지 못한다

돌들이 일어나 꽃씨를 뿌리고

바람들이 달려와 성벽을 허물리라

지진이 솟구쳐 빗장을 뽑으리라

바람 부는 이 세상 어디서나

아벨의 울음은 잠들지 못하리

--- 「이 시대의 아벨」중에서

 

시집 초판 뒤표지 글(시인의 글, 1983)

시 쓰는 행위가 곧 신념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시와 행동은 분리되어야 한다고 구변을 늘어놓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용납되지 않는다. 나의 시가 관심하는 문제는 삶 자체이지 결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우리의 삶의 영역은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전통의 문제들이 곧 우리 삶의 현장이며 그것들과 내 삶이 부딪는 장소에서 우리는 인간이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하게 된다. 나의 시는 그러한 삶의 현장에서의 고뇌의 궤적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나는 정치가도 사회학자도 경제학자도 아니지만 개개인의 삶이 어떠한 경우에도 그것들의 규제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고통스럽게 생각해왔다. 그러한 제도적 억압의 굴레를 극복하려는 힘, 그것이 자유의지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나의 시는 항상 자유의지에 속해 있는 하나의 에너지였다.

--- 「시인의 글」중에서

 

시집 초판 시인의 말(1983)

두번째 시집 『실락원 기행』(1981) 이후에 발표된 2, 3년 동안의 작품을 제5부로 묶었다. 올해 5월에 상재한 장시집 『초혼제』가 그 1부에 속한다면 이 시집은 제2부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1년에 두 권의 시집을 묶는다는 사실이 외형적으로 내게 상당한 부담이 되어왔지만 그러나 기왕에 정리된 작품들을 단지 출판일을 늦추기 위해서 갈무리해두는 것은 나로서는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허물은 제때에 벗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집을 통해서 보다 견고한 자기 점검의 기틀이 마련되기를 자숙하고 싶다.

1983년 9월 20일

고정희

--- 「시인의 말」중에서

 

 

○출판사 리뷰
 

고정희의 시는 짙은 시대성으로 어쩔 수 없이 시가 씌어진 당대의 세상을 불러일으킨다. 납작하게 누워 있던 그 세상은 벌떡 일어나 이곳의 사람들에게 묻는다. 살아지는지 살아가는지, 그리하여 살 만하신지 안녕하신지…… 지금, 당신들이 바라는 안녕은 안전하게 통치해달라는 청탁이 아닌지,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는 인터넷 댓글 창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아닌지…… 다양성의 사회,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는 아이러니한 세상. ‘금지를 금지하자’던 반(反)권력의 시대는 가고 이제, 고소 고발과 청원이 난무하는, 권력에 금지를 청탁하는 시대. 또한 기독교가 더 이상 사회적 구원이 될 수 없는, 세련된 기복신앙의 세상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럼에도, 고정희 시인의 시편들이 40여 년이 지난 지금/여기에서 호명되는 이유는 그 치열함이 만든 여백이 사람들의 마음에 빈틈을 넓혀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의 어느 밤낮은 지금의 어떤 날, 그 시대의 어느 골목은 이곳의 어느 거리이다. 호명됨으로써 더욱 새로워지고, 소환됨으로써 그때와 지금을 연결하는, 틈을 메우는 여백, 여백을 채우는 시.

 

[……]

유산 없는 한 시대가 저물고 있었지

그러나 친구여, 나는 오늘밤

오만한 절망으로 똘똘 뭉쳐진

한 사내의 술잔 앞에서

하느님을 모르는 절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이쁜 우매함인가를

다시 쓸쓸하게 새김질하면서

하느님을 등에 업은 행복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맹랑한 도착 신앙인가도

토악질하듯 음미하면서, 오직

내 희망의 여린 부분과

네 절망의 질긴 부분이

톱니바퀴처럼 맞닿기를 바랐다

[……]

―「서울 사랑―절망에 대하여」 부분

 

참여의 시, 여성의 시, 내성(內省)의 시, 영원한 ‘이 시대의 아벨’의 시

 

권력이 사랑이 시가 배달되는 시대, 반성도 사과도 성찰도 전시되는 시대, 지성은 집단에서 생산되고 개인은 그것을 소비하는 시대, 스스로 아벨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카인인, 살아남은 자의 이중성, 또는 이기적 모순의 시대. 1983년의 『이 시대의 아벨』은 아벨 되기를 갈망하는 살아남은 자의 속죄이고 실천이라면, 2019년의 『이 시대의 아벨』은 살아남은 자의 손을 내려다보게 한다. 그 손에 묻은 피는 누구의 것인지,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칼끝으로 찌른 그 몸은 누구의 몸인지.

 

역사는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하지만, 시는 언어를 넘어섬으로써 미래에 다가간다. 당대의 삶에 천착하지만 사회 현상의 깊은 속으로 흐르는 저류를 발견하는 것은, (당대의) 언어로는 불가능하다. 그때의 언어를 넘어서는 언어는 지금의 언어에 닿아 있고, 언어를 넘어선 그 무엇, 즉, 시에 닿아 있다. 고정희 시인의 시가, ‘참여’로만 머물렀다면 그의 시는 이미 지난 세기에 박제되었을 것이다. 참여의 시로서, 또한 여성의 시로서 시대를 관통하는 목소리는 밖으로만 향해 있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돌아나가는 경로를 지닌다. 자신을 성찰하는 내성(內省)의 시는 고정희 시의 밑바닥을 흐르는 힘이다. 유연한 폭력에 내성(耐性)이 생긴 이 시대의 ‘카인’에게 ‘당신은 아벨이 아님’을 성찰케 하고 그 아픔을 자각하게 한다. 그리하여 ‘영원한’ 이 시대의 아벨이 되라고 한다.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상한 영혼을 위하여」 전문

 

강한 의지와 생명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고정희의 시를 지탱하고 있는 두 개의 축이다. 그는 몹쓸 인간과 악덕의 현실에 분노하고, 삶의 허무함에 좌절하고, 때론 인간으로서의 어쩔 수 없는 고독에 쓸쓸해한다. 그것은 인간을 황폐하게 하는 문명의 근본적 죄악으로부터 오기도 하며 정치적·사회적 상황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있어서든지 그는 결코 쉽게 절망하지 않는다. 그 의지는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한 계절 넉넉히 흔들”린다는 의식이 그의 생각 깊숙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상한 갈대가 한 계절 흔들릴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하늘 아래”에서라는 생각이다. 하늘 아래 아니라면, 어디서 상한 갈대가 한시인들 버틸 수 있으랴. 결국 아무리 버림받고 핍박받은, 혹은 소외되고, 상처 입은 영혼이라도 하늘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올바른 정신만 갖고 있다면,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주연, 「고정희의 의지와 사랑」 시집 초판(1983) 해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