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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詩 이모저모

연인들 / 최승자

금동원(琴東媛) 2022. 4. 15. 00:28

더스트 인 더 윈드, 캔자스

 

최승자

창문 밖, 사막, 바라보고 있다.

내세의 모래 언덕들, 전생처럼 불어가는 모래의 바람.

 

창가에서 이 십 년 전쯤 처음 만났던 노래를 들으며

찻잔을 홀짝이다가, 나는 결정한다.

이제껏 내가 먹여 키워왔던 슬픔들을

이제 결정적으로 밟아버리겠다고

한때는 그것들이 날 뜯어먹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 자신이 그것들을 얼마나 정성스레 먹여 키웠는지 이제 안다.

그 슬픔들은 사실이었고, 진실이었지만

그러나 대책 없는 픽션이었고, 연결되지 않는 숏 스토리들이었다.

하지만 이젠 저 창 밖 풍경, 저 불모를 지탱해주는

눈먼 하늘의 흰자위,

저 무한으로 번져가는 무색 투명에 기대고 싶다

더스트 인 더 윈드, 캔자스

-《연인들》, (1999, 문학동네)

 

 

○책 속으로

 

책속에서

누가 펼쳐놓았나.

아무것도 씌어져 있지 않은 이 빈 공책.

그 위에 깊은 눈이 내려 침묵조차,

침묵이 걸어간 발자국조차 지워져버린

이 태초의 빈 공책을.

아니 그것은 내가 지워버린 공책이다.

나는 내가 써왔던 텍스트를 모두 지워버렸다.

이제 나는 더이상 쓰지 않을 것이다, 라고

그 위에다 나는 쓰지 않는다.

나는 다만 지워버렸고,

지워버렸다고 말할 뿐이다.

지워져버린 공책 위에 쌓인 눈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보고, 그리고 안다.

이제 그 위로 소리 없이 바람이 한차례 지나가고,

그리고 그 공책은 영원히 닫혀질 것임을.

 

─「빈 공책」 전문 

 
 
 
 
○출판사 리뷰
 

■ 편집자의 책소개

 

“(혹) 잊을 순 있어도, 잃을 순 없는” 우리들의 시인(박연준), 그 폭발하는 언어로 “언제나 미래”가 된 시인(이원) 최승자의 시집 『연인들』을 문학동네포에지 41번으로 다시 펴낸다. 1979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한 그의 다섯번째 시집이다. 1999년 홀연 11년간의 오랜 침묵 속으로, 저 너머의 세계로 떠나기 전 그가 삶의 자리에 매어두었던 약속 같은 시집이라 하겠다.

2010년 시로 돌아오며 그간 무소식의 사정을 조현병과의 씨름이라 밝힌 바, 그가 골몰했던 정신의 세계, 타로 카드와 음양오행과 신비주의의 세계로 향했던 출발점이며 분수령이 된 것이 이 시집이다. 후에 그 투병의 10여 년을 두고 시인은 “나를 병에 지치게 한” “어린아이 같은 짓”(『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난다, 2021, 이하 ‘산문집’)이라 소회하였으나, 23년 만에 되살아나는 이 시집을 앞에 둔 지금의 시인은 그토록 “무지막지한 고통 속을 달려왔던 시간,/무지막지한 고통 속을 헤매었던 시간”을 생각하며 “가히 참, 아름답다” 말한다.

 

절판되었던 시집을 다시 펴본다.

절단되었던 다리가 새로 생겨나오는 것 같다.

무지막지한 고통 속을 달려왔던 시간,

무지막지한 고통 속을 헤매었던 시간,

그 순간들이 점철되어 있는 이 시들이

어떻게 이렇게도 숨겨져 있을 수 있는지

가히 참, 아름답다. _개정판 시인의 말 전문

 

시집의 제목 『연인들』은 타로 카드에서 대비밀, 혹은 메이저 아르카나로 알려진 22장의 카드 중 6번 ‘Lovers’에서 따왔다. 카드의 그림 속에는 한 쌍의 연인이 대칭으로 서 있다. 시인은 그 위에 아니무스와 아니마, 남성과 여성, 하늘과 땅을 겹쳐 본다. 그리하여 이 시집을 ‘사이’의 시집이라 말하건대, 그 양단에 이쪽과 저쪽을, 차안과 피안을, 죽음과 삶을 놓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시인에게 ‘사이’는 갈라섬에 머무르지 않고 ‘넘어섬’으로, ‘건너감’으로 나아간다. 타로 카드 그림의 남녀 사이에 자리한 천상적 존재로, 혹은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이 말한 성(聖)의 제4요소, ‘페미닌’으로. 시인은 거기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할 것 없이 이 지상 사람들 모두가 천상적 존재를 껴입은 땅님, 즉 따님”임을 발견한다(시인의 말). 그러므로 그 땅속에서 기쁨으로 불러보는 나의 페르세포네, 나의 에우리디케, 나의 말쿠스, 나의 웅녀, 그리하여 나의 신부이자 누이일 “나의 따님”(「연인들 1」)이란 그가 움켜쥐고픈 세계의 비밀, 우리 모두의 첫 이름일 것이다.

 

몇만 년의 어둠, 무력의 맹점에서

이제 비로소 몇억 광년을 날아와

내 눈빛이 너를 찾는다.

내 눈빛이 네 흙의 눈빛과 만나니,

너 비로소 하늘빛으로

살아, 날아오르는,

이 빛의 혼인, 축복의 환한 빛, _「연인들 1」 부분

 

앞서 1993년 『내 무덤, 푸르고』(문학과지성사)를 출간한 뒤 시인은 미국 아이오와에서 생애 첫 외국 생활을 경험했다. 그곳에서 우연히 점성술과 신비주의를 맞닥뜨리고는 그 세계로 기꺼이 또 과감히 뛰어들었다. 그 기록인 『어떤 나무들은』(난다, 2021)에서 그가 얻었다 말하는 것은 “변화하지 않으면 나는 그 종래의 불행을 감수하고 살아야” 한다는 인식, 그러나 “이제는 옛날의 나였던 것을 잘라, 떨쳐버리게 해줄 수 있다는” 확신이다. 5년을 오롯이 바친 탐구이자 여정의 시간은 “‘죽음’의 죽음, 즉 ‘죽음’이라는 의식이 죽는 과정”이며 스스로가 만들어낸 ‘나’라는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다(시인의 말).

 

나는 그제야, 내가 그를 태곳적부터

알아왔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나는 그를 안다.

그리고 이제 깨닫는다. 모든 여행은 쓸모없는 여행이고,

모든 여행은 돌아가는 여행이고,

모든 여행은 떠난 적도 없는,

잠 속의, 꿈속의 여행이라는 것을. _「구토」 부분

 

이 시집 『연인들』의 앞에 무덤이 있었다면 그 뒤에는 『쓸쓸해서 머나먼』(문학과지성사, 2010)이 있다. “시인으로서는 이미 죽어 무덤에 묻혀 있는 꼴”이라며 제 손으로 “내 죽음을 담은 무덤”을 쌓았던 시인은 쓸쓸하고도 머나먼 곳으로, 쓸쓸해서 더욱 먼 곳으로 향했다. 묻힌 곳의 이름이 죽음이라면 먼 곳의 이름이 삶이다. 그러니 그 사이에 놓았던 이 시집 『연인들』을 두고 죽음으로의 여정 끝에 비로소 도달한 시인의 또다른 “한 입구, 다른 한 출발점”이라 일러도 좋으리라. 병을 얻도록 치열한, 주저 없는, 온몸으로 부딪쳐내는 여정 말이다. 그곳에서 그는 모든 전생을 돌아보고(「월하(月下), 이 빵빵한」), 모든 시를 철폐하고(「빈 공책」), 무수한 자신과 싸우고(「한 생각으로서의 인류사」), 그럼에도 모든 것을 용서하며(「나는 용서한다」), 이윽고 처음의 처음으로, 태초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 위로, 아, 바람의 계단들,

그 맨 꼭대기 허공, 바람의 절벽,

거기에 내가 알았던 모든 얼굴들

잔잔한 풀꽃들로 피어 흔들리고,

바람이 허공의 피아노 건반을

재빨리 한 번 훑을 때마다

무수한 음계들로, 까르르 까르르르,

시야 가득 번져가는 웃음소리들.

 

(모든 길들은 돌아가는 길들이고,

모든 여행은 돌아가는 여행이다.) _「제주기(濟州記)」 부분

 

길고 모질었다 할 그 여행 끝에 시인은 지쳤고 아팠으나, 그럼에도 그가 “다시금 문학의 자리로” “문학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산문집). 그 삶을 스스로 선택하였고 후회하지 않는다 말하는 시인, 그는 이미 “이번 생의 승자”(신형철)이므로 말이다.

 

끝 모를 고요와 가벼움을 원하는

어떤 것이 내 안에 있다.

한없이 가라앉았다

부풀어오르고,

 

다시 가라앉았다

부풀어오르는,

 

무게 없는 이것,

이름할 수 없이 환한 덩어리,

몸속의 몸, 빛의 몸.

 

몸속이 바닷속처럼 환해진다 _「연인들 3」 전문

 

 

■ 기획의 말

 

그리운 마음일 때 ‘I Miss You’라고 하는 것은 ‘내게서 당신이 빠져 있기(miss) 때문에 나는 충분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뜻이라는 게 소설가 쓰시마 유코의 아름다운 해석이다. 현재의 세계에는 틀림없이 결여가 있어서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한때 우리를 벅차게 했으나 이제는 읽을 수 없게 된 옛날의 시집을 되살리는 작업 또한 그 그리움의 일이다. 어떤 시집이 빠져 있는 한, 우리의 시는 충분해질 수 없다.

 

더 나아가 옛 시집을 복간하는 일은 한국 시문학사의 역동성이 드러나는 장을 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나의 새로운 예술작품이 창조될 때 일어나는 일은 과거에 있었던 모든 예술작품에도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이 시인 엘리엇의 오래된 말이다. 과거가 이룩해놓은 질서는 현재의 성취에 영향받아 다시 배치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빛에 의지해 어떤 과거를 선택할 것인가. 그렇게 시사(詩史)는 되돌아보며 전진한다.

 

이 일들을 문학동네는 이미 한 적이 있다. 1996년 11월 황동규, 마종기, 강은교의 청년기 시집들을 복간하며 ‘포에지 2000’ 시리즈가 시작됐다. “생이 덧없고 힘겨울 때 이따금 가슴으로 암송했던 시들, 이미 절판되어 오래된 명성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시들, 동시대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젊은 날의 아름다운 연가(戀歌)가 여기 되살아납니다.” 당시로서는 드물고 귀했던 그 일을 우리는 이제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 시인의 말

 

초판 시인의 말

 

여기 실린 시들은 한 권의 시집으로 묶기에는 좀 적은 분량인 마흔 편이다. 마지막 시집을 낸 것이 1993년이니까, 이제 그동안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새삼’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5 년의 시간이란 한 권의 시집을 묶기에는 길다고도 할 수 없고 짧다고도 할 수 없지만, 나로서는 참 많이 길었던 기간이기 때문이다. 그 5년이란 모든 것들, 나 자신, 나 자신을 둘러싼 상황, 세계에 너무 지쳤다고 이제 뭔가 다른 게 필요하다고 무의식적으로 느끼고서 한 여행을 시작하여 그 여행을 마치고서 이제 비로소 한 입구, 다른 한 출발점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기 때문이다. 그 5년 동안, 시를 포기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씌어진 시들이 이 시집에 실린 것들이다.

적은 분량이긴 하지만 그 시들 하나하나가 어떤 생각, 어떤 길,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가를 나에게 보여준다. 그것은 오직 나 자신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맨 처음 다섯 편의 시는 1993 년 부근의 나, 그러니까 깡깡하게 굳어져왔던 나의 흔적, 그 이전의 내 시들과 전혀 다를 게 없는 정서를 갖고 있다. 그리고 「우라노스를 위하여」를 비롯하여, 그 이후에 이어지는 시들은 내가 공부랍시고 한 여러 가지 상징체계들, 말하자면 음양오행론, 서양 점성술, 유대 신비주의 카발라, 타로 카드 등을 거치면서 거기서 얻은 생각들을 내 생각들로 바꾸어 나를 바꿔가는 과정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 자기 스스로 만들어놓은 상황과 조건이 나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들이 나 자신을 규정한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시들인데, 물론 그것을 알아보는 것 또한 나 자신밖에 없을 것이다. 그 시들 하나하나에서 5년 동안 나 자신이 걸었던 짧거나 긴, 그리고 돌고 도는 여행들 중에서 어떤 때에 씌었던가를 아는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세 편의 시, 「연인들」 1, 2, 3은 그 5년 과정을 마무리해주는, 그리하여 다시 새로운 한 출발점에 내가 서 있음을 보여주는 시들이기도 하다. 그 5년은 다른 말로 하자면, 내가 어느 한 수필에서 썼듯이, ‘죽음’의 죽음, 즉 ‘죽음’이라는 의식이 죽는 과정이도 했다. 이전의 내 의식이 얼마나 많은 죽음의 생각들로 가득차 있었던가, 고통 외로움 불행감 등 온갖 형태의 죽음의 생각들로 가득차 있었던가를 스스로 깨달아가는 기간이기도 했다. 그것은 아주 긴긴 시간 체험, 먼 공간 체험, 깊은 의식의 체험이기도 했다.

이 시집의 마지막에 나오는 연작시의 제목이며 이 시집의 제목인 ‘연인들’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이 제목은 여러 상징체계 중의 하나인 타로 대비밀 카드 중 6 번 카드, Lovers 에서 나온 것이다. 이 카드의 그림을 보면 우리가 흔히 천사라고 부르기도 하는 어떤 천상적인 존재가 두 팔을 벌리고 있고, 그 아래 오른쪽에는 한 남자가 있고, 왼쪽에는 한 여자가 서 있다. 머리를 위로 들어올린 여자의 눈에는 그 천상적인 존재가 비쳐 담겨 있고, 남자는 그 여자의 눈을 바라보고 있고 그리고 거기 비친 그 천상적 존재, 그러니까 인간에게 원래부터 주어져 있던 어떤 천상적인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융식으로 보자면, 이 남자와 여자는 아니무스, 아니마의 개념이기도 하다. 융은 성(聖)의 3대 요소에 제 4의 요소인 페미닌의 개념이 도입되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한적이 있다. 이때의 페미닌적 요소는 남성, 여성을 구분할 것 없이, 이 지상의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페미닌적 요소이다. 이것은 다시 우리의 단군신화적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거친 성격을 가진 호족을 이겨낸 웅족의 따님이 환인을 거쳐 내려온 환웅과 결혼하여 낳은 단군, 그러니까 하늘과 땅의 결합체이고,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새로운 페미닌적 요소이다. 말하자면 남성과 여성을 구분

할 것 없이 이 지상 사람들 모두가 천상적 존재를 껴입은 땅님, 즉 따님인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쓰인 시가 연작시 「연인들」이고, 그중에서도 「연인들 1?빛의 혼인」이 그런 생각에 가장 가까운 시이다. 그리고 그 시의 마지막 연은 이렇게 끝난다.

 

수천 길 땅속에서 끌어낸

나의 신부, 그 몸에 빛이, 생기가 돌고,

나의 잠자는 미녀,

이제 그 눈을 떠라,

나의 페르세포네, 나의 에우리디케,

오 나의 신부, 나의 누이여,

나의 말쿠스,

나의 웅녀, 나의 따님.

 

1999년 1월

최승자

 

 

개정판 시인의 말

 

절판되었던 시집을 다시 펴본다.

절단되었던 다리가 새로 생겨나오는 것 같다.

무지막지한 고통 속을 달려왔던 시간,

무지막지한 고통 속을 헤매었던 시간,

그 순간들이 점철되어 있는 이 시들이

어떻게 이렇게도 숨겨져 있을 수 있는지

가히 참, 아름답다.

 

2022년 1월

최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