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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이모저모

한 줄도 너무 길다

금동원(琴東媛) 2022. 8. 28. 13:27

 

《한 줄도 너무 길다》

-류시화 편역 | 이레 |

 

◎책 속으로

하룻밤 재워주고 한끼 밥을 사준 사람에 대해선 절대 당연히 여기지 말라, 사람들에게 아첨하지도 말라, 그런 짓을 하는 자는 천한자이다. 하이쿠의 길을 걷는 자는 그 길을 걷는 사람들과 교류해야 한다. 저녁에 생각하고 아침에 생각하라, 하루가 시작될 무렵과 끝날 무렵에는 여행을 중단하라, 다른 사람에게 수고를 끼치지 말라, 그렇게 하면 그들이 멀어진다는 것을 명심하라.

이들의 이러한 철저한 방랑은 현대 시인 나나오 사카키에게도 이어졌다. 제 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그는 유럽, 한국, 중국, 미국, 호주, 스리랑카 등지를 걸어서 여행하며 일본어와 영어로 시를 썼다. 굳이 하이진들이 일깨워주지 않아도 인생은 근원적으로 외로운 것이며, 온갖 부조리한 넌센스로가득 차 있다.

--- p. 171

짧은 시는 긴 시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 몇 마디의 말, 눈빛, 손짓 같은 것으로 언어 너머의 것을 이야기한다. 바쇼는 문하생들에게 이렇게 충고하고 있다.

'모습을 먼저 보이고 마음은 뒤로 감추라.'

시의 의미는 뒤로 감추고 모습(形)을, 풍경을 먼저 보이라는 것이다. 설명하지 말고 묘사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토로하는 것은 이류시인이나 하는 것이라는 지적은 옳다. 하이쿠는 눈으로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가시적인 것들을 보여 준다.

--- p.149

이 벚꽃 얼마나 많은 것들을 생각나게 하는가 당신은 모르겠지만 지금 울고 있는 저 매미는 오래 살 수가 없어 가을바람이 모닥불을 피울만큼 충분히 낙엽을 몰아다 주네 태어나는 죄를 지었으니 죽는 것일뿐 그것에 대해서 투덜거릴 게 없다. 네네하고 아무리 대답해도 누군가 계속해서 두드리네 눈에 파묻힌 대문을. 물고기는 무엇을 느끼고 새들은 무엇을 느끼는가 한해의 마지막날! 추운 밤 병든 기러기가 하늘에서 떨어져 잠시 잠들었구나... 대문앞에 난 단정한 노란 구멍 누가 눈위에 줌을 누었지? 달이 동쪽으로 옮겨가자 꽃그림자 서쪽으로 기어가네 하얀 이슬이 가시마다 하나씩 걸려있다.

--- p.134-138

이 땅에 묻으면 내 아이도 꽃으로 피어날까? [오니츠라 아들이 죽고 나서 쓴 시] ---p.40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 [바쇼] ---p.57

--- p.40~57

오래 전부터 일본에는 한 줄짜리 시를 쓰는 사람들이 있어 왔다. 그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먼길을 여행하고 방랑하며 한 줄의 시를 썼다. 길에서 마주치는 풍경에 대해, 작은 사물에 대해, 벼룩과 이와 반딧불에 대해, 그리고 허수아비 뱃속에서 울고 있는 귀뚜라미와 물고기 눈에 어린 눈물에 대해..... 한 줄의 시로 그들은 불가사의한 이 지상에서의 삶을 표현하고자 했다. 때로 그들에게는 한 줄도 너무 길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하이쿠. 번개처럼, 우리들 생에 파고드는 침묵의 언어들!

--- 머리말 중에서

 

벼룩, 너에게도 역시

밤은 길겠지

밤은 무척 외로울 거야 (이싸)

가을이 깊었는데

이 애벌레는

아직도 나비가 못 되었구나 (바쇼)

 

이 숯도 한때는

흰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 (타다토모)

 

우리가 기르던 개를 묻은

뜰 한구석에서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시키)

 

홍시를 먹으면서

이것도 올해가 마지막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시키)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 물리다니 (이싸)

 

강물에 떠내려가는

나뭇가지 위에서

아직도 벌레가 노래를 하네 (이싸)

 

만일 누군가

‘소칸은 어디 있는가?’ 하고 물으면

‘저세상에 볼일이 있어 갔다’고 말해 주게 (소칸)

 

한밤중에 내리는 서리

허수아비 옷을

빌려 입어야겠네 (바쇼)

 

옷을 갈아입었지만

내 여행길에는

똑같은 이가 따라나섰구나 (이싸)

 

여름옷으로

거지는

하늘과 땅을 입었다 (기가쿠)

 

내 집이 너무 작아서

미안하네, 벼룩씨

하지만 뛰는 연습이라도 하게 (이싸)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벚꽃 아래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은 (이싸)

 

나비 한 마리

절의 종에 내려앉아

졸고 있다 (부손)

 

고요함이여

매미소리가

바위를 뚫는다 (바쇼)

 

나비 한 마리 돌 위에 앉아 졸고 있다

어쩌면 나의 슬픈 인생을

꿈꾸고 있는 건지도 몰라 (시키)

 

달팽이 얼굴을 자세히 보니

너도

부처를 닮았구나 (이싸)

 

한 번의 날카로운 울음으로

꿩은 넓은 들판을

다 삼켜 버렸다 (야메이)

 

만일 이 모든것을 시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면,그 효과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참 본질에 다가가려면 설명이 아니라 직관과 느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시는 다 떠들어 대지 않는다.큰 소리로 외치지 않는다.에머슨은 말하고 있다.'당신이 너무 크게 말하년 난 당신이 말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 없다.'

--- p.152

 

두 그루의 매화, 얼마나 보기 좋은가

하나는 일찍 피고

하나는 늦게 피고

--- 바소

 

올해의 첫 매미 울음

인생은

쓰라려, 쓰라려, 쓰라려

--- 이싸

--- p.38, 81

 

나는 떠나고

그대는 남으니

두 번의 가을이 찾아오네

- 부손 -

 

고추 잠자리를 쫓아

넌 어디까지 갔니?

어느 들판을 헤매고 있니?

- 치요 -

(어린 아들의 죽음 뒤에)

--- p.17, 113

 

겨울비 속에

저 돌부처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이싸-

 

거미줄에 나비가

죽은 채로 걸려 있다

슬픈 풍경! -시키-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시게

나 역시 외로우니

이 가을 저녁 -바쇼-

 

이 무더운 날에

나는 마음을 정했다

승려가 되기로 -토세이-

 

나무 그늘 아래

나비와 함께 앉아 있다

이것도 전생의 인연 -이싸-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으려다

미쳐버렸네 -시메이-

 

여름옷으로

거지는

하늘과 땅을 입었다 -기가쿠-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

하지만, 하지만..... -이싸-

--- p.81

 

걱정하지 말게, 거미여

나는 게을러서

집안 청소를 잘 안 하니까

<이싸>

40 p.

 

◎출판사 리뷰

하이쿠란?

하이쿠는 5-7-5, 열일곱 자로 된 한 줄짜리 정형시이다. 5-7-5-7-7로 된 일본의 전통시, ‘와카’가 중세의 전란기에 지방을 떠돌던 문인들에 의해 5-7-5와 7-7로 나누어져 번갈아 읊는 ‘렌가’의 형태로 발전한다. 렌가는 당시 난세를 살아가는 문인들의 고차원적인 언어유희였다. 상인들의 재력이 성장하는 근세 서민사회로 들어서면서 이 렌가는 단지 유흥의 도구, 말장난 문학으로 변질된다.

하지만 이때 시가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발구(發句) 즉 5-7-5가 차츰 단독으로 읊어지게 되었으며 그 자체로서 완결성이 요구됐다. 이러한 시 형식이 정착되고 거기에 대표적인 하이쿠 시인으로 추앙받는 바쇼의 노력으로 오늘날의 하이쿠 형식이 만들어졌다. 바쇼는 한시와 고전에 탐독하고 방랑으로 일생을 보낸 사람이었다. 실질적으로 그가 말장난에 불과하던 하이쿠에 자연을 노래하고 인생의 의미를 더해 문학의 한 장르로 만들었다. 오늘날 하이쿠는 일본이라는 고향을 떠나 전 세계를 무대로 지어지고 읊어진다. 더구나 오직 작가들만이 창작을 독점하는 시문학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생활 속에서 창작하고 애송하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시로서 거듭났다.

미국에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하이쿠가 실려 있으며, 뉴욕타임스는 뉴욕 시민을 대상으로 하이쿠를 공모해 매일 싣기도 했다. 인터넷 서점에는 하이쿠 관련 서적이 수천 권이며 하이쿠 시인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유럽에서도 남미에서도 계속해서 늘고 있다. 인터넷의 하이쿠 동호회들은 전세계의 하이쿠 열광자들과 서로의 시를 자랑하고 평가받으며 콘테스트를 열기까지 한다. 그들 모두가 문단의 찬사를 받은 시인들은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생활인들이다. 그들은 다들 속해 있는 자신의 처지와 환경에 따라 하이쿠를 창작하고 노래한다. 하이쿠는 이제 문학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생활인의 시가 되었다.

누구나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시, 언제나 어디서나 노래되는 시, 하이쿠. 노래되지 않는 시는 더 이상 시가 아니다. 생활 속 깊이 살아 노래되며, 시대와 함께 변화하며 발전하는 시, 그것이 하이쿠이다. 이미 하이쿠는 더 이상 일본의 시가 아니다. 전 세계인이 가장 폭넓게 즐기는 시가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하이쿠

<한 줄도 너무 길다>는 일본의 한 줄짜리 시, 하이쿠 모음집이다. 하이쿠가 문학의 한 장르로 완성된 것은 300여 년 전이다. 그동안 하이쿠는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세계 곳곳에 퍼진 하이쿠는 옥따비오 빠스나 게리 스나이더, 알렌 긴스버그, 체슬라브 밀로즈 등 수많은 작가들에게 문학적 영감을 심어주고, 그 한 줄 속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몇 시간씩이나 학자들의 머리를 싸매게 만들고, 독자들에게 직접 써보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국내에서도 이 독특한 형식의 시를 소개하려는 노력은 없지 않았다. 그러나 국내 출간된 하이쿠 관련서들은 하이쿠의 가장 대표적인 시인인 바쇼의 기행문이나 바쇼를 중심으로 한 소개서가 아니면 다분히 학습적인 의도가 짙은 대역본들에 불과했다. 시 자체의 감상을 위한 책은 이번에 출간된 이레의 <한 줄도 너무 길다>가 최초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 <한 줄도 너무 길다>에서 번역자 류시화는 원래 한 줄인 하이쿠를, 그 시적 운율을 살리기 위해 석 줄로 번역했다. 그는 이 하이쿠 시들을 번역하기 위해 실로 여러 해를 보냈다. 일본 고서점을 뒤지고, 절판이 된 영어 번역본들을 구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수천 편의 시를 모으고 그 중에서 고르고 또 골라 이 시집을 엮었다. 아침이면 작업실에서 몇 편의 하이쿠를 다시 꺼내 읽었고, 인도 여행중에도 하이쿠를 옮겨 적었다. 히말라야에서 또 갠지스 강에서 입으로 중얼거리며 수정을 거듭하곤 했다. <한 줄도 너무 길다>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하이쿠의 참맛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이 책 <한 줄도 너무 길다>에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많이 읽히고 또 문학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 3대 하이쿠 시인인 바쇼, 이싸, 부손의 시를 중심으로, 현대의 대표적인 하이쿠 시인인 시키와 또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우리에게는 소설가로 더 많이 알려진 나츠메 소세키의 하이쿠까지 실려 있다. 모두 243편의 이 시들은 가장 하이쿠다운 것들로서 독자들에게 하이쿠 읽는 즐거움을 가르쳐 줄 것이다.

외형적으로 하이쿠는 한 줄에 시인이 본 것을 묘사한 시이다. 단지, 계절의 변화에 따른 자연의 풍경, 작은 곤충들, 풀꽃들같이 시인이 주변에서 자세히 본 것들, 그것도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을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쉽고 간결하다는 것이 하이쿠의 큰 특징이다. 하지만 그 단순하고 몇 개 되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 속에 번개처럼, 생에 파고드는 의미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