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 아래서 잠시
이기철
모든 명사들은 헛되다
제 이름을 불러도 시간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금세기의 막내딸인 오늘이여
네가 선 자리는 유구와 무한 사이의 어디쯤인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영원은 대답하지 않는다
어제는 늙고 내일은 소년인가
오늘의 낮과 밤은 어디서 헤어지는가
이파리들이 꾸는 꿈은 새파랗고
영원은 제 명찰을 달고 순간이 쌓아 놓은 계단을 건너간다
나날은 누구의 방문도 거절하지 않는다
이 윤슬 햇빛이 늙기 전에 나는
어느 철필도 쓰지 않은 사랑의 문장을 써야 한다
오래 견딘 돌이 체온을 버리는 시간
내가 다독여 주지 못한 찰나들이 발등에 쌓인다
무수한 결별의 오늘이 또 나를 떠난다
나는 여기에 현재의 우편번호를 쓸 수 없다
-《영원 아래서 잠시》,( 2022,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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