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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詩를 읽다

Cold Case/ 허연

금동원(琴東媛) 2023. 9. 13. 21:29

Cold Case

 

허연

 

 

한 친구는 부처를 알고 나니까 시 같은 거 안 써도 되겠다며 시를 떠났다. 또 한 친구는 잠들어 있는 딸 아이를 보니까 더 이상 황폐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시를 떠났다. 부러웠다. 난 적절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별자리 이름을 많이 알았거나 목청이 좋았다면 나는 시를 버렸을 것이다. 파킨슨병에 걸린 초파리를 들여다보며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면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신중한 내연기관이었다면 수다스럽게 시를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또 시를 쓴다. 그게 가끔은 진실이다. 난, 언제나 끝까지 가지 못했다. 부처에게로 떠난 친구나, 딸아이 때문에 시를 버린 친구만이 끝까지 갔다.

 

미안하다.미안하다. 내 시가 누군가의 입맛을 잃게 해서. 끝까지 가지 못해서.

 

 

-《내가 원하는 천사》,(문학과 지성사, 2012)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집 다락방과 학교 근처 도서관에서 손때 묻은 고전들을 꺼내 읽으며 어른이 됐다. 고전을 만나면서 세상이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진리를 깨달았고, 지금도 ‘독서는 유일한 세속적 초월’이라는 말을 책상머리에 붙여놓고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단행본 도서의 베스트셀러 유발 요인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추계예술대학교에서 「시 창작에서의 영화이미지 수용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게이오대학교 미디어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현재 『매일경제』 문화부 기자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불온한 검은 피』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오십 미터』, 산문집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고전탐닉』등이 있다. 한국출판학술상, 시작작품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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