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택
금동원
오늘 매우 가까운 지인의 '선택'에 대한 고민에 관여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직장처럼 열정적으로 마음을 다해 일했던 봉사단체를 스스로 떠날 때가 왔다고 느낀 것이다. 즉흥적이거나 충동적인 감정이라기보다 여러 가지 정황상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작별의 때인 것 같다고 했다. 당당하게 자신의 선택을 존중하고 홀가분하게 떠나면 될 줄 알았는데 너무 괴롭다고 했다. 그것이 옳은 선택이라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은 그 선택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중심에서 활동반경을 벗어나 관심의 바깥으로 사라져야 한다는 두려움, 외로움, 박탈감과 소외감이 너무 크다고 했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그 상황에 맞닥뜨려지니 생겨난 심경이 당황스럽고 불편하다고 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며 고민의 대목이었다. 복잡다단한 그 심정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은 많은 대화 속에 숨어있는 ‘나’ 아니면 안 될 거라는 교만함도 조금 남아 있는 듯 보였다. 나의 부재가 가져올 혼란스러운 파장을 즐기듯 지켜보리라는 자만함이 아직은 더 커 보였다. 어쩌면 아직은 그곳을 떠나올 마음의 준비가 충분하지 않게 느껴졌다. 선택의 양면적 감정 속에서 지인은 오늘도 오랜 고민에 비해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해야 한다. 순간적인 직감이나 오랫동안 길든 이미 익숙한 편견과 사고방식으로 결정하기도 한다. 판단의 옳고 그름에 대한 정답은 없다. 그 순간만큼은 늘 그것이 최고의 방법이자 결론이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이런 선택의 귀로에서 유쾌하고 멋지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의 화두이자 우리 모두의 고민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순하게 말하면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 인정하기 싫고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금방 벌어질 잔인한 현실을 지켜보면 확인할 수 있다. 어제까지도 나 아니면 아무도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역할이 오늘 내가 없어도 충분하다. 물론 작은 소요는 있겠지만 그리 큰 걸림돌이나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혼란스럽다. 자신의 존재감을 버리고 자존감을 내려놓은 것처럼 허무하고 공허해질 테니까 말이다, 그곳이 나를 지탱하고 있던 그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자부심이거나 존재 이유로까지 확대되면 이 고민은 간단하지 않다. 되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쉽게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진퇴양난이다. 선택은 그래서 어렵다. 어렵게 풀수록 그렇다.
세상살이에는 순리라는 게 있다. 자연의 섭리처럼 세상의 이치도 아닌 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시간이 약이라고 힘내라고 했다. 그대가 아니어도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가고, 우리는 또 다른 역할을 찾아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인정하고 내려놓으면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균형과 겸손을 배울 수 있다고도 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스스로 후회 없는 선택을 하라고 했다. 그러나 타자가 되어 던지는 수많은 말들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애정과 관심이 담긴 진심의 충고였지만, 지인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다.
헤어져 돌아오면서 위로가 아닌 상처가 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앞섰다. 어쭙잖은 조언도 어쩌면 나의 교만함과 과욕이었을 지도 모른다. 각자가 담을 수 있는 그릇의 넓이는 사람마다 다른 것일 테지만 결국 모든 문제는 스스로 풀고 스스로 걸어가야 할 삶이다. 살면서 터득한 작은 깨달음의 지혜조차 내 방식의 이해이고 해석이다. 판단과 선택의 평형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점점 무거운 화두처럼 어렵다. 늘 원점을 오고 가는 숙제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이다.
-월간 《신문예》, (2024년 03.04월, 통권 1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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