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김현승
가장 고요할 때
가장 외로울 때
내 영혼이
누군가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책을 연다
밤하늘에서 별을 찾 듯 책을 연다
보석상자의 뚜껑을 열 듯
조심스러이 연다
가장 기쁠 때
내 영혼이
누군가의 선물을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책을 연다
나와 같이 그 기쁨을 노래할
영혼의 친구들을
나의 행복을 미리 노래하고 간
나의 친구들을 거기서 만난다
아,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주택들
아, 가장 높은 정신의 성(城)들
그리고 가장 거룩한 영혼의 무덤들
그들의 일생은 거기에 묻혀 있다
나의 슬픔과 나의 괴롬과
나의 희망을 노래하여 주는
내 친구들의 썩지 않는 영혼을
나는 거기서 만난다
그리고 힘주어 손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