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책 이야기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 (유안진 作)

금동원(琴東媛) 2009. 6. 6. 02:22

 

 

지란지교를 꿈꾸며   

 

유안진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 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없는 남의 얘기를 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때론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를 쳐 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자리서 탄로 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바랄 뿐이다. 우리는 흰 눈 속 침대 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고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자기답게 사는 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고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중략)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처럼 품위있게, 군밤은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 때는 백작보다 우아해지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두 사람을 사랑한다 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쓰럽게 여기리라.(중략)

  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芝蘭)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끝)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이처럼 아름다운 삶을 가꿀 수 있다면...

우린 꽤 괜찮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겠지요?

몇십년이 지나도 참 아름다운 글입니다.

여러분 모두 "지란지교"의 우정을 가꾸시기 바랍니다.

봄빛으로 가득한 4월의 하루하루 평온하세요.

 

출판사: 시정시학

출판년도: 2009년 초판

가격: 8.910원(인터넷 기준)